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푸어 소담 한국 현대 소설 5
이혜린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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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Poor

 

얼마 전 타임푸어라는 책을 선물 받았다. 티비에서는 연신 하우스 푸어, 랜드 푸어, 전세 푸어, ..온갖 푸어를 쏟아낸다.

얼마나 가련하고 가엾은 사람들이 버텨내는 시간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어가 "poor"이리라

먼 훗날 우리를 일컬어 푸어제너레이션이라고 부른대도 하등 이상할 것이 없어보인다.

그 와중에 로맨스 푸어라니..드디어 사랑도 푸어의 범주에 입장하게 되는 것인가. 제목만으로는 왠지 사랑을 잃은 가련한 두 남녀의 시리고 시린 이야기려니 했다. 표지를 살피다 동반자살이라도 한건가 했다. 죽음을 넘어선 사랑일까? 지고지순?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더니..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사랑 또한 결핍이며 전쟁이라는 이야기일까? 표지의 해골을 하나 하나 짚어가며 괜한 짐작을 해본다.

서둘러 책을 펼치고 읽기보다 표지를 앞 뒤로 살피며 점사를 보는 무속인처럼 내용을 가늠해 보는 습관 탓이었다.

습관처럼 띠지를 벗겨내 맨 뒷장에 꽂는다.

띠지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검증을 시작할 시간이라는 뜻이다. 책을 다 읽고 나서 "그랬군.."이라며 띠지에 적힌 의미를 이해하거나.."와~나..이거 순전히..아이고.." 따위의 단발의 감탄사로 띠지의 허세와 과장을 성토하기도 한다.

띠지는 그런 의미다. 리트머스종이 같은..

 

표지를 살피는 것도 끝이 났고, 띠지도 맨 뒷장에 꽂았으니 이제 읽어보자. 도대체 무슨일인고?

 

#. 2 좀비라니.

 

특별할 것 없는 삶을 살아 온 여자 유다영. 누구나 그렇듯 적당히 열심히 적당히 협조적이며 적당히 이타적인 삶을 살아온다. 특별히 모날것도 없고, 특별히 주눅들것도 없다. 사람의 일이란게 그렇듯 별일 없음의 내부에 뿌려진 핍진성은 한계점에 다달아 폭발하게 된다. 특히나 직장이라는, 정글이라 하기엔 턱없이 법칙도 무엇도 없는 관계속에서 부당한 대우를 견뎌야한다. 그 상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현실.

갑부, 혹은 졸부인 남자. 그의 아내가 된다면 이 억울한 상황을 한번에 역전시킬 수 있다. 그의 재력은 곧 권력이며 선택받은 소수, 정보를 공유해도 좋은 소수에 함께 선택될 수 있다는 기회일 수 있다.

로맨스따위..

이야기는 주인공 여자의 싯점에서 진행되어진다. 그녀의 생각이 얼마나 당차고 때론 심하다 싶을만큼 단호하거나 타협적이다.

생각의 깊이와 방향은 애매한 싯점에 애매한 지위와 평범했던 과거만큼 공감되는 부분이 많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이 부를 추종하는 몰지각함이 아닌, 지쳐버린..차별과 도무지 나아지지 않는 형편에 지쳐버린, 어차피 될대로 될거라면 몸이라도 편해보자는 단순한 편리주의일 수도 있다.

그 와중에 서울은 좀비가 출몰한다. 좀비의 공격이 시작되고 사람들은 좀비를 피해 도망다니게된다.

백신이나 예방약이 있다고도 하는데 당국은 입을 다물고 있다. 돈 있는 사람들, 선택된 사람들은 소리소문없이 주사를 맞는다.

이런 저런 다양한 증명서를 내밀어야 겨우 하나의 백신을 받을 수 있고, 그조차 조건이 안되는 사람은 치료와 보호의 외곽으로 밀려나버린다. 좀비의 타깃이 되었다가 좀비가 되는 것이다.

왜 하필 좀비일까?

개인적으로 좀비를 극도로 싫어한다. 좀비영화를 보며 기겁을 했던 기억이 있던 것도 아니고, 좀비보다 더한 하드코어 호러물도 보아내지만 좀비의 존재는 온몸에 벌레가 기어가는 느낌까지 들며 가슴 저 밑에서부터 거부감이 치밀어 오르기 시작하곤 한다.

극단의 상황. 하드코어 호러에서 나오는 극단적인 상황은 내게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는 전제가, 두려움의 1차 저지선이 되는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좀비는?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두려움의 1차저지선이 붕괴된 채 마주보게 된다. 그래서..두려운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좀비가 된 사람들은 점점 늘어간다. 말 그대로 창궐해가기 시작한다.

그 난리통에 만나게 되는 젊고 아름다운 청년 우현.

극단의 상황에서 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로맨스를 선택할 것인지 안전과 선택된 자의 표식을 부여받는 삶을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다. 상황이 악화될수록 대립각은 예리해지고 혼란은 가중된다.

 

얼마전 중동감기라고 강요받던 메르스사태를 겪으며 감추고 덮으려는 있는자들과 대책없이 떠밀려가는 서민들을 목도한 후여서 더 그랬을까? 주인공여자가 너무 힘들어서 차라리 좀비에게 물려버릴까를 생각하는 대목에선, 만약 메르스라는 것에 걸리게 되면 국회로 가서 기침하면서 뛰어다녀야지 했던 생각이 났다. 유치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는 실체.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는 공공의 정보. 정보와 물자로부터 소외된 채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역할만 강요당하는 젊은세대들. 그들이 어느 순간 들끓어 어차피 사람답지 못하게 살거라면 사람이길 거부한다고 거리로 나서지 말라는 법 있겠는가. 즉..좀비처럼 말이다. 그것은 정말 혼란이며 두려움이며 파괴일것이 분명하다.

사랑하기에도 짧고 빠른 젊은 그들의 시간 속에서 말이다.

 

# 3. 작가.

 

기자를 하다가 작가를 하는 분들이 꽤 있었다.

가깝게는 한국이 싫어서의 장강명작가나,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이 허지웅작가나..

젊은 기자들이 써내는 작품들은 생동감이 있다는 공통점을 들 수 있다. 디테일하고 적확한 시선들이 자주 표출된다.

저널리즘의 주변을 서성인 결과일까?

소설답다는 느낌보다 현장보고서 같다는 느낌이 아직까지는 좀 더 남는것 같다. 생생한 현장의 모습은 긴박함과 심지어 좀비들의 움직임에서 생동감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신경숙 사태(?)로 자주 듣게 된 '미문주의'의 직접적 피해자였던 독자로서 미문주의를 탐닉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한 까닭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시대를 쓰는 사람이라고 누군가 그랬다. 현재 우리 문학의 가장 큰 문젯점은 작가들이 시대의 밖을 서성이는 것이라고 했다.

물론 모든 작가는 아닐테지만..대다수의 작가들이 건조하고 시니컬하게 글을 내고 있는 그 한 구석에 시대를 쓰지 못한 변명같은 것이 맴돌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벌써 몇권인가의 책을 냈다고도 했다. 조금 더 다듬어지면, 조금 더 숙성이 되면, 드라마를 하나 보듯 폭 빠져 읽을만한 책이 나올 것도 같다. 젊은 작가의 발견이라는 생각.

 

#4. 그냥 하는 짓.

 

 

먹고 나서는요? 전기는 어떻게 들어오는지, 식량은 어디서 구하는지, 물은 계속 쓸 수 있을 건지 알아요? 우리가 대체 뭘 아는데요? 그런상황에서도 우리가 동등하게 살 수 있겠어요? 없는 사람끼리 합심할 수 있겠어요? 아니, 대체 우리나라가 합심이란 걸 해 본 적은 있어요? 냉소주의는 지겨울 수 있어요. 윗사람들 좋은 일 다 시켜주고 '원래 다 그렇지, 뭐' 자기 위안 삼는 삶, 나도 지겨워요. 그렇다고 영웅 놀이에 나서면 뭐가 달라지죠? 네! 전 그 아파트가 망가지는 걸 돕지 않을 거예요. 전 이 빌어먹을 모텔 방을 나가서 거기로 갈거예요. 그렇다고 우현이도 포기하기 싫어요. 얘가 끝까지 잘살았으면 좋겠고, 엉뚱하게 딴 사람 돕겠다고 설치다가 개죽음당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왕이면 내 옆에도 있어줬으면 좋겠어요." (p275)

 

무엇을 결정해야할 지, 무엇을 포기해야할 지 알 수 없는 ..젊은 시간. 선택해도 좋을 사랑 하나쯤 허락되지 못한 그 시간을..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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