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검은 거울은 빛을 반사하는 게 아니라 빨아들여서
머금고 있습니다. 철학사에서 거울이 지니고 있었던 무구한청정성을 〈블랙 미러>는 ‘꺼버립니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비추지 못하고, 빛을 잃어버린 것이죠. 현실을 비춰주며 반성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도리어 악의 기운을 뿜어낸다고 할까요?
실제로 거울 감(鑑)에서 빛을 상징하는 ‘쇠 금(金) 변을 빼면
‘감시할 감(監)이 됩니다. 감시하고, 감시당하는 감옥인 셈이죠. <블랙 미러>는 거울이 가진 좋고 따뜻한 빛(우리가 스스로를돌아볼 수 있게 도와주는 성찰의 빛)을 빼버리고 오로지 응시만이 남아버린 차가운 감옥의 거울을 뜻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최면에 빠지고, 언론은 같은 뉴스만을 계속 확대재생산하죠. 반면 테러범은 그런 총리와 관중을 바라보며 비웃고 있습니다. 이 작품은 관중이 환호와 호기심으로 스펙터클의 시간에 갇힌 동안 아무도 ‘리얼타임을 인지하지 못하는상황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있습니다. 시선 고정 효과를 부정적으로 사용하면 ‘음모 이론‘이 됩니다. 

스스로 스펙터클에 갇힌 것을인식하고, 그것이 우리를 바보로 만든다는 것을 안다면 스펙터에 놀아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죠. 그것을 초인지 (MeCognition)라고 합니다. 선동되거나 휘둘리지 않고 미디어를 이용하는 능력, 즉 ‘미디어 리터러시‘ (media literacy)를 키우는 것이앞으로 더 중요해질 거라 봅니다.

 그런 집단적 현상은 물론 사회 통합의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에밀 뒤르켐은 이를집합적 감격‘(collective effervescence)이라고 지칭했죠.  동양 사상에서‘대동의 의미도 이와 같고요. 하지만 오늘날엔 그역할을 스펙터클‘이 하고 있다고 이 작품은 말하는 것 같습니다. 스펙터클한 시간이 갖는 엄청난 몰입력과 단결력을 국가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죠.

미국 철학자 마사 너스바움은 『혐오와 수치심이란 책에서 "혐오와 수치심은 때론 인간에게 바람직한 역할을 하지만, 인간이 동물적이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사실을 배제하려 들기에 위험한 감정"이라고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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