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한 찰리 문학동네 시인선 68
여성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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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부풀게 하는 책들이 있다. "야만적인 앨리스씨"같은..뭔가 음울한 제목에 한풀 꺾인 채 읽어내는 책은 언제나 제목의 맛이 따라온다.

"에로틱한 찰리" 이 얼마나 달콤한 제목인가. 핑크색 표지에..에로틱한(?) 돼지의 핑크빛 뒤태..요즘 기자들의 관용구 "아찔한 뒤태"인 것이다.

이런 설렘을 안고 시를 만난다.

달달함이 흘러 넘칠 것 같은 기대감으로...

 

 

 

휘리릭 넘기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 시는 "사과의 둘레"라는 시였다.

 

 

늦은 나이에 등단을 하고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한다는 시인에 대한 소개를 읽는다.

오래 곰삭은 노래가 나오겠구나..나이가 있으니 농익은 에로틱이 발현되겠구나, 기대를 갖게 된다.

 

오묘한 느낌이다. 사과의 둘레를 읽으며 자꾸 스산해진 것이다. "입으로 해주지 않으니 내 애인이 아닌 걸까" 이 대목을 오래 들여다 본다.

사과(apoloy)와 사과(apple)의 묘한 경계에서 서성이게 된다.

뽀드득, 밖에서 많이 울다 들어온 볼을 씻어낼 때 채 마르지 못한 울음이 뽀드득 빨갛게 운다. 질량도 없는 미안한 말들을 시뻘건 각혈처럼 쏟아져 내리는 말들을 끝내 입으로 뱉어주지 않는, 입으로 해주지 않는 그 사람은 내 애인이 아닌걸까..

사과의 지름이 클수록 그 둘레는 길어질 수 밖에 없다. 둘레가 길어질수록 입으로 하기에는 힘이 들지도 모른다. 지름을 넓히는 것은 수분이다. 밖에서 잔뜩 머금고 들어와버린 수분..

 

19금의 욕정이나, 남녀의 질펀한 사랑을 그렸을 것이란 생각은 이렇게 손아귀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에로틱하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천박했음을 인정해야 하는 대목이다.  캐서린 하킴은 매력 자본(에로틱 자본, erotic capital)이라는 글을 내지도 않았는가.

 

여성민의 시는 슬픔의 오르가슴이다. 이별의 고통이 절망과 손잡고 훔쳐가 버린, 그래서 잃어버릴 수 밖에 없는 온전함과 비탄의 카타르시스이다.

어째서 이런 말장난 같은 시를 읽으며 자꾸 울컥이는가.

그 사이 사이에 숨겨진 "이별 앞에서 차마 토해내지 못했던 나의 미련과 앙금의 무게"를 만난 탓이다

 

보라색 톱 - 에로틱한 찰리 -모호한 스티븐 으로 이어지는 3부의 시들은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괴상하기도 하고 친숙하기도 하며 그럴 법도 하지만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을 쏟아낸다.

 

너는 눈이 예뻐서 굿 애프터눈 지껄이며 안식일이나 안나 같은 이름의 매니큐어를 안고

 

긴 문병을 간다 너의 유배와 나의 유죄에게  (p19 보라색 톰 중에서)

 

아버지와 아들을 관통하며 세계의 심장과 세 개의 심장을 관통하며

 

부드럽게 구멍을 통과하는 저 불빛은 무엇입니까

 

방금 떠오른 질문처럼(p26 커피와 도넛 중에서)

 

간절해서 간지럽습니다.(p30뱀과 핀셋 중에서)

 

언어들이 제멋대로 튀며 제멋대로 웃으며 제멋대로 배치된다. 사랑의 행위가 갖는 부정형과 불명확함에 순응하듯, 혹은 그것에 온몸으로 경멸하듯말이다.

이런 이야기들이 좋다. 아이의 천진한 웃음과 오버랩되는 음탕하기 짝이없는 이웃집 여자의 허벅지 같은 시들 말이다.

어느 것 하나에도 묶이지 않은, 묶지 않은 그래서 헛헛한 이야기들이 유쾌하다.

 

사실, 이 시집을 들고 놓지 못한 건. 각인 때문이었다.

처음 만난 한 문장.

 

피리였던 것이다.

사랑할 때나, 그리울 때나 하염없이 소리를 질러대는 까닭은 바로 이것이었을 것이다..

내 뼈는..그렇게 끝없이 노래를 불러대야 하는 것이었다.

 

에로틱한 찰리를 넘길 때마다 손가락이 떨리는 경험을 자주 한다.

 

깜깜한 밤에 찰리도 톰도 아닌 스티븐의 입술을 찾듯이 말이다.

다른 곳에 닿으면 안돼..스티븐의 입술로 방향을 정했으니까. 다른 곳에 닿으면 반칙이야.

질량도 없는 사과의 둘레를 끝도 없이 돌아야 해.

애인도 아니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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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만드는 남자 - 이천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
이천희 지음 / 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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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구, 연예인

 

배우 이천희가 책을 냈다고 했다. 어느 예능프로그램에서 허술한 모습으로 웃음을 빼물게 했던 그가 말이다.

어느 때인가 결혼을 한다고 했었고, 아기 아빠가 되었다고도 했다..간간히 들려오는 소식을 듣긴 했지만 수없이 쏟아지는 연예 뉴스 중 하나였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책을 냈다고 했다. 게다가 그것이 가구를 만드는 것과 연관이 되어있는 듯한 제목을 달고 말이다.

사람 좋은 웃음과 비틀거리던 그의 모습이 같이 떠오르며 미덥지 않은 기대를 갖게 되었다.

종종 연예인들이 책을 내는 경우가 있다.

애완견과 관련해서, 사진과 관련해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유명한 사람들의 책은 관심을 받긴 하지만 읽기 시작하는 순간 이내 실망하고 만다. 맨 마지막에 묻게 되는 한마디 때문이다.

"그래서? "

이것에 대한 대답을 결국 듣지 못한다. 거친 문장과 답답한 진행을 참아낸 결과치고는 참담할 때가 많았다.

별 기대감 없이 받아든 책.

마침 책장도 짜야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말이다.

제법 두꺼운 두께감과 빼곡한 사진들 이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고 했다. 어쩌면 집안의 내력일지도 모를일이지만, 어릴 적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셨던 나무 장난감의 기억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그에겐 어쩌면 나무를 다듬어 무언가를 만드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연예인인데, 명품 가구나 유명 디자이너의 가구를 구입할 수도 있었을텐데 그는 가구를 만든다.

 

make list에서 그 답을 찾아 본다. 아빠로서 이웃으로서 가족으로서 온 마음을 다해 빚는 것. 그것은 "made in love"인 것이다.

 

#2. 가구 - 만드는 사람.

 

家具-<명사> 집안 살림에 쓰는 기구. 주로 장롱ㆍ책장ㆍ탁자 따위와 같이 비교적 큰 제품을 이른다.

사전에서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다.

家집에 필요한 것들을 具갖추는 것이 가구일지도 모른다고 잠깐 생각했다.

집을 이루는 것은, 일명 살림살이들 보다 그 속에 머무는 사람이 더 중요할 것이다. 그 사람이 주로 어떤 자세로 어디에서 어떤 일을 가장 많이 하는지가 계산되고 배려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구라고 지칭할 수 있지 않을까?

아빠로서의 자리, 남편으로서, 부모님의 자녀로서, 배우로서, 동생과 형으로서..이 모든 역할들 속에 분명히 지켜내는 이천희라는 사람은 "잘 만드는 사람"이다.

눈에 보이는 물건을 잘 만드는 것도 있겠지만, 관계를 다듬고 배려를 덧대어 썩 그럴듯한 마음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다.

 

 

 

 

 

#3. 가구 - 이천희

 

아빠가 된 이천희는 이전에 갖지 못한 표정을 짓곤 한다.

막연히 좋은 사람이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시간과 노력을 아낌없이 쏟아부을 때 나오는 행복한 몰입의 표정.

그 표정은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기대어 앉는 걸 좋아할 줄 알았어. 그 쪽으로 다리를 두면 조금 더 편할꺼야.

가구를 만드는 내내 그것을 쓸 사람을 생각한다. 조금 흠집이 나도 괜찮다. 그것은 또 다른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맺힌 지점인 것이다.

이렇게 온전한 마음으로 만드는 가구는 체온을 갖고 호흡을 하며 가구에서 가족으로 진화하게 될것이며 시간을 공유하는 친구가 되는 것이리라.

상품으로 판매되기도 하는 그의 가구는..따스할 것이다.

사람과 이야기가 스며든 그것은 추억이 될것이다. 매번 사용할 때마다 오롯이 스며나오는 체온을 느낄 수 있을테니 말이다.

전문 작가(?)의 글이 아닌 투박한 그의 글에서 아직 무엇이 될지 모를 나무같은 느낌이 난다.

무엇이 되든..기대해 볼 만 하다.

배우 이천희를 기대하듯...

아직은 보이지 않는 그 삶의 표정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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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4-01 23: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이 책 소식 듣고 깜짝 놀랐어요 이천희씨한테 이런 매력이 했는데 나타샤님 글 읽으니 참 푸근하게 다가오네요 아이 미소가 넘 이쁘구요^~^

나타샤 2015-04-02 08:26   좋아요 0 | URL
참 단정한 이야기다 싶었어요..몇가지 팁도 얻고..마음이 번잡할 때 읽으면 괜찮겠다 생각했어요^^
 

요즘 부쩍 용기(勇氣)에 대한 이야기가 늘었다.

도서의 제목도 유행이 있는지..한동안 무슨무슨 인문학이 대세를 이루었고(아직도 그 끄트머리가 남았고) 한동안은 힐링이라는 말들이 유명세를 치렀다. 힐링이라는 말의 무차별적 공해로부터 힐링하고픈 답답함을 느낄 즈음에..

 

요즘엔 모든 것에 용기가 필요하다.

아들러 심리학과 함께 묶여 회자되고 있는 미움받을 용기가 처음은 아닐지라도 그 시작점에 있음이 분명하지 않을까?

 

  이 두 권의 세트는 떠밀리다시피 구입해서 의무처럼 읽었다.

 한창 유행하는 드라마를 안보면 대화가 안되던 그 시절..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도 용납되지 않아 혼자 소외된 경험이 있었던지라...

 최소한 상대의 말을 이해할 만큼은 읽어 놓자는 심산이었다.

 

 읽은 것에 대한 후회는 없지만..반드시 읽었어야 했다고는 하지 못하겠다.

 

 

 

 

 

 

 

 

 

 

 

 

 

 

 

 

 

 

 

 

 

 

 

 

 

 

 

 

 

 

 

 

 

 

 

 

 

 

 

 

 

 

 

 

 

 

그 외 기타등등...

심리학과 연결되어 다양하게 요구되는 용기들...

이 용기들을 담아 둘 용기(容器)는 있는가?

이 많은 용기를 강조하는 책을 읽고 나면 무엇을 확인하게 될까?

아마도 "자괴감에 빠져도 좋을 합리적인 몇가지 이유" 를 찾아내게 될 것이다.

자존감이 무너져 내리거나, 혹은 별 시덥잖은 말로 헷갈리게 하고 있어? 따위의 너저분한 감정을 만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좋은 용기와 발현되지 않는 것이 나을 용기를 구분하는 정도로 만족해야 할 일이다.

너도 나도 용자(勇者)가 될 이유는 없다.

다만..비겁하지 않도록 단도리할 정도면 되지 않을까?

비겁과 맞서는 힘..그것이 용기라면, 그 용기는 반드시 찾아내어야 한다. 그것이 하이레벨 퀘스트라 할지라도.

 

집단의 용기..공동의 용기..그것을 만나고 싶다.

개인으로 살아남는 용기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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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북 2015-04-01 01: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두 아들러 서적은 공감은 되면서도 읽어보란 권유는 안되는 책인데 읽어보면 다 맞는 이야기지만 실제 생활에서 활용은 힘든 뭐그런 이야기 같았어요 ㅎ

나타샤 2015-04-01 08:51   좋아요 0 | URL
혼자 읽어보는 것으로 족한 책들이 종종 있어요. 이게 왜 이렇게 화제인거지? 싶기도한..이 역시 읽고 나야 알게되는 것이라는게 함정이지만요^^

비커밍제인 2015-04-06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말을 좋아하고 또 믿어요. 요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을 읽고 있지만 어렸을 때 성공하는 10대들의 7가지 습관을 읽었구요. 거기서도 개인의 승리가 먼저 이뤄진다고 하고 저도 어느 정도 공감을 해요. 개개인 한 명이 모여서 두 명이 되고 세 명이 되고 보통 누가 한 명 용기 있게 뜻을 비추면 거기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힘을 합쳐 뭉치죠. 저는 공동의 용기를 위해 먼저 제가 용기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생각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네요:)
 
국경시장
김성중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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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환상의 접경

 

어릴 때부터 나는 환상적인 이야기들, 즉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좋아했다. 어떻게 그런 일이? 라는 의문과 그럴 수도 있지 않아? 라는 가능성의 접경에 놓이는 걸 좋아했다는 것이 더 올바른 말일것이다. 동화를 읽으며, 선과 악의 대결구도 - 착한 이는 늘 당하고 똑똑하고 야무진 악한의 멋진 묘수들이 전개되는 -는 늘 흥미로웠다. 어떻게 이런생각을 할까?라는 감탄을 품곤했다.

선한 공주가 이기는 것 따위는 재미가 없었다. 왕비가 쓰는 계책과 계략이 얼마나 흥미로운지..

초등학교 저학년때, 백설공주를 읽고 느낀점을 말해보라고 했다. "행복하게 오래오래 산 백설공주는 얼마나 지루했을까요?"라는 감상을 발표하고 반성문을 썼다.

조금 더 자라서 플랜더스의 개를 읽고 "네로가 더 고생하지 않아 다행이에요. 아로아는 참 무능한 친구예요. "라고 했다가 또 반성문을 썼다.

이런 나를 엄마는 걱정하기는 커녕 깔깔 웃으시며 '너 같은 애도 있어야지, 다 감동하면 재미없잖아?'라고 하셨다. 아마 엄마가 만들어 놓은 조금은 삐딱한 시선일지도 모를일이다.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의견과 문제제기..

그 때부터 나는 더욱 환상적인 이야기에 매료되었는지도 모를일이다.

꿈을 꾸듯, 현실적으로 증명 불가능하지만, 증명이 불가능한 것이지 존재가 불가능한 것은 아닌 이야기들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표제작 국경시장으로 시작하는 기묘한 이야기는 쿠문, 관념 잼, 에바와 아그네스, 동족, 필멸, 나무 힘줄 피아노, 한 방울의 죄, 이렇게 여덟개의 꿈으로 펼쳐지기 시작한다.

 

다양한 배경과 플롯으로 나오게 되는 꿈꾸는 소설들, 그 속에 "국경시장"은 단연 돋보이는 작품이 아닐 수 없다.

환상일 것을 이미 알고 읽기 시작하지만, 어느 순간 그 거리를 걷고 있는 '나'와 마주하게 된다. 마치 영화 '트론'처럼 '매트릭스'처럼..

현실이 아니야. 아니라고 장담할 수는 없어. 현실 가능할지도 몰라. 이런일이 없으란 법은 없지. 그래 그런 날이 올 수도 있어. 그렇다면 어떤 기억을 팔아야해? 어떤 기억을 팔 수 있어? 팔아도 좋을 기억이란게 있긴 있어?

끝없이 자신에게 묻고 대답을 하며 보름달이 뜬 시장통을 서성이게 된다.

달빛에 빛나는 비늘, 모든 것을 팔아치우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 행복할 수 있을것 같지만, 그 두려움과 안타까움을 과연 감당할 수 있겠는가.

너무나 현실적이지 않아서 현실적이었던 접경.

하필이면 국경시장이었던 이유가 아마 여기 있지 않을까?

 

현실과 환상의 접점. 어느 쪽으로도 발을 내딛을 수 없으나 어느 쪽으로든 내딛어야 하는 그 접경에 놓인 사람들의 이야기인 까닭에 말이다.

 

#2. 그린 것인지, 적은 것인지...

비현실적인 이야기는 때때로 구체적이지 않은 경우들도 종종 있다. 작가의 의도일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안개 속에 있는 것 마냥 뿌옇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김성중의 글이 갖는 매력은 너무나도 구체적이라는 것이다. 모 유머사이트에 올라왔던 어떤 그림의 제목처럼 말이다.

"그림을 그리랬더니 사진을 찍었어"..

너무 구체적인 묘사는 때로 지루하다. 김성중의 힘은 바로 여기서 발휘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적절한 묘사..독자가 궁금해할 만한 구체적인 상황에 대한 팽팽함.

딱 필요한 것들이 구체적으로 보여지며 나머지의 것들은 저절로 페이드 아웃되는 작법. 이런 작법이 있는지 사실 모르겠다.

모든 작품들을 보며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지는 대상과 반대로 거기 있지만 그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는 어떤 힘들의 작용을 느꼈다면 예민했던 걸까?

망원경을 통해 보듯, 내가 보아야 할것은 선명하게 보여지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있어도 느껴지지 않으나 없는 것은 아닌..그런 묘한 존재감들이 글 속에 가득하다.

얼핏 얼핏 들어 본 이름의 작가이지만, 그리 눈여겨 보지 않았던 작가이기도 하다.

리뷰를 적으면서도 김상중(연예인;;) 김성종(추리문학가)..자꾸만 오타를 남발해댄다.

 

허구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감동하고 공감하며 위로를 얻기도,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한다.

그것이 진짜일리 없다고, 혹여 진짜라고 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그렇게 긍정적인 방점을 찍어놓는다.

책장을 덮는 순간 느껴지는 작가의 필력과 등장인물들의 숨고르기를 공유하며 "그래..그랬구나"라고 마무리를 짓기도 한다.

김성중의 글을 읽으며, 자꾸만 오싹했다. 이것이 허구이며 환상이란걸 알면서도 말이다. 진짜로 일어날 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도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런 생각을 갖을 수 있다는 자체가 두려웠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런 생각을 한 번 쯤은 해 보았던 것에 대한 기시감이 불러온 두려움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을 들켜버린 것 같은..

허무맹랑할 수도 있는 이야기가 반짝이는 돌이 되어 만월 아래 빛난다.

 

# 3. 그래서

 

나는 오늘 그동안 미루었던 조립피규어를 한세트 사기로 했다.

피규어를 조립하고 색칠을 하며 꿈꾸었던 그 순간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진 것이다.

이 행복한 시간을 사기 위한 비늘을 준비하자면..어디쯤의 기억을 파는게 좋을까? 잠시 고민해본다.

그리고..

이 책을 친한 이에게 권하고 싶은가?

내 대답은 "아니"다.

비밀은 서로가 타인이기에 나누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서로에게 타인이기 때문에 비밀을 나누는 것이 가능했다. p14)

이 국경시장의 지도를 공유하는 건..어쩌면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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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3-30 18: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가 이름을 보면서 김성종 씨가 신작 추리소설을 출간했는 줄 알았습니다... ^^;;

나타샤 2015-03-30 18:47   좋아요 0 | URL
무척 독특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긴 호흡의 글이 아니더라도 다음 글을 어서 보고 싶다는 조바심을 갖게하는..*^^*
 
쪽배의 노래
김채원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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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왜?

 

나는 왜 이 책을 읽고자 했을까? 낯선 작가도 아니고, 요즘 한껏 흥미롭게 보고 있는 신인 작가들도 아니고, 다작을 하거나 자주 보게 되는 작가도 아니었다.

다만, 그녀의 오래전 작품인 '겨울의 환', 핑크빛 표지가 강렬했던 '미친 사랑의 노래','달의 몰락' 정도의 책을 읽었던 기억만이 오래된 흉터처럼 남아있다.

흉터.

내 왼쪽 눈썹 옆에는 깊이 패인 자욱이 있다. 어렸던 어느 날, 엄마 손을 잡고 파리제과라는 유명짜했던 제과점에 빙수를 먹으러 갔었다.

이층에 자리를 잡은 순간, 높은 곳에 오른 어린아이는 한껏 흥분한다. 마치 하늘에라도 오른듯이 현실과 꿈을 분별하지 못하고  스스로 새라고 믿게 된다.

이건 순전히 '되고 싶은 건 뭐든 될 수 있어'라고 거짓 정보를 세뇌시킨 엄마의 잘못이겠지만, 나는 계단 위에 서서 비행을 시작했다.

두 팔을 펼치고 아래로..잠깐의 비행이 기억나고 둔탁한 고통이 느껴졌지만 별 탈 없이 비행이 이루어졌다. 높은 제과점의 천정까지 날아오른 나는 케이크 위에도 앉아보고 단팥빵 위에도 앉아보고 폭신한 카스테라도 눌러보았다. 그러다 아득해지고 엄마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오기 시작할 때에야 비행은 멈추고 엄마 품에서 눈을 떴다.

한쪽 눈이 잘 안떠졌다. 그러나 파리제과를 날아다니던 느낌은 너무 생생했고, 그 상처에 손을 댈 때마다 오롯이 떠오르는 비행의 기억이 있다.

그것이 꿈이었든, 정신을 잃고 헤매던 무의식의 그림자였든 상관없다. 흉터가 품은 이야기이며 꿈이며 그 시간, 그 공간의 "나"를 존재하게 한다.

 

김채원의 작품은 흉터와 닮았다. 언제든 그 흉터를 짚어내면, 그 아픔의 현장으로 데리고 가 그 고통과 이야기를 고스란히 되돌려 주는 것이다.

잔인하게도..덤덤하고 까칠하기까지 한 어조로 말이다.

 어떤이는 김채원의 이런 글들에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했다. 맹탕하고 팔자 늘어진 여자의 감상타령이라고 극단적인 폄하를 하기도 했다. 어쩌겠는가..그는 그렇게 읽혔고, 나는 이렇게 읽혔으니 다를 뿐이다.

 

맹탕하게 팔자 늘어진 여자의 감상이라고 생각이 가능한 건, 그녀의 화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심하게 한 발 물러선 듯 그려내는 풍경들, 세상과 자신 사이에 반투명 유리를 두고 들어가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모호한 위치에 대한 오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선뜻 들어서지도 못하고 밖으로 도망치지도 못하는 것이다.

 

"여자는 그 어디에서도 되도록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고자 한다. 풀잎에 붙은 여치나 귀뚜라미를 손으로 떼어내듯 누군가 자신을 삶에서 떼어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여자 스스로 삶에서 떨어져나오는 것 같다"(p47. 등뒤의 세상)

 

나, 혹은 여자로 지칭되는 사람들은 위태롭다. 만나게 되는 시간과 공간이 모두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다. 조심스러운 두려움이 터질 때를 기다리는 마그마처럼 위험하고 낮게 흐른다.

긴장감..모든 문장이 품은 긴장이다. 삶의 자락을 느슨하게 쥐고 희롱하는 것이 아닌 팽팽한 긴장이 불러오는 조심스러움이며 자유와 평온에 대한 간절한 바람인 것이다.

이런 것이 어쩌면 낭창한 감상놀음처럼 비쳐질 수도 있겠구나..


김채원의 글은, 상처이며 흉터이다. 그것이 외부에 의해 만들어 진 흉터일 수도, 감당하기 버거운 고통을 견디기 위한 자해일수도 있겠지만, 그 흉터를 만질때마다 오롯이 살아오는 삶의 기억이며 시간인 것이다. 또한 단호한 자기 생에 대한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광야에 나가 서는 것.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것. 무엇이 어찌되든 그냥 그를 사랑하는 것.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

커다래지자. 아주 커지자.

저기에 작게 머물러 있던 나를 이렇게 끌어올리는 것은 순전히 그의 힘이다.

공부도 하고 싶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처럼 나도 시간을 금싸라기로 여기고 싶다.

(p154. 물의 희롱-무와의 입맞춤)"



#2. 태생적 소설.


김채원 일가(?)의 놀라운 계보. 모든 가족이 문단에 나서는 독보적인 가족사가 유명하다.

부모님과 언니인 김지원. 창작이 이 가족의 유산인 것인지 대를 이어 감내해야하는 천형인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김채원은 소설로 잉태되어 태어나게 되고 운명을 받아들인 소설의  현신(現身)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끔 했다. 모든 문장들이 갖는 힘은 느슨한듯 단호하다.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봄 날, 새들이 노래하고 흐드러지게 피어난 꽃 사이를 걸으며 모든 감각들을 풀어두는 글은 아니다. 오히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손가락 어디쯤을 베인 게 아닐까 의심하며 살피게 되는 자상같은 글들이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감상이거나 느낌일 뿐이다. 처음부터 김채원의 색을 차갑고 시린 세룰리언 블루로 정해두고 읽어내거나, 세룰리언 블루로 채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차피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는 순간, 작가의 의도를 행간의 의미를 읽어내는 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며 그 취향이 색과 온도를 결정하는 것이니 말이다.

객관적으로 문학적 가치와 유관성, 혹은 장단점을 짚어내고 작가의 세계관을 파헤치는 평론가적 시각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딱히 흠이 될 것도 없는 일이다.

내 것이 되는 것. 그 과정의 첫 시작은, 내 시력에 맞추는 것이다. 모든 책이 제각각 요구하는 시력을 갖지 못한 비극일지도 모르지만...


김채원의 글을 읽을 때, 여지 없이 동반되는 한 사람. 김지원.


"언니 김지원의 2주기와 때를 같이하여 나오게 된 이 책은 내게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딘가에 바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인가 하고 새삼 깨닫는다.-작가의 말"

작년 이맘때, 김지원 소설 선집이 나왔었다. 도서정가제라는 것이 시행되기 전이라기는 하지만, 말 그대로 염가에 나온 선집.

김지원의 글을 모아서 볼 수 있다는 것과, 너무 염가에 나와버린 책들이 안타깝기도 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유족의 바람이 낮은 가격 책정에 작용했다는 말을 전해 듣고, 이 가족의 심장은 문장이라는 핏줄로 서로 연결되어져 있나보다 생각했다.

어느 한 심장이 잠시 멈추었어도 다른 심장들이 그 심장의 몫까지 뛰어주며 끝까지 그 존재를 잃지 않으려는 노력이 눈물겹게 느껴진 것이다.


"모든 것을 배제하고 오로지 봄의 집만을 쓸 수 없을까.

 그러나 그 집 식구들이 자연히 끼어듦을 어쩔 수 없다. 그 집과 식구들은 따로 떼어지지 않는 한덩어리임을 간파한다. 어느 것이 집의 부분이고 어느 것이 식구들의 부분인지 분간되지 않는다. (p265 -쪽배의 노래)"

닮은 듯 다른 김채원과 김지원의 글이 쪽배의 노래 속에서 자꾸 비춰진다. 이 가족은 이렇게 삶의 방식을 부여 받았나보다.



#3.


쪽배의 노래. 여덟개의 단편을 읽는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시간에 읽은 것이 다행이었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에 읽었다면, 겨울이 지난 뒤 봄이 올 것이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든 문장이 살아있다는 느낌. 모든 문장이 처음부터 그렇게 쓰여져야만 한다는 신탁을 받은 결과물인것처럼 누워있는 페이지를 넘기는 것은 무거운 돌덩이를 넘기는 것만큼 어려웠다.

힘겹게 넘긴 페이지 뒤에서 만나게 되는 또 다른 무게.

그렇게 힘들다면 읽지 않으면 되지 않아? 문제는 그게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다음 이야기..그 다음 이야기를 끝없이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제 이야기를 주절주절 꺼내게 한다.

"있잖아요. 제가 어릴 때였어요. 뭐 아주 어린 건 아니고 지금보다 어릴 때요. 그 때, 나는 사랑을 하고 있었나봐요.." 하고 말이다.

긴 편지를 쓰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제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 채, 그대로 상처 속으로 들어가 한없이 울먹이며 위로를 바라는 모습이 아닌, 상처를 어루만지며 살아야겠다고, 이 상처를 품고 자유로워져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감상놀음이 아니라..감상의 본질을 마주하며 처음의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주는 것이다. 아주 단정한 방법으로 말이다.

한참 뛰어놀고 콩죽같은 땀을 흘리며 들어온 아이의 얼굴을 닦아주던 엄마의 새하얀 수건처럼 말이다. 햇살 냄새가 그득하지만 부드럽지는 않았던, 조금은 까칠해서 오히려 개운하고 말끔해졌던 엄마의 흰수건처럼 말이다.


봄이 오는 길목에..살아도 좋을, 아니 좀 더 자유롭게 살아도 괜찮을 처방전 하나와 만났다.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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