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여읜다는 말의 무게를 대학에 들어가서야 알았던 나는..어딘가에서 나를 소개해야 할때면 2년전 아버지를 여의고, 3년전 아버지를 여의고..라는 식으로 소개를 했다. 버스 앵벌이처럼 말이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굶더라도 가르쳐야한다는 당시 어머님들처럼 육성회비를 따박따박 내주던 어머니는 가끔 도시락을 못싸주시곤 하셨다.
그런 날이면 나는 영악스럽게도 '오늘 네시간밖에 안하는거 어떻게 알았어?'라며 애써 장난을 치곤 더없이 깡총거리며 학교로 향했다.
엄마는 '다행이네'라고 대답은 하면서도 목소리가 떨렸다. 내 느낌이었을지도 모른다. 엄마는 정말 속아주고 싶으셨을것이고, 그것이 사실이길 바라셨을게다.
아홉살 여자애의 거짓말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거짓말은 이내 들통이 날 게 뻔했다.

엄마가 일을 마치고 돌아오면 나는 쌀집으로 달려가 '오홉한되'주세요. 라고 했다.
동전 몇개로 바꿔 진 쌀은, 연애편지도 아니면서 흰 편지봉투에 담겨져 내 손에 들려지곤 했다. 그렇게 엄마와 진 밥을 해먹고 나면 나는 또 거짓말을 시작했다.

'네시간 하고 집에와서 뭐 먹었어?'
'응, 경이 언니네 가서 경이언니 엄마가 밥해주셔서 먹었어'
'그래? 뭐해서 먹었어?'
'응, 고기랑, 소세지랑, 계란이랑..'
엄마가 걱정할까봐 손가락을 꼽아대며 거짓말하는 나는 세상에 맛있는 반찬을, 비싸서 엄두도 잘 못내는 반찬을 한 끼 반찬으로 내어놓았다고 해버렸다.
경이 언니네도 우리집처럼 아버지가 없는데..

어쨌든, 어린 시절 배가 고팠던 기억은 오래도록 결핍이라는 말과 함께 내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어른이 되서 아이를 낳고, 아이가 학교에 다니고..
두 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4학년일 때, 집안에 큰 일을 겪으며 하루하루 먹는것이 어려웠었다.
급식비를 내는 것이 버거운 그 때..
학교에서는 몇 달이나 밀린 급식비 납부 용지를 아이 손에 들려보냈고..딸아이는 보란듯이 내밀며 '담 달부터 밥 안먹어'라며 소리를 쳤다.
같은 장수의 납부용지를 들고 온 아들녀석은 울먹울먹하며 '나도..'라고 했다.

이웃에게 돈을 빌려 급식비를 내고 담임선생님과 면담을 거친 후 급식비 지원을 받는 동안..아이들은 내내 표정이 무거웠다.

다른 모든 비용들을 줄이고 끊고, 아이들의 급식비를 첫번째로 두고 생활을 했다.
두달의 고문같은 시간이 지나고, 아이들은 급식비를 내고 급식을 하게 됐다.
아이들 손을 잡고 급식비 납부용지를 들고 은행에갔다.
수납을 해주는 여직원이 도장을 쾅쾅 찍고 영수증을 쭉 찢어 내미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 녀석은 자꾸만 왼손바닥에 오른손으로 주먹을 만들어 두드리며 '쾅쾅쾅..납부하셨습니다'라고 주문처럼 종알거렸다.

밥은 그런 것이다.
특히나 어린 밥은 그런 것이다.
함부로 손대서는 안되며, 함부로 상처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오늘 아침..
급식비를 내지 못했다고 아이들 앞에서 상처를 주었다는 어떤 쓰레기의 이야기를 읽으며..'시발새끼'라고 저절로 중얼거렸다.
아들 녀석이 '쾅쾅쾅 납부하셨습니다'를 종알거렸을 때 처럼..저절로..

비가 꾸적꾸적 내린다.
먼 어린 날 어떤 여자애가 영악한 목소리로 "엄마, 난 밥 안먹어도 돼'라고 거짓말을 한다. 영악해도 어린 여자애의 목소리가 자꾸 젖는다.

 

그제..서울가는 길에 읽은 책 한 권이 눈에 밟힌다.

이런 비슷한 감정..그러나 결말은 사뭇 달랐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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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2015-04-06 20: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진 글이네요! 조금 감동받았어요. 직접읽어보고 싶어요♥

나타샤 2015-04-06 20:12   좋아요 0 | URL
어릴 때의 기억과 충암고의 어이없는 교감과 며칠 전 읽었던 책을..^^
감사합니다.

아무개 2015-04-07 0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식사는 하셨습니까?˝
˝밥은 먹었니?˝ 를
아직도 인사말로 쓰는 이 나라에서
애들 밥가지고 이게 뭔짓인지...
가난하다고 증명해야 밥을 주겠다니요 하아...

좋은 글 감사히 잘 읽고 갑니다!

나타샤 2015-04-07 15:55   좋아요 0 | URL
아이들이 배부른 나라..그게 좋은 나라겠습니다. 그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