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번씩 농담으로라도 "10년 안에 세상 망한다는데 뭘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제가 안 망하게 할 거예요" 하고 감히 말한다. 나는 지구에 사랑하는 것들이 하도 많아서 그 모든 것들이 멸종하도록 손 놓고 있고 싶지 않다. 우리가 망하는 순간은 고귀한 영혼을 놓아버리는 순간이다. 의지를 놓아버리는 순간이다. 만약 당신이 고귀한 영혼을 이미 놓았다면 망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세상은 당신이 그렇게 쉽게 망하도록 내버려두지 않는다. 사람은 오롯이 혼자로 만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 기후파업Climate Strike에 참여한 어린이와 청소년(1997~2012년생)은 베이비붐 세대인 조부모(1946~1964년생)의 탄소배출량에 견주어 그 6분의 1만을 배출할 수 있다. 지금 아이들은 지구온난화를 거의 일으키지 않으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다.
이는 아이들 세대가, 이전 세대가 누렸던 배출량의 사치를 누릴수 없음을 의미한다. 또한 온실가스는 배출 후 수백 년 동안 대기 중에 남아 있으므로 아이들 세대는 이전 세대가 배출한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위험을 고스란히 겪어내야 한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탄소 저감 조치를 아직 취하지 않아, 뜨거운 불을 끄는수단이 작동하기 전에 뜨거움이 증폭되는 세상으로 하루하루진입하고 있다. 오늘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오늘을 위해 내일을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청소년 기후소송단은 청소년인데도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이라서 활동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소리로 이 사회에 유의미한 변화가 생길 때까지, 우리는 계속 행동할 작정이다. 예나지금이나 청소년들은 사회의 일원으로서 가치를 증명해왔다.
청소년들의 사회적 행동이 더 이상 예외적인 사건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미래세대를 위해 무언가를 해주겠다고 어른들만 나설 것이 아니라, 우리 청소년들이 동료 시민으로서 의사 결정에 함께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여성들은 삶의 현장에서 생명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한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전통사회에서 여성들은 대대로 씨앗을지키고 물려주었다. 지금도 농촌의 자치와 자립 공동체에서 소농을 기반으로 토종씨앗을 지키는 여성들이 있다. 전국의 에너지자립마을에서는 여성들이 주민과 함께 새로운 실험을 하면서 지속가능한 삶으로의 변화를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하고있다. 기후여정에 참여했던 한 활동가는 그 여성들을 만나면서,
또 "생명에는 타협이 없다" 라고 단언하고 끈기 있게 탈핵운동을 지속하는 여성들을 만나면서 희망을 보았다고 했다. 여성들은 "기후위기라는 자칫 추상적이고 모호할 수 있는 현상을 생존의 절박한 문제로 보고, 풀뿌리 삶 속에서 대안을 만들어가고 있다.

최근 기후위기 대응에관한 논쟁의 핵심은 기후재정이다. 기후재정의 구조는 매우 복잡하며, 국제 공적기금과 민간기금, 카본시장 등 수많은 공적·사적 행위자가 존재한다. 문제는 이미 존재하는 성불평등이 기후재정에 대한 여성의 개입 역량을 제한할 수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여성은 토지와 같은 자산을 소유하거나 신용을 축적하지 못하여 기금에 접근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기후 투자 및 기금에 성평등 목표를 설정하고 모니터링하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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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we start to act, hope is everywhere."

Greta Thunberg

"행동하기 시작하면, 희망은 모든 곳으로 번집니다."
그레타 툰베리

 그레타 툰베리의 연설은 당장 한국의 국회에서도 이루어질 일이다. 기후위기 속에서도 은밀한 동맹을 맺고 있는 기득권 엘리 트들의 기후 침묵‘ 체제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한국에서 더욱 절실한 일이다. 
국회뿐만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 거리에 서, 식당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일터에서, 어디에서든 말하고,노래하고, 보여주어야 한다. 
말하는 이가 꼭 스웨덴 청소년일필요도 없다. 기후위기의 진실을 마주하고 용기 내어 이야기할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없다. 

하지만 이것 또한 말씀드리겠습니다. 위기를 위기로 다루지 않으며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전체 그림을 보아야 합니다. 개인 정치인, 시장market 혹은 세상의 다른 이들에게 책임을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모두가 모든 것을 해야만 합니다.

과학적 사실을 근거로 함께 행동합시다.
Just unite behind the science.

두려움은 용감하게 진실을 마주한 사람만이 느낄 수있다. 살아 있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다. 죽은 사람은 두려움을느낄 수 없다. 우리가 기후위기 앞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공포와불안을 느끼는 것은 심장이 팔딱거리고 있다는 증거다. 세상을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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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미러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영국드라마다.
오래전 방영되었던 환상특급과 비슷한.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그 내용을 이룬다.
블랙 미러의 내용을 기반으로 철학적 고찰을 끌어가는 방식이 자연스럽다.
간혹 억지로 꿰어맞추는 듯한 책들도 있었다. 그런 책들을 읽고나면 늘 뒷맛이 썼다. xx로 인문하기. oo로 읽는 철학 같은 이름을 가진 책들이거나 자기계발서라고 분류되는 책들에서 그 빈도는 더 잦았다.
그래서 큰 기대없이 읽기 시작했는데 ‘자연스럽다‘.
매끄럽게 이어지는 서사와 그것으로부터 끌어내는 철학적 사유가 과하지 않고 수긍이 되며 생각에 빠지게 한다.
중고등학생정도의 자녀가 있다면 같이 읽어보는것도 좋겠다.
어쩌면 주타겟이 그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철학이 쉬울 수는 없다. 그래서 쉬운 철학 같은 제목들을 신뢰하지 못한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러 철학적 논지들을 제시하며 구체적으로 고민하고 그것으로부터 읽을 거리들을 다시 찾아보게한다.
덕분에 플라톤을 다시 읽을 계획을 세운다.

신선한 표지와 ‘자연스럽게‘ 읽힌다는 -가독성이 좋다 라는 말로 대체하기에는 결이 좀 다른- 점에서 이 책은 강점이 있다.

주말에 블랙 미러 몰아보기를 해야겠다.
팝콘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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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9-09-27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일주일에 한편씩 블랙미러를 보고 있는데, 왠만한 영화보다 훨씬 좋더라구요. 그래서 아껴보고 있어요.^^

나타샤 2019-09-27 22:50   좋아요 0 | URL
그렇죠. 다락에 숨겨둔 알사탕처럼 하나씩 아껴보게 되요.^^
 

사랑-권리-연대라는 세 가지 인정을 통해 각 개인은 비로소한 공동체의 완전한 구성원이 되고 공동체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반면 사회 갈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개인들이 사랑, 권리, 연대라는 인정을 모두 박탈당한 채 타자에게 무시나 모욕을 당할 때 일어납니다. 인정받지 못할 때 개인은 투쟁에 나섭니다. 자유롭게 욕구를 분출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연대에서 배제당할 때 ‘분노‘는 투쟁을추진하는 동기가 됩니다. 동양에서 맹자는 큰 화(大怒)와 ‘작은화(小怒)를 얘기했는데요, 투쟁으로서의 분노라면 큰 화에 해당하지만 일상의 분노는 작은 화입니다. 작은 화는 이롭지 않지만 큰 화는 내면 낼수록 이롭습니다. 싫음의 감정이 가진 유익한 힘입니다.

혐오 발언을 가르는 핵심은 그 발언이 차별을 재생산하고,상처를 주고, 배제와 고립을 낳느냐에 있습니다

대항 발언을 낳지 않는 혐오 발언은차별을 재생산하고 공고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침묵과 무시가 대안일 수는 없습니다. 

니체는 과거-현재-미래로 이어지는 영원이라고 하더라도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지금 이 순간이며, 우리는 이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아모르 파티‘(Amor Fati),
우리 운명을 사랑하면서 말이죠.

다시 치료와 향상의 주제로 되돌아갑니다. 치료가 평등주의적 목표였다면 향상은 분명 엘리트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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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검은 거울은 빛을 반사하는 게 아니라 빨아들여서
머금고 있습니다. 철학사에서 거울이 지니고 있었던 무구한청정성을 〈블랙 미러>는 ‘꺼버립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못하고, 빛을 잃어버린 것이죠. 현실을 비춰주며 반성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도리어 악의 기운을 뿜어낸다고 할까요?
실제로 거울 감(鑑)에서 빛을 상징하는 ‘쇠 금(金) 변을 빼면
‘감시할 감(監)이 됩니다.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감옥인 셈이죠. <블랙 미러>는 거울이 가진 좋고 따뜻한 빛(우리가 스스로를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성찰의 빛)을 빼버리고 오로지 응시만이 남아버린 차가운 감옥의 거울을 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최면에 빠지고, 언론은 같은 뉴스만을 계속 확대재생산하죠. 반면 테러범은 그런 총리와 관중을 바라보며 비웃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관중이 환호와 호기심으로 스펙터클의 시간에 갇힌 동안 아무도 ‘리얼타임을 인지하지 못하는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시선 고정 효과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음모 이론‘이 됩니다. 

스스로 스펙터클에 갇힌 것을인식하고, 그것이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는 것을 안다면 스펙터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그것을 초인지 (MeCognition)라고 합니다. 선동되거나 휘둘리지 않고 미디어를 이용하는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 (media literacy)를 키우는 것이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 봅니다.

 그런 집단적 현상은 물론 사회 통합의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에밀 뒤르켐은 이를집합적 감격‘(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고 지칭했죠.  동양 사상에서‘대동의 의미도 이와 같고요. 하지만 오늘날엔 그역할을 스펙터클‘이 하고 있다고 이 작품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스펙터클한 시간이 갖는 엄청난 몰입력과 단결력을 국가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죠.

미국 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이란 책에서 "혐오와 수치심은 때론 인간에게 바람직한 역할을 하지만, 인간이 동물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배제하려 들기에 위험한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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