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인의 집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평점 :
내 탐독의 시작은 '시'였다. 세상이
궁금했던 시절, 도스토옙스키와 까뮈, 루쉰으로 이어졌다. 잘난척 하는 까칠한 여고생의 전형이었달까?
실존에 대한 고민과, 아직 발 딛지 않은
묘연하기만 한 '사회'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은 딸 수 없는 신포도처럼 언제나 치기어린 결론을 내리곤 했다.
'별 거 있겠어? 사는거지 뭐..' 이런
시덥잖은 말들이 오가고 그 사이에 마음이 맞는 친구를 만나고, 그것이 이성이었을 때, 세상은 적당한 율격을 갖는 시가
되었었다.
막막함과 의심으로 그득했던 여고생의 노트에
릴케가, 하이네가, 브레히트가, 괴테가 그 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숨쉬는 것 조차 탄성이 날 정도로 모든
것이 놀랍던 시간들. 그 속에서 '시'는 친절하게 삶을 이해시켜주는 뮤즈였었다.
공동일기를 쓸 때마다 하이네를
썼다.
마냥 낭창하지만은 않은 결기. 삶을
마주하는 견고한 시선이 내 눈과 마음에 들어차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인것인가?
어찌해서 이렇게 단단하고 뜨거울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러나 고민은 거기까지였다.
혀끝에서 달달하게 감도는 시들은 청춘의
시절을 건내준 좋은 친구였다.
몇 해의 시간이 흐르고 마르크스를 읽고
엥겔스를 읽어낼 때..다시 만난 하이네.
공산당 선언의 마르크스와 천상 시인인 절친
하이네. 그제서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詩는 時라고 말이다.
시대를 노래하는 시. 끝없는 반역과 반역을
노래하는 시. 사랑조차도 무너뜨리고 넘어서는 사랑이어야한다. 감상에 주저앉아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진화하는 영혼의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내 청춘의 대부분의 시간에 세상으로 난
창문에서 파랗게 펄럭이던 시와 시인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가만히 앉아 그랬다더라가 아니라 그가
숨쉬었던 곳, 그가 거닐었던 곳, 그가 통곡했던 곳의 이야기가
말이다.
그의 詩가 태어나던 바로 그 時에 머물고
싶어졌다.
열 세명의 시인들을 찾아나선 시인.
시인의 집에서 시인의 입에서 흘러나온
노래는 먼 시간을 돌아 시를 읽어내며 신열에 달뜬 여자애를 초대한다.
여기에서, 이 공간에서, 이 때에, 나는
이런 삶을 살다가, 이런 노래를 부를 수 밖에 없었어요. 내가 시를 쓴 것이 아니라, 당신이 찾아온 것처럼 시가 찾아왔지요. 라고 말하는 것
같다.
그렇게 전영애의 손을 잡고 그의 발을 빌어
걷는다.
그녀가 거기 시인이 있고 시가 있어서
찾아갔던 것과는 달리 시인의 집으로 초대받은 왕년의 독자가 되어 걸어본다.
길 위의 흙먼지도, 발밑에서 미끄러지며
자락자락 소리를 내는 자갈에서도 젖은 땅에서도, 낮은 웅덩이에서도 오래 전 낯익은 노래들이 만나지는 길이다.
때론 콧노래처럼, 때론 비통한 삶의
비명처럼, 때론 안타까운 신음으로 문 앞에 다가선 내게 조용히 인사를 건넨다.
"당신 거기 있군요"
이미 오래 전 떠난 자리라는 걸 알지만,
그 문 앞에 서성이다 시인과 만났던 시들이 그랬듯, 온 신경을 모아 감각해본다.
참 성실한 글이다.
다박다박 밟아낸 자욱이 선명하다. 낮이거나
밤이거나 찾아가지 않을 수 없었던 사연들이 하나같이 절절하다. 하나같이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
시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글.
시의 행간에 박힌 눈물의 흔적까지 한숨의
얼룩까지 찾아내고야 마는 애정이 느껴지는 글이다.
시인들의 시를 번역하며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짐작이 되어진다.
이쪽의 시간에서 저쪽의 시를 부른다.
너무 먼 간극에 주춤거릴 때, 그녀가
조심스레 노란 징검다리를 놓는다.
"시인의 집" 구경가지 않을래요? 라고
거절할 수 없는 초대장을 내민다.
시인이란 아마도, 끝까지
사랑하는 사람인 것 같다. 사람과 세상을. (p290-파리의 미아: 하이네의 미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