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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잠 (한글판) - 시극 ㅣ 나비잠
김경주 지음 / 호미 / 2016년 7월
평점 :
품절
김경주.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라는 시집을 만난 것으로 충격과 호기심이 시작되었다. '어떻게 글을 이렇게 쓸 수 있지?'
김경주의 작품들을 찾아 읽으며 문단의 자랑이거나 저주라는 그에 대한 평가에 수긍이 가기 시작했다. 김경주의 글을 읽는 건 꿈을 꾸어도 좋다는 허락 같았다. 꿈을 꾼다는 것, 그것은 비로소 절망할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라고 한다면 김경주는 천재이거나 절망하게 하는 저주를 내리는 영매일지도 몰랐다.
희곡을 쓰고 연출을 하고 그의 행보는 입체적이었다. 결국 시극 나비잠이 나온 것이다.
시극.
뭔가 낯설다. 시로 극이 될 수 있다니. 어떤 사람 혹은 사람들의 노래로 만들어진 노래극은 익숙해졌지만 시로 이루어진 극이라니..
이 낯섬의 시작엔 시에 대한 오해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현실적이지 않은 은유와 이미지가 가득한 허공의 목소리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시가 사람의 언어이며 사람의 말이라면 그것으로 극이 쓰이고 공연된다 한들 이렇게 생경하거나 놀랍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맘마미아를 보면서, 김광석을 보면서 마이클잭슨 오마주를 보면서 감동을 받았거나 추억에 잠긴것을 보면 말이다.
나비잠은 시극이다.
버려진 아이 달래, 성을 쌓는 대목수, 대목수의 잃어버린 형제 악공, 제사장, 천문사관, 달래를 기른 노파, 스님, 그외의 다수..
가뭄과 기근 흉흉한 민심을 다잡기 위해 대목수는 사대문을 단단하게 세우고 기우제를 지내려 한다. 단단한 사대문은 죽은 아이들의 머리통이, 죽은 아이들의 머리통 속에서 흐르는 흙들이 쌓여 만들어진다. 악몽같은 과거를 기억하는 대목수, 바람처럼 노래하는 악공, 잠들지 않은 채 한없이 길어지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아이 달래.
이야기의 축은 이렇게 세 사람을 중심으로 제사장, 천문사관, 스님, 노파가 외벽을 쌓으며 이어진다.
사대문이라..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문. 그 안에 피폐하게 하루하루를 버티는 사람들. 어쩌면 불길한 것들은 사대문 밖으로 내치고 불행으로부터 보호받고 싶어하는 우리들의 현실과 닮았다. 단단한 사대문은 죄없는 목숨들의 희생을 담보로 하고 있다.
너무나 선명한 꿈이어서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는 경계에 서성이게 하는 그. 나비잠은 그런 느낌을 같게 한다.
대사들과 지문들과 나레이션은 모두 시다.
시가 걷고, 시가 울고, 시가 말해지며 시가 두려워한다.
네모난 페이지 안에 갇힌 시어들이 공간으로 뛰어나와 바람처럼 불고 흙처럼 쏟아지며 한없이 길어지는 머리카락처럼 온 몸을 휘감는다.
달래.
머루 달래의 달래인줄 알았다. 달래는 달래는 사람이다. 상처를 달래고 어둠을 달래고 눈물을 달래는 달래.
한 쪽 눈으론 밤을 보고 다른 한 쪽 눈으로 낮을 보는 달래.
기우제의 제물이 될 달래.
아이를 키우려고 훔쳐왔으나 역병에 걸린것을 알고 버렸던 그 달래. 사대문 밖 숲에서 시체의 머리카락을 잘라 가발을 만드는 노파의 손에 자란 달래.
이토록 기구한 아이가, 이보다 더 서러울 수 없는 아이가 달래다. 그 아이가 상처를 달랜다.
내쳐진 존재에게서 구하게 되는 위로와 치유. 그래서 아프다.
극 속에서 관계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흥미롭다. 인형극의 형태로 또는 전설처럼 이야기 되는 과정. 극 속의 극, 이야기 속의 이야기의 과정은 살짝 흩어지려는 집중력을 다잡게 한다.
나비가 달래를 입에 물고
어디론가 떠 간다
나비가 입에 물고 있던 달래를 떨어뜨린다
나비 날아간다
달래 나비의 메아리를
따라가다
흐느끼듯
뭔가를 중얼거리듯
천천히
느리게
허공으로 흩어지는
숨소리를
다라
성벽에 다가가
귀를 대어 본다
달래 나. 나비. 가
우. 운다
나. 나비. 가
타. 타. 탄다
심장을 잡은 채 푹 쓰러지는 달래
죽어서 땅에 떨어진 나비처럼 늘어져
두 손을 하늘로 펼친 채 잠을 자는 표정이다
모여서 웅성거리는 사람들
지나가는 스님이
소녀의 이마를 문질러 주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비잠과 달래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심장이 아픈 아이. 혀가 참새의 혀만큼 작은 아이. 말을 더듬고 심장의 고통을 품고 사는 아이. 달래.
달래의 역할은 듣는 것이다. 달래는 것이다. 잠들지 못하는 이유로 의심받고 밀려났지만 결국 사람들의 치유의 잠을 위해 자장가를 부르게 되는 달래인 것이다.
극은 점 잇기 책 같은 느낌이다. 이 점에서 저 점으로 까닭없이 뛰어가다 마지막 점을 잇는 순간 또렷이 보이는 흔적들. 그 흔적들이 보여주는 그림. 이야기.
결국 까닭없는 이음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고 그 순간 느껴지는 복받침.
아무도 달래주지 않는 설움과 상처가 켜켜이 쌓인 내 손으로 쌓은 내 삶의 사대문에 귀를 기울이고 바람을 들리고 빛을 끌어와 오랜만에 아이처럼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김경주.
시극 나비잠.
흥미롭고 개운한 경험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