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여름이 되면, 룽산은 그야말로 거대한 향수병을 쏟은 것 같았다. 임각나무, 구주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등에서 온갖 들풀과 드꼬에이르기까지 향기를 내뿜지 않는 것이 없었다. 사람의 습성과 마찬가지로식물의 향기도 제각각 달라 진한 것도 연한 것도, 단 것도 쓴 것도 있었다. 탕한청이 보기에 안쉐얼은 1년 사계절 내내 향기를 발하는 신선초로 룽잔진의 좋은 정취는 안쉐얼과 관련이 깊었다

 염습사는 일할 때 일반적으로 비닐장갑을 끼지만 리쑤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는 망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생각했다. 지나친 노동으로 거칠어진 손으로 만지다 망자의 얼굴을 아프게 긁지는 않을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손을 돌보고 아꼈다. 매일 잠자기 전 손을 깨끗이 씻은 다음 달걀 흰자위와 꿀, 들장미즙 등을 잘 섞어서 만든 핸드크림을 손에 발라주었다. 리쑤전의 손은 두꺼운 입술처럼 인간 세상에서의 마지막 입맞춤-따뜻하고 깨끗한 입맞춤을 망자의 얼굴에 남겨주었다.

 청년은 방향을 돌려 안핑에게 말했다. "아저씨, 당신이 만약 내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시원하고 깔끔하게 죽여준다면, 나는 한 마리 새가 되어 아저씨 가는 길에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안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다음 청년에게 입을 살짝 벌리게 했다. 청년이 입을 벌린 순간안핑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은 바람이 쌩하고 협곡을 지나가듯 청년의윗니와 아랫니 사이를 지나갔다. 이빨 하나 건드리지 않고 청년의 목덜미로 빠져나가 동그란 총알구멍만 남겼다. 청년은 한 방에 목숨을 잃었다


안핑은 한때 사법경찰들과 만약 하느님이 인간에게 뇌를 두 개 부여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를 놓고 토론을 벌였다. 토론 끝에 그들은만약 사람이 뇌 하나를 없애도 된다고 한다면 이 세상에 교회와 불당이아무리 많더라도 살인범이 판치는 세상은 막을 수 없으리라, 그래서 하느님은 인간에게 오직 하나의 생명만을 주었고 거기에 법률까지 가세해고의로 사람을 살인한 자는 자신의 목숨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인간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이다, 라고 입을 모았다.

 멍칭즈가 보기에 아무리 좋은 조직이라 해도 직장은 죄다 죄인 압송용 우리에 지나지 않았다. 일단들어가면 자유를 잃어버렸다. 멍칭즈는 술이 좀 들어가면 젊었을 때 자신이 왜 그렇게 바보였나, 무슨 문공단에 들어가 춤에 춤 자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춤을 추었을까, 하고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좋은 춤은 달에게, 강에게, 들꽃에게 춰주어야 하고, 아끼는 말과 사랑하는 남자에게 춰주어야 한다고 했다. 멍칭즈가 춤을 매개로 안위순과 연이 닿은 것을 아는 룽잔진 사람들은 안위순이 사랑하는 남자였느냐고 농을 걸었다. 명칭즈가 입을 배죽거리며 시작은 그랬는데 지금은 아니라고 하자 사람들이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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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용 칼 역시 먹고 마셔야 하며 잠을 자야 한다는 게 신치짜의 일관된 지론이었다. 도살용 칼은 무엇을 먹을까? 신치짜가 보기에 그것들은가축의 지방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 칼은 사용할수록 날카로워지고 방 치할수록 배가 고파 녹이 슬었다. 그러면 잠잘 때는 어떨까?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불을 덮고 자야 했다. 이불은 가볍고 습기를 차단하면서 공기가 통해야 했다. 안 그러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사용한 도살용 칼들을 깨끗이 닦아 도축 막사 남쪽 창가 가로로 긴 소나무 탁자에 순서대로놓아두고는 그 위에 기름이 잔뜩 밴 하얀 삼베를 덮어주었다. 남쪽 창으로 달빛이 비쳐 들면 도살용 칼들을 덮은 하얀 삼베에도 스며들었다. 신치짜는 칼을 닦기에 가장 좋은 천은 달빛이라 했다. 

신치짜는 참마도를 반짝반짝하게 갈아 대청마루 벽에 걸어두었다. 그때부터 그 벽은 한 번도 희미해진 적 없는 영원한 달빛을 소유하게 되었다. 자기 수중의 칼들은 피를 묻히지 않은 게 없어 그렇지 않은 깨끗한 칼 하나를 가져야겠다, 그러지 않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잘 것 같다, 라는 게 신치짜가 참마도를 갖게 된 이유였다.

안쉐얼이 저녁에 자신과 함께해주는 게 있다고 말하자 단단히 놀란 슈냥이 재빨리 물었다. 누가 함께해주는데? 안쉐얼이 말했다.
방에 달과 별이 있잖아. 그것들은 발이 길어 창문을 넘어올 수 있어. 넘어와서는 나랑 같이 베개를 베고 잠자는 내 곁에 있어준다니까. 만약 달과 별이 없는 밤이면 어쨌든 바람은 있잖아.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 소리가 바로 나와 말하는 소리야." 슈냥이 물었다. "바람이 없으면?" 안쉐얼이말했다. "내 마음속에는 많고 많은 바람이 담겨 있어. 바람을 토해내 나자신과 대화하는 거지"

안핑은 이해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난쟁이를 신으로 만들더니 하룻밤 사이에 이번에는 그 난쟁이를 마귀의 대열에 끼워 넣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술은 병에 담겨 있을 때 고분고분한 것이지, 일단 배 속에 들어가면 온갖요괴 짓을 한다, 엄마의 말을 기억해라, 앞으로 누구와 마시든지 절대 흥청망청 마셔서는 안 된다, 사람이 한 가지 일로 평생 한 번이면 족하지,두 번이나 꼬꾸라져서는 안 된다, 라고 탕한청에게 타일렀다. 탕한청은 어머니의 말을 마음에 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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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있다면 흰색이 아니라 다양한 색을 사랑했을 거라고 생각한 니키 드 생팔은 나나에게 가장 화려한 색을 거침없이 입혔다. 나나는 다이어트를 하지 않으며 풍만한 살집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검고 희고 노랗고 붉은 피부를 드러내고, 육중한 엉덩이는 생을 찬양한다. 그녀는 춤춘다. 나나는 아름답고 힘이 넘치며 더 이상 분노로 자신을 망가뜨리지 않는다.

상처처럼 보이는 성기! 즉 서양 문화에서 여성이 ‘남성‘
이라는 완벽한 성이 되려다 만, 부족함이나 장애, 결핍을 상징하는 성이었음을 기억한다면, 해나 윌키는 바로 그 지점을 패러디하고 있는 것이다. 이 혹처럼 생긴 음순은 관객들이 씹다가작가에게 준 껌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먹다 버린 껌, 씹다 만 껌.
"단물 다 빠진 껌을 누가 씹냐?" 할 때의 바로 그 껌! 바로 처녀성을 잃어버린 여자에게 붙여지는 딱지, 상처딱지처럼 붙어 있는 여성 성기 모양의 껌, "자신을 여성으로 만들어주는 신체의부분은 역사의 상흔을 의미하기도 한다"는 설명이 이해되는순간이다. 남성중심의 가부장 사회이자 자본주의 상품 사회에서 여성의 몸이 소비되는 방식에 대한 통렬한 풍자가 아닌가!!

말 그대로 여성, 당신의 몸은 전쟁터다!" 바버라 크루거Barbara Kruger의 이 작품은 낙태법과 관련해서 여성의 몸이 여성자신의 것이 되지 못하고 사회가, 국가가, 가족이 임신과 출산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권력충돌의 장이 되어버린 현실을 고발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지만, 굳이 낙태법에 한정해서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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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악마도 아니지만 구원자도아니다. 남자를 죄로 이끈 것이 여자가 아니듯 그들을 구원하는 것도 여자는 아닐 것이다. 여성을 악마화하는 것이 부당하듯, 모든 것을 받아주는 영원한 어머니‘ 같은 구원자로 보는것도 우습다. 일견 위대한 어머니 여신의 발견과 계승이 여권을 신장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만, 여성성 혐오와 억압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왜곡된 시각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된다면 모를까 여성성을 최고선으로 두고 이상화하는 것은 경계할 일이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랬다. 누군가는 맘껏 상징과 비유를 썼고, 거기에서 약자들에 대한 선입견과 고정관념이 만들어지든 말든, 그들이 상처를 받든 말든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건그저 예술이라고 했다.

남성이 원하는 여성성을 연기하던 배우, 그 배우의 소모과정을 표현한 앤디 워홀, 그리고 여성성을 연기하는 자기 모습을 찍은 신디 셔먼, 여성성이라는 주제는 이처럼 끊임없는창작의 원천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성이 볼 때 모름지기 여성은 아름답게 치장해 남성의성적 판타지를 충족시켜야 하며 남성중심 사회를 위협하지 않는 선을 지켜야 한다. 그런데 여성의 짧은 머리와 낯선 염색은사회(남자)의 통제와 기준을 벗어나려는 저항으로 읽힌다. 반면 화장한 여성은 위협적인 시선을 덜 느끼므로 더 안전하다.
느끼고 자신감이 생긴다. 화장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듯 보이는 무슬림 여인들의 베일과 화장의 공통점이 바로 여기에서 발견된다.

하나의 사물에 집중하고 확대해 가장 아름답고 농염하게 그려낸 꽃을 가지고, 아름답기만 한 여성성을 ‘아름답기도 한‘ 여성성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당신들이 폄하한 아름다움을 내 식으로 펼쳐 보인다는 생각, 아름다움은 모욕이 아니라 삶의 기쁨이며, 존재의 모든 것에 깃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일 또한 예술가의 임무라는 생각. 만약 탈코르셋의 결과가 누구나 똑같은 차림과 머리라면…… 지루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재미도 없을 것 같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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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적인 여성 캐릭터 중 대표적인 것이 메두사다. 혹자는 데 이두사가 바로 바기나 덴타타라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서 메두사를 묘사할 때 크게 벌어진 입, 길게 늘어뜨린 혓바닥, 멧돼지어금니처럼 뾰족한 이빨‘ 이라고 쓴다. 거기에 뱀으로 뒤덮인머리카락이라니! 상상해보라. 무성한 음모로 뒤덮인 이빨 달린 질, 영락없는 바기나 덴타타가 아닌가. 한 번 보기만 해도 돌체 럼 굳어버리게 하는 괴물. 

이러한 원초적 어머니는 프로이트가 주장하듯 거세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거세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두려운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렇게 보면 메두사 신화는 남성들이 갖는 거세공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남성을 꼼짝 못하도록 얼어붙게 만드는 이빨 달린 질을 가진 위대한 어머니 여신,모계사회와 여성의 힘에 대한 공포를 처단하는 이야기가 된다.


죽어서도 힘을 잃지 않아 누구든 그 얼굴을 보기만 하면 돌로 굳어버렸다는 메두사의 얼굴을 페르세우스는 아테나의 방패에 박아넣는다. 이 얼마나 상징적인 이야기인가. 지금도메두사는 아테나의 방패 속에 갇혀 있는 것이다. 나는 이것을남성의 직접적인 지배의 흔적을 지우고 여성을 대리로 삼아 행해지는 여성억압의 흔적으로 읽는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아테나의 방패에 갇혀 있는 메두사의 머리를 끄집어내는일일지도 모르겠다.

위대한 여신이었다가, 악마와 붙어먹는 사악한 존재였다가, 메두사나 스핑크스 또는 세이렌이었다가, 마녀가 된 여성이라는 타자는 현대에 오면 유대인이 되고, 난민이 되고, 흑인이 되고, 성소수자가 되고, 그리고 페미니스트가 된다. 이들이 사회에 악을 퍼뜨리고 망가뜨린다고 한다.

파우스트는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이끈다 Das ewig Weibliche zieht uns hinan"고 외쳤다. 문학에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영원히 여성적인 것‘에 대한 환상.
남자들을 현세의 관능과 쾌락에 빠지게 만들어 죄로 이끄는 것도 악마 같은 그녀지만, 오직 그녀의 순결한 사랑의 힘이 그를구원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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