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린다. 한 때는 '비가 오시네'라고 반갑게 표현한 적도 있는 것 같다.

어느 때부턴가 나의 표현들이 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비는 내리고, 바람은 불지 않고 울고, 파도는 밀려오지 않고 뒤치며 노을은 물들지 않고 각혈을 하기 시작했다.

어쨌든..비가 내렸다.

 

 

 

 

 

 

 

 

 

 

 

 

 

 

 

 

비가 내리면 두통이 시작된다. 저기압상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센서가 머리 어디쯤 박혀있나보다.

그래, 그 때, 기절하듯 잠이 들었던 어린 어느 날, 꿈인듯 생시인듯 까무룩한 기억에 쏟아지던 빛들..낯선 형상들..

알 수 없는 그들이 그랬을지도 몰라..

미스테리한 일이 어디 한 두개여야 말이지..

 

 

 

 

 

 

 

 

 

 

 

 

 

 

 

 

후..안되겠어.

진정이 되질 않아..그냥 털어놓아야겠어.

 

출근하는 길이었지. 알겠지만 나의 출근시간은 늘 늦어. 낮에 출근해서 밤 늦게 마치게 되지.

젊을 때는 이런 나를 놓고 동네 사람들이 수근거리기도 했어.

"그집 마누라 말이다. 뭐 하는 사람이고? 한 밤중에 오대?"

"한 밤중 뿌이가? 아래께는 새복이 들어오드라 아이가?"

"아..맞나? 그집 신랑 속도 좋재..마누라가 그라고 다니는데 암말도 않드나?"

"그라이까네 부부 아이가. 부창부수.."

 

이제야 다들 알고 지내니 그 때의 쑥덕거림이 우스갯소리가 되고 있지만 말야.

 

오늘도 출근하는 중이었어. 새벽부터 비가 내린 덕에 그나마 남은 꽃잎들이 바닥에 떨어져 덜 마른 이불처럼 처연하게 보도블럭을 덮고 있었지. 누군가 물풀을 붓고 꽃잎을 후루룩 떨궈 놓은 것 같은 느낌? 아니면 더는 기울 데도 시칠 데도 없던 할머니의 이불처럼 헐거운 느낌? 여튼 그런 느낌이었어.

우산 밑으로 꼬마애 하나가 보였어.

노란 비옷을 입고 깡총거리며 뛰어가고 있었지. 귀엽게도 말야. 아이의 노란 비옷이 어떤 신호라도 되듯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어. 비가 오는 날은 두통이 심해서 어딘가에 시선을 붙잡아 매지 않으면 걷기도 힘드니까.

 

큰 길에 도착했어. 깡총거리던 아이가 갑자기 우뚝 섰어.

사격게임장의 표지판처럼, 펀치기계의 둥근 솜뭉치처럼..우뚝.

그러더니 어깨를 들썩이기 시작했고, 급기야 주저 앉아 흐느끼다 엉엉 울기 시작했지.

어린아이가 저렇게도 울 수 있구나 싶게 아주 서럽게 엉엉 울기 시작했어.

당황스러웠어. 주위를 둘러봐도 아이 엄마는 보이지 않고..비는 내리고..우산으로 가리고 지나칠까? 생각도 했지만 어떻게..

 

"얘. 왜그래? 뭐 잘못 밟았어? 어디 아야했어?"

눈물이 범벅이 된 채로 아이는 내 얼굴을 보더니 더 그악스럽게 울기 시작했어.

저승사자라도 본 것처럼..

당황하며 아이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아이엄마로 보이는 사람이 뛰어와서 아이를 안고 나를 한 번 쳐다봤지.

난, 억울하다는 눈빛과 나는 아무짓도 안했다는 눈빛을 동시에 내보내야했어.

안그래도 머리가 아파 죽겠는데 말야.

 

아이 엄마가 나와 비슷한 말을 아이에게 했어.

"왜? 넘어져서 아야했어? 누가 때렸어?" 누가 때렸냐고 물을 땐 나를 흘깃 쳐다봤지. 아이에게 물었는데 내가 도리질을 하고 있었어.

아이는 울음을 멈출 생각이 없는 것처럼 엉엉 울다 엄마를 꼬옥 끌어안으며 띠엄띠엄 말을 했지.

 

'꼬..꽃이 다 죽었어..물에 빠져서 다 죽었어.."

 

들었어? 저 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어. 눈물이 난것도 같았어. 뭔가 알 수 없는 것이 몸속으로 뛰어들어와 오장육부를 헤집는 느낌이었어.

꽃이 다 죽었어. 물에 빠져서 다 죽었어..

 

아이의 눈에 비에 젖은 꽃잎들이 물에 빠져 죽은 것 처럼 보였을까?

 

아이를 품에 안고 다독이며 아이엄마가 떠나고..

아이가 울던 자리에서 꼼짝을 하지 못했지..노란 환영이 계속되었고.."꽃이 다 죽었어..물에 빠져서 다 죽었어.."라는 말이 환청처럼 맴돌았어.

 

 

 

 

 

 

 

 

 

 

 

 

 

 

 

 

 

미안해..널 아프게 해서..

이해해..나도 너무 아파서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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