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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 강물은 그렇게 흘러가는데, 남한강편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8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5년 9월
평점 :

출간예정일이 9월 15일이고, 오늘은 9월 10일
창비에서 남한강편 출간을 앞두고 서평단 모집을 했다. 가제본을 읽는..
창비에 대한 앙금은 여전히 남았는데, 이 책을 사서 볼 수 있을까? 잠시 생각했다. 아마 스스로 수긍이 될때까지 해명과 설득을 자신에게 거듭하다 구매할것 같았다. 결국 구매하게 될 책, 그렇게 결정하고 나서 신청을 해본다.
가제본은 마치 드라마의 대본처럼 위로 넘기게 되어있다. 설명도 없는 사진들과 어쩌다 발견되는 오타 한 두개..가제본의 느낌은 늘 그렇다.
잘 무쳐서 정갈한 접시에 멋지게 담아내기 직전의 맛있는 나물을 먼저 한 입 먹어보는 느낌. 그래서 투박하고, 그래서 때때로 과하다 싶게 머리에 남기도 한다.
그것은 상황이 주는 상상의 맛일게다. 그래서 걱정이 되기도 한다. 과한 칭찬을 하게 될까..?
어느덧 8권째.
남도답사기가 나왔었고, 그 개정판이 나왔었고, 북한편, 일본편..(북한편은 창비가 아니었구나.)
온 나라 구석구석 말 그대로 "답사기". 이 말이 담고 있는 끈적한 땀내와 생각만으로도 무릎이 시큰거려오는 걸음걸음을 떠올리게 된다.그러다보면 그 내용과 무관하게 얼마나 열심히 밟아가며 쓴 글인가, 얼마나 큰 애정으로 들여다보며 마음을 주며 써낸 글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재담꾼이라 해도 부족할게 없는 유홍준 교수의 섬세한 (그래서 때로 과하다 싶어지기도 하는..)하고 전문전인 설명들이 덧입혀진 글은 산길 하나, 작은 누각 하나에도 얼마나 진한 역사의 숨이 배어있는지 말해준다.
강원도 영월에서부터 흘러나온 물줄기가 충청도와 경기도를 지나쳐 두물머리에서 북한강과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남한강을 따라 걷는다.
사실, 청령포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단종애사로 불려지는 가장 안타까운 단종의 이야기를 말이다.
그 어린 왕은 보위를 빼앗기고, 서인이 되는 모든 과정을 어떤 마음으로 견뎠을까?
구중궁궐안에 왕손으로 태어난 것이 그의 죄이며 허물이었던 걸까? 어린 단종이 이해하고 끌어안기엔 너무 거대했던 궁궐의 음모와 정치는 그렇게 어린 왕을 궁에서 내 몰고, 멀고 먼 강원도 땅으로 보내기에 이른다. 그 작은 걸음마다 얼마나 큰 두려움과 서러움이 번갈아 밟혔을까?
관음송은 묵묵히 그 울음을 보아내며 어떻게 견뎠을까?
때마침 아침 티비프로그램에서 기차를 타고 한강을 탐방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영월이 나왔고, 청령포가 나왔고,관음송이 나왔고, 엄마의 손을 잡고, 아빠의 손을 잡고 환하게 웃는 아이들이 비춰졌다. 저런 미소를 어린 단종도 지어본 적이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낯익은 지명과, 어디선가 들었던, 혹은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지라고 이야기 되었던 곳, 비슷해보이지만 서로 다른 모양이었던 정자와 누각..두물머리를 거쳐 한강으로 흘러들기 전까지 남한강이 품은 이야기와 시간은 담담하고 음전하다. 오래 삼킨 그리움이 물결을 끌고, 설움이 물결을 밀어 청령포 에돌아 나가는 눈부신 절경을 만들어냈으리라.
우리 나라 어느 한구석도 박물관 아닌곳이 없고, 도서관 아닌곳이 없다고 했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어느 한구석도 온기가 머물지 않은 곳이 없다고 보태고 싶다.
마지막에 배치된 답사일정표를 본다.
길 가에 돌멩이 하나까지 설명해 줄 근사한 길잡이가 있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구구절절 이야기를 끌어내,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 속으로 오래 전 그들을 불러와 거닐게 하고 다투게 하고 그리움에 끌어안게 할 이야기꾼이면 좋겠다.
아니면, 그저 혼자 작은 흙먼지를 내며 걸어도 좋겠다. 시간 따위에 구애받지 않고..오롯이 하늘과 땅과 그 사이에 머물던 사람들을 찬찬히 생각해내며 지금 밟고 선 좌표를 오래 기억할 증표를 하나씩 모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꾸준히 보게 되는 건, 문화재의 역사와 가치 뿐 아니라, 유홍준 교수가 이야기해주는 그것의 본질적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묘미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문화재 몇호, 보물 몇호의 지위가 아닌, 그 시대의 美를 엿보는 느낌..나쁘지 않다.
처서도 지나고, 백로도 지났다. 조금 더 추워지면 강가엔 물기가 서리가 되어 앉을게다.
바짓단이 축축해질게다.
그리움은 그렇게 젖은 길이 어울릴지도 모른다. 내가 걸은 오늘 이 길이 먼 훗날 누군가의 발길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살짝 설레기도 한다.
가볍게 남한강을 걸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많은 것을 보고 깨우치지 못해도 거기 남한강이 있으니 흐를것이고, 거기 남한강이 있으니 걷기에 좋을게다.
그렇게 시간을 답사하는 것이 삶의 또 다른 여백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