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우마다. 개 돼지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머릿속에서는 개가 짖고 돼지가 울었다.
어스름 저녁 개인지 늑대인지, 아군인지 적군인지 구분이 안되는 시간을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다는 걸 이제는 관용구처럼 쓴다. 언제나 코앞에까지 다가서야 구분이 가능한 위기와 안정.
끝나지 않는 노래에 맞춰 고무줄 뛰기를 하는 것 같았다. 고무줄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드는 것은 즐거움에서 고단함으로 바뀐지 오래다. 차라리 저 끝에서부터 정체를 밝히고 와 줘서 고맙다고 할 지경이다. 최소한 모르는 척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펑지차이의 "백사람의 십년"이 드디어 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다. 표지도 예쁘던데..아직 알라딘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국문화대혁명의 비극을 구술문학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라고 했다. 후마니타스에서 출간했던데..고맙다.
다시 되짚어 봐야할 이야기들이다.
고마워할 수 있는 곳들이 아직 남아있어서 다행이다..책 하나를 사는데 출판사까지 따져봐야하는 것이 피곤하지만, 대표적인 출판사만 알고 있는지라 같은 계열사이거나 할 때는 일일이 확인을 못하곤 하지만..여튼.
시인이 시를 앓고 소설가가 소설을 낳듯이 천형처럼 써대듯이 독자도 어쩌면 그런 종류의 신병을 앓는지도 모른다.
책이 검색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을..알림 신청만 해놓는다. 조만간 올라오겠지.
몇가지 책을 장바구니에서 구해낸다.
진정제 삼아서 쓰려는거다. 이 트라우마를 치유할 방법은 없겠지만 잠시 이 굴욕을 진정시켜야하겠기에 말이다.
마침 디어마이프렌즈 소줏잔도 도착했고..
어떤 주제도 의식도 없이 그저 잡히는대로 주문해버린다.
개와 돼지의 시간을 견뎌낼 수 있을게다. 이윽한 밤으로 가는 시간이 아닌 햇살이 시작되는 시간으로의 진입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꽤 오래 견뎌오지 않았는지..따져보면 패배의 기억이 깊어서 그렇지 그렇게 엄청나게 지며 살아온 것도 아니었다. 조금씩 승리하는게 감질나서 그랬지 영 지고만 있지도 않았었다.
뜨거운 노래를 읽으며 이 시간을 견뎌내야겠다.
늘 하는 말을 되씹어본다.
왜 이래? 아마추어같이. 덤벼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