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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사람의 십 년
펑지차이 지음, 박현숙 옮김 / 후마니타스 / 2016년 7월
평점 :
펑지차이의 '백 사람의 십년"
광풍이 불고 간 자리를 견뎌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빼곡하다. 말 한마디조차 조심스러웠던 시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회한과 가당치도 않은 누명과 서로를 신뢰하지도 불신하지도 못하던 시절의 이야기는 한국전쟁을 치르던 시기의 사람들과도 닮았고, 혼란 속에 무엇을 위해 희생되어야 하는지 깜깜한, 억울함과 소외됨의 한 가운데 서있는 지금의 모습과도 닮았다.
혁명의 깃발이 꽂힌 그 곳에 혁명의 주체여야 할 '인민대중'은 있었을까? 개혁의 과정에서 피치못할 희생이라 하기엔 비겁하다.
원칙과 규율이 지켜져야 하는 이유가 사라진 곳에서 고스란히 시간을 견뎌야했던 사람들의 증언.
그 증언들을 풀어 쓴 책이다.
혁명은 이토록 지난한 과정이겠구나. 오해와 불신과 맹목과 광기가 공존하는 시기이겠구나..그런 오류의 과정을 거치며 인민주권을 획득한 혁명국가가 되는거겠구나.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공염불같은 생각이었는지..
물론 실패와 극복과 희생과 진보를 번갈아 내디디며 걷는 과정이 발전이며 인간중심의 국가를,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겠지만..그 어떤 이유로도 무고한 희생을 치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어떤 댓가를 지불한데도 사람 위에 이념을 두어서는 안될 노릇이다.
문화혁명의 과정을 겪으며 중국 내부의 변화와 나름의 의미를 부여하겠지만, 그 댓가를 고스란히 치른 사람들은 누가 보상해주어야 하는지..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는지.
8살짜리 사형수의 이야기로부터, 어딘가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이야기한 것 뿐인데 수감되어 고초를 겪어야 했던 사람. 자신이 왜 우파여야 하는지 모른채 비판을 받고 매일 반성해야 했던 사람. 차라리 죽어버리려해도 죽어지지 않아 오히려 고초를 겪는 사람.
어떻게 살았을까. 이게 과연 사실일까? 과장하거나 왜곡된 기억이진 않을까? 하는 의문이 들 만큼 참담하고 황당한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한국전쟁 때 아침엔 태극기를 한 밤엔 인공기를 흔들며 살얼음판 위를 걷듯 살아냈다는 외할머니의 말이 머릿 속을 스쳐갔다.
그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는 거야. 그들이 걸어낸 시간들이 역사인거지.
<인민의 경험이야말로 시대의 경험이다>
라고 굵은 글씨로 적힌 첫 이야기의 마무리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더 깊이 파고드는 느낌이었다
성주가 성지가 되고 해방구가 되고 역사가 되는 과정을 매일처럼 확인하게 되면서 더더욱 실감하는 말이다.
<“나중에 태어난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살았다는 걸 알 수 있을까?
이런 상황과 이런 비극을 말이야.
앞으로 세월이 흘러 우리가 모두 죽으면 우리 세대가 겪었던 일들을 누가 알 수 있겠어?
그렇게 되면 우리는 괜히 헛고생만 한 것 아니겠어?
지금 이런 일들을 기록하는 사람이 있기는 한 거야?”>
책을 열면 처음 마주하게 되는 문장이다. 이런 이유로 작가는 글을 모으고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 문장 속에서..나는 위안부할머니의 음성들 듣는다.
억울하게 희생되고 고초를 겪은 사람들, 그 사람들이 견뎌낸 역사의 현장.
그리고 발견하게 되는 역사의 주체.
역사는 골방에 모여앉아 쓰는게 아니라..인민의 피눈물로 쓰고 인민의 땀으로 새기는 것이리라.
참 좋은 책을 읽었다.
개 돼지가 아니라 인민대중의 한 부분이라는 것. 역사의 주체라는 것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