그리스 신화밖에 모르는 당신에게 - 영화보다 재미있는 세상의 모든 신화
마크 대니얼스 지음, 박일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며칠간 비가 쏟아졌다. 세상을 끝장내려는 것처럼, 혹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어떤 움직임처럼..


마야의 신화 속에 후납 쿠가 세상을 세 번이나 거듭 창조하고 나서 만족했다고 했다. 첫 번째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물 뿜는 뱀을 시켜 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멸망시켰고, 두 번째 세상에서는 촐로브족이 부정한 짓을 저질러 또 홍수를 일으켰고 마지막 세상에서 마야족을 만들고 만족했다고 했다. (p203 요약)

아즈텍에서도 창조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첫번째 재규어의 모습으로 세상을 멸망시켰고, 두번째 바람으로 땅위의 것을 쓸어버렸는데 그때 소수의 사람들이 원숭이로 변했다고 했다. 세 번째 창조했을 때는 홍수로 모든 걸 파괴했고, 남아있던 사람들 몇명은 새로 변했고, 네 번째 물의 여신의 피눈물로 홍수가 나서 또 한번 멸망했으며 이번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고기가 되었다고 했다.연거푸 세상을 만드는 일에 실패하자 신들은 죽은 사람들의 뼈를 모아 신의 피를 섞어 다시 살려내기로 했다. 이러한 파괴와 재창조의 개념은 여러 신화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북유럽의 라그나뢰크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처럼..(p211-212요약)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쳤다. 잔뜩 부푼 생선의 배를 가른 듯 쏟아져 내렸다. 그런 날씨를 보며, 단지 장마일 뿐인 시기의 날씨를 보며 창조와 파괴를 생각하는 건 지금이 신화가 필요한 때여서는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신의 힘과 신의 권능을 빌어서라도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현실. 인간의 힘으로 더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어릴 때 베개맡에서 할미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잠이 든 날이면 영락없이 꿈을 꾸었다. 뭐든 마음먹은대로 되는 꿈. 그 꿈에서 뭐든 할 수 있었지만 심판관의 입장이 되어 단호하게 악한 것(어린 생각과 판단에)을 벌하고 선한 것을 지켜내려 했었다. 악한 것이래봐야 더 어린 동생의 과자를 빼앗는 오빠들이나 언니들이었지만, 그들의 손을 오징어 다리처럼 변하게 하고 내게 우유를 나눠주던 친구에게 천사 날개를 달아주는게 전부였지만 옛날 이야기를 들은 밤이면 꿈을 꾸곤 했다. 사람의 힘으로 더는 어찌해 볼 수 없을 때, 하늘을 본다. 어쩐지 그 하늘엔 누군가 내 억울함을 보고 있을 것 같아서, 나 대신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의 손,발을 오징어다리로 만들어줄 것 같아서..


신화를 읽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어린 아이들은 다양하게 출간되는 신화를 접하기도 한다. 그림책으로 만화책으로 짧은 동화로.."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자란 아이들은 제우스와 유피테르(쥬피터)를 알고 아프로디테와 베누스(비너스)를 알고 에로스와 큐피드를 이야기하지만 늘 헷갈리기 일쑤다. 너무 닮은 이야기들,.심지어 쥬피터와 헤라를 부부로 엮어버리기도 한다. 많이 읽어 오히려 헷갈리는 이름들, 사실 이름이 무슨 상관이엤는가. 그들의 모험과 사랑과 증오와 화해가 만드는 이야기들이 더없이 흥미롭고 달콤한데 말이다. 하지만 그 외의 신화들은? 북유럽의 신화들도 간간히 알려지긴 했다. 보통 판타지 소설이나 RPG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거기에 북유럽의 신들이 있었다.

연초에 우연한 기회에 '라마야나'를 읽고 동아시아 신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읽어봐야지 했다. 중동신화를 읽었고, 아프리카 신화를 읽었다. 어째서 신화인가. 곰곰히 생각했지만 어떤 의지, 희망같은 것이 생기길 바라고 있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그들만의 달콤한 일상에 젖을 것이 아니라 창조해 놓은 세상을 좀 보라고 귀를 기울여보라고 따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신과 다투고 싶다니..여기에서 신화에 나오는 신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드러난 셈이나. 이웃집, 혹은 조금 높은 곳에 사는 나보다 조금 더 힘이 있는 거인과 같은 존재. 사람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사람에 의해 창조되어진 신들. 건방지게도 그들이 내린 신탁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틈. 그런 틈을 더 좁히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스, 로마신화, 북유럽신화는 물론이고이집트, 수메르, 중국, 북아메리카 원주민, 중남미, 오스트레일리아와 마오리의 신화까지 도표와 그림과 큰 줄기로 써놓은 책은 참으로 유용했다. 호기심이 일었던 에피소드를 길고 깊게 읽고 싶었지만 간략하게 소개된 것이 아쉽긴 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일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신화를 읽는 것도 계획이 필요하다면 이 책은 설계도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어떤 계보로 읽어야할지 틀과 길을 제시하고 있다. 좋은 참고서라고할까?

신화를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해결방법도 뭣도 찾아지진 않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위로', 그리고 '격려'일지도 모르겠다.


힘없는 피조물이 아니야. 몇번이고 재창조하고 파괴하고 만들어 낸 아주 중요한 존재야. 신에게 복종하려고 하지마. 신과 함께 살아. 너는 위대한 '인간'이야. 라고 말해주는 책. 책꽂이 높은 곳에 두었던 '궁극의 리스트' 옆에 꽂아두기로 했다. 이 역시 흥미로운 리스트다. 헤시오도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일리야드 오딧세이보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가 더 재미있었던 기억을 깨우기로 한다. 이렇게 책이 부르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궁극의 리스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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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7-04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살 돈이 많으면 신화 사전 한 권 장만하고 싶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