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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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표지.

 

손등에 앉은 알록달록한 새 한마리..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여인의 눈빛이 애처롭다.

보드라운 표지를 한 꺼풀 벗기면 여인이 떠난 자리에 혼자 남은 새. 먼 시선을 던져두고 쓸쓸해보인다.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는 문구도 범상치 않고..어쩌면 많이 슬플지도 모르겠구나 짐작을 해본다.

 

#. 2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하는 데이지. 시한부의 시간을 받아든 그녀의 마음은 조급하다.

20대에 맞이한 유방암..완쾌되고 다시 듣게 되는 재발 소식. 이미 너무 많이 퍼져버린 암. 사랑하는 잭을 두고 떠나야 하는 데이지의 마음은 복잡하다.

책을 읽으며 자꾸 작가소개를 찾아보게 된다.

몇 줄로 요약되는, 어쩌면 신파드라마의 스토리 라인 같은 이야기이다. 눈물을 쏙 빼놓는 가엾은 여자의 모습일 수 도 있는 이야기를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경쾌하게 풀어낸다. 가볍고 경솔하게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경쾌함이다.

허락된 시간이 짧은 만큼 더 오래 잭을 응시하고, 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만, 무조건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고, 고집도 부리고, 서로를 보듬고 쓰다듬기도 하며 말 그대로 "사랑 하는 잭, 사랑하는 데이지"로 빛나게 된다.

입 밖으로 내어놓지 못하는 두려움까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가의 펜끝은 젊고 건강하다.

세밀하고 깊다.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되고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암투병중인 환자의 세세한 일상과 진료 과정까지 꼼꼼하게 서술되어진 글은 얼마나 많은 자료들과 검증을 거쳤는지 깨닫게 한다. 저널리스트의 힘일것이다.

 

지난 5월,

어머님께서 유방암 판정을 받으셨다. 두번째다.

아들 녀석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은 유방암 판정을 받고 절제수술을 받으셨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하고 계셨다. 항암치료를 하며 계속되는 구토와 탈모, 고통스러운 매 시간을 삼키시며 어머님은 5년만에 완치 판정을 받으셨었다. 완치 판정 후 십오년..하나 남은 가슴에 재발된 유방암이 발견되었다. 제법 자란 종양. 크기로 보아 최소 2기 진단을 받는다. 브래지어 한쪽에 패드를 넣고 다니시던 어머님은 남은 하나를 마저 절제해야하는지를 먼저 물어보셨다.

임파선까지 쭉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에 "이 나이에 수술은 무슨, 그냥 살다 죽으면 되지."라며 수술을 거부하셨다.

힘든 항암치료의 경험이 떠올랐고, 가슴 한쪽을 잃은 여자로서의 상실감의 크기가 뼈저리게 다가왔으리라.

그래도 수술은 해야만했다. 수술실에서 돌아오신 어머님은 주사바늘이 꽂힌 손으로 더듬더듬 당신의 가슴부터 훑어보시고 이내 고개를 돌리셨다.

"느이 아버지가 기다릴낀데, 그냥 가믄 되겠구만 이꼴로 살아 뭐한다꼬.."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힘겨운 날들의 연속이다. 치료의 당사자도, 치료받는 사람과 같이 있는 사람들도 모두 힘들고 치지는 여정이다.

 

이런 마음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처연하거나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인정하고 건강하게 준비해가는 모습이 재기발랄하다 싶을 정도로 그려진다.

산다는 것이 어느 순간 닥칠 이별을 얼마나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준비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겨질 사람들, 남기고 떠날 사람들, 남겨진 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의 방향으로 시선을 맞추게 된다.

"사랑" 그리고 "그리움"

잭을 위해 아내를 찾아주려는 데이지의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생각은 현실에서 자꾸만 감정적 충돌을 가져온다. 어쩌겠는가 사랑이란게 그렇게 너그럽지만은 않은 것이란 증명일테니 말이다.

 

 

#. 3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이별을 준비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질투하고 좌절하며 견고하게 이별을 준비한다.

그 시기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으나 농도는 비슷하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이별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헤어짐은 아닐지라도 가장 순수한 이별은 아닐까를 생각하게 된다.

다양하게 반사시켜보는 관계와 그 속의 나와 그. 그리고 '모두'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물을 남겨둘까를 생각해본다.

내가 먼저 떠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가장 먼저 떠난다면 어떤 손짓을 남겨야할지를 생각해본다.

또한, 어찌할 도리도 없이 떠나갈 사람들에게 남겨진 사람으로 어떤 인사를 준비해야할까도 생각해본다.

사랑의 밀도만큼 어렵기만할 이별이지만, 이내 웃음을 보일 수 있을만큼 단단하고 미더운 사랑일지도 말이다.

세밀한 일상의 모습과 심리의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감정에 떠밀려 억지로 인정하게 되는 상황이 아닌, 저절로 '그래 맞아'라며 공감하게 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발현되는 상황은 손톱을 물어뜯게 만들만큼 몰입이 되는 작품이다.

가슴 한켠이 아릿해지지만 아프기만 한 채로 방치되지 않아서 좋은 작품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누군가를 떠나며 비로소 웃을 수 있는 그 시간을 준비하는 과정 또한 이별의 과정이리라..

그 사랑의 고백이 이별의 두려움보다 앞서는 삶의 이야기 사랑의 이야기이다.

 

#4.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들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설령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니, 어쩌면 모르는 사람이 들어주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p31)

 

지금까지 패트릭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죽을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 병에 대한 감정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한 잘난 체는 없다는 사실이다. (p317)

 

과학이 간질간질한 느낌, 무모해지고 안전해지는 느낌을 주는 호르몬과 화학물질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잭과 함께 있을 때면 왜 간질간질해지는지, 무모해지고 안전해지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이 실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곧바로 무시했다. 특정한 두 사람이 왜 서로를 거부하지 않고 자석처럼 이끌리게 되는지, 과학은 설명해주지 못한다. 사랑만이 설명해줄 수 있다. (p374)

 

여자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 여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남자가 이야기 해주는, 그런 영화 속 장면 같은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데이지는 자다가 죽었고, 우리의 마지막 대화는 데이지에게 빨대로 오렌지주스를 더 마시겠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p410)

 

2월에서 5월까지의 이야기와 그 후 1년의 이야기가 400여페이지에 걸쳐 전개되는 길다면 긴 작품이지만..결국 다 읽게 된다.

길다는 생각을 못하고..지고지순한 순애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타까움과 비탄만이 남지 않는..반짝이는 이별을 먼 발치에서 함께 배웅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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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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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or

 

얼마 전 타임푸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티비에서는 연신 하우스 푸어, 랜드 푸어, 전세 푸어, ..온갖 푸어를 쏟아낸다.

얼마나 가련하고 가엾은 사람들이 버텨내는 시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어가 "poor"이리라

먼 훗날 우리를 일컬어 푸어제너레이션이라고 부른대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어보인다.

그 와중에 로맨스 푸어라니..드디어 사랑도 푸어의 범주에 입장하게 되는 것인가. 제목만으로는 왠지 사랑을 잃은 가련한 두 남녀의 시리고 시린 이야기려니 했다. 표지를 살피다 동반자살이라도 한건가 했다. 죽음을 넘어선 사랑일까? 지고지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더니..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 또한 결핍이며 전쟁이라는 이야기일까? 표지의 해골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괜한 짐작을 해본다.

서둘러 책을 펼치고 읽기보다 표지를 앞 뒤로 살피며 점사를 보는 무속인처럼 내용을 가늠해 보는 습관 탓이었다.

습관처럼 띠지를 벗겨내 맨 뒷장에 꽂는다.

띠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을 시작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랬군.."이라며 띠지에 적힌 의미를 이해하거나.."와~나..이거 순전히..아이고.." 따위의 단발의 감탄사로 띠지의 허세와 과장을 성토하기도 한다.

띠지는 그런 의미다. 리트머스종이 같은..

 

표지를 살피는 것도 끝이 났고, 띠지도 맨 뒷장에 꽂았으니 이제 읽어보자. 도대체 무슨일인고?

 

#. 2 좀비라니.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아 온 여자 유다영. 누구나 그렇듯 적당히 열심히 적당히 협조적이며 적당히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다. 특별히 모날것도 없고, 특별히 주눅들것도 없다. 사람의 일이란게 그렇듯 별일 없음의 내부에 뿌려진 핍진성은 한계점에 다달아 폭발하게 된다. 특히나 직장이라는, 정글이라 하기엔 턱없이 법칙도 무엇도 없는 관계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견뎌야한다. 그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

갑부, 혹은 졸부인 남자. 그의 아내가 된다면 이 억울한 상황을 한번에 역전시킬 수 있다. 그의 재력은 곧 권력이며 선택받은 소수, 정보를 공유해도 좋은 소수에 함께 선택될 수 있다는 기회일 수 있다.

로맨스따위..

이야기는 주인공 여자의 싯점에서 진행되어진다. 그녀의 생각이 얼마나 당차고 때론 심하다 싶을만큼 단호하거나 타협적이다.

생각의 깊이와 방향은 애매한 싯점에 애매한 지위와 평범했던 과거만큼 공감되는 부분이 많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를 추종하는 몰지각함이 아닌, 지쳐버린..차별과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지쳐버린, 어차피 될대로 될거라면 몸이라도 편해보자는 단순한 편리주의일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서울은 좀비가 출몰한다. 좀비의 공격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 도망다니게된다.

백신이나 예방약이 있다고도 하는데 당국은 입을 다물고 있다. 돈 있는 사람들, 선택된 사람들은 소리소문없이 주사를 맞는다.

이런 저런 다양한 증명서를 내밀어야 겨우 하나의 백신을 받을 수 있고, 그조차 조건이 안되는 사람은 치료와 보호의 외곽으로 밀려나버린다. 좀비의 타깃이 되었다가 좀비가 되는 것이다.

왜 하필 좀비일까?

개인적으로 좀비를 극도로 싫어한다. 좀비영화를 보며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던 것도 아니고, 좀비보다 더한 하드코어 호러물도 보아내지만 좀비의 존재는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까지 들며 가슴 저 밑에서부터 거부감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곤 한다.

극단의 상황. 하드코어 호러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상황은 내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전제가, 두려움의 1차 저지선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좀비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의 1차저지선이 붕괴된 채 마주보게 된다. 그래서..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좀비가 된 사람들은 점점 늘어간다. 말 그대로 창궐해가기 시작한다.

그 난리통에 만나게 되는 젊고 아름다운 청년 우현.

극단의 상황에서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로맨스를 선택할 것인지 안전과 선택된 자의 표식을 부여받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대립각은 예리해지고 혼란은 가중된다.

 

얼마전 중동감기라고 강요받던 메르스사태를 겪으며 감추고 덮으려는 있는자들과 대책없이 떠밀려가는 서민들을 목도한 후여서 더 그랬을까? 주인공여자가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좀비에게 물려버릴까를 생각하는 대목에선, 만약 메르스라는 것에 걸리게 되면 국회로 가서 기침하면서 뛰어다녀야지 했던 생각이 났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 실체.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는 공공의 정보. 정보와 물자로부터 소외된 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만 강요당하는 젊은세대들. 그들이 어느 순간 들끓어 어차피 사람답지 못하게 살거라면 사람이길 거부한다고 거리로 나서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즉..좀비처럼 말이다. 그것은 정말 혼란이며 두려움이며 파괴일것이 분명하다.

사랑하기에도 짧고 빠른 젊은 그들의 시간 속에서 말이다.

 

# 3. 작가.

 

기자를 하다가 작가를 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가깝게는 한국이 싫어서의 장강명작가나,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이 허지웅작가나..

젊은 기자들이 써내는 작품들은 생동감이 있다는 공통점을 들 수 있다. 디테일하고 적확한 시선들이 자주 표출된다.

저널리즘의 주변을 서성인 결과일까?

소설답다는 느낌보다 현장보고서 같다는 느낌이 아직까지는 좀 더 남는것 같다. 생생한 현장의 모습은 긴박함과 심지어 좀비들의 움직임에서 생동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신경숙 사태(?)로 자주 듣게 된 '미문주의'의 직접적 피해자였던 독자로서 미문주의를 탐닉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시대를 쓰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현재 우리 문학의 가장 큰 문젯점은 작가들이 시대의 밖을 서성이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모든 작가는 아닐테지만..대다수의 작가들이 건조하고 시니컬하게 글을 내고 있는 그 한 구석에 시대를 쓰지 못한 변명같은 것이 맴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 몇권인가의 책을 냈다고도 했다. 조금 더 다듬어지면, 조금 더 숙성이 되면, 드라마를 하나 보듯 폭 빠져 읽을만한 책이 나올 것도 같다. 젊은 작가의 발견이라는 생각.

 

#4. 그냥 하는 짓.

 

 

먹고 나서는요? 전기는 어떻게 들어오는지, 식량은 어디서 구하는지, 물은 계속 쓸 수 있을 건지 알아요? 우리가 대체 뭘 아는데요? 그런상황에서도 우리가 동등하게 살 수 있겠어요? 없는 사람끼리 합심할 수 있겠어요? 아니, 대체 우리나라가 합심이란 걸 해 본 적은 있어요? 냉소주의는 지겨울 수 있어요. 윗사람들 좋은 일 다 시켜주고 '원래 다 그렇지, 뭐' 자기 위안 삼는 삶, 나도 지겨워요. 그렇다고 영웅 놀이에 나서면 뭐가 달라지죠? 네! 전 그 아파트가 망가지는 걸 돕지 않을 거예요. 전 이 빌어먹을 모텔 방을 나가서 거기로 갈거예요. 그렇다고 우현이도 포기하기 싫어요. 얘가 끝까지 잘살았으면 좋겠고, 엉뚱하게 딴 사람 돕겠다고 설치다가 개죽음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내 옆에도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p275)

 

무엇을 결정해야할 지, 무엇을 포기해야할 지 알 수 없는 ..젊은 시간. 선택해도 좋을 사랑 하나쯤 허락되지 못한 그 시간을..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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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일인자 1 - 1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1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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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들의 나라 로마. 로마와 그리스를 떠올리며 신들을 떠올리는 건 이상할 것도 없는 일이다.

인간과 신들의 이야기로, 혹은 권력과 사랑의 이야기를 그득하게 담고 있는 로마. 사람의 이야기로 만나는 로마 역시 다르지 않다.

세상의 중심이었다해도 이상하지 않을 신과 인간의 나라. 문명과 도시와 역사를 품은 그 곳의 오랜 이야기를 듣는다.

너무나 인간적인 신들의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신과 같은 권력을 쥔 인간의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지는 이 멋진 공간의 이야기는 호기심과 흥분을 품게 한다.

얼마전 그리스 민주주의에 대한 책을 오래 읽었다. 말썽꾸러기 아이의 부모가 도대체 누구인가 궁금해하는 심정으로 말이다.

점점 왜곡되어가며 권력의 시녀가 되어가고 있는 민주주의. 그 중심에 있는 선거법에 대한 불신은 결국 추첨민주주의라는 그리스의 제도를 찾았다.

짧은 인문학적 소견과 정치사회적 개념의 부족은 그 내용을 이해하기보다 피로감으로 돌아왔고 책을 덮을 그럴듯한 변명이 필요할 즈음 "로마의 일인자"를 만나게 된다.

그래, 그리스나 로마나..

이런 얄팍한 핑계거리로 집어든 책.

그 속에 사람이 있었다.


#2.

역사소설이라 해야할까? 그 내용들에 반드시 담겨있어야할 시대상과 시대정신.

잘 만들어진 드라마를 보듯 세세하게 묘사되는 사람들의 모습에 몰입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이우스 마리우스..루키우스 코르넬리우스 술라..

낯선 이름들. 거의 안면인식 장애급의 이름인식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길고 비슷하게 이어지는 이름들은 다소 힘겨운 장애가 되긴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던, 세계사 시간, 혹은 로마와 그리스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들어본 이름들..

특히나 개인사와 같이 서술되는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가운데 저절로 하나의 캐릭터로 머릿속에 우뚝 우뚝 제자리를 찾아간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결정되어지는 계급,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금전, 상속의 문제 입양을 통한 재산의 증식, 동성애를 비롯한 사랑의 이야기.

사랑의 신 큐피드의 화살은 그토록 공평했다. 반드시 남자와 반드시 여자가 아닌..사람과 사람의 사랑을 위해 활시위를 떠났음이 분명했다.

권력의 주변에 모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일인자의 자리를 위한 암투와 일인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사람.

어쩌면 계급이라는 것이 이미 결정되어져 있는 상황에서 일인자가 되는 것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있을지도 모른다.

일인자의 자리를 향한 서로 다른 출발점.

지금의 우리와 닮아있나? 싶어진다.

그래서였을까? 권력의 이야기 속에서 나는 유난스레 사랑의 이야기만을 찾으려했다.

똑같이 반복되어지는 차별과 횡포를 인정하기보다 차라리 그 외의 것을 보며 연속성을 가졌으면 좋았을 것들을 기대한 탓인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부정하고 싶은 것은 더욱 교묘하고 강력하게 유지되고 진화하는가.


#3.

권력의 이야기들은 다소 무겁거나 음산하곤 했다. 하지만 신화에 익숙했던 탓일까?

아니면 로마와 그리스의 역사는 신화의 결을 가졌기 때문일까? 유쾌하기까지 한 이야기에 슬쩍슬쩍 웃음을 머금는다.

다소 외설적일 수 있는 장면들을 유머러스하게 다소 껄끄러울 수 있는 장면을 로맨틱하게 그려낼 수 있는 건, 필력이리라.

로마의 정치제도와 계급간의 관계, 정치 사회적 상황들이 인물들의 발걸음과 만남과 오해하고 그리워하는 모든 과정 속에 녹아있다.

부드럽고 적절하게 ..마치 아이스크림 속에 박혀있는 사탕처럼..

일인자가 된다는 것은 숙명일까? 일인자가 되고자 하는 이들. 그들에게 '일인자'라는 목표만이 아닌 "좋은 일인자"가 되고자 하는, 그것을 위해 스스로 단련되는 과정을 감수할만큼의 용기와 너그러움을 기대하는 것이 과욕이 아니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잘 짜여진 이야기들과 인물.

이야기의 촘촘한 구조는 다소 복잡할 수 있는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책을 펼치고 마지막까지 읽어내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일을 하며 짬짬이 읽다보면 한동안 잊기도 한다.

오랜만에 책을 놓았다 다시 읽기까지 조바심을 내며 읽었다.

어찌되든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놓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읽는다.

마치 "다음 이시간에.."라는 드라마의 마지막 자막을 보고 다음 시간을 기다리듯 말이다.


이제 1권.

다음 책이 기대된다.

고스란히 드러난 로마..그 넓은 대로에 우뚝 서 지나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며 그들이 들려주는 일인자의 이야기를 엿듣는 것처럼 흥미롭다.

권력의 이야기란 그렇게 뒷골목이나 대로의 수다쟁이들의 입을 통해 들을 때 더 흥미진진하지 않은가.

로마로 걸어들어간다.

오랜만에 제 몫을 톡톡히 해낼 책을 만난 느낌이다.


신들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비밀리에 전해지는 신탁처럼..흥미진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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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 : 모리어티의 죽음 앤터니 호로비츠 셜록 홈즈
앤터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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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무런 표지 그림도 없는 검은 책을 한 권 받는다. 가제본이라고 했던 이 책을 받고 잠시 생각했다.

그 어떤 디자인도 없는 표지가 어떻게 출간되어 나올지 가늠해보는 것은 흡사 이 표지 뒤의 이야기를 가늠해보는 것만큼 막막하기만 했다.

셜록홈즈.

그 이름만으로도 뭔가 사건이 일어나고 현란한 추리와 과학적분석으로 범인의 숨통을 조이고 명쾌하게 그 전말을 드러낼 것이라는 기대를 갖는건 당연하다.

무려 백년의 시간을 머물렀던 이름이니 말이다.

홈즈와 왓슨. 이 엄청난 조합에 이의를 제기할 방법은 없다.

커다란 사건의 그림 속에서 한 가운데 핵심부를 잘라낸 두 조각의 퍼즐인 셈이었으니까.

 


#2.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라이헨바흐 폭포에서 셜록홈즈와 제임스 모리어티 교수가 대결을 펼치다 죽었다는 신문기사로부터 출발한다.

책장을 펼치면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신문기사..

손목이 묶인 채 머리에 총을 맞고 죽은 미국인 조너선 필그림.

그 뒤를 잇는 셜록과 모리어티의 죽음.

사건의 현장에 도착한 체이스와 애설니 존스..

우르르 조각들이 떨어져 내린다. 그들이 위치할 자리는 어디쯤일지 추리가 시작된다. 이 거대한 음모와 범죄의 그림 속 그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머릿속에는 조너선 필그림은 왜 첫장부터 나와야했을까를 품고 간다. 도대체 누구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체이스의 입을 통해 그 정체를 알게 된다. 도화선. 그래..그는 도화선이었다. 체이스가 이 곳에 올 수 밖에 없었던..

모리어티의 단서를 풀어야만 했던 동기로 말이다.

냉철한 분석을 해 내는 애설니(아..나는 자꾸 앤서니라고 읽는다..;;;). 셜록이 없는 자리에 묘한 쾌감을 갖게 한다.

그가 풀어내는 단서들의 비밀..연신 그래, 그렇지..하며 응수하며 읽어간다.

모리어티.

이 이름에 집중한다. 천재적 탐정과 맞서는 악의 중심. 셜록을 긴장하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 그의 등장만으로 셜록이라는 거대한 강의 흐름은 급류가 된다.

소용돌이가 치고 때때로 엉뚱한 곳으로 흐르기도 한다. 하지만 기억하시라. 강이 흐를 방향을 쥔 자는 셜록이지 않는가.



#3.

앤터니 호로비츠. 코난도일 재단에서 인정한 추리 작가라고 했다.

전작이 궁금해진다. <셜록 홈즈 -실크하우스의 비밀>도 호기심이 생겼다.

사건의 전개방법과 해결과정의 스케일이 단순하거나 조잡하지 않다. 경시청의 폭파와 유괴 납치. 위험을 모면해가는 과정 또한 천운이 아닌 잘 짜여진 행보 속에 두어진 바둑돌처럼 적절하다.

자칫 사건에 집중해 기교적인 부분과 외적인 틀만이 화려해질 법도 했으나 그 속에 배어진 사람의 이야기 또한 읽을거리다.

매끄럽게 읽히는 책.

저절로 베네틱트 컴버비치가 떠올라 몰입을 방해하기도 했지만..앤터니 호로비츠의 호흡과 추리작가로서의 역량에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만큼 잘 쓰여진 작품이다.

잘 만든 레일 위를 달리는 기차..그래, 그런 느낌이었다. 매끄럽게 달리며 때론 급회전과 급강하가 이루어지며 긴장감을 주지만 억지스럽게 기우뚱대는 느낌은 생기지 않는다.

얼마전 읽은 포스팅이 떠올랐다.

역사소설을 쓰고 싶은 코난도일이 아무도 그의 작업에 관심을 주지 않자 경제적인 문제등에 몰리며 셜록 홈즈를 쓰기 시작했다고..그저 임시 방편으로 위기를 타개할 목적으로 짧게 쓰고 그만 두려했는데..결국 그는 셜록 홈즈의 코난 도일이 되고 말았다고 말이다. 심지어 더 이상 쓰지 않겠다는 의지로 셜록 홈즈를 죽여버리자 그를 다시 살려내라고 살해협박까지 받았다는 에피소드까지..가십처럼 쓰인 포스팅이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셜록은 어쩌면 범죄를 해결하는 해결사이기 때문이 아니라, 막막함 속에서 그것을 해결해가는 희망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말이다. 백년전, 그때의 사람들에게..

백년 후 지금의 독자들에게도..

그런 작가가 이제 세상에 없고, 그가 남긴 셜록으로 추억을 회상하는 가운데 앤터니 호로비츠의 출현은 왓슨의 등장만큼 반가운 일임에 분명하리라.



#4.

 

 


책을 덮을 즈음 출간된 책의 표지를 확인했다.

아무것도 없던 표지 위에 내맘대로 비슷한 형태를 연필로 그려본다.

셜록..

그 실루엣을 그리며 이후에 만나게 될 호로비츠의 새 글들에 기대를 품는다.


코스가 아주 긴 롤러코스터를 내리지 않고 세바퀴쯤 돌고 온 느낌이다. 토할 것 같냐고? 아니..아직도 미련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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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3 18: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홈즈 실루엣 정말 똑같이 잘 그렸어요. 진짜 책표지에 있는 그림 같아요. ^^

나타샤 2015-07-03 21:34   좋아요 0 | URL
에고..가제본이라 표지도 없고..아쉬움에 장난삼아..ㅎ
긍정적으로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Juni 2015-07-03 2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 짱이네요 ^^ 대~~~~ 박입니다

나타샤 2015-07-03 21:3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
 

 

상처적 체질을 사들고 온 날. 제목만 오래 보았다. 어떤 노래가 들었을까 짐작해보려는 것이었으나 짐작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상처'라는 말에 몰입되어 처연해지고 애처로워지기 시작했다.
상처를 애써 피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시집의 제목은 운명적으로 상처를 입을 수 밖에 없는 사람도 있다는 새된 비명처럼 느껴졌던것이다. 슬퍼하거나 아파할 준비를 하고 시집을 뜯어 씹고 우물거린다.
이런..
상처적 체질은 맵싸했다. 기꺼이 상처받겠다는 한 사내의 선언 같았다.
마치 사랑하는 그니를 찾아 혹은 내것이 아니어도 그것이 사랑이기에 무심한듯 시크하게 심장의 한켠을 베이겠다는 선언같은 것이었다.
시집을 덮으며 돈키호테구만..하고 책장에 나란히 꽂힌 시집들 사이가 아니라 맨위에 올려두었다. 체질개선이 필요할 때마다..할매가 입이 심심하면 다락 문 뒤의 박하사탕을 꺼내 입에 물듯 뒤적거리기에 좋겠다 싶어서 말이다.
아직도 상처적체질은 약빨이 좀 듣는편이긴하다. 신약들이 쏟아지는 때에 아직도 간혹 꺼내드니..

 

김광석의 노랫말로 더 유명한 류근의 새 책.

페이스북에서 한꼭지씩 읽어보던 주인집 아저씨와의 에피소드는 신선했다.

그 이야기들이 묶여나왔다.


로시난테를 닮은 자전거와 집주인아저씨의 이야기..슬몃 웃다가 웃음 끝에 달리는 애잔한 물음들을 되받는다. 
아..되물음이 있는 이야기는 힘들다. 눈치채지 못하고 넘어가면 좋으련만 살아 온 세월동안 닳고 물빠진 만큼 영악해진 촉은 그것을 감지하고 만다.
어쩌면 이이의 체질은 여전한지도 모르겠다.

과하게 비현실적인 비주얼(죄송)이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팔등신일줄이야.팔등신이 뭐야 구등신도 되겠네..

휘리릭 넘겨가며 가볍게 읽힐거라고 별의심없이 손댄것이 실수였다.
시집을 사오던 날만큼의 머뭇거림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왜?
싸나희 순정은 상처적체질인 두 남자와 로시난테의 대화인 까닭이다.

시바, 조낸으로 점철되는 서슴없음이 애잔하기까지 한 두 남자의 삶의 대화와 그 자리의 목격자처럼 우직하게 지켜보는 로시난테를 닮은 주인아저씨의 자전거.

나는..이 자전거의 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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