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비밀 -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 아시아 문학선 15
바오 닌 외 지음, 구수정 외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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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신화를 읽었다. 북유럽신화와 이제 징글징글하기까지 한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신화 그렇게 넘나들던 신화탐험(?)은 곧 동아시아 신화로 이어졌다. 굳이 동아시아로 구분할 것도 없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얽혀지고 파생되는 내용은 아시아 전반으로 스며들곤 했다. 신의 이야기와 사람의 이야기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쯤 물결의 비밀을 읽게 된다.

인도 베트남 대만 필리핀 태국 중국 일본 터키의 작가들이 쓴 12편의 이야기. 구미가 당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은 '곡쟁이'때문이었다. 마하스웨타 데비의 글. 사실은 익숙하지 않은 작가이다. 그의 작품의 결과 향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인도의 작가라고 하면 다들 아는 그런 분 .

사실 어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각국의 특수성이라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마치 정글의 식물들이 비슷비슷해보이지만 저마다 다른 종이며 다른 뿌리를 갖고 있는것처럼..하지만 그 나라에 대한 이해가 선행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문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문학에 대한 이해가 편협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혹여 그 나라를 이해하지 못한대도 느껴지는 문학이라면 특수성을 좀 살펴보고 재독했을 때 분명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함을 느끼게 될것이다.

인도는 내게 아프고 강렬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자리했다. 식민지배를 거쳤고, 신분제도와 오랜 가난, 이제는 양극화가 되어버린 부패한 정치가들이 국민들을 유린했던 어쩌면 우리나라와 참 닮은 구석이 많은 나라로 느껴지곤 했다.

데비의 글을 읽으며 거부감도 없이 이입이 되었던건 아마 그런 이유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딘지 닮아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슬픔.

감상이나 감정의 발현이 아닌 '슬픔'과 '상실'의 본질을 마주보게 하는 데비의 글은 제목때문인지 울음소리가 되어 맴돈다.

모든 것을 잃은 여자가 살아가는 법. 더는 잃을 게 없어보이지만 눈치채지 못할 뿐 시간을 자꾸만 잃어간다.

"사니차리가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슬픔? 아니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남편도 죽고, 아들도 죽고, 손자는 떠났고, 며느리는 달아났다. 그녀의 삶에는 항상 슬픔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강렬한 두려움은 이제껏 느껴본 적이 없다. (...)사니차리가 이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결국 왜냐고? 왜냐하면 사니차리는 늙었기 때문이다. (p237)"


표제작인 물결의 비밀..베트남 작가의 지 패오..자꾸만 가슴에 맺히는 것들이 있다.

동양의 정서라고 단순하게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는, 어쩌면 비슷한 역사를 품은 민중의 삶이라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색만 달라졌을 뿐 밑그림은 여전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질곡의 삶.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적어낸 글들이 순박하고 예리하다.


책을 덮으며 아쉬웠다.

"내 맘대로 써도 되는 용돈이 좀 있으면 잔뜩 사서 나눠주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그럴 여유도 뭣도 없으니 아쉽기는 했다. 친구가 물었다.

 "그마이 재밌드나?"

"응. 꼭 읽어봐" 라고 대답했다.

어설프게 이러저러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외할미의 된장국이 어떤 맛이었는지 설명할 방도가 없듯이 말이다. 떠먹어봐야 알지..


누군가에게 책을 권한다면..당분간은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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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12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곡` 하면 허난설헌의 시가 생각납니다. 시 제목이 `곡자`인데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래서 나타샤님이 소개한 `곡쟁이`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어요. ^^

나타샤 2016-09-12 17:05   좋아요 0 | URL
카스트 하급의 늙고 혼자 남은 여자의 이야기예요..상 당한 부잣집에 곡을 해주고 댓가를 받죠..여기까지만^^

보리숲 2016-09-13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너무 읽고 싶어지는 리뷰예요!

나타샤 2016-09-13 13:12   좋아요 0 | URL
권해드려요..^^ 명절 잘 쇠세요!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삼성언론재단총서
김동진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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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정'이 개봉했다.

1920년대 일제 강점기 조선인 출신 일본경찰 이정출은 무장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의 뒤를 캐라는 특명으로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에게 접근하고...

포털사이트에 나온 줄거리의 시작부분이다.


이 이야기의 실제 인물들의 무력독립투쟁의 이야기, 그들의 결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책이다.

근래들어 독립운동가 개개인의 삶이 재조명되는 책들과 영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훌륭한"이라는 말로는 도무지 설명이 다 되지 않는 그들의 염원과 투쟁은 한 자씩 또박또박 짚어가며 읽어도 지나치지 않을것이다.

일본경찰 출신의 황옥, 의열단의 수장 김원봉. 그리고 김상옥의 이야기, 이 싸움에 뛰어든 수많은 사람들과 몽골에서 의롭게 죽어간 이태준, 외국인이지만 폭탄을 제작해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썼던 마자르.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한 신채호.

보도는 통제 되었고, 무력통치에서 문화통치로 더 교묘해진 일제의 지배전략하에서 독립운동의 다양한 양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저들과 협상을 하려는 사람들, 이간책에 넘어가 투항하고 밀정이 된 사람들, 나이브한 문화선전으로 돌아선 사람들, 더 이상의 희망을 찾지 못하고 떠나버린 사람들..

그 속에서 더는 협상도 타협도 없다고, 저들과 무력으로 맞서 싸우겠다고 일떠선 사람들. 의열단.

사격훈련을 받고 폭탄 투척 훈련도 받고, 보안을 철저히 지켜가며 어떤 상황이든 조직과 독립을 위해 한 목숨을 내 놓을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시작된다.

암살과 폭파. 그것으로 적들에게 타격을 입히고 조선 국민들에겐 희망과 용기를 주어 독립의 길로 이끌고 가겠다는 담대한 사람들이다.

조선 내 주요 건물에 폭탄을 설치 투척하여 일시에 타격하겠다는 의열단의 계획. 계획을 세우고 자금을 모으고 사람들을 모으고 제작된 폭탄을 국내로 들여오기까지 매 순간이 고비이고 간담을 서늘케 한다.

이 과정에서 조선이지만 일본 경찰에서 주요 위치를 차지한 황옥의 역할은 대단했다. 양쪽 모두에게 의심을 받으며 양쪽 모두에게 필요했던 사람.

의열단을 와해시키려 혈안이 된 일본 경찰. 의열단의 활약은 실로 대단했다.

특히나 사이토총독을 저격하기 위해 입국했던 김상옥의 이야기는 마지막 한순간까지 치열하게 싸워낸 이야기는 어떤 자책을 갖게도 했다.

이렇게까지 해서 지켜낸 나라인데. 어째서..


1919년부터 1923년까지 길지 않은 시간동안 파상적이고 입체적인 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막연하게 숨어서 도망다니며 아슬아슬하게 선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각적으로 조직이 만들어지고 움직이고 실행했다. 모진 고문과 협박에도 단 한명의 동지의 이름도 말하지 않았던 그들. 그들의 입을 막은 건 동지애를 넘어선 애국심이었다.

단 한명도 잃지 않겠다는, 그리고 그런 싸움들이 조국 독립의 불씨라는 확고한 신념. 모든 걸 내 놓고 목숨으로 싸운 사람들.


대단하다.

라는 생각보다 긴 한 숨이 먼저 새어나왔다. 그들의 후손은 아직도 궁핍하고, 그들이 지켜내려했던 주권은 너덜너덜해지지 않았는가.

밀정을 봐야하나? 생각이 길어진다.

책 한 권으로 읽어낸 그들의 이야기에도 이렇게 몸서리가 쳐지는데..실제로 움직이며 보여진다면 얼마나 이가 갈릴까..


사무실에 가져와 책꽂이에 꽂아두기로 한다. 아이들이 읽기에도 더없이 좋겠다.


대통령은 오늘 아베를 만난다고 했다. 위안부 이야기를 꺼낼까? 독도 이야기를 꺼낼까? 일제강점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까?

우리에게 '의열단'이라는 강력한 투쟁조직이 있었다는 것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 정신이 그 결기가 시퍼렇게 느껴진다.

그런 조직이 또 다시 생긴다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국이라는 게 참담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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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숲 2016-09-08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밀정 보고 와서 글을 보게 되네요. 의열단 목숨의 무게 하나하나가 무척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나타샤 2016-09-08 15:53   좋아요 0 | URL
아..보셨군요..보고싶은데 자꾸 주저하게 되네요.
 
달방 있습니까 오늘의 청소년 문학 17
송현승 지음 / 다른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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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달방. 숙박업소에 한달씩 대여해서 쓰는 방을 보통 달방이라고 한다. 집을 구하기 어려운 이들이 선택해야 하는 볓 안되는 선택지 중 하나인 달방.

달방이라는 말을 오랜만에 듣는다. 사실 대학가 주변에 자취하는 아이들을 보면 거의 달방에 가까운 시스템으로 살고 있는 아이들도 있다. 보증금없이, 혹은 한달치 정도의 임대료를 보증금으로 내고 지내야 할 기간만큼의 임대료를 미리 내고 사는 전세도 월세도 아니고 깔세라고 부른다고 했다.

집이 없음. 저만치 달려갔다 돌아올 회귀점이 없는 일상은 얼마나 고단할까. 어떤 형태로든 고단한 몸을 누일만한 안전한 공간을 갖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것이 성인이건 가출 청소년이건 간에..

제목만 보고 임대형태에 대한 이야기일까? 싶었다.

청소년 소설 두 아이의 가출과 귀가에 대한 이야기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 힘 센 아이에게 당하는 폭력과 무시와 상납. 피폐해질대로 피폐해진 아이를 보듬어 줄 어른이 없었다. 돈을 벌어오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 부모는 약해빠진 아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한 아이. 소리를 가르치려는 아버지와 신내림을 받으라는 어머니 사이에서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는 아이.

두 아이가 감행한 가출.

도망치듯 빠져나온 집. 어떻게든 살아내겠다고 아이는 혼자 분을 삭이며 만들었던 나무 조각을 팔기로 했고, 여자 아이는 칭찬 깨나 들었던 판소리를 하며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찾은 집의 대안 '달방' 너무 어려서 들어갈 수 없게 되자 근처의 노숙인을 보호자라 속이고 방을 얻어 생활하게 된다.

여자 아이의 공연은 SNS를 통해 알려지고 아이를 못살게 굴던 일당(?)들에게 위치를 발각당한다. 결국 위기에 처해지지만 또 다시 도망을 치게 되고 촌으로 숨어든다. 거기서 만난 사람들의 도움으로 힘도 기르고 마음도 기르고..그러다 아버지의 임종 소식을 듣게 된다. 그렇게 되돌아 온 집. 상황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지만 아이가 달라졌다.

아이를 못살게 굴던 힘 센 녀석들도 혼내주고 제가 당한만큼 설욕하는데 집중한다. 이런 모습을 같이 동행했던 여자아이에게 자랑스레 보여주지만 오히려 훈계를 듣게 된다.


청소년 소설이라고 하지만 사실 얼마나 아이들이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가출의 동기와 그 후의 생활, 그리고 귀가하기까지의 과정이 점잖다. 오래전 가난이 싫어서 가출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닮았다. 요즘의 아이들이 가출을 하는 수백가지의 이유와 가출 후에 맞딱뜨리게 되는 현실은 생각보다 위태롭다. 극단적이기까지 하다.

소꼽장난처럼 알콩달콩 하기까지 한 이야기에 살짝 갸우뚱해졌다.

왕따의 문제도 가출 충동도, 귀가 후의 일상도 부대낌 없이 이어진다. 작가의 필력이거나 현실감의 살짝 떨어지는 탓은 아닐까 싶어졌다.


매일처럼 또래의 아이들과 부대끼는 직업을 갖고 있는지라 아이들의 성향과 반발심, 그리고 그것을 눌러 참는 지난한 과정을 체감하고 있다.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그 들끓음을 단지 믿고 기다려줄 수 밖에 없는 무력함을 시시각각 느끼면서 말이다.


아이들이 읽으면 어떨까? 싶어서 사무실에 두기로 한다.

아이들에게 내어놓을 책이라 꼼꼼하게 읽는다. 조금 싱겁게 느껴진것이 나이듦으로 인한 혼탁한 마음 때문일거라고 애써 위로해본다.

또래의 아이들에겐 어떤 대리만족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예민할데로 예민한 아이들에겐 이런 두루뭉실한 쓰다듬음도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착하고 얌전한 가출기 같은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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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촌스러움의 미학 - 꽃 중에 질로 이쁜 꽃은 사람꽃이제
황풍년 지음 / 행성B(행성비)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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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아이들끼리 서로 놀림을 주고 받을 때, 그 놀림의 끝판왕은 '촌닭 같은게.'였다. 어쩐지 세련은 커녕 중간에도 끼지 못하는 낙오자를 지칭하는 것 같은 '촌닭'이라는 말은 아이들 사이에서 최후의 일격 같은 의미였다. 어지간해서는 꺼내지 않는 말. 그러나 그 말이 소리가 되어 튀어나온 순간 촌닭이라 지칭된 아이의 별명은 무슨무슨 촌닭으로 굳어지곤 했다. 꼬마촌닭, 방구촌닭, 점박이촌닭..

서울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에게 '촌'이란 개발이 덜 되고 미련한 사람들이 사는 곳처럼 종종 인식되었다. 세련되지 못함. 그렇다면 세련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우월하거나 야무지거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음 같은 것이었으리라. 남들보다 나은 입성과 입지를 가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세련된 사람들이라 칭하게 된건 드라마때문일지도 몰랐지만 그 배경엔 간단없는 경쟁과 경제성장이라는 사회적 조건이 있었을거다.

잘 입고 잘 먹고 사는 것. 그것이 당면의 과제였던 사람들은 이익과 편리에 집중했고, 보존과 이해에 인색했다. 도시로 도시로 몰려온 사람들, 촌스러움은 무기가 될 수 없었고 오히려 마땅히 버려야 할 것으로 이해되었다.

지방에서 전학 온 친구들의 사투리는 신기하기 전에 우스웠다. 불안한 사회 속에서 사람들은 나와 우리, 너와 너희를 구분해야했다. 그렇게 조금씩 갈라지며 야박해져왔다.


전라도.

사실 전라도라는 곳에 대해 관심을 보이게 된 것은 대학에 들어가서부터였다. 태백산맥을 읽었고, 광주를 들었으며 고창으로 농활을 갔었다 .전주 출신의 룸메이트가 있었고, 정말 좋아했던 친구가 목포교도소에 있었다.

몇가지의 단절적 이미지로 구성되는 전라도는 투박하고 가난했다. 굴곡진 시간들을 건너며 전라도는 더 뒷쪽에 더 외진 곳에 쪼그려 앉은 작은 아이처럼 취급되었다.

전라도가 주목 받는 시기는 정해져 있었다. 각종 선거의 때. 그 때에만 전라도 사람들은 국민이었고 소중한 민의였다. 증오와 혐오의 씨앗을 뿌리는 자들은 전라디언이라는 모욕적인 언사와 무례한 행동을 일삼을 대상이 되기도 했다.

대한민국 그 어느 곳도 이처럼 타박받고 외면당한 곳이 없으리라.

책을 읽으며 이 모든 시간을 꾸역꾸역 삼키며 살아온 이들의 숨결같은 이야기를 듣는다. 물렁한 이야기가 아닌 오독오독한 이야기 오래전 읽은 태백산맥에서 눈물과 땀에 절은 목소리로 나누던 그들의 이야기처럼 살폿살폿 다가서는 목소리를 듣는다.


전라도의 힘, 전라도의 맛, 전라도의 맘, 전라도의 멋.

웅숭깊다(형, 1, 생각이나 뜻이 크고 넓다. 2. 사물이 되바라지지 아니하고 깊숙하다)는 말의 질감과 온도를 알 수 있는 글들이다.

할머니들의 입을 타고 이어지는 입말들, 팍팍한 가슴으로 견뎌낸 이야기들, 그것은 전라도 만의 이야기는 아닐지도 모른다. 어느 촌골짝에 가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 그 곳에 뿌리 내린 탓에 꽃피우고 열매맺고 씨앗마저 보내고 나서 서서히 다음 세대를 위해 누울 준비가 된 사람들은 웅숭깊었다.

"항꾼에 (함께) 노놔 묵어야 게미지제. 항꾼에 놀아야 재미지제"

이 한마디에 웃음이 났다. 어울려 사는 사람들, 서로의 속내까지 아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나누는 이야기가 재미없을 수 없다. 숱한 의미를 갖는 '거시기'는 신비로운 암호다. 알아야 이해하는..


지인의 집들이에 초대 받던 날을 기억한다. 새댁이 솜씨가 야무졌다. '맛있겠다'라는 탄성 앞에 새댁은 '아유, 잘 못해요. 친정엄마가 전라도분이시라' 라며 말을 흐렸고 그 순간 일행들의 눈에 스친 신뢰와 기대를 기억한다. 그만큼 손 맛에 대한 공감이 있는 것이다. 전라도의 맛. 이건 마치 시인 백석을 싫어하는 이유를 대보라는 주문만큼 더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진도의 이야기가 나왔다. '맹골도'. '죽도', 곽도'의 이야기. 맹골도라는 말에 덜컥한다. 그만큼 온 국민들이 벗어나지 못한 트라우마다.

잠깐 책읽기를 멈추었다. 긴 심호흡을 하고서야 다시 그 맛을 떠올려본다. 음식의 맛과 이야기의 맛이 잘 버무려진다. 무던히 손이 갔을 그 음식을 암시랑토 안허게 내어놓는 그 마음이 맛을 부추기는 건 아닐까 하고..


급하게 뛰어가는 시대와 사람들로부터 한 걸음 뒤에 더불어 걸어온 사람들. 그 흔적은 재바르지도 반듯하기만 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자꾸 뒤쳐지는 건 아닌가 조바심을 부릴 법도 한데 전라도는, 전라도 사람들은 항꾼에 사는 법이 재미졌는지도 모른다. 빠르지 않아도 한 방에 뒤엎지 않아도 자신들의 속도로 너끈히 이어갈 삶과 시간을 겸손하게 살아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촌스러운 전라도.

자꾸만 내어주는 손길, 자꾸만 들여다보는 눈길, 천천히 같이 가는 맛을 아는 거기는 촌스럽다. 약삭빠르지도 계산적이지도 못한 사람들과 시간의 이야기가 요즘 말로 찰지다.

사투리와 화보가 가득한 책은 입심 좋은 아주머니의 설명처럼 흥미로웠다. 촌스럽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순정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말의 다른 표현일지도 모른다. 세상의 속도와 경쟁과 무관하게, 그에 무관한 댓가를 가슴으로 치르며 함께 살아내고 있는 사람들의 참살이의 모습. 도저히 이문이 계산되지 않는 손해보는 삶인데도 합죽하게 웃으며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모습. 그 수더분함 속에 온몸으로 항거하는 반란의 피가 고스란히 보존된 선득선득 심장이 뛰는 모습.


촌스러운 전라도의 이야기를 읽는다. 촌스러움의 미학? 본래의 미. 본래의 사람을 만난다. 아름다운 대상들이 아닌, 아름다움을 만난다.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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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잠 (한글판) - 시극 나비잠
김경주 지음 / 호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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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라는 시집을 만난 것으로 충격과 호기심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지?'

김경주의 작품들을 찾아 읽으며 문단의 자랑이거나 저주라는 그에 대한 평가에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김경주의 글을 읽는 건 꿈을 꾸어도 좋다는 허락 같았다. 꿈을 꾼다는 것, 그것은 비로소 절망할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라고 한다면 김경주는 천재이거나 절망하게 하는 저주를 내리는 영매일지도 몰랐다.

희곡을 쓰고 연출을 하고 그의 행보는 입체적이었다. 결국 시극 나비잠이 나온 것이다.

시극.

뭔가 낯설다. 시로 극이 될 수 있다니. 어떤 사람 혹은 사람들의 노래로 만들어진 노래극은 익숙해졌지만 시로 이루어진 극이라니..

이 낯섬의 시작엔 시에 대한 오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이지 않은 은유와 이미지가 가득한 허공의 목소리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시가 사람의 언어이며 사람의 말이라면 그것으로 극이 쓰이고 공연된다 한들 이렇게 생경하거나 놀랍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맘마미아를 보면서, 김광석을 보면서 마이클잭슨 오마주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거나 추억에 잠긴것을 보면 말이다.

나비잠은 시극이다.


버려진 아이 달래, 성을 쌓는 대목수, 대목수의 잃어버린 형제 악공, 제사장, 천문사관, 달래를 기른 노파, 스님, 그외의 다수..

가뭄과 기근 흉흉한 민심을 다잡기 위해 대목수는 사대문을 단단하게 세우고 기우제를 지내려 한다. 단단한 사대문은 죽은 아이들의 머리통이, 죽은 아이들의 머리통 속에서 흐르는 흙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악몽같은 과거를 기억하는 대목수, 바람처럼 노래하는 악공, 잠들지 않은 채 한없이 길어지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아이 달래.

이야기의 축은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제사장, 천문사관, 스님, 노파가 외벽을 쌓으며 이어진다.

사대문이라..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문. 그 안에 피폐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어쩌면 불길한 것들은 사대문 밖으로 내치고 불행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현실과 닮았다. 단단한 사대문은 죄없는 목숨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

너무나 선명한 꿈이어서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경계에 서성이게 하는 그. 나비잠은 그런 느낌을 같게 한다.

대사들과 지문들과 나레이션은 모두 시다.

시가 걷고, 시가 울고, 시가 말해지며 시가 두려워한다.

네모난 페이지 안에 갇힌 시어들이 공간으로 뛰어나와 바람처럼 불고 흙처럼 쏟아지며 한없이 길어지는 머리카락처럼 온 몸을 휘감는다.


달래.

머루 달래의 달래인줄 알았다. 달래는 달래는 사람이다. 상처를 달래고 어둠을 달래고 눈물을 달래는 달래.

한 쪽 눈으론 밤을 보고 다른 한 쪽 눈으로 낮을 보는 달래.

기우제의 제물이 될 달래.

아이를 키우려고 훔쳐왔으나 역병에 걸린것을 알고 버렸던 그 달래. 사대문 밖 숲에서 시체의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드는 노파의 손에 자란 달래.

이토록 기구한 아이가, 이보다 더 서러울 수 없는 아이가 달래다. 그 아이가 상처를 달랜다.

내쳐진 존재에게서 구하게 되는 위로와 치유. 그래서 아프다.


극 속에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흥미롭다. 인형극의 형태로 또는 전설처럼 이야기 되는 과정. 극 속의 극,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과정은 살짝 흩어지려는 집중력을 다잡게 한다.


나비가 달래를 입에 물고

어디론가 떠 간다

나비가 입에 물고 있던 달래를 떨어뜨린다

나비 날아간다

달래 나비의 메아리를

따라가다

흐느끼듯

뭔가를 중얼거리듯

천천히

느리게

허공으로 흩어지는

숨소리를

다라

성벽에 다가가

귀를 대어 본다


달래 나. 나비. 가

우. 운다

나. 나비. 가

타. 타. 탄다


심장을 잡은 채 푹 쓰러지는 달래

죽어서 땅에 떨어진 나비처럼 늘어져

두 손을 하늘로 펼친 채 잠을 자는 표정이다

모여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지나가는 스님이

소녀의 이마를 문질러 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비잠과 달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심장이 아픈 아이. 혀가 참새의 혀만큼 작은 아이. 말을 더듬고 심장의 고통을 품고 사는 아이. 달래.

달래의 역할은 듣는 것이다. 달래는 것이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로 의심받고 밀려났지만 결국 사람들의 치유의 잠을 위해 자장가를 부르게 되는 달래인 것이다.


극은 점 잇기 책 같은 느낌이다. 이 점에서 저 점으로 까닭없이 뛰어가다 마지막 점을 잇는 순간 또렷이 보이는 흔적들. 그 흔적들이 보여주는 그림. 이야기.

결국 까닭없는 이음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그 순간 느껴지는 복받침.

아무도 달래주지 않는 설움과 상처가 켜켜이 쌓인 내 손으로 쌓은 내 삶의 사대문에 귀를 기울이고 바람을 들리고 빛을 끌어와 오랜만에 아이처럼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김경주.

시극 나비잠.

흥미롭고 개운한 경험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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