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극도의 짜증과 분노가 일어날 때, 무의식적으로 뱉어내는 말이 있었다. '아..씨 다 죽여버려.' 사실 이 말은 아무런 힘도 의도도 없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나는 누군가를 죽일 수도 없으며 죽여도 좋을 명분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 실제로 내 손에 흉기가 주어지고 누군가의 생명을 거두어도 좋다는 허락이 떨어진다면 가능할까? 그 역시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누군가의 생명을 거두는 것은 인간의 영역이 아니다. 심지어 사형제도까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악한 범죄가 일어나고 나면 우리는 티비 앞에 앉아 뉴스를 보며 이야기 한다. "저런 놈들은 다 죽여야 돼. " 말이 그런거다. 이런 분노를 대신해 암암리에 흉한 놈들을 대신 죽여주는 청소부 같은 이가 있다면 아마 헐리우드 영화 속에서나 가능하겠지. (민간인이 모르는 특수 임무를 띤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릴리와 테드는 공항에서 우연히 만나 같은 비행기를 타고 돌아온다. 테드는 어차피 남이니까 부인 미란다의 이야기를 한다. 건축업자 브래드와 눈이 맞아버린 부인을 죽여버리고 싶다고. 어차피 죽일 수도 없고 릴리는 처음 본 사람이니 이렇게 하소연하듯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뿐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이 된다. 테드가 죽고 미란다가 죽고 브래드가 죽고..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엔 릴리가 있다. 사춘기무렵 첫 살인을 하게 되는 릴리. 예술가들과 어울리는 자유분방한 부모님들 덕에 집엔 손님들이 들끓었고 그렇게 릴리의 집에 묵게 된 쳇. 릴리의 첫 대상이 된다.

우물에 그의 시체를 숨기는 릴리. 우물과 시체..스티븐 킹의 별도 없는 한밤에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1922편에서 ..아내의 시신을 우물에 숨기는..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릴리는 그들이 죽어 마땅하고, 자신이 죽여 마땅하다는 생각을 한다. 조금도 흐트러짐 없는 릴리.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빨간 머리라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어딘가 닮은 내용들이 여기저기서 떠오르긴 하지만 비슷한 풍경이지만 온도가 다른 느낌이랄까?

릴리의 입장은 '인과응보'다.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사건에 끼어들었지만, 결국 그들은 '죽여 마땅한 사람들'일 뿐이고 자신이 해야할 일을 한 것 뿐이다.

 

릴리의 행보에 은근히 응원을 보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섬칫했다. 대리만족이었던걸까. 이런 억지가 어딨어? 라고 단번에 반박하지 못하고, 그럼, 그럴 수 있지. 라고 수긍하게 되는 것이 무서웠다.

이야기의 내용에 스릴을 느끼는게 아니라, 이야기에 반응하는 자신에게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의도된 것이라면 작가는 충분히 역할을 해 낸게 분명하다.

 

특별히 피가 튀고 살이 찢기고 부산스럽지 않게 낮은 온도로 차분하게 목숨을 거두는 릴리..그녀를 응원하고 이해하게 되는 독자. 이쯤되면 음..

짜임이 탄탄하고 흥미롭다. 이렇게 올해도 여름맞이 스릴러를 시작하게 되나보다.

 

미출간 도서라 서평쓰기가 좀 그랬지만..곧 나올테니까. 미리 읽는 것은 신나기는 반면 뭔가 작당하는 것 같아서 늘 조심스럽다. 내가 뭐라고..먼저 읽누. 이런 마음? 재미있어도 재미있다고 이야기 하지 못하는 딜레마가 있는 것 같다.

 

재밌음. 이라는 말 대신 나쁘지 않음. 이라는 말을 선택하게 되는...먼저 읽기의 딜레마..

여튼 고맙고 감사히 읽었다.

 

 

 

 

 

 

사람들은 생명이 존엄하다고 호들갑을 떨지만 이 세상에는 생명이 너무 많아요. 그러니 누군가 권력을 남용하거나 미란다처럼 자신을 향한 상대의 사랑을 남용하다면 그 사람은 죽어 마땅해요. 너무 극단적인 처벌처럼 들리겠지만 난 그렇게 생각 안 해요. 모든 사람의 삶은 다 충만해요 .설사 짧게 끝날지라도요. 모든 삶은 그 자체로 완전한 경험이라고요.
(....) 살인을 정당화한 말은 아니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오래 사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지 강조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타인에게 이용당할 때까지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죽여 마땅한 사람들 중에서..릴리와 테드의 대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 신화밖에 모르는 당신에게 - 영화보다 재미있는 세상의 모든 신화
마크 대니얼스 지음, 박일귀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며칠간 비가 쏟아졌다. 세상을 끝장내려는 것처럼, 혹은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어떤 움직임처럼..


마야의 신화 속에 후납 쿠가 세상을 세 번이나 거듭 창조하고 나서 만족했다고 했다. 첫 번째 세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 물 뿜는 뱀을 시켜 홍수를 일으켜 세상을 멸망시켰고, 두 번째 세상에서는 촐로브족이 부정한 짓을 저질러 또 홍수를 일으켰고 마지막 세상에서 마야족을 만들고 만족했다고 했다. (p203 요약)

아즈텍에서도 창조의 과정은 쉽지 않았다. 첫번째 재규어의 모습으로 세상을 멸망시켰고, 두번째 바람으로 땅위의 것을 쓸어버렸는데 그때 소수의 사람들이 원숭이로 변했다고 했다. 세 번째 창조했을 때는 홍수로 모든 걸 파괴했고, 남아있던 사람들 몇명은 새로 변했고, 네 번째 물의 여신의 피눈물로 홍수가 나서 또 한번 멸망했으며 이번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물고기가 되었다고 했다.연거푸 세상을 만드는 일에 실패하자 신들은 죽은 사람들의 뼈를 모아 신의 피를 섞어 다시 살려내기로 했다. 이러한 파괴와 재창조의 개념은 여러 신화에서 유사하게 나타난다. 북유럽의 라그나뢰크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홍수처럼..(p211-212요약)


하늘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천둥이 치고 번개가 쳤다. 잔뜩 부푼 생선의 배를 가른 듯 쏟아져 내렸다. 그런 날씨를 보며, 단지 장마일 뿐인 시기의 날씨를 보며 창조와 파괴를 생각하는 건 지금이 신화가 필요한 때여서는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신의 힘과 신의 권능을 빌어서라도 어떻게든 해보고 싶은 현실. 인간의 힘으로 더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어릴 때 베개맡에서 할미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들으며 '착한 사람이 되어야겠어'라고 생각하고 잠이 든 날이면 영락없이 꿈을 꾸었다. 뭐든 마음먹은대로 되는 꿈. 그 꿈에서 뭐든 할 수 있었지만 심판관의 입장이 되어 단호하게 악한 것(어린 생각과 판단에)을 벌하고 선한 것을 지켜내려 했었다. 악한 것이래봐야 더 어린 동생의 과자를 빼앗는 오빠들이나 언니들이었지만, 그들의 손을 오징어 다리처럼 변하게 하고 내게 우유를 나눠주던 친구에게 천사 날개를 달아주는게 전부였지만 옛날 이야기를 들은 밤이면 꿈을 꾸곤 했다. 사람의 힘으로 더는 어찌해 볼 수 없을 때, 하늘을 본다. 어쩐지 그 하늘엔 누군가 내 억울함을 보고 있을 것 같아서, 나 대신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의 손,발을 오징어다리로 만들어줄 것 같아서..


신화를 읽는 것은 매우 재미있다. 어린 아이들은 다양하게 출간되는 신화를 접하기도 한다. 그림책으로 만화책으로 짧은 동화로.."그리스 로마 신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고 자란 아이들은 제우스와 유피테르(쥬피터)를 알고 아프로디테와 베누스(비너스)를 알고 에로스와 큐피드를 이야기하지만 늘 헷갈리기 일쑤다. 너무 닮은 이야기들,.심지어 쥬피터와 헤라를 부부로 엮어버리기도 한다. 많이 읽어 오히려 헷갈리는 이름들, 사실 이름이 무슨 상관이엤는가. 그들의 모험과 사랑과 증오와 화해가 만드는 이야기들이 더없이 흥미롭고 달콤한데 말이다. 하지만 그 외의 신화들은? 북유럽의 신화들도 간간히 알려지긴 했다. 보통 판타지 소설이나 RPG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이름들..거기에 북유럽의 신들이 있었다.

연초에 우연한 기회에 '라마야나'를 읽고 동아시아 신화에 대해 본격적으로 읽어봐야지 했다. 중동신화를 읽었고, 아프리카 신화를 읽었다. 어째서 신화인가. 곰곰히 생각했지만 어떤 의지, 희망같은 것이 생기길 바라고 있는 탓이라고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그들만의 달콤한 일상에 젖을 것이 아니라 창조해 놓은 세상을 좀 보라고 귀를 기울여보라고 따지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신과 다투고 싶다니..여기에서 신화에 나오는 신들에 대한 나의 생각이 드러난 셈이나. 이웃집, 혹은 조금 높은 곳에 사는 나보다 조금 더 힘이 있는 거인과 같은 존재. 사람을 창조했다고 하지만 어쩌면 사람에 의해 창조되어진 신들. 건방지게도 그들이 내린 신탁을 거절할 수도 있다는 틈. 그런 틈을 더 좁히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리스, 로마신화, 북유럽신화는 물론이고이집트, 수메르, 중국, 북아메리카 원주민, 중남미, 오스트레일리아와 마오리의 신화까지 도표와 그림과 큰 줄기로 써놓은 책은 참으로 유용했다. 호기심이 일었던 에피소드를 길고 깊게 읽고 싶었지만 간략하게 소개된 것이 아쉽긴 했다. 하지만 어떤 이야기들일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신화를 읽는 것도 계획이 필요하다면 이 책은 설계도일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들을 어떻게 읽어야할지, 어떤 계보로 읽어야할지 틀과 길을 제시하고 있다. 좋은 참고서라고할까?

신화를 제대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다. 해결방법도 뭣도 찾아지진 않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건 '위로', 그리고 '격려'일지도 모르겠다.


힘없는 피조물이 아니야. 몇번이고 재창조하고 파괴하고 만들어 낸 아주 중요한 존재야. 신에게 복종하려고 하지마. 신과 함께 살아. 너는 위대한 '인간'이야. 라고 말해주는 책. 책꽂이 높은 곳에 두었던 '궁극의 리스트' 옆에 꽂아두기로 했다. 이 역시 흥미로운 리스트다. 헤시오도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일리야드 오딧세이보다 헤시오도스의 신통기가 더 재미있었던 기억을 깨우기로 한다. 이렇게 책이 부르는 책을 읽는 것이 가장 재미있다.

 

 

(궁극의 리스트. 중에서..)


댓글(1)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7-04 18: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살 돈이 많으면 신화 사전 한 권 장만하고 싶습니다. ^^
 

선한 사람은 자꾸 진다. 선한 사람은 손해를 본다. 억울함은 선함의 부산물이다.

아들 녀석에게 "착하게 살면 돼"라고 말을 해 놓고 후회했다. 마치 억울하게 사는게, 피해보며 사는게 좋아..라고 말한 것 처럼.

 

 문득 니체를 떠올렸다. 선악의 저편..나는 늘 어려웠다. 이 두 권을 나란히 놓고 읽으면 좀 나으려나.

 

선함과 악함.

사람은 얼마나 악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범죄라는 양상으로 드러나기도 하지만, 그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충돌들을 어떻게 견디고 있을지..

 어떤 사건을 내 입으로 이야기하면서도 믿어지지 않아 중언부언하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을만큼 벌어지고 있는 범죄들은 상상이상이다.

 

얼마전 아이작 뉴턴 시리즈로 마음을 들었다놨다 했던 알마에서 스구눔 시리즈를 다시 내놓은 모양이다.

 

                                      가난뱅이의 살림은 도무지 나아질 줄 모르고..이래서 죄를 지어버리는건가? 싶어진다.

 

 

 

 

 

 

 

 

 

 

 

 

 

 

 

 

악에 대한 이야기는 수없이 이야기되고 분석되고 증명되고 의심되고 있다. 인정할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개념'악'.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다양하게 실체화되어지고 있는 악을 어떻게 제압해야할지 어쩌면 대체식량, 대체에너지보다 급한 문제가 될 수도 있겠다. 살아남은 그곳이 아비규환의 현장이길 바라지 않는다면..

 

 

자음과 모음이라는 출판사의 사태를 보면서..아침 장바구니를 뒤져 자음과 모음. 그리고 그 계열사의 책들을 모두 걸러냈다.

부조리에 맞서는 사람들, 그들에게 내가 소위 독자라고 해 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다.

지켜내고 싶은 출판사가 있는 것 처럼 없어도 좋을 출판사도 있는 법이다.

책은 늘 옳다고? 개똥이다.

 

책을 꺼내 버리면서 발견한 책..

 

  제목만으로 충분하다. 그들은 지금 "악과 가면의 룰"을 따르고 있는 셈이다.

 내용이 궁금하긴 해도 읽진 않겠다.

 

 서명부터 하고 와야겠다.

https://docs.google.com/forms/d/1d43zdWtBIHfc09wZOB2YIbVQXMizKi-LZ6NlOMzUjCY/viewform?fbzx=3547654767041520179

 

 


댓글(3)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6-06-29 16: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이룸’이라는 출판사가 ‘자음과모음’에 속하는 계열사인데, 자모는 윤정기 씨 문제를 ‘더 이룸’ 출판사로 떠넘기면서 무시하고 있습니다. 이런 꼬리 자르기식 대응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컴퓨터도 전자 서명을 하려고 했는데, ‘해당사항 체크’가 되지 않았어요. 마우스를 클릭했는데도 체킹 표시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북플로 접속해서 서명했습니다.

나타샤 2016-06-29 17:03   좋아요 0 | URL
화가 납니다. 이런 행태들..

yureka01 2016-06-30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양질의 도서는 만드는 사람들이 편안해야 가능한 첫째조건입니다.이게 안되는 출판사는 사라져야죠....독자의 힘으로 승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 몇가지의 단상


중국식 룰렛이라는 제목을 듣는 순간 떠오른 어떤 여배우. 안나 카리나. 고다르에 의해 발견된 여인. 이 매력적인 여배우가 "중국식 룰렛"이라는 동명의 영화에 나왔었다. 고다르와 헤어지고 나서 ..별로 흥행하지 못했던 영화지만 꾹꾹 눌러담는 연기가 일품이었다.


 


고등학교때, 나보다 열두살이나 많은 친구의 오빠를 좋아했었다. 그 오빠와 같이 보러 간 영화. 디어 헌터. 정신은 온통 오빠에게 쏠려 있고 무슨 내용인지 어째서 디어 헌터인지, 누가 나왔었는지 기억나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다만 닉이 러시아 룰렛을 하는 장면. 제 머리에 총구를 겨누고 텅 비어버린 시선을 돌리던 장면만 선명하게 남았다.

진실이 무엇이든 룰렛은 원하는 이야기를 내어주지 않는다. 몇가지의 일들이 은희경의 작품을 읽기 전부터 머릿속을 흔들고 지나갔다.

이런 바람의 흔적을 고스란히 두고 읽어도 좋을까?


#2.


모르는 손님이 두고 간 수첩. 그 속에 적힌 한 문장을 읽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알고 있는지. 나의 모든 것은 거짓이다. 진실하지 않은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깨달은 뒤 부터."

커피숍에서 일하는 나와, 나와 같이 사는 Y, 나의 시선은 나였다가, 그 였다가 자꾸만 돌아와 맞춰진다.

딱 하나, 총알이 든 총구를 찾아 수없이 두려움과 진실을 토해내는 룰렛처럼..

총알이 발사되는 순간까지 아무도 그곳을 나갈 수 없고, 포기할 수도 없으며, 그만둘 수 없는 게임의 규칙처럼..


여섯개의 단편 중 하나의 단편을 샘플북으로 읽는다. 너무나 작고 작은 글씨..있는대로 집중하지 않으면 글자가 뭉개져버리는 통에 자꾸만 찌푸리게 되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읽히지 않는 내용. 대충 훑어보아도 될 그것을 그렇게까지 집중해서 읽어내야만 했을까. 어차피 운명에 맡기는 거라지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하는 룰렛. 그 게임에 참여했다면 그 룰을 따를 수 밖에라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삶의 영역. 나의 영역. 너의 영역. 누군가와 공유하는 영역. 그것이 공간이거나 또한 수첩 속 메모이거나 영역을 벗어날 수 없는 저주는 공평하다.

기필코 뚫고 나가려한다면, 혹은 사고로라도 뚫고 나가야 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감당해야할 준비가 되어야만 한다.

영역 밖에서 시들어버린 축복은 총탄이 발사되지 않았음에도 두려움에 심장마비를 불러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이 사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 내가 이해하고 있는 것이 진실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말. 분명한 것은 나의 영역에서 일어난 일은 밖에서 이해되지 않으며 다른 영역에 들어선 나는 이미 내가 아니거나 너무나 노골적으로 '나'일것이라는 것.


시선을 오가며 쓰여지는 글은 자칫 산만할 수 있었다. 사실 조금은 산만했다. 빠르게 시선을 돌리지 못하는 이는 어디서부터 놓쳤지?를 몇번인가 되짚어야만 했다.

탄실은 돌아갔는데..방아쇠를 당길 차례인데. '어? 잠시만요 제가 어디까지 했죠?'라고 묻는 짓을 하게 되는것이다.

독자의 역량이 그것밖에 안되었던 탓이려니..


[나는 나를 반기지 않는 세상에 태어났고 투명인간이 되는 도장도 발명해내지 못했다. 그리고 정작 나를 바라봐주기를 바랐던 단 한사람은 나를 투명인간처럼 대했다. 오늘 찻집 앞 사거리에서 우연히 당신과 마주쳤다. 당신도 나도 혼자였다. 반사적으로 걸음을 멈춘 나의 곁을 당신은 무심히 지나쳐갔다. 그동안 당신의 웃음이 향한 곳은 내가 아니라 내가 걸친 찻집 에이프런과 쟁반이었다. 그것이 나의 장미였다. (p23)]



#3.

주위를 둘러싼 갖가지 소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어쩐지 '사물의 비밀'이라는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

나를 둘러싼 수천, 수만가지의 소품들과 그 소품들이 목격했을 이야기. 사실과 진실과 갈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 발사되는 운명의 총알.

우리는 수없이 룰렛을 돌리고 있는것은 아닐까?

미리 읽어본 단편 하나.

나머지 단편들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사실..잘 모르겠다. 수많은 이미지들을 끌어들이는 통에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알아챌 수가 없다.

처음부터 총알이 없었던 것은 아닐테니까..탄실을 기꺼이 돌려보고 싶다.

오랜만에 보는 은희경. 반갑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부쩍 마지막이라는 말을 달고 나오는 책들이 많아졌다.

 

 

 

 

 

 

 

 

 

 

 

 

 

 

 

많아졌다기보다 어쩌면 나는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쓰고 싶은건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폭정, 마지막 절망, 마지막 희생, 마지막 한 잔..처럼.

화가의 마지막 그림과 내 생애 마지막 그림은 어쩐지 컨셉이 겹치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살짝 궁금해지려 한다.

마지막 그림이 궁금해서 읽은 책.

 

  말했듯이 마지막 그림이 정말 궁금해서라기 보다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는거다.

 익히 들어 알고 있는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에 걸친 음악가의 이야기다.

 비제와 베버, 맨날 헷갈리는 로시니와 푸치니, 바그너, 모짜르트, ..여덟명의 이야기다.

 클래식과 오페라에도 조예가 없다. 카르멘을 갈라쇼 보듯 띠엄띠엄 몇가지 테마만 들은게 전부다. 클래식 애호가인 친정엄마는 늘 이런 나를 못마땅해하셨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좀 격조가 있어야지..쯧쯧" 그놈의 격조가 나는 영 비껴가는가보다.

 모기기피제처럼 격조기피제를 뿌린건 아니지만..

 음악가들의 이야기, 사랑과 가난과 질병과 배신과 절망 속에서 마치 그들이 세상에 살았었다는 '마지막'흔적처럼 남아준 작품들을 소개한다. 조예가 깊은 사람은 좀 시시할 수 도 있겠다 싶었다.

 

읽다보니 용기가 생기기도 했다. 대장정을 해볼까? 다락방 올라가는 계단 사이에 박아 두었던 벽돌책을 꺼내놓았다.

 

  고대 음악부터 아주 잘게 시간을 잘라 말 그대로 세계사처럼 써놓은 책.

 일단 도전!

 

 

 

 

 

 

 

 

 

 

 

 

어째서 마지막이라는 말이 자꾸 맴돌았을까. 마지막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고 하고 싶었던 만큼 하기 싫었다.

이제 마지막인가. 근래 들어 가장 큰 기대와 기다림에 받아든 최승자의 시집을 읽고 문득 든 생각이었다.

승자를 잃었나.

 

신문을 통해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는 기사 하나를 읽었다.

http://www.hankookilbo.com/v/f44337422d554cc4bc7bbc2c818e99e5

내 놓은 책이 오탈자가 너무 많아 모두 리콜한 후 10년만에 개정판을 내었단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거다.출판사가 휘청했을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것을 책임지고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뚝심있게 다시 개정하여 내놓는 것.

분명 그래야함에도 불구하고 대견하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이렇게 나온 책이라면 읽어봐야하지 않을까.

 

  2007년에 나왔다 리콜된 기억. 2016년 다시 개정되어 나온 알베르트 슈페어의 기억.

 

 

 

 

 

 

 

 

 

 

 

 

이런 실수는 마지막이어야겠지만..이런 자세는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본다.

기대가 되는 책이다.

오늘은 , 지금은..내가 지나치는 마지막 지점임을 기억하도록 하자.

마지막은 또 다른 시작이 아니라..완결지어야 할 지점임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