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줄곧 떠나지 않는 갑갑함과 아릿함, 이 낯선 감정에 나는 망설이다가 슬픔이라는 아름답고도 묵직한 이름을 붙인다. 이 감정이 어찌나 압도적이고 자기중심적인지 내가 줄곧 슬픔을 괜찮은 것으로 여겨왔다는 사실이 부끄럽게까지 느껴진다. 슬픔, 그것은 전에는 모르던 감정이다. 권태와 후회, 그보다 더 드물게 가책을 경험한적은 있다. 하지만 오늘 무엇인가가 비단 망처럼 보드랍고 미묘하게나를 덮어 다른 사람들과 분리시킨다.

내나이와 경험을 고려할 때 사랑은 충격적이기보다는 눈부신것이어야 했다. 나는 오스카 와일드의 보석 같은 경구를 일부러 읊조리고 했다. "과오란 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생한 색깔이다" 나는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이 말을 금언으로 삼았다. 경험으 통해 깨달은 것 이상으로 그 말을 확신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삶이 이 구절로 대변되고 이 구절에서 영감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 그구절로부터 도착적인 채색 판화처럼 솟아오를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삶에는 작동하지 않는 시간, 논리와 맥락이 닿지 않는 때, 일상적인 좋은 감정 같은 것들이 있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나는저속하고 부도덕한 삶을 이상으로 여겼다.

"넌 사랑을 너무 단순한 걸로 생각해, 사람이란 하니하니 동떨어진 감각의 연속이 아니란다...
하지만 이제까지 내가 한 사랑은 모두 그런 것이 아니 있던가,
어떤 얼굴, 어떤 몸짓, 어떤 입맞춤 앞에서 문득 솟구친 감정..일관된 맥락 없는, 무르익은 순간들이 내가 사랑에 대해 가진 기억의전부였다.
"그건 다른 거야. 지속적인 애정, 다정함, 그리움이 있지....
 지금 너로서는 이해할 수 없겠지만, 안이 말했다.

나 자신을 혐오하는것. 폭음의 밤을 보낸 대가로 움푹 팬 늑대 같은 내 얼굴을 증오하는 것은 재미있었다. 나는 폭음이라는 단어를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되뇌면서 거울 속의 내 눈을 들여다보았다. 한순간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정말이지 대단한 폭음의 밤이었다. 

나는 스스로와 화해하지 못한 채 자기 성찰의 온갖 고통을 겪어내야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구꽃 그림자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4
정우영 / 실천문학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여기 앉아서 잔이 형은
삼 년 전에 죽을 시켰다.
한 그릇 같이 허자.
나는 무시하고 밥을 시킨다.
찬이 형은 죽을 먹으며
죽을 생각, 했을까.
죽을 생각하던 
찬이 형은 가고
밥걱정하는 나는 남아
천천히 밥 떠먹는다.
찬이 형 죽 그릇에 담긴 
하얀 밥이 소복하다.
줄지 않고 소복소복 넘쳐나서
찬이 형 불러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살구꽃 그림자 실천문학 시집선(실천시선) 184
정우영 / 실천문학사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그렇게 나는 실종되었다.
즐겁게, 광막한 당신 속을 떠다니는 중이다.

 어둠이 해일로 덮쳐오는 철거 지역 망루,
내장까지 게워낸 어떤 가장이 더운 피발라내 지구 바깥으로 흠씬 뿌려 날린다.
 밤이 깊을수록 더욱 일그러지는 눈눈눈,
 자책하는 국화들이 저 처참한 공허 속으로소복소복 날아간다, 희망이 될 것인가..

생각을 내일의 척후병으로 내보내지 마라.
좌절과 절망에 붙잡히고 만다.
차라리 내일에서 생각을 떼내버려라.
단언컨대 희망은 등 뒤에 있고

사라진 기억들이 나를 이끌어간다.
그러니 오늘 여기를 사는 나는,
어제의 나보다 얼마나 부질없는가.

그가 내 몸을 스쳐 지날 때
검불처럼 허허로워서 나는,
그가 날아가버릴까 봐 무심코
그의 겉옷과 살가죽을 꽉 붙잡는다.
그는 아프다는 시늉도 없이
콧노래 응얼거리며 은근슬쩍 빠져나간다.
건듯건듯 흔들리는 뒤꼭지가
부용산 오리길* 가파른 곡절을 넘어가는 
그의 슬픈 노래처럼 몹시 불안정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개와 돼지와 거미와 족제비 문어..열세마리의 동물.
사이 몽고메리의 유년부터 삶을 관통한 종이 다른 동물과 교감하기, 함께 살기에 대한 이야기다.
경이로운 교감의 기록 이라고 부제가 붙었다.
교감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 그 개체에 대해 연구하고 학습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사이 몽고메리의 경우 그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숨지 않고 당황하지 않고 겁내지 않고..
때때로 위험하기도 하겠지만 덜컥 겁을 먹고 숨거나 도망칠 경우가 더 위험하기도 하다.
인간 개체 외에도 함께 살고 있는 동물군들..곤충까지..
‘더불어‘ 쓰는 지구의 공간에서 서로에게 의미가 된다는 건 축복일게다.
수명을 다하고 떠나간 동물 친구들을 그리워 하는 것 또한 소유가 아닌 서로를 최선을 다해 사랑한 이유 때문일게다.

떠나가면?
고양이 네마리의 집사인 나는 덜컥 겁이 난다.
고양이들에게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법과 진심으로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충분히 사랑한다면 상실감이 덜할까?
예쁜 삽화들을 따라 읽다가 울컥한다.

서로의 영역에 스며든 스승이자 친구인 동물들에 대한 이야기.
드라마틱한 사건이나 반전은 없지만 담담히 읽을만 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10-01 1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간은 자연을 ‘약육강식이 작동되는 세계’로 이해하기 때문에 동물의 천척 관계를 당연히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견원지간’이라는 사자성어는 동물의 적대적 관계를 바라보는 인간 중심적 시선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개와 고양이는 성격과 생활하는 방식이 다르지만, 같이 살다 보면 서로 싸우지 않고 가족처럼 잘 지내는 경우가 의외로 많아요.

나타샤 2019-10-01 18:52   좋아요 0 | URL
그럼요..앵무새랑 잘 지내는 고양이도 있구요. 관계를 인간의 기준으로 규정지으면 안되는데..^^
 

기록이 기억을 지배합니다. 기억은 흐릿해지더라도 여러 계절 울며 말하고 울며 적은 이 기록이 우리의 기억을 초롱초롱하게 지켜서 별이 된, 우리 곁에 있어야 할 그들의 삶을 복원해 줄 것입니다. 기록을 곱씹어 읽다 보면 어느 때든 곁에 있어야 할 이들이 우리의 기억 속으로 돌아오고, 마침내 달라진 우리를 만날 수 있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가난한 소작인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술에 취해도, 술을 안 마신 날도, 자식과 아내를 때렸다. 아무리 열심히 소꼴을 베어오고 나무를 해와도 트집이 잡혀 매를 맞아야했다. 그때마다 이모가 그를 ‘아가‘라 부르며 위로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두 아들만큼은 절대로 야단치지 않고 때리지 않고 키우겠노라 결심했고, 그렇게 살았다. 이모처럼, 두 아들을 부를 때면 이름 대신 꼭 ‘아가‘라 했고, 화가 나는 일이 생겨도 절대 언성을 높이지 않고 ‘아가, 왜 그러냐?‘고 달랬다.

미쳤다는 말이 두뇌가 병들었다는 뜻이라면, 그는 결코 미친 게 아니다. 다만 가슴한쪽이 베어나갔을 뿐이다. 일 년이 지난 지금도 마음 속에 아가가 그대로 살아있다.
는 것뿐, 자신의 ‘아가‘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다. 

밀란 쿤데라가 창조한 기억 투쟁‘이라는 말은 이제 보편적인 개념이이 개념이 되었다. 기억이 동물이기 때문이다.
투쟁은 지속적이고 집요해야만 효력을 가진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각은 대체로 생존을 위한 필연적 기술이다. 그러니 기억한다는 것은 고통스러든 슬픔과 고통은 빠르게 잊혀져야 할 운명이다. 그러지 않고는 인간의 행복이 보기능하기에,
기억 투쟁은 이러한 인간의 본성과 운명을 거슬러 오르는 ‘불편한 진실‘에의 고단한 여정일 수 밖에 없다.


세계가 무너지고 돈과 권력이 사람을 배반하는 세상일수록 꿈꾸어야 하고, 바라보고 나아가야 하는 세계인 것이다. 동화는 결코 낭만이 아니다. 잔혹한 삶을 기억하고 지키는 것. 모든 동화의 시작은 거기에 있었다. 약전 또한 그 길 한복판에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 세상에는 416, 304 같은 숫자와 세월호라는 배 이름만 남을 테니까.
그러나 참사의 기억은 사람에 대한 기억으로 남아야만이 반복되지 않을 테니까. 우리는 사람을 기억해야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