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불문하고 감상적인사람들은 언제나 감상적일 수밖에 없다. 이게 정상이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허깨비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슬픔을 말로 표현하지 못한다. 이미 슬픔의 이유가 온몸에 꽉 차 있는데도 말이다. 특히 감상적인 사십대 중반의 남자들이 바로 그런 부류에 속한다. 그러나 나는용기를 내어 얼굴이 붉어지면서까지 이렇게 말한다. 하남이라는 말을입에 머금은 채 고개를 조금 숙이고 있으면 박하차 한 모금을 머금은것 같다고.

그러나 그것이 우리의 한계였다. 그녀도 나도 서로 만나 찾으려 했던 건 사랑이 아니었다. 멀리 떠나버린 어떤 시절과의 재회, 그 느낌을 다시금 확인하고픈 마음은 필시 욕심이니까. 앞을 보며 걷고 또 걸었다지만 우리는 그만큼 뒷걸음치고 있던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있지, 이상하게 서울로 돌아오면 왜 꼭 서울을 떠나던 그 나이로 돌아간 것 같을까.

낭독은 중독이야, 자꾸 읽게 만든다니까. 

그건 멜랑콜리였어.
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 있을 것 같은 순간을 본 듯한 느낌……… 때 문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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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괜찮은 눈이 온다 - 나의 살던 골목에는
한지혜 지음 / 교유서가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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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제법 분다. 손끝이 시려워지고 아이도 아니면서 잼잼을 한다. 부족하지만 애쓰는 피들이 손끝까지 어서 달려가길 바라는 바람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몇번인가 쥐었다 편 손바닥에 분주하게 그어진 선들을 무심히 바라보다 가장 진하고 깊은 선을 따라 옹색한 집들을 배치하고 뿌옇게 흐려지는 사람들을 배치해보니 어릴 적 살던 동네의 골목을 닮았다. 손바닥에 운명이 있다더니 운명은 모르겠고 살아 온 내력쯤은 읽히기도 하겠다고 미심쩍은 수긍을 해 본다.

 

미로처럼 좁은 골목과 골목을 지나 제일 높고 깊은 곳에 있던 우리 집. 아니 우리 방. 인류를 구원할 성물이 숨겨진 곳도 아닌데 주소조차 분명치 않아 우체부는 알음알음으로 편지를 전해주고 전해줄 때마다 22-3번지는 없다니까 자꾸 22-3번지로 편지가 오네. 라고 혼잣말을 했다.

자주 이사를 했고 이사를 할 때마다 살림은 줄고 가난은 커지는 이상한 현상이 반복되었지만 그러려니 했다. 어린 내가 그것을 이해하긴 어려웠다. 이사를 할 때마다 커지는 머리 덕분에 나날이 어떤 수치심 같은 것이 들기도 했고 책의 저자처럼 소공녀의 환상을 품기도 했다. 어째서 내 이름은 유리나 수아 같은 것이 아닐까를 생각했고, 다리밑에서 주워왔다는 이야기가 사실이길 바랬으며 빚쟁이들은 어디로 숨어도 찾아오는 초능력자라는 믿음이 커져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은 뿌리를 내렸고 단단히 고정되어 절망을 빨아들이며 자랐다. 식물에게 있다는 물관과 체관, 그 사이 어디쯤 절망관이 분명히 있을거다. 교묘하고 음습하게 숨어 절망을 빨아들이고 있을거라고 확신했다. 혼자 있는 시간은 길었고 긴 시간은 늘 어두웠다. 좁고 어두운 방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읽는 것'이 전부였다. 아버지의 책을 뜻도 모르고 읽었고 동화책을 표지가 떨어질 때까지 읽었고 엉성하게 도배 된 벽지 사이로 드러난 때 지난 신문들을 읽었다. 글자들의 유일한 장난감이었고 읽을 것들이 친구였던 컴컴하고 조용한 유년은 지금도 컴컴하게 웅크리고 책을 읽는 습관으로 자주 드러나곤 한다.

비슷한 시기를 건너 온 이야기인지 책을 읽는다는 생각보다 자꾸 유년의 어느 싯점으로 이동하는 느낌이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눈 내리는 어느 날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나는 문득 눈 내리던 어느 기억에 사로잡혔다.

연탄은 한 장이 남았고 지붕은 낡은 집. 눈이 쏟아지던 그 날 엄마는 주인집에서 사다리를 빌려와 몽당 빗자루를 들고 지붕을 자꾸 쓸었다. 혹시라도 내려앉을까, 지붕이 무너지거나 부서지면 당장 갈 곳도 없는 우리는 큰일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

한 장 남은 연탄이라도 때려면 아궁이에 벽에 습기가 들지 않아야 한다며 엄마는 손이 빨개지도록 장갑 하나 없이 무시로 나가 지붕을 쓸었다. 내가 할께. 엄마를 대신 해 사다리를 올라가 지붕을 쓸다 돌아 본 동네. 하얗게 뒤덮인 동네는 평온했다. 아무도 밖에 다니지 않았고 살풋살풋 내리는 눈은 조용히 동네를 덮었다. 이렇게 예쁜 설움을 견딜 수 없었을까. 나는 울었던 것 같다. 귀찮아 죽겠어. 눈 따위. 괜히 몽당 빗자루를 집어던지고 사다리를 내려왔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 눈 내리는 날의 지붕을 사력을 다해 쓸고 있는 엄마도 나도 가여웠다. 눈이 내리는 건 귀찮아.

연탄에 불을 붙이고 아궁이를 단단히 점검하고 눅눅해진 연탄가스가 새지는 않을까 방 가장자리를 강아지처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던 눈 오는 날.

혹시를 몰라 머리맡에 동치미 한 대접을 두고 잠이 들던 눈 오는 날.

아무 일 없이 밤이 지나고 눈이 그치고 우풍이 심했던 방에서 살얼음이 끼어버린 동치미를 반찬 삼아 먹던 옹색한 아침.

참 귀찮은 눈이었어.

 

작가가 건너온 시간 틈에 나의 시간들이 자꾸 끼어드는 통에 온전히 읽기 힘든 책이었다.

결국 살아내고 포기하지 않고 무던히 밀고 온 시간이 성장이라는 것을 보여냈고, 소소한 즐거움을 목표를, 의지를 품고 키워왔다는 것을 발견한다. 부족하고 부족해서 뭐가 부족한건지 조차 모르고 살아 온 시간은 그래서 의미있다.

누가 시켜서 가난했던 것도 아니고 삶을 시작하는 싯점이 거기였던 것 뿐이다. 조금 더 빨리, 조금 더 멀리 갔으면 좋았을까? 결승점이란 것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

[인생에는 원래 그런 순간이 있는 법이다. 아주 사소한 진지함으로 태산 같은 막막함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첫번째 골목, 참 괜찮은 눈이 온다. 중에서..p59]

이 구절에 밑줄을 그었다. 작가가 생각하는 순간과 내가 생각하는 순간은 조금 다를테지만 그런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문장이다.

그렇게 각자의 막막함을 뛰어넘어 숨가쁘지만 기꺼이 살아온 지금은 내리는 눈을 조금 여유롭게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책을 읽다보니 어느 순간 꾀가 났다.

앞 부분은 '니나 내나' 비슷하게 읽히고 마무리에 가서 읽히는 작가의 이야기.

그러다보니 뒷부분을 먼저 읽고 앞의 이야기를 읽기도 한다.

아이스크림 맨 밑에 초콜릿이 있는 걸 아는 약아빠진 아이의 행동처럼 말이다. 아이스크림 포장을 모두 벗겨 좋아하는 초콜릿을 먼제 베어먹고 거꾸로 아이스크림을 빨아먹는 것처럼 읽어본다. 맛있고 재밌는 그래서 유쾌한 아이스크림먹기 처럼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읽어낼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매번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

 

손바닥 안에 그어진 선들 사이에 그리운 얼굴과 풍경들이 조금씩 사라진다. 골목은 희미하게 지워지고 사람들의 목소리는 잦이든다. 가난이 세상의 형식인 줄 알았던 아이는 자라 제 이름이 유리나 수아가 아닌 것에 감사하기도 하고 다리 밑에서 나를 주워오느라 고생했을 엄마를 생각하기도 한다. 하필이면 왜 나를 주워왔어? 좀 착한 아이를 주워오지..라고 어리광같은 감사를 전하기도 한다.

참 귀찮은 눈이었지만 이만큼 살아내고 보니 꿈처럼 하얀 세상을 만드는 줄 알았던 눈이 가난한 동네 골목을 진창길로 만들고 말았다는 사실을, 제 앞에 놓인 눈은 스스로 치우지 않으면 길을 내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해 준 참 괜찮은 눈이었음을 고백하게 한다.

 

딸랑딸랑 종소리와 갓 떠낸 따끈한 두부와 선지를 어깨에 메고 두부 사려~ 선지 있어요~ 하던 묵직하고 여운이 긴 새벽의 소리가 어쩐지 그리운 날이다.

아직 눈이 오려면 멀었지만..

올 해의 눈이 내릴 때 '참 괜찮네' 라고 말 할 수 있으면 좋겠다.

거리에서 생존을 두고 싸우는 사람들이 승리해서 집으로 돌아간다면, 올 해의 눈은 썩 괜찮은 눈이라고 기억되겠지만. 가난과 불공평과 불안을 품고 자라는 세대는 더는 없었으면 하는 동화같은 마음도 품는다.

그래서 아직은..참 귀찮은 눈일 것 같은 내 골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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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2 11: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9-11-22 12:01   좋아요 0 | URL
네. 감사합니다.

2019-11-22 1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타샤 2019-11-22 12:07   좋아요 0 | URL
네..^^

2019-11-22 12: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에게,
내가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잃고 난 뒤일 것이다.
너에게,
나는 다시 태어나고 싶다. 너에게로 가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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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삶이든 소중한 무언가가있고, 그러므로 어떤 삶도 함부로 생략하거나 건너뛰어서는 안된다는 내 믿음에 대한 증표 같아 나는 비효율적인 읽기를 멈출 수 없다.

나는 여전히 남은 미련이라면 미련, 열정이라면 열정을 위해 실패를 간직한다.

엄마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많이 미워했고, 많이 싸웠다.
돌아가시면 남는 게 후회라지만, 너무 미워해서 후회할 염치도없을 만큼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최선을 다해 싸웠다. 그랬더니 남는 게 후회가 아니라 두려움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반찬도살림도 엄마가 가르쳐준 방법은 괜히 피하고 만다. 엄마를 떠올리게 하는 것마다 내가 던진 미움이 묻어 있어서 그 미움을 마주할 자신이 도저히 없는 것이다.

‘아버지가 누워 있던 이십이 개월 동안 우리 가족에게 여행은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하루하루 죽음을 준비하고, 하루하루 소생을 기대하면서 우리는 집단 자폐의 시간에 빠져들었다.
환자 가족이라는 심각하고 절박한 정체성 말고는 어떤 자아도허락되지 않았다. 조금만 다른 표정을 지어도 세상이 물었다.
아버지는 이제 괜찮아? 가면을 쓰고 일터와 집만 오고가다보니가족만이 유일한 말벗이었다. 가족만이 유일하게 만만했다. 우리는 좁은 공간에 갇힌 쥐들이 그러하듯 서로를 할퀴고 상처냈다. 그게 시간을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몇 시간이 고비다, 하루도 어렵다. 이틀을 못 넘긴다. 일주일이면 기적이라고 하면서 유예된 죽음이었다. 죽음이 미뤄질 때마다 다행스러웠지만 그건 한편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신경을 그만큼 더 늘이는 일이기도 했다. 슬퍼할수도, 안도할 수도 없었다. 어느 시점이 넘어가자 우리가 바라는 게 기적인지 이별인지도 모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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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이 누군가의 삶을 풍부하게 해주고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해 준다면 그건 바로 자기 자신의 삶이지 타인의 삶은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누군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누군가를 위해 고민하고 있다면, 우리가 말할 수 있는 첫마디는
‘나는 너를 모른다여야 할 것이다.

인생에는 원래 그런 순간이 있는 법이다. 아주 사소한 진지함으로 태산 같은 막막함을 훌쩍 뛰어넘는 순간. 

 되돌아보니 내가걸어온 모든 자리는 무모하게라도 시도했을 때 한 걸음이나마앞으로 나아갔다. 염려하고 망설이고 현실과 타협하면서 이루고 성취한 일은 없었다.

이제 누군가가 다시 한국에서 여성 작가는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야 할까. 여전히 내게그 질문은 "아이는 어쩌고?" 하는 질문으로 들린다. 여성으로서의 삶을 벗어나 작가로서의 삶으로 어떻게 진입할 것인가에 대해 수시로 자문하지만 여전히 나는 답을 모른다.
논쟁은 사라졌지만, 현실은 남아 있다. 그렇지만 이제는 답을모르면 모르는 대로 일단 나오기로 했다. 나와서 쓰고 읽고 생각하기로 했다. 두려우면 두려운 대로 일단 밖으로 나와 끝내합의하거나 포기하지 않음으로써 조금씩 다음 단계로 진입할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믿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내게도 꿈은신분증에 채 안 들어가는 것이지만, 동시에 견디면 즐거운 그무엇이기 때문임을 믿기 때문이다. 실패해도 버리지 않을 때,
꿈은 꿈 그 이상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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