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사람의 십 년
펑지차이 지음, 박현숙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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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지차이의 '백 사람의 십년"

광풍이 불고 간 자리를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웠던 시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회한과 가당치도 않은 누명과 서로를 신뢰하지도 불신하지도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한국전쟁을 치르던 시기의 사람들과도 닮았고, 혼란 속에 무엇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지 깜깜한, 억울함과 소외됨의 한 가운데 서있는 지금의 모습과도 닮았다.

혁명의 깃발이 꽂힌 그 곳에 혁명의 주체여야 할 '인민대중'은 있었을까? 개혁의 과정에서 피치못할 희생이라 하기엔 비겁하다.

원칙과 규율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가 사라진 곳에서 고스란히 시간을 견뎌야했던 사람들의 증언.

그 증언들을 풀어 쓴 책이다.


혁명은 이토록 지난한 과정이겠구나. 오해와 불신과 맹목과 광기가 공존하는 시기이겠구나..그런 오류의 과정을 거치며 인민주권을 획득한 혁명국가가 되는거겠구나.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공염불같은 생각이었는지..

물론 실패와 극복과 희생과 진보를 번갈아 내디디며 걷는 과정이 발전이며 인간중심의 국가를,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겠지만..그 어떤 이유로도 무고한 희생을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어떤 댓가를 지불한데도 사람 위에 이념을 두어서는 안될 노릇이다.


문화혁명의 과정을 겪으며 중국 내부의 변화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겠지만, 그 댓가를 고스란히 치른 사람들은 누가 보상해주어야 하는지..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는지.


8살짜리 사형수의 이야기로부터, 어딘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이야기한 것 뿐인데 수감되어 고초를 겪어야 했던 사람. 자신이 왜 우파여야 하는지 모른채 비판을 받고 매일 반성해야 했던 사람. 차라리 죽어버리려해도 죽어지지 않아 오히려 고초를 겪는 사람. 

어떻게 살았을까. 이게 과연 사실일까? 과장하거나 왜곡된 기억이진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참담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한국전쟁 때 아침엔 태극기를 한 밤엔 인공기를 흔들며 살얼음판 위를 걷듯 살아냈다는 외할머니의 말이 머릿 속을 스쳐갔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거야. 그들이 걸어낸 시간들이 역사인거지.


<인민의 경험이야말로 시대의 경험이다>


라고 굵은 글씨로 적힌 첫 이야기의 마무리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더 깊이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성주가 성지가 되고 해방구가 되고 역사가 되는 과정을 매일처럼 확인하게 되면서 더더욱 실감하는 말이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이런 상황과 이런 비극을 말이야. 앞으로 세월이 흘러 우리가 모두 죽으면 우리 세대가 겪었던 일들을 누가 알 수 있겠어? 그렇게 되면 우리는 괜히 헛고생만 한 것 아니겠어? 지금 이런 일들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거야?”>


책을 열면 처음 마주하게 되는 문장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는 글을 모으고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문장 속에서..나는 위안부할머니의 음성들 듣는다.


억울하게 희생되고 고초를 겪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견뎌낸 역사의 현장.

그리고 발견하게 되는 역사의 주체.

역사는 골방에 모여앉아 쓰는게 아니라..인민의 피눈물로 쓰고 인민의 땀으로 새기는 것이리라.


참 좋은 책을 읽었다.

개 돼지가 아니라 인민대중의 한 부분이라는 것. 역사의 주체라는 것을 확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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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에 찐빵집이 하나 있다. 투박한 손으로 뜨거운 찐빵을 빚고 솥에 넣고 맨손으로 꺼내는 주인아줌마의 손맛은 일품이었다.

뜨거움에 단련된 손은 두꺼웠고 잘 쥐어지지 않았고 늘 벌겋게 달아 있었다.

그래도 그 손으로 턱턱 집어주는 찐빵은 고급 베이커리의 빵에 뒤지지 않았다. 그 거친 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비단 나 하나만은 아니었다.

찐빵집은 늘 거기 있을 것 같았고, 절대로 문을 닫을 것 같지도 않았다. 아무때고 찾아가면 벌겋게 단 손으로 갖쪄낸 찐빵을 집어주는 주인아주머니를 만날 수 있을것 같았다. 저렇게 맨손으로 자꾸 해도 될까? 의심이 되었고 아주머니는 '괜찮어. 이제 인이 백여서'라며 손사래를 쳤다. 핸드크림이라도 바르지..장갑이라도 끼지..라고 말하면 주인 아주머니는 그랬다.

'음식에 화장품 냄새 나면 안돼. 장갑끼면 감각이 없어서 안돼'

그 맛난 찐빵은 아주머니의 희생이 빚어낸 결과물 같은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찐빵집 문이 열리지 않았다.

하루 이틀..소문엔 주인 아주머니가 아프다고 했다. 많이 아파서 찐빵집을 다시는 못할것이라고도 했다.

주인아주머니가 걱정되었다. 또 찐빵도 걱정되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찐빵집이 다시 문을 열었다고 했다.

반가운 마음에 한달음에 달려가보니 역시 주인아주머니가 찐빵을 쪄내고 있다. 장갑을 끼고,..

고장난 손을 치료하는 중이라고 했다. 그래, 잘 됐어.

찐빵을 한 봉지 샀고 예전의 그 맛을 떠올리며 한 입 베어물었다. 이런..그 맛이 아니다. 맹숭하고 싱겁고..불현듯 장갑 낀 주인아주머니의 손이 떠올랐다. 아프니까..그렇겠지?

그럼 차라리 찐빵집 문을 열지 말지..

 

"에이..이 맛이 아니잖아. 겨우 이 맛을 내려고 손 치료를 한거야? 영 문을 닫든가 치료를 하지 말지.."라고 말했다.

그 빛나던 순간과 각인된 맛으로 찐빵을 남기고 싶었던 까닭이다.

너무나 특별했고 너무나 소중해서 김빠진 기억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그러자 누가 그랬다. "먹을 만 한데, 치료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니. 그게 할 소리냐. 주인아주머니 손을 보고도 그딴 소리가 나오냐? 사람이 왜 그러냐? 뭐라고 말 좀 해봐라. 시발"

"뭘 말해? 내 생각이 그렇다고. "

"니깟거 입맛 맞추자고 주인 아주머니가 치료도 안받아야하나?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셨는데.."

 

그럼..맛이 있든 없든 아주머니의 노력과 고생이 있었으므로 '맛있다, 훌륭하다'라고 말해야 하나?

전과 다르다. 치료하기 전이 더 낫다. 라고 말할 수는 없나?

이건 비인간적인가? 이렇게 말하는건 사이코패스인건가? 이렇게 말해서는 안되는건가?

 

주인아주머니의 처지를 먼저 생각하며 꺼이꺼이 울어주는 사람앞에 '별로야'라고 말한 사람은 욕 먹을 짓을 한건가.

'나도 그래'라고 같이 고개 끄덕여준 사람들도?

 

때론, 드러내지 않는, 아니 오히려 거칠게 말해버리는 진심과 애정도 있는 법이다.

그 깊이와 밀도를 개인적인 잣대로 넘겨짚어 매도하는건 무례하다.

 

어제, 그런 생각을 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던 사람에게 꼭 말해주고 싶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건 누구도 시를 완성할 수 없다는 말일꺼야. 미치지 않으면.."

 

최승자를 사랑하는 것은 때로 위태롭다.

나는 아직도 미쳐버린 그녀가 좋다. 벌건 손을 한 찐빵집 아줌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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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읽는 논어 고전 친숙하게 읽기 시리즈 1
공자 지음, 홍승직 옮김 / 행성B(행성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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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선생께서 말씀하셨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적을 방비할 무기가 풍족하고, 백성들이 믿고 따르게 하는 것이다" 자공이 말했다. "부득이하게 꼭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 무엇을 먼저 포기합니까?" "무기 갖추는 것을 포기한다." 자공이 말했다. "부득이하게 꼭 한가지를 포기해야 한다면, 이 두 가지 중 무엇을 먼저 포기합니까?" "먹을 것을 포기한다. 옛부터 사람에게는 누구나 죽음이 있으되, 백성들이 믿음이 없으면, 왕의 자리에 설 수 없다." (p227)


밑줄을 두줄 그었다. 가장 먼저 포기해도 좋을 것을 목숨걸고 지키고자 가장 마지막까지 지켜내야 할 민심을 내쳐버리는 현실때문인지도 모른다. 안연편의 이야기다.

시국은 혼란하여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한다. 사방에서 영웅들이 뜨고 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밥그릇을 두고 서로 다투는 형국이니 그 형색은 비통하기만 하다.

이런 시국에 논어를 읽는다는 건 어쩌면 한가한 신선놀음으로 비추어질지도 모를일이다.

예를 중시하고, 인을 중심에 놓은 공자의 가르침들. 고리타분하고 봉건시대에 걸맞는 도덕이며 윤리일것 같지만 덮을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예의 근본에 '사람'이 있고 '백성'이 있었기에 그렇다.

유교적 사고방식이라 일컬어지는 가치관을 품은 분들 밑에서 자라난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논어의 경구들은 낯설지만은 않다.

시험문제에 자주 나오던 "배우고 때로 익히면" 이라든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니 "같은 말들은 한글로 풀어 썼지만 머릿속에 한자로 정리되고 있을 지경이다.

학이시습지면..유붕이 자원방래면..

또한 논어는 보슬비처럼 삶에 젖어든 가치와도 닮았다. 교양선택으로 논어를 듣는다든지 한때 열풍이던 도올 선생의 논어강연이랄지 뭔가 성의있는 글을 쓰고자 할 때 인용구로 다양하게 접하게 된다.

그래서 만만하게 덤벼들다 이내 낙심하고 포기하게 되었다.

매번 1단원만 풀다가 덮어버리는 수학문제집처럼 늘 앞부분만 필사되고 밑줄이 그어지다 그만두어지는 논어.

고전은 가치의 변화와 사회의 변동 속에 점점 잊혀지고 어려워지고 있다. 어려워지는 이유는 지금과 맞지 않아서라기 보다 점점 '사람'이 존중받지 못하게 된 까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 사람의 학문, 사람에게 복무하는 학문, 언행과 관계의 예를 일러주는 학문, 이 모든 것이 발전과 소득우선에 밀려나게 된 까닭은 아니겠는가.


제 1편 학이편에서부터 20편 요왈편까지 깔끔하게 정리된 책.

쉽게 읽는 논어. 풀이가 잘 된 논어. 쉽게 쓰여진 논어. 온갖 논어들이 내 손에 들어온 순간 어렵게 읽히는 논어. 풀이가 의심되는 논어. 어쩌면 이렇게 어려운 논어가 되어진건 순전히 내 탓이겠다. "처음 읽는 논어" 이제껏 읽어왔던 것들을 잠시 내려놓고 훌훌 읽어낸다.

쉽다.

깊게 파고 들자면 한없이 파고 들 늪 같은 논어에 겁먹지 않아도 좋을만큼 쉽다. 달리 이야기하면 연구용이나 학습용이라기 보다 논어와 낯익히기 정도가 되겠다

일단 낯을 익히고 다시 읽으면 그 속내를 보여주겠지. 우물가에서 처음 만난 선남선녀처럼 한번쯤 웃어주고, 눈짓을 나누고 속내를 나누게 되지 않을까.

그 첫걸음으로 맞춤한 책인듯 싶다.

한자를 풀이해 적어둔 것은 간혹 갸우뚱하게 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오래 들여다보고 소리내어 읽어보다보면 '아하~이 말이구나'하게 된다.


처음 읽는 논어다.

뭔가 대단한 깨달음을 얻고자 한다면 아마 싱거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가치, 그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과 어떻게 되찾을까에 대한 오래 전부터 전해져오는 외할머니의 처방같은 조언을 만나고 싶다면..권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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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큼 가까운 중국 이만큼 가까운 시리즈
이욱연 지음 / 창비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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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국


요즘처럼 중국과 거리가 가깝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중국은 늘 낯선 나라였고 중국이라고 검색하면 연관검색어처럼 북한이 따라오곤 했던 것 때문이리라. 어쩐지 우리와는 가까워지지 않을 것 같은 덩치 큰 이웃동네 형같은 느낌이었다. 정치경제를 비롯한 국가적 체제변화를 겪으며 큰 힘으로 자리매김한 중국.

수출 상대국으로, 사회주의 국가로, 우리나라의 문화컨텐츠가 많이 넘어간 나라로, 관광수입에 큰 역할을 하는 나라로. 중국은 한층 가까이에 있게 되었다.

사이좋게 잘 지내면 좋을텐데..사드배치 문제로 러시아와 더불어 참 껄끄러운 관계가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안될 수가 없다.

이만큼 가까운 시리지가 세 나라를 주제로 나올 예정인것 같다.

흥미롭겠다.

사드를 가운데 두고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와 턱없이 기지를 내주고 눈치보고 있는 한국과, 이제 방어군이 아닌 실제 전쟁을 할 수 있는 군을 두기 위해 개헌을 하겠다는 일본. 도무지 판세를 읽을 수 없는 초접점에 모여섰다. 분명한 건, 우리는 그 어떤 실익도 없다는 것.


중국이 궁금해서 책을 찾아보면 중국여행서들이 대부분이다. 명소와 먹거리가 주를 이루는..사진과 사진과 사진이 이어지는 책들, 혹은 너무나 전문적으로 역사와 정치와 경제의 구조와 체계를 정리한 책들, 방대하고 방대해서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수많은 나라들이 분열하고 통합하는 과정을 수없이 겪은 중국의 역사는 다양한 문화유산으로 남아있기도 하다.

이런 총체적인 이야기를 한 권으로 할 수 있다면?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일만큼 어려운 일일것이다. 폭이 좁거나 깊이가 얕거나 하지 않는 이상.

그런 기우를 갖고 책을 펼친다. 건방지게 한마디 하고 말았다. "제법인데?"


#2 이욱연


제법이라고 생각하고 지은이를 살펴본다. 이욱연. 잘 모르는 사람이지만 그의 번역서를 몇개 읽은 기억이 있다.

최근에 본 위화의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루쉰의 "아Q정전"과 "광인일기" 그리고 그가 쓴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

중국어를 잘 모르지만, 루쉰의 정취나 위화의 힘이 읽히는 번역이었다. 번역하는 이들의 문제가 공공연하게 제기되고는 있지만 우리나라 말도 제대로 못하는 처지에 뭐라 따따부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몇편의 전작들로 익숙해졌기 때문인것 같다. 잘 읽혔다. 구어체의 글투가 조금 생경하긴 했다. 어쩌면 이런 문체를 더 친숙하게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


#3.


1.역사. 2. 지리. 문명, 3. 정치,경제, 4. 사회, 5. 문화, 예술, 6.한중관계

6가지로 분류된 이야기들은 거대한 나라. 중국의 표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초상화라기 보다 캐리커쳐같은 느낌이다. 특징을 정확히 짚어낸 중국의 표정.

청조가 마무리되고 봉건제가 붕괴하는 과정부터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중국의 격변기를 잘 정리했다. 동아시아의 패권국가로서의 중국의 지위를 읽어낼 수 있다.

문화대혁명에 관련된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후궁견환전'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데, 옹정황제때 후궁들의 암투를 그린 것이다. 청조의 이야기를 읽으며 당시의 모습이 드라마의 모습과 오버랩되며 생동감있게 읽혔다.

이 모든 이야기의 결론은 한중관계로 귀결될 것이다.

제국주의와 냉전체제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으려면 현명한 대처가 요구된다. 그 역할을 해야 할 나라의 대표들이 미심쩍은 것이 최대의 함정이지만 말이다.


중국의 깊고 너른 역사와 이야기의 단층을 읽어냄으로 중국의 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하겠다.

전문적으로 중국을 파고드는 독자들에겐 다소 싱거울수도 있겠지만, 일상 구석구석까지 들어와 앉은 '중국'의 힘. 그 시작과 현재가 궁금하다면 읽어봄직하다.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정성스럽게 쓰여져 있어서 자꾸 웃게 된다. 작가님..대단하시네..소리가 저절로 나올지경.


제법이다.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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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0 16: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0 17: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호순이밥 2016-07-23 16: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 이해의 필독서! ˝이만큼 가까운 중국(이까중)˝

부드러운 어투로 조근조근 이방의 나라를 안내 받았다. 역사와 문화라는 것이 깊이를 정하지 않으면 그 끝을 알수 없다. 그런면에서 `이까중`은 저자의 지식을 지나치게 장황하게 펼치기 보다 적당한 깊이를 택했다. `이까중`은 역사와 지리로 시작한다. 하, 은, 주 와 춘추 전국, 진나라의 통일과 시황제의 업적을 소개 한다. 특히 역사를 소개 함에 있어 사건발생 연도를 강조하기 보다 당시 정치상황과 패자의 행보에 무게를 두었다. 그런 이유로 소단락으로 나눈 각각의 시대가 하나의 이야기로 연결되어 쉽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중국의 역사를 대략 이해하고 나면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과 문혁, 개혁개방을 이야기 한다. 공산당 일당독제의 정치 구조와 시장경제라는 독특한 중국의 상황을 ˝붉은 자본주의˝라고 소개한다. 무엇보다

`이까중`은 중국인을 만나고 그 사회에 발을 들여 놓을 사람에게 좋은 지침서다. 중국 원탁에 관한 이야기도 그렇다. 중국을 여행한 사람들에게 원탁은 지위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평등함을 나타내 수행 기사도 함께 밥을 먹더라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하지만 식탁자리며 음식 주문순서며 재료에 따른 메뉴고르기 등 중국식탁에서 지켜야 할 예절이 꽤 많은 편이다.

타국 문화를 경험하고 소개하는 책을 좋아한다. 그런데 가끔은 마음이 불편해 지는 책도 있다. 타문화에 대한 지나친 친절로 과대포장 하는 경우이다. 읽는이는 경험전에 환상을 가지게 된다. 지나친 환상은 실망을 주기도 하지만 자신의 환상에 현실을 맞춰버려 현지 상황을 균형있게 바라보지 못하기도 한다. 3백페이지가 넘는 `이까중`을 읽으면서 과하다거나 감정으로 중국문화를 바라본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화려한 감정이입보다 인문학 적으로 검증된 사실을 전하려한 작가의 마음이 보여졌다. 중국이 뜬다. 아니 떳다. 그렇기에 화려한 문체와 감정을 앞세운 혹은 중국진출의 비방서를 찾기보다 오늘의 중국을 낮은 호흡으로 지켜보는 시각이 필요할 것이다.
작가의 다음 출판이 기대된다.

나타샤 2016-07-23 17:58   좋아요 0 | URL
좋은 리뷰네요..감사해요
 

책을 읽는데 어떤 출판사의 책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읽고 싶은 책이 있고 그것을 구매해서 읽으면 그 뿐. 그 책이 나오게 된 경로따위는 안중에도 없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 작가의 이름도 늘 헷갈리기 일쑤고 작품과 작가를 따로 생각하기도 하고 작가 이름도 제멋대로 기억해버리는 사람인지라 1. 작품, 2. 작가, 3. 출판사 정도의 비중이었을거다.

아직도 임경섭은 내게 임경업이라는 이름 뒤에 떠오르곤 한다. 죄송하게도..

 

어느 날 부턴가 들리는 출판노동자들의 이야기. 사실 오래 된, 이미 구태가 되고 관례가 되었을 행태들이 송곳처럼 뚫고 나오기 시작했다. 실망에 앞서 소름이 돋았다. 저들의 횡포에 몇푼 안되는 소액일지라도 보태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은 한동안 책읽기를 멈추게 했다. 그제서야 출판사가 눈에 들어왔고, 그제서야 서점들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서야 책이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다는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사회구조는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굴러가기 마련이다. 때때로 나는 어떤 시각에서 보면 반동이고 어떤 시각에서 보면 호인이고 어떤 시각에서 보면 공범일게 분명하다. 비판받을 자리에 서 있었다면 비판 받아 마땅하다.

특히나 내가 선호하던 출판사들이 줄줄이 걸려들기 시작할 때 느껴지는 자괴감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도대체 내가 무슨짓을 하고 있던거지?

 

작은 출판사들에 눈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눈물겹게 책을 내고 있는 단단한 곳들..

계간지구독을 신청하고, 후원계좌를 하나 만들고 펀딩에 보태고.

이렇게 저렇게 적잖은 곳과 연을 맺게 된다. 기분이 좋아졌다.

매달 통장정리할 때 찍혀있는 후원회비가 빠져나간 흔적에 뿌듯했다. 보란듯이 기념품 같은 걸 건내주진 못하는 곳이지만,(그런걸 애초에 만들지도 만들 생각도 안하는 ) 나오는 책 하나 하나가 기대되고 기꺼이 구입해 읽게 된다.

 

며칠 전 sns에 후원하는 출판사 책임자가 반품된 시집들을 어쩌면 좋을지 고민하는 글을 올렸다.

뭔가 개운치 않은 상황에서 반품이 된 것 같아 안타까웠지만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아마 밀려난 것일게다. 짱짱한 홍보따윈 하지 못하니까..광고판을 모두 접수해버린 대형출판사들에 밀렸으리라.

사람들이 이런 저런 조언을 했다. 어찌 처리될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다.

 

시집들이 정말 좋았다. 알록달록한 시집을 모으던(?)걸 그만두고 그 옆에 희고 단정한 시집을 세우는 재미가 좋다.

 

 

 

 

 

 

 

 

 

 

 

 

 

 

 

 

 

 

 

 

 

 

 

 

 

 

 

 

     시가 뭐고?는 칠곡 할매들의 시집이다. 아마 이 출판사에서 나름 히트작일거다. 소개도 많이 되었고..얼마전 칠곡에 포탄이 날아왔다던가?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할매들은 괜찮으신가? 하고..

포탄 따위는 쨉도 안되는 사드가 근처 성주에 배치된다고 하니..큰일이다. 사드는 어디라도 배치되면 안되는데..

 

사랑의 파문을 주문했다.

책 소개에서 <~문학의 도구는 언어이다. 아니 언어는 도구를 넘어서는 도구이다. 그 자체로 목적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일까. 지금 -여기의 언어는 자의성이 강한 잉여, 혹은 결여의 언어로 떠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를 넘어서는 언어라는 것이다. 그 언어의 정수에 아마도 시가 있을 터이다. 시적 언어란 다시 말해 인문을 인문답게 하는 최종 심 급의 언어인 셈이다. 날것의 언어, 생명의 언어, 여백의 언어, 잉여의 언어, 나아가 결여의 언어를 어떻게 재구축할 수 있을까> 라는 부분을 읽는 순간 찌릿했다.

모든 것에 사랑이 있다. '사랑'이 말랑한 단어가 가지는 정치적 생명력을 보아낸 것이 흥미롭다.

정치란 것이 도무지 일상의 것과 맞물리지 않아 생경하게 느껴지지만 살아가는건 어쩌면 가장 치열한 정치행위일지도 모른다.

 

작은 출판사들이 의외로 열심히 책을 내고 있다. 책을 사고, 후원을 하고, 펀딩을 하며 "책만 좋으면 되지 뭐"하는 이기심에서 뛰쳐나오려 한다. 안간힘을 쓴다. 어떤 출판사가 그나마 건강한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덩치가 커지면 이익이 우선되기 시작하면 책은 더이상 책이 아니라 상품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책을 읽고 싶은 것이고 상품을 쟁이고 싶지 않으니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가늠해본다. 나만 유난 떠는게 아닌게 분명할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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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6-07-20 16: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비슷한 심정으로 진보언론매체들, 프레시안 민중의소리 고발뉴스등 5군데를 후원해요. 첨엔 할까말까하다가 이렇게라도 안하면 정말 이들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 같아 합니다. 아마 사람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는 빽없고 힘없는 곳을 위해 도움을 주고 싶어하지 않을까 싶어요.

나타샤 2016-07-20 17:06   좋아요 0 | URL
그렇죠..어쩌면 그들이 마지막 숨통일지도요..^^

chika 2016-07-20 21: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연히 낭기열라, 라는 일인출판사와 연을 맺었는데 몇년째 책을 못내고있어 안타깝다는.
근데 정말 잘 모르겠어요. 책이 뭔 잘못이냐며 시공사의 책도 많이 읽었는데....

나타샤 2016-07-20 21:48   좋아요 0 | URL
11월의 고양이 낸 곳요? 아..진짜 거기도 있구나..그런거 같아요. 우리 엄마는 성질사나운 주인이 하는 쌀집에선 쌀 안사셨어요..멀어도 순한 주인이 파는 쌀을 사셨죠. 그런 느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