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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아이들 - 제5회 문학동네 청소년 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문학동네 청소년 28
이선주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1. 어린
가난.
가난이란 건 좀체로 낫지 않는 신경성 위염
같은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예민해질 때마다 도지는 위염처럼, 가난도 그랬다.
잊을만하면 다시 도지고 도지고..결국 끌어안고
사는 법을 택하게 된다. 신경쓰지 않고 팔자 편하게 살아낼 방도가 없는 현실을 잘 아는 까닭이다.
익숙해진 통증은 무뎌지기도 한다. 처음 발병할
때 정체를 모르는 고통은 얼마나 두려운가.
비교를 알게 되고 상대적 박탈이라는 말과
절대적 빈곤이라는 말의 실체를 마주할 때의 당혹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이 청소년기라면
더더욱..
가난한 중3 여자애 란이와 무기력해지는 길을
택한 란이 아버지, 어쩔 수 없이 생업을 이어가야 하는 할머니, 이웃집 콩이 할머니, 자살한 콩이 엄마, 불법체류청소년 민성,
..
그리고 클레어라 불리는
예솔이.
이 다양한 사람들이 세상을 버텨내는 이야기가
이 속에 있다.
연초에 그런 기사를 봤다.
초등학교 예비 소집에 아이들을 아파트별로
구분지어 줄을 세웠다는 기사. 행정 편의라고 했다.
얼마전 그런 기사를 봤다.
급식비를 내지 않았으니 밥을 먹지
말라고..교육적 차원에서 학생의 도덕적 해이를 염려해서 한 것이라고 했다.
또, 얼마전..
의무급식을 중단한 어떤 도지사가 가난한
대안학교를 귀족학교라고 추켜세워주는 것도 봤다.
아이들의 상처는 깊고 치명적이다. 어릴 적
장난치다 손톱에 할퀸 상처를 여태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고, 계단에서 늘 주춤되는 트라우마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다.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세상을 마주한 가난한
란이의 성장기.
가난하지 않지만 가난한 친구
클레어..
추방의 위험을 고스란히 감당해야 하는
민성..
아이들과 란이는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며 견디기
시작한다.
#2. 여자가 된다는
것.
첫 생리의 충격에 쓰러진 란이. 책임지지 못할
생명을 낳을까 두려워 수술을 하려한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수술..그러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클레어와 민성이와의 만남이 이어지는 사건이
시작된다.
여자가 된다는 것.
축복받을 일이고 격려를 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란이는 그렇지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니 나 역시 그랬던 것 같다.
또래보다 늦게 시작한 생리..친구들이 "너 그날이야?" "너두?" 라며 생리통에 잔뜩 찡그린 채 책상에 엎드리기도, 양호실을 찾기도, 서로에게
생리대를 빌리기도 하던 때, 유일하게 생리를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아무래도 남자 같다며 가끔 가슴을 더듬기도 했고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도
했다.
'그 귀찮은 걸 왜 하냐?' 라고 말은
했지만, 여자가된 친구들과 여자가 되지 못한 나는 뭔가 어른과 아이처럼 겉돌곤 했다.
첫 생리를 하던 날.
나는 울었다. 좋아서? 라기 보다 여자가
된다는 것이 두려웠다. 뭔가 이제껏 가지고 있던 양성 중 하나의 모습만이 강요될 것이라는 두려움 같은 것이었을거다.
내가 남자이길 바란다해도 그리 되지 않겠지만,
어쩌면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겠구나 싶어지는 대목이었다.
사랑하는 친구와 손을 잡고 걷는 것도 이상하게
보일까? 볼에 살짝 입맞추는 것도 여자들끼리라며 욕을 먹을까?
생리를 시작한 란이는 두려웠을거다. 떠나버린
엄마와 콩이를 두고 자살한 이웃집 언니의 모습만으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는 몸이 된것이 두려웠을거다.
#3.
어른들.
아이들에게 비춰지는 어른은 어떤 모습일까?
자꾸만 적대적이 될 수 밖에 없는 어른들의 모습..
내가 아는 아이들이 좀
있다.
며칠 전 한 아이와의 대화가 가슴에 아리게
남았다.
지각을 한 아이는 잔뜩 부어있다. 화가 난
표정으로 딴생각에 빠진 아이를 불러 이야기를 시작했다.
"무슨 일 있어?"
"...."
"왜?"
" 아빠가.. 야근을 안하니까 돈이
없대요. 대출금 갚아야 하는데 엄마가 아빠랑..싸우고, 다 때려치우고 죽자고..막.."
"아이구, 어머니가 힘드셨나보네. 그게 진심은
아닐꺼야.."
"진심이예요. 울 엄마. 세월호 유가족들이
부럽다고 막.."
"뭐? 그건 아니지..자식을 잃은
사람들한테..할 말이 아니지. oo아..그래도 부모님은 널 사랑하셔. "
"사랑 안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좀 내버려두면
좋겠어요. 진짜 세월호 탔어야했어요. 그럼 엄마가 행복했을거에요. 보상금두 받구.."
할 말이 없었다.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대는 부모들에게
화가 났고, 이런 생각을 대수롭지 않게 하는 아이들을 만든 세상에 화가 났다.
아이를 돌려보내고..멍하니 앉아있다 보니 툭툭
턱밑으로 미지근한 액체가 떨어져내렸다.
미안했다.
좀 더 희망적인 생각을, 꿈을, 미래를 갖도록
하지 못해서 말이다.
세상을 살아내는 힘이 돈과 권력이라고 믿게
만들어서 말이다.
친구와 마음을 내어주고 받는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알려주지 못해서 말이다.
그 시기를 분명 건너왔음에도 까맣게 잊어버리고
내 증오의 대상이 되었던 나쁜 어른의 모습으로 싱거운 웃음이나 날리고 있어서 말이다.
#4.
여러가지 기억들이 혼재되어
날아다녔다.
내 어린 시간들과 닮은..박탈감과 빈곤이
견고한 격자창처럼 마음을 닫게 만들었던 시간들과 닮은 란이의 이야기를 오래 붙둘고 있었다.
아이들..
창 밖의 아이들이 나의 아이들이며 나 역시 창
밖을 서성이던 사람이었다는 걸 자꾸 잊고 산다.
책상위에 던져 둔 책을 아이들이 좋아한다.
살짝 민성과 란이의 로맨스(?)에 두근거리는
모습도 보인다. 한참 그럴 나이니까..
먼지가 낀 창을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닦아두고 싶어졌다.
아이들을 좀 더 자세히 만나고 싶다. 그 속에
내 어린 시간을 찾아내고 싶다.
좀 더..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다.
- 클레어가 직접적으로 그들에게 모멸감을 준
적은 없지만, 클레어가 신고 다니는 신발, 메고 다니는 가방, 입고 다니는 겉옷 등이 그들에게 비교심리를 일으켰다. 비교보다 비참한 건 없었다.
(p12)
-어둠이 빛을 이긴 역사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림없는 말이었다. 어둠은 늘 이긴다. 낮에 햇빛이 잠깐 들었다고 저녁의 어둠이 진 것이 아니다. 밝은 햇빛 뒤에서 어둠이 지켜보고
있다는 걸 이해하는 사람만이 란이 자신과 대화가 통할거라고 생각했다.(p69)
-할머니는 점점 쇠약해지고 있었다. 저러다
사라지는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얇아지고 작아졌다. 마치 아기가 되려 하는 것 같았다.(p97)
-자기가 어렵게 자랐으면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더 이해할 것 같은데. 오히려 나는 열심히 해서 성공했는데 너희들은 왜 노력하지 않느냐, 이러더라. 오원장이 나한테 맨날 하는 말이 뭔지 알아?
노력하면 안 되는 게 없다. 없는 것들 자꾸 도와주면 버릇 나빠진다. (p145-146)
-돈은 사람의 본질을 가린다. 본연의 모습을
검은 색으로 덧칠해 아무 색도 아니게 만든다. (p148)
-산다는 건 어쩌면 자신이 사람이라는 걸
끊임없이 증명하는 일 아닐까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세상은 쉽게 잊었다. 사람이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P150)
-한 사람을 알게 된다는 건 그 사람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연예인을 좋아하는 지를 알게 되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과 똑같이 상처받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되는 거라고..(P154-155)
-탄생과 죽음이 대척점에 놓인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란 걸. 그러니 할머니의 늙어 가는 모습을 마냥 슬퍼할 필요는 없다고. 란이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이불을 덮어 줬다. 그리고
창밖을 봤다.(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