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결의 비밀 - 아시아 베스트 컬렉션 아시아 문학선 15
바오 닌 외 지음, 구수정 외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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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신화를 읽었다. 북유럽신화와 이제 징글징글하기까지 한 그리스로마 신화, 그리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신화 그렇게 넘나들던 신화탐험(?)은 곧 동아시아 신화로 이어졌다. 굳이 동아시아로 구분할 것도 없이 하나의 이야기 속에 얽혀지고 파생되는 내용은 아시아 전반으로 스며들곤 했다. 신의 이야기와 사람의 이야기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쯤 물결의 비밀을 읽게 된다.

인도 베트남 대만 필리핀 태국 중국 일본 터키의 작가들이 쓴 12편의 이야기. 구미가 당기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사실은 '곡쟁이'때문이었다. 마하스웨타 데비의 글. 사실은 익숙하지 않은 작가이다. 그의 작품의 결과 향을 짐작도 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것이 인도의 작가라고 하면 다들 아는 그런 분 .

사실 어느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각국의 특수성이라는 것이 만만치 않으니 말이다. 마치 정글의 식물들이 비슷비슷해보이지만 저마다 다른 종이며 다른 뿌리를 갖고 있는것처럼..하지만 그 나라에 대한 이해가 선행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의 문학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문학에 대한 이해가 편협한 탓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혹여 그 나라를 이해하지 못한대도 느껴지는 문학이라면 특수성을 좀 살펴보고 재독했을 때 분명 이전엔 느끼지 못했던 강렬함을 느끼게 될것이다.

인도는 내게 아프고 강렬한 나라라는 이미지로 자리했다. 식민지배를 거쳤고, 신분제도와 오랜 가난, 이제는 양극화가 되어버린 부패한 정치가들이 국민들을 유린했던 어쩌면 우리나라와 참 닮은 구석이 많은 나라로 느껴지곤 했다.

데비의 글을 읽으며 거부감도 없이 이입이 되었던건 아마 그런 이유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딘지 닮아서 고스란히 느껴지는 슬픔.

감상이나 감정의 발현이 아닌 '슬픔'과 '상실'의 본질을 마주보게 하는 데비의 글은 제목때문인지 울음소리가 되어 맴돈다.

모든 것을 잃은 여자가 살아가는 법. 더는 잃을 게 없어보이지만 눈치채지 못할 뿐 시간을 자꾸만 잃어간다.

"사니차리가 느낀 감정은 무엇일까? 슬픔? 아니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 두려움이었다.남편도 죽고, 아들도 죽고, 손자는 떠났고, 며느리는 달아났다. 그녀의 삶에는 항상 슬픔이 함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강렬한 두려움은 이제껏 느껴본 적이 없다. (...)사니차리가 이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결국 왜냐고? 왜냐하면 사니차리는 늙었기 때문이다. (p237)"


표제작인 물결의 비밀..베트남 작가의 지 패오..자꾸만 가슴에 맺히는 것들이 있다.

동양의 정서라고 단순하게 단정짓기는 무리가 있는, 어쩌면 비슷한 역사를 품은 민중의 삶이라서 그랬을지도 몰랐다.

어쩌면 색만 달라졌을 뿐 밑그림은 여전한 것을 깨달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 질곡의 삶. 그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적어낸 글들이 순박하고 예리하다.


책을 덮으며 아쉬웠다.

"내 맘대로 써도 되는 용돈이 좀 있으면 잔뜩 사서 나눠주고 싶어" 하는 생각이 든 까닭이다.

그럴 여유도 뭣도 없으니 아쉽기는 했다. 친구가 물었다.

 "그마이 재밌드나?"

"응. 꼭 읽어봐" 라고 대답했다.

어설프게 이러저러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외할미의 된장국이 어떤 맛이었는지 설명할 방도가 없듯이 말이다. 떠먹어봐야 알지..


누군가에게 책을 권한다면..당분간은 주저없이 이 책을 권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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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9-12 16: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곡` 하면 허난설헌의 시가 생각납니다. 시 제목이 `곡자`인데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내용이거든요. 그래서 나타샤님이 소개한 `곡쟁이`가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읽어보고 싶어요. ^^

나타샤 2016-09-12 17:05   좋아요 0 | URL
카스트 하급의 늙고 혼자 남은 여자의 이야기예요..상 당한 부잣집에 곡을 해주고 댓가를 받죠..여기까지만^^

보리숲 2016-09-13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너무 읽고 싶어지는 리뷰예요!

나타샤 2016-09-13 13:12   좋아요 0 | URL
권해드려요..^^ 명절 잘 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