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블 이야기
헬렌 맥도널드 지음, 공경희 옮김 / 판미동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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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렌 맥도널드 작, 공경희 역.

헬렌 맥도널드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공경희라는 이름에 기대를 걸었다. 사실 역자가 누구인가가 무슨 소용일까 싶지만, 단 한 권 "봄에 나는 없었다"에서 공경희의 번역은 너무나 탁월했다. 작가의 쉼표까지 번역한건가? 싶을만큼 말이다.겨우 그거 하나로? 각인이다. 역자가 누구지? 되묻는 과정을 갖게 되었다는 것, 그것으로 작가나 역자에 관심없는 내게 공경희라는 역자의 이름이 각인되었다.

엘렌 맥도널드는 작가이자 시인이며 동물학자이자 역사학자이며 일러스트레이터라는 다양한 이름을 갖고 있다. 놀랍다.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이 끝과 저 끝의 이름을 모두 끌어안은 느낌이다.


매.

대학에 입학하고 제일 처음 눈에 들어왔던 것이 걸개그림이었다. 본관 건물은 커다란 광목이불을 덮은 것 같았다.

힘차게 날아오르는 매. 그 밑에 유관순 누나야? 싶은 흰 저고리에 까만 깡통치마를 입은 여자들. 그리고 붉은 글씨..4.3항쟁에 관한 그림이었다.

걸개그림에서 단연 압권이었던 것은 매의 그림이었다. 걸개그림의 한복판에서 하늘을 가를 듯 날개를 펼치고 형형한 눈빛으로 위용을 보이던 매. 장산곶 매라고 했다.

그렇게 눈에 마음에 선득하게 내려앉은 장산곶매는 내 삶의 한 시기를 용감하게 보낼 수 있게 한 부적같은 존재가 되었다.

'그래, 날아보는 거야. 장산곶 매처럼..'

'그래 부딪혀 보는거야. 매처럼.'

그런 시간을 보냈다. 헬렌의 매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 중 하나였다.


헬렌의 매.

사진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아버지와 헬렌. 늘 자연의 모습을 함께 보고, 느끼고 찾아다니며 있는 그대로 신비한 자연을 배운다. 더없이 좋은 아버지의 사랑도.

그런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상실감에 어쩌지 못하는 헬렌은 어릴 때부터의 꿈인 참매를 길들이기로 한다.

가슴을 뛰게 하는 매. 맹금류, 그 중에서 매에 매료된 헬렌은 매에 관한 모든 것을 공부하고 연구했다. 어릴 때 부터.

그만큼 매에 관심과 애정이 있던 헬렌이었기에 매를 만나는 과정, 만남을 준비하는 과정, 길들이는 모든 과정에 전문적인 단어들이 나오곤 한다.

대충 뭉뚱그려서 이런 용도일 것이다 추측되는 것이 아닌 정확한 명칭을 구사한다. 그러나 전문성을 담보하다보면 흔히 보여지는 딱딱한 전개가 아니라, 거기 있어야 하는 단어처럼 쓰인다.

작가이자 동물학자인 헬렌의 힘이다.

매를 길들여가면서 헬렌은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과 슬픔으로부터 빠져나오려 안간힘을 쓴다.

그렇게 자신의 슬픔과 아픔을 매에게 투영하여 위로와 기쁨의 보상을 받고 싶었으나 실패한 화이트의 경우와 교차하며 보여지는 헬렌의 이야기는 점점 극적으로 이어진다.

화이트와 고스.

헬렌과 메이블.

두 이야기는 같은 지점에서 시작해 전혀 다른 결말로 이어진다.


헬렌의 눈과 마음.

매와의 교감을 시작하는 과정은 인내의 시간이다. 다른 동물들을 조련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누가 주인인지, 주인이 어디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 아무도 없음 알게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래서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도록. 자신에게 해가 되는 존재가 있다고 여기는 게 아니라, 위해의 요소가 '없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지점이 화이트와 결정적인 차이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충분히 먹이를 먹어'라고 갈구하던 화이트. 자신의 결핍, 결핌이 가져온 외로움과 혼란, 궁극적인 고통을 매에게 투영하여 한없이 내어주려고 했던 미련함은 결국 실패하고 만다.

헬렌은 기다린다. 기다리고, 조심스레 시도한다. 그 과정은 마치 자신이 매의 주변이거나 매가 보는 아무렇지 않은 풍경이 되어가는 과정처럼 보인다.

그렇게 슬픔이 극복될까?


이야기는 몰입력이 크다.

단 한문장도 허투루 읽히질 않는다. 세심함과 절제, 그리고 적확한 묘사는 압권이라 할만하다.

책을 읽으며 여러가지 딴짓을 하곤 했다. 유투브 다큐멘터리를 찾아본다던가..참매와 새매를 구분해본다든가..


 

왼쪽이 새매, 오른쪽이 참매다.

나는 매가 되어가고 있었다. (p142)

그랬다 헬렌은 매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시 말해 세상의 어느 한 부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슬픔에 젖은 가여운 여자가 아니라 매잡이의 역할을 하는 세상의 한 자리인 것이다.


슬픔은 나누어지는 것이 아니다.

또한 슬픔은 극복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견디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슬픔은 충분히 감각되고 이해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헬렌의 슬픔은 사라지지 않았고, 가벼워지거나 잊혀지지도 않았으며 매에게 전가된 것도 아니다.

다만, 세상의 한 부분이 되어 그 슬픔을 이해하고 빈자리를 충분히 채워줄 친구를 만들어낸 것이다.


매는 슬퍼하지도 않고 상처를 입지도 않는다

그저 사냥하고 죽일 뿐이다.

스코틀랜드 부둣가의 어느 눅눅한 아침

한 낯선 남자가 겁에 질려 퍼덕거리는

검은 발톱과 부드러운 은색 눈빛의 매 한마리를

상자에서 꺼내 나에게 보여주었다.

나는 매에게 '메이블'이란 이름을 붙여주었고

케임브리지로 데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책 표지 안쪽에 쓰여진 문단. 거기에 모든 이야기가 있다.

슬픔과 함께 생활하는, 그렇게 슬픔과 메이블을 인정하는 삶. 그 새로운 삶의 한 가운데 헬렌이 단단하게 있다.


이 다큐를 먼저보고 읽었으면..더 대단했을것도 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 <바람의 혼, 참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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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04 2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참매는 들어본 적이 있는데 새매는 처음 들어봅니다. 사진을 보니까 구분하기 어렵군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