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포 아이 고 -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콜린 오클리 지음, 이나경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1. 표지.

 

손등에 앉은 알록달록한 새 한마리..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여인의 눈빛이 애처롭다.

보드라운 표지를 한 꺼풀 벗기면 여인이 떠난 자리에 혼자 남은 새. 먼 시선을 던져두고 쓸쓸해보인다.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는 문구도 범상치 않고..어쩌면 많이 슬플지도 모르겠구나 짐작을 해본다.

 

#. 2 

내 남편의 아내가 되어줄래요.

사랑하는 남편을 두고 떠나야 하는 데이지. 시한부의 시간을 받아든 그녀의 마음은 조급하다.

20대에 맞이한 유방암..완쾌되고 다시 듣게 되는 재발 소식. 이미 너무 많이 퍼져버린 암. 사랑하는 잭을 두고 떠나야 하는 데이지의 마음은 복잡하다.

책을 읽으며 자꾸 작가소개를 찾아보게 된다.

몇 줄로 요약되는, 어쩌면 신파드라마의 스토리 라인 같은 이야기이다. 눈물을 쏙 빼놓는 가엾은 여자의 모습일 수 도 있는 이야기를 이래도 되나 싶을 만큼 경쾌하게 풀어낸다. 가볍고 경솔하게 감정을 숨기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경쾌함이다.

허락된 시간이 짧은 만큼 더 오래 잭을 응시하고, 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지만, 무조건 자신을 내려놓는 것이 아닌, 치열하게 싸우기도 하고, 고집도 부리고, 서로를 보듬고 쓰다듬기도 하며 말 그대로 "사랑 하는 잭, 사랑하는 데이지"로 빛나게 된다.

입 밖으로 내어놓지 못하는 두려움까지 고스란히 느껴지는 작가의 펜끝은 젊고 건강하다.

세밀하고 깊다. 자연스럽게 수긍하게 되고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암투병중인 환자의 세세한 일상과 진료 과정까지 꼼꼼하게 서술되어진 글은 얼마나 많은 자료들과 검증을 거쳤는지 깨닫게 한다. 저널리스트의 힘일것이다.

 

지난 5월,

어머님께서 유방암 판정을 받으셨다. 두번째다.

아들 녀석을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님은 유방암 판정을 받고 절제수술을 받으셨다. 퇴원하고 집으로 돌아오셨을 때,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을 하고 계셨다. 항암치료를 하며 계속되는 구토와 탈모, 고통스러운 매 시간을 삼키시며 어머님은 5년만에 완치 판정을 받으셨었다. 완치 판정 후 십오년..하나 남은 가슴에 재발된 유방암이 발견되었다. 제법 자란 종양. 크기로 보아 최소 2기 진단을 받는다. 브래지어 한쪽에 패드를 넣고 다니시던 어머님은 남은 하나를 마저 절제해야하는지를 먼저 물어보셨다.

임파선까지 쭉 수술을 해야한다는 말에 "이 나이에 수술은 무슨, 그냥 살다 죽으면 되지."라며 수술을 거부하셨다.

힘든 항암치료의 경험이 떠올랐고, 가슴 한쪽을 잃은 여자로서의 상실감의 크기가 뼈저리게 다가왔으리라.

그래도 수술은 해야만했다. 수술실에서 돌아오신 어머님은 주사바늘이 꽂힌 손으로 더듬더듬 당신의 가슴부터 훑어보시고 이내 고개를 돌리셨다.

"느이 아버지가 기다릴낀데, 그냥 가믄 되겠구만 이꼴로 살아 뭐한다꼬.."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힘겨운 날들의 연속이다. 치료의 당사자도, 치료받는 사람과 같이 있는 사람들도 모두 힘들고 치지는 여정이다.

 

이런 마음들이 책 속에 고스란히 들어있다.

처연하거나 비관적인 것이 아니라, 죽음을 인정하고 건강하게 준비해가는 모습이 재기발랄하다 싶을 정도로 그려진다.

산다는 것이 어느 순간 닥칠 이별을 얼마나 건강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를 준비하는 과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남겨질 사람들, 남기고 떠날 사람들, 남겨진 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의 방향으로 시선을 맞추게 된다.

"사랑" 그리고 "그리움"

잭을 위해 아내를 찾아주려는 데이지의 발칙하고 사랑스러운 생각은 현실에서 자꾸만 감정적 충돌을 가져온다. 어쩌겠는가 사랑이란게 그렇게 너그럽지만은 않은 것이란 증명일테니 말이다.

 

 

#. 3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은 사랑을 한다.

이별을 준비하며 사랑을 확인한다. 질투하고 좌절하며 견고하게 이별을 준비한다.

그 시기가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으나 농도는 비슷하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이별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헤어짐은 아닐지라도 가장 순수한 이별은 아닐까를 생각하게 된다.

다양하게 반사시켜보는 관계와 그 속의 나와 그. 그리고 '모두'라고 지칭되는 사람들에게 어떤 선물을 남겨둘까를 생각해본다.

내가 먼저 떠난다는 보장은 없지만 가장 먼저 떠난다면 어떤 손짓을 남겨야할지를 생각해본다.

또한, 어찌할 도리도 없이 떠나갈 사람들에게 남겨진 사람으로 어떤 인사를 준비해야할까도 생각해본다.

사랑의 밀도만큼 어렵기만할 이별이지만, 이내 웃음을 보일 수 있을만큼 단단하고 미더운 사랑일지도 말이다.

세밀한 일상의 모습과 심리의 묘사가 탁월한 작품이다.

감정에 떠밀려 억지로 인정하게 되는 상황이 아닌, 저절로 '그래 맞아'라며 공감하게 되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발현되는 상황은 손톱을 물어뜯게 만들만큼 몰입이 되는 작품이다.

가슴 한켠이 아릿해지지만 아프기만 한 채로 방치되지 않아서 좋은 작품이다.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누군가를 떠나며 비로소 웃을 수 있는 그 시간을 준비하는 과정 또한 이별의 과정이리라..

그 사랑의 고백이 이별의 두려움보다 앞서는 삶의 이야기 사랑의 이야기이다.

 

#4.

 

그러다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들어주기를 원하는 것이다. 설령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니, 어쩌면 모르는 사람이 들어주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p31)

 

지금까지 패트릭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죽을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죽을병에 걸린 사람에게 병에 대한 감정을 가르치는 것보다 더한 잘난 체는 없다는 사실이다. (p317)

 

과학이 간질간질한 느낌, 무모해지고 안전해지는 느낌을 주는 호르몬과 화학물질을 알려줄 수는 있지만, 잭과 함께 있을 때면 왜 간질간질해지는지, 무모해지고 안전해지는지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랑이 실제가 아니라는 생각은 곧바로 무시했다. 특정한 두 사람이 왜 서로를 거부하지 않고 자석처럼 이끌리게 되는지, 과학은 설명해주지 못한다. 사랑만이 설명해줄 수 있다. (p374)

 

여자가 삶과 죽음의 기로에 섰을 때, 여자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남자가 이야기 해주는, 그런 영화 속 장면 같은 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데이지는 자다가 죽었고, 우리의 마지막 대화는 데이지에게 빨대로 오렌지주스를 더 마시겠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p410)

 

2월에서 5월까지의 이야기와 그 후 1년의 이야기가 400여페이지에 걸쳐 전개되는 길다면 긴 작품이지만..결국 다 읽게 된다.

길다는 생각을 못하고..지고지순한 순애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타까움과 비탄만이 남지 않는..반짝이는 이별을 먼 발치에서 함께 배웅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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