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제5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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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목차

 

황정은 - 상류엔 맹금류  (황현경 - 터프해라)

조해진 - 빛의 호위  (박인성 - 감각의 디아스포라)

윤이형 - 쿤의 여행  (금정연 -with or without 쿤)

최은미 - 창너머 겨울 (전소영 - 창 안쪽 상흔)

기준영 - 이상한 정열 (이재원 - 뛰고 또 다시 뛰는)

손보미 - 산책  (신샛별 -나는 잠들고 있는데, 너는 산책을 떠나네)

최은영 - 쇼코의 미소 (양재훈 - 그들은 다시 만나야한다)

 

각 작품 뒤에 작가의 말과 해설.

작품을 낳은 작가들의 필력이야 더할나위없이 건강하고 뜨겁지만, 그 작품의 해설을 적어내린 이들의 역량 또한 대단했다는 것을 감출 수 없다.

특히나 금정연의 해설과 전소영의 해설은 잘 쓰여진 수필이거나 간질거리는 편지같아서 웃음을 지은채 읽어내리며 무릎을 쳤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렵지 않은 말들로 작품의 정서나 작가의 목소리를 따라 쓰여지는 해설은 잘 만든 브라우니처럼 부드럽고 달콤했다.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의 작품을 읽고 해설자들의 역량을 운운하다니, 좀 우습지만 사실 작가들의 작품은 기대감과 어느정도의 가늠치가 있었다면 해설자들의 해설은 뜻밖의 당첨선물같은 느낌이었으니 더 생생하게 남았는지도 모를일이다.

우리 문단은, 참 건강한 작가들과 쌈빡한 평론가들을 갖고 있다는 생각에 한껏 뻐근했던 책이었음을 고백한다.

 

 

#2. 밑줄

 

- 답이 없다고 질문을 버리면 그 보통의 존재는 마침내 괴물보다 더 위험해진다. 그런 이가 되지 않기 위해 '나'는 안간힘을 쓰고 있다. 세상이 그들을 그렇게 만드는 게 아니라. 세상을 어떻게도 만드는 게 다름아닌 '나'들이다. (p41 황현경의 황정은 해설)

 

- 전쟁의 비극은 철로 된 무기나 무너진 건물이 아니라, 죽은 연인을 떠올리며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하는 젊은 여성의 젖은 눈동자 같은 데서 발견되어야 한다. (p49 조해진 빛의 호위)

 

-디아스포라라는 단어는 소문자 역사 (history)의 형태로만 기록될 수 있는 삶에 다가서기 위한 최소한의 입구 역할만을 수행할 뿐이가. 문제는 그 입구에 들어서는 자의 불안이 구체화되는 순간이다 (...) 서술자 '나'의 두 눈이 집안의 어둠 속에서 그저 암순응만을 기다려야 했던 것처럼. 그러한 희미하고 불확실한 감각에 스스로를 내맡길 때에만 비로소 구체화되는 삶의 순간이 존재한다. (p72~73 박인성의 조해진 해설)

 

- 오래전 내가 쿤을 만난 날도 꼭 이랬다. 나를 사랑하지 않는 그를 모두가 사랑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게 된 날, 거울에 비친 나는 잘못되어 보일 만큼 불완전했고, 그대로는 도저히 견딜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p108  윤이형 쿤의 여행)

 

- 상흔이라는 것이 결국 우리가 지닌 가장 진솔한 공감의 장소라는 것을 말이죠. 고통(passion)이 공감(com-passion)의 가장 순수한 매개라는 건 외롭고 슬프고 또 다행스러운 일이예요.(p169 전소영의 최은미 해설)

 

- 사건의 진실이 하나일 때에도 사람의 진실은 여럿일 수 있다. 사람과 사람이 얽혀 만들어낸 관계에 오해와 의심과 해명이 끼어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p236 신샛별의 손보미 해설)

 

- 자신의 삶으로 절대 침입할 수 없는 사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이어야 쇼코는 그를 친구라 부를 수 있었다. (p224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나는 그냥 쇼코의 가상 친구나 일기장 정도였는데, 쇼코는 그냥 그 일기장에 일기 쓰기를 그만둔 것뿐인데, 일기장주제에 쇼코의 삶에 개입하려고 했다. (p260)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p261)

-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p271)

-슬픔을 억누르고 억누르다 결국은 어떻게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엄마였다. 평생을 함께 산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도 두려움 없이 눈물을 풀어낼 수조차 없는 사람, 울고 게워내서 씻어낼 줄을 모르는 사람, 그저 차가운 손과 발, 두통처럼, 보이지 않는 증상으로만 아픈 사람이 엄마였다.(p286)

 

# 3. 영양가 없을 댓글

 

*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

: 황정은에 대한 기대감은 늘 크다. 그의 이름이 주는 즉각적인 느낌은 거침없음이다. 감추고 숨기며 말랑하게 돌려 이야기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말하고 싶지 않다는 고집스러움이 보인다. 황정은의 ettitude인 것이다.

존중받아 마땅하고 그녀의 것으로 두는 것이 예의이다. 물론 그 영역을 깨뜨리는 것도 그녀의 몫이다.

기대감은 곧잘 실망이나 질투를 유발하기도 한다. 그녀의 야만적인 앨리스씨의 잔영이 너무 깊에 남은 까닭에 기대감은 더없이 커졌고 사실은 살짝 질낮은 숨이 삐져나오기도 했다. 저급한 독자의 조급한 기대감인것이다.

CREEP을 불렀던 RADIOHEAD를 떠올렸다. CREEP의 성공으로 그들의 이름이 회자되고 아마도 오래도록 같은 노래를 불렀을게다. 자신에게 명예를 안겨준 노래..하지만, 그들은 어쩌면 High and dry나 Just를 부르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노래의 주인으로서 어떤 평가도 없이..상류엔 맹금류를 쓰는 황정은의 모습과 톰 요크의 모습이 부채의 앞뒷면처럼 번갈아 펄럭거린다. 시리다.

 

 

*조해진 - 빛의 호위.

:조해진, 이 책을 읽으며 이름을 적어놓은 젊은 작가다. 눈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 마치 내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 속에 투영된 내 표정을 읽어낼 줄 아는 것처럼..그는 자신의 작품의 끝에 이런 말을 남겼다 '대단하고 위대한 삶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인간다워지는 순간에 대해서 쓰고 싶어서였다고요.'

대단하고 위대하지 못한 삶들의 부딪힘과 그 산란이 엮어가는 빛의 세계, 그 대단하고 위대함을 그는 보고 있는 것일까? 야무지지만 결코 느슨하지 않은, 냉철하지만 차갑지만은 않은 작가를 만나게 된것이 더없이 좋다.

누군가 몇권의 책 제목을 말해주며 "참 좋다~"는 내 말에 격하게 동의해주어 더 좋다.

책을 읽으며 가장 좋은 때는 이렇게 보석같은 작가를 발견하는 일일게다.

오래도록 입안에 굴리는 말..디아스포라..디아스포라...

 

*윤이형 - 쿤의 여행

: 참신한 이야기. 윤이형의 서사력. 마치 기담인양 현실인양 현실과 은유의 미묘한 간극을 오가며 적절하게 끄집어내는 내면의 소리가 매력적이었다. 도대체 '쿤'은 무엇일까? 여기저기 찾아보아도 어디에도 속시원하게 설명해주지 않는 정체불명의 단어. 단순한 사람들이 늘 그렇듯, 뭔가 하나 안풀리면 골똘히 생각을 꽂아두고 꼼짝을 안하게 되는..바로 그것을 경험하게 된다. 나의 쿤은? 언제쯤 만난거지? 나는 쿤을 떼어내야하는건가? 이녀석을 떼어두고 휘적이면서라도 내 힘이란걸 믿으면서 살아낼 수 있을까? 이사람 좀 용감한데? 이런 생각들이 문장을 따라 흐른다.

마치 잘 쌓여진 산성의 담을 따라 기어가는 오래묵은 구렁이처럼 스멀스멀..

 

* 최은미 - 창 너머 겨울

:장난기였겠지만, 산울림의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생각이 나겠지요'라는 노래를 틀어놓고 한참을 흥얼거리다 책을 폈다. 책 속의 온도는 낮다. 건조하고, 햇살이 쨍하다. 북서계절풍이 부는 그런 느낌.

아주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작품을 위해 적절하게 쓰이고 자신이 쓰임받은 그 자리에서 온몸으로 빛나는 글이다.

억지로 안간힘을 써서 짜낸 글이 아니라는 말이다. 조금은 서늘하지만 쨍한 햇살 덕에 서럽기만하지는 않는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피식 웃음이 터지는 대목까지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겠는가. 떨잠을 사고 싶어졌다.

 

*기준영 - 이상한 정열

: 연애소설을 읽으면서  담담하다는 건, 담백하다는 건 이런것이겠구나 했었다. 감정의 과잉이나 너절한 감정의 소비없이 담담하게 그려내는 힘. 자칫 맥이 풀려버리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단단히 조여 쥐는 이야기의 긴장. 기준영의 글은 그렇다. 노련한 사공이 젓는 호젓한 나룻배처럼 한창 일렁이기도 하지만 뒤집힐 걱정이 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뱃사공이 어찌할 것인가가 가늠되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의 노하우는 비범한 무엇이니 말이다.

다만, 그를 믿고 그의 배에 오르는 것,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비경에 감탄하며 혹은 눈물을 찍어내며 그의 풍경을 읽어내면 되는 것이다.

쌈빡하다는 말..이럴 때 쓰는거지 싶다.

 

*손보미 - 산책

그들에게 린디합을..이라는 책으로 작가를 처음 알게 된다. 여러 리뷰어들이 그녀의 경쾌하고 맑은 글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도 듣는다. 호기심은 생겼으나 그다지 호감을 갖진 않았지만, 이렇게 만나는 손보미는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의 작품에 해설을 맞은 신샛별은  '손보미가 누구보다도 관계의 속살을 면밀하게 이해하고 있는 작가'라고 이야기한다.

딱 떨어지는 평이다. 진부하거나 식상한 관계의 설정이 아닌 관계속으로 들어가 조심스레 투영해내는 힘이 있다.

어정쩡하게 펼쳐놓은 관계 속의 갈등이 아니라, 가지런하게 펼쳐놓고 조목조목 짚어가는 느낌이다. 이거는 이거랑..저거는 저거랑..그래서 말이지..하는 식으로..

그래서 화려하거나 거창한 문장으로 치장하지 않아도 좋을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녀의 '담요'를 읽고 많이 울었다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손보미의 글을 읽고 싶어졌다. 호들갑스럽지 않게 단정한 진실과의 마주서기란 얼마나 깔끔한 자세인가..

 

*최은영 -쇼코의 미소

나와 쇼코와 나의 할아버지와 쇼코의 할아버지와 나의 엄마.

거의 대부분의 글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다. 아니 읽어냈다. 정말 잘 짜여진 구성과 관계.

쇼코의 미소를 필사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몇번이고 다시 되짚어 읽게 되는..책을 다 읽었지만, 아직 다 읽은 것 같지 않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쇼코와 나의 이야기가 책갈피 어딘가에 전달되지 못한 편지처럼, 엽서처럼 꽂혀있을것만 같아서 말이다. 최은영을 알게 된것은 아주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 4.

젊은 작가라서 다행이다. 노련함을 뽐내지 않고, 글 속에서 보여지는 매너리즘도 없다. 담담하고 당당하게, 그러나 매끈하지는 않게 그려낸다. 매끈하지 않다는 건 숙련이 덜 되었다기보다는, 그들이 고민하고 품고, 다시 고민하고 글과 함께 살아낸 흔적들이 곳곳에 보였다는 것이다.

축축한 흔적이, 서러운 눈물 자욱인지, 긴 하품 끝에 나온 것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그의 설움과 잠을 헤집고 다녔을 그놈의 글이 제법 단단하고 야무진것이다.

<젊은> 작가들이 있다는 것이 든든하다.

아직 한참 더 기대를 갖고 읽을 것들이 많이 나타날테니 말이다.

다음 해에도 개최 될 것이 분명한 축제를 잘 즐기고 돌아서는 느낌이다.

괜찮다. 축제는 또 열릴테니까. 좀 더 뜨겁고 세련되고 젊고 힘있는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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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
알랭 드 보통.존 암스트롱 지음, 김한영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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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작품이 사유의 박제가 아닌 삶의 결과물임을 증명하는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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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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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치의 비애.

 

한 번 갔던 길을 용케도 기억하는 남자가 있다. 어디든 자신이 발을 디뎠던 곳은 어떤 방법으로든 실수 없이 찾아가곤 한다. 네비게이션도 없던 시절, 지도를 한 번 훑어보곤 서울 친정집까지 차를 운전하여 간 사람. 내 짝지다.

한 번이 뭐야. 두 번, 세 번 간 길도 늘 헷갈려하고, 아무데서나 '여기 우리 왔었지?'를 남발하며 길치임을 부정하려 드는 사람이 있다. 나다.

어디를 가든, 미리 갈 곳을 점검하고 가는 짝지와 달리, 나는 대충 어디쯤인가만 (이 역시도 불확실할 때가 대부분이다) 확인하고 일단 간다. 그리곤 곧 길을 잃고 하염없이 걷고, 살피고, 아무데나 들어가서 한 숨 돌리고를 반복한다. 그러다보니 약속시간을 한참 지나쳐버리거나, 골이 난 짝지가 찾으러 오곤 한다.

단 한번의 실수도 없이 찾아가는 것. 그것이 좋은 일임에는 분명하지만, 길을 잃어서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은 실로 엄청나다. 그렇게 재미난 이야기가 생겨난 곳을 다시 찾아가보고 싶지만, 찾을 수 없다. 그 근처를 맴돌거나 아주 엉뚱한 곳으로 가고 마는 것. 길치의 비애다.

 

이즈미 로안은 길치다.

그는 길을 건너는 순간에도 길을 잃는다. 분명 산길이었는데 어느새 바닷가에 들어서 있거나, 동굴 속에 들어가 있거나, 남의 집 창고에 들어가 있기도 한다.

어떻게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다. 길치라면 말이다.

 다시 찾아갈 수 없는 곳에서 벌어진 이야기. 그 이야기들이 모여 엠브리오 기담이 시작된다.

 

 

 

(야첵 예르카( jacek yerka))

 

자신의 삶에서 길을 잃지 않을 자신은 있는가? 어차피 길을 잃게 되어 있다면, 그 이야기를 해보는 건 어떨까?

 

 

# 2. 이런 목차

 

-엠브리오 기담

-라피스 라줄리 환상

-수증기 사변

-끝맺음

-있을 수 없는 다리

-얼굴 없는 산마루

-지옥

-빗을 주워서는 아니 된다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역자 후기

 

역자후기를 목차와 더불어 적어야만 하는 책이다.  또 하나의 에필로그처럼 적어 내려간 역자 후기 또한 일품이다. '이 사람..멋지다'하게 만든 후기. 뭔가 정형화되고 분석적인 후기가 아니라, '정말 책과 소통하며 내용에 담뿍 젖어들어서 번역을 했구나, 그러니 재미있을 수 밖에..; 라는 생각이 과하지 않다.

 

주운 태아를 품에 안고 키우는 이야기, 파란 구슬을 받아들고 몇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온천의 수증기 속에서 만나는 오래전의 인연들, 모든 것이 사람의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 마을.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다리 위의 사람들, 잔인함이 뚝뚝 떨어지는 살아있는 지옥, 빗 하나로 벌어지는 사건, 나와 이즈미 로안의 인연..

모든 이야기의 도입부가 비슷하게 시작되어진다. 앞서 읽은 에피소드가 자연스레 연결되는 묘한 구조다. 다른 이야기지만 결코 다른 이야기가 아닌, 개별적 사건이지만 시,공간적으로 치밀하게 얽혀있다.

 

라피스 라줄리의 환상. 나는 이 이야기에서 한참을 머뭇거렸다. 다시 태어나는 삶. 이전의 삶 속에서 만나고 겪었던 일들을 고스란히 기억한 채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이것이 축복일것인가. 스스로 자살을 하지 않는 이상 다시 태어날 수 밖에 없는 기막힌 이야기. 갖고 싶어졌다. 라피스 라줄리..나는 몇번의 삶을 겪어내면 더 이상은 원하지 않아. 라고 결심할 수 있을까? 내 욕심의 끝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라피스 라줄리-청금석)

 

# 3. 이즈미 로안

 

이즈미 로안은 여행서적을 쓰는 일을 한다. 그는 이곳 저곳을 여행하며 그곳의 이야기를 적어내는 것이다. {도중여경}이라는 여행 안내서를 쓰는 작가이다. 책을 읽으며 느껴지는 건, 이즈미는 여행지를 소개하거나 하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어보인다. 이즈미의 길잃기가 어쩐지 의도된 것일 거라는 생각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뭐라고 정의 할 수 없는 존재. 그러나 아직 덜 풀린 이야기들, 저들의 앙금과 아픔, 혹은 오해와 고통을 어루만져주고 해소해 주는 길을 찾는 어떤 사람. 그들의 못다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어떤 사람. 이즈미는 그 어떤 사람인 것은 아닐까.

길고 윤기나는 머리카락을 가진 이즈미..삼손처럼 그의 이야기도 그 머리카락 속에 단단히 묶여 있는 것일까?

 

책 속에서 만나지는 관경은 실로 참혹하기도, 두렵고 섬뜩하기까지 하다. 상황이 아주 섬세하게 설명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가가 던져 놓은 환상의 버튼이 작동 되는 순간, 몇가지의 설명 코드만으로도 실로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된다. 속이 울렁거릴만큼의 참담함..같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즈미 로안의 탄생은 언급되지 않지만- 이즈미는 붓을 들고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 모든 고통을 적어내야 하는 천형을 진 것은 아니었을까. 그의 길에서 벗어나기는 어쩌면 잘 프로그래밍 된 행보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Jim Warren)

 

 

# 4. 밑줄.

 

- 죽어서 다시 태어나길 반복해, 여태 살아온 세월이 백년을 넘었다. 그동안 만난 사람들은 헤아릴 수도 없다. 그래도 제 손으로 키운 아이들의 얼굴과 이름은 기억했다. 어느 아이가 어떤 성격이었는지도 잊이 않았다. 천 년이 넘게 산다 해도 품에 안았던 아이의 무게를 기억할 것이다. (70쪽) - 라피스 라줄리의 환상

 

- 사라진 사람의 얼굴을 언제까지나 기억하는 게 가능할까? 하루하루 무언가를 새로이 보고 듣는 나날 속에서 옛날 일은 윤곽을 잃고 어렴풋해진다. 머릿속에 수증기가 끼는 것처럼 사라진 사람의 얼굴이 흐려진다.(101쪽)- 수증기 사변

 

-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에 대한 증오였다. (..) 과거에 가지고 있었던 모든 감정과 사랑은 죽음과 함께 사라졌다. (..) 노파를 걷어찼을 때 느낀 감촉이다. 나 혼자만이라도 살아남고 싶었다. 남을 밀어내서라도. (179쪽) - 있을 수 없는 다리

 

- 글을 쓴다는 건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걸 누군가에게 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글도 쓸 줄 알아야죠. (309쪽) - "자, 가요 ." 소년이 말했다.

 

 

 # 5. 길을 잃어도 괜찮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다. 현실이 팍팍하고 서럽다고 좌절할 일도 아니다. 단지 길을 잘 못 든 뿐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금방 도착할 길이었는데 너무 오래 헤매고 있다고 노여워 할 일도 아니다. 가끔은 오래 걸릴 길을 금방 찾아내기도 하지 않는가.

중요한건, 시간이 아닐지도 모른다. 올바른 지도가 아닐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삶 속에 미처 태어나지 못했던 이야기, 태어났지만 너무 약했던 의지들, 몇번이고 다시 태어나도 온전히 만족하지 못했던 이야기, 이게 정말 내 이야기인지 믿기 어려운 자신의 이야기들에 귀 기울일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미처 다 듣지 못하고 묻어둔 이야기..차마 꺼내지 못하고 마주 하지 못한 이야기..세상의 평가가 두려워 없는 척했던 이야기..그 이야기들은 그렇게 묻히고 잊혀지고 사라지게 되는걸까?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든 전개되고 드러날 것이다. 맺히고 풀리는 것이 순리라면 말이다. 저마다 살아가는 일은 모험이고 낯선 여행이다.

누구에게나 현재는 처음 맞는 시간이고, 처음 마주하는 상대일테니까..

백만명의 사람들이 백만가지의 방법으로 현재를 살아낼것이다. 그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억울해하거나 두려워 하지 말일이다.

길이 없으면 만들면 되니까 말이다.

 

 

 

(Joel Robison 사진)

 

이즈미 로안이 한 마디 건넨다.

 

"자네는 꽤나 비관적이군. 나는 조금도 불안하지 않아. 그냥 산에서 길을 잃은 것뿐이잖아." (185쪽)

*P.S​

각 이야기들 사이에 끼어있는 나비가 그려진 간지가..정말 멋지다는 귀뜸을 꼭 하고 싶었다.

정말..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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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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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느 날의 뉴스

천국에 가게 해주겠다며 신도들에게 수억대의 돈을 받은 일면 '숙모님'이 잡혔다는 뉴스를 본다.

기도 해 주는 댓가로 헌금을 하라며, 마치 빙의 된 무속인처럼 집안의 우환까지 미리 귀뜸해주며 금품을 요구했단다.

천국에 가게 해주겠다며..

그녀에게 헌금을 한 사람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천국에 도착했을까?

확인할 방도가 없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아니 그 이전에 사후세계라는 것이 있기는 한건지..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곤 한다.

 

구동치의 일이 그렇다. 전직 경찰출신인 탐정. 그리고  ​'딜리터deleter'​​.

어느 날 어떻게 죽을 지 모를 사람들이 자신이 죽고 나면 꼭 없애고 싶은 것들을 미리 의뢰해 둔다. 그렇게 의뢰를 받은 후 그 사람의 사망이 확인되면 구동치는 계약대로 주문한 것들을 삭제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르게..마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던 것처럼 ..

구동치가 의뢰받은 일을 제대로 완수했는지 아닌지를 의뢰인들이 확인할 방법은 없다. 마치 천국에 잘 도착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눈 속의 불안은 아직 껍질을 깨고 나오기 전의 새와 같다. 불안은 자라서 공포가 되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불안을 사랑했다. 불안하지 않으면 아무도 탐정을 찾지 않을 것이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불안에 먹이를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p52) >​

 

# 2. 악어의 눈물

지독한 냄새가 지배하고 있는 악어빌딩 4층. 구동치의 사무실이 그 곳에 있다.

재개발이 시작될 마을, 그 곳에 자리한 악어빌딩. 악취가 빌딩의 주인이고 사람들이 그 곳에 세들어 사는 ..

악취. 어떤 것이든 살아있었던 것이 죽고 나면 제가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마지막 발악처럼 형체도 없이 오래도록 머문다. 악어빌딩의 악취는 살았던 이가 많았고, 그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때론 발효되고 때론 부패하며 내는 삶의 마지막 가스층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딜리팅을 의뢰받은 사람이 죽는다. 구동치는 그 사람의 흔적들을 지우기 시작하고, 그러다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의 죽음과 그가 없애주기를 바랐던 물건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그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치졸함, 그리고 비열함.

죽은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려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딸을 제외하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잃으며 구동치는 자신의 일을 계속해도 좋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 살아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p328)>

# 3. 김중혁의 글.

언젠가 나는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으며 입가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웃었다 굳었다는 반복한 기억이 있다.

김중혁의 글에서만 느껴지는 <김중혁스러움> .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서사는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게 한다.

자칫 사족처럼 열거하다 이야기의 핵심을 비껴가거나 너무 돌아가게되어 지루해지기 십상인 글을 있는대로 펼쳐두고 꼼꼼하게 모으고 다시 펼치기를 반복한다. 야무진 어부가 그물을 엮듯이말이다.

크게만 만들겠다고 엉성하게 엮거나 쫀쫀하게 만들어보겠다고 답답하게 엮어내는 초짜 어부의 어리숙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물 실을 넓게 펼쳐두고 턱하니 주저 앉아 적당한 크기로, 작은 고기들은 빠져 나갈 수 있게 수완좋은 어부가 하듯이 잘도 엮어낸다.

또한 그의 글이 갖는 <김중혁스럼움>의 중요한 코드. 유머.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툭 뱉어내는 그의 유머는 '우와` 이 사람 대체 뭐야?' 하는 반문을 하게 한다. 어이없음이 아닌, 대단한 배치인게다.

장례식장 조화 사이에 느닷없이 튀어오른 작고 푸른 청개구리처럼..슬며시 미소짓게 만들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상처가, 슬픔이,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며 기억을 파헤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암시라도 하듯이 말이다.

# 4. 구동치는 아마

책을 읽으며 나는 내내 구동치는 아마 마동석이라는 배우와 닮았을까? 생각했다.

 

 

어쩐지 잘 어울리는 ..만약 이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재구성된다면..구동치 역할로 어울리지 않을까?

구동치의 냉소적인 모습, 그리도 치밀한 모습.

마치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초연하기도 , 처연하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뜨겁게 끌어안은 사람이겠다 싶어졌다.

# 5. 나는

나는 얼마나 내 삶을 끌어안고 있는가.

치밀하게 내가 살아온 길들을 기억하거나 분류하고 있는가.

나는, 딜리팅을 의뢰할만한 무엇이 있는가.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뛰어다닌다.

딱히 남기고 싶은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지워버리고 싶은것도 없다. 그만큼 애정없이 살아온 것일까? 하는 의문이 바닥에 주저앉아 저혼자 그림자의 길이를 늘이고 있다.​

내가 그늘에 숨지 않는 한 내의지와는 무관한 길이로 제 존재의 영역을 살아내는 그림자. 저마다의 기억이 바닥에 누워 그림자라는 것이 되어진것이라면, 내 그림자의 길이는 얼마나 될지 궁금해졌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은 있다. 꺼내어 확인하기를 거부하는 것 뿐이다. 내가 딜리팅을 의뢰하고자 한다면, 나는 아마 그 기억들을 마주하고 파헤치는 과정을 겪어야 할게다. 세상에 남기고 싶지 않은 기억.

그건 아마 내가 세상에 저지른 오류의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지워버리고 싶은 오류..

나 역시..좋은 사람으로 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는 말이다.

내 흔적은 악어빌딩의 악취처럼 지워지지 않더라도..

<일요일의 기다란 그림자는 이미 월요일에 가 닿아 있는 것 같았다. 자동차는 그림자를 밟으며 빠르게 시간을 건너갔다(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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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4-04-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마동석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어딘지 묵직하지만 인간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구동치라는 인물이 가지는 매력이죠

나타샤 2014-04-08 15:08   좋아요 0 | URL
구동치 캐릭터가 참 아프구나 싶었어요. 더 이상 압착 불가능한 최대치까지 누르고 있는 듯한..
*^^*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
 
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조엘 디케르..

작가의 어머니는 혹은 할머니는 작가가 어렸을 때 뜨개질을 하시곤 하셨을까?

아무것도 아닌 실을 이리저리 떠서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따스한 미소와 함께 작가에게 보여주곤 하셨을까?

우리 엄마가 그랬다.

꽈배기무늬가 멋지게 들어간 카디건이나 알록달록한 무지개 바지, 빨간 실로 딸기무늬를 넣어주셨던 조끼..

노랑색이 귀여웠던 망토까지..엄마는 늘 손뜨개로 만드신 옷을 맵시나게 내게 입히시곤 하셨다.

그것으로 생업을 삼기도 하셨던 기억이 또렷하다.

솜씨가 좋은 엄마를 바라보며 난 늘 가슴 조리곤 했다. 느닷없이 몇개의 뜨개코를 빼놓으셨다가 한참 뜨고 나서 뒤에 남은 코를 멋지게 잡아끌어 뜨개질을 이어가셨다. 그렇게 하고 나면 햇님 달님의 동아줄이 저렇게 생겼을거야..하고 끄덕이게 하는 꽈배기 무늬가 생기곤 했다.

엄마가 그렇게 코를 떼어 놓고 뜨개질을 할때면 저게 풀리면 어쩌지? 어린 걱정이 꽈배기 무늬보다 먼저 엄마의 뜨개 바늘위를 달렸다.

점점 줄어들기도, 점점 늘어나기도 하는 마법의 뜨개질을 보며 나는 꿈을 꾸곤 했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두 권이나 되는 녹녹치 않은 분량(열권도 넘는 대작들도 있지만)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히는 책이다.

잘 짜여진 뜨개코트 같다는 느낌. 과하지 않은 무늬들로 뽀송한 털이 섞인 크림빛의 뜨개코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

 

꽤 잘나가는 작가인 마커스는 첫 작품의 성공 뒤에 글이 써지지 않자, 옛 스승인 해리를 찾아가게 된다.

그 곳에서 마커스가 만나게 되는 사건.

33년전 실종된 소녀의 사체가 해리의 앞마당에서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노라 켈러건.

실종 당시 15세였던 소녀.

해리는 주용의자로 체포되고, 해리가 그랬을 리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커스는 조사를 시작한다.

해리를 통해 듣는 충격적인 이야기.

해리는 노라를 사랑했다고 한다. 노라 또한 해리를 사랑했다고 한다.

이 터무니 없는 사랑의 증언을 토대로 마커스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오로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러나고 그들 사이의 연민과 애증과 애달픔이 드러나게 된다.

누가 노라를 죽였는가.

 

1부의 내용은 오로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누구도 뺄 것 없이 노라가 사라지던 1975년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며 증언한다.

따로 벌어진 사건이겠지만 결국 하나의 바늘에 꿰어진 코일 따름이다.

잠시 앞 뒤로 순서만 바꾸어 배열되었을 뿐

2부에서 드디어 본격적인 무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커스와 게할로우드..그들이 본 것은 정말이었을까?

해리가 혐의를 벗고,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는 정말 놀라를 죽인걸까?

놀라의 비밀과 해리의 비밀이 고스란히 보여지게 되는 2부의 모습에서는 극한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인간이 얼마나 교활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3.

범인이 누구인가?

이 소설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

그들의 속내와 만나게 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조끼의 무늬도 중요하지만 실이 더 중요했던 엄마처럼 말이다.

절망은 상실은 사람을 얼마나 초췌하게 만드는가. 제니가 그랬고, 노라의 아버지가 그랬고, 루터가 그랬으며 해리가 그랬다.

욕심은 사람을 얼마나 간교하게 만드는가. 태미가 그랬고, 프랫이 그랬고, 트래비스가 그랬으며 해리가 그랬다.

사랑은 사람을 얼마나 달뜨게 하는가. 노라가 그랬고, 루터가 그랬고, 해리가 그랬다.

이 모든것을 우리는 사람이라 부르지 않을까? Human!

 

#4.

마커스와 해리의 대화를 토대로 쓰여지게 되는 글은 주고 받는 대화를 주축으로 이루고 있다. 마치 <악의 기원>이 주고 받은 편지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의 모습에서 어느덧 훌쩍 커버린 제자와 스승의 조우도 볼 수 있다.

첫 코를 뜨고 이게 뭐가 될까? 가늠도 못하겠지만 어느 순간 모자도 되고, 장갑도 되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과정 속에서 훌쩍 커버린 마커스를 만나게 된다.

서른 한가지의 가르침.

골라서 배우는 재미가 있을까?

 

 

< 해리가 이렇게 말했어요. ' 자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네. 책과 사랑'>

마지막에 마커스가 남긴 한마디가 이 책의 마지막 매듭이 될것이다.

잘 짜여진 카디건이다. 과하게 치장하지 않고 따스하게 가슴에 품게 되는..

중간 중간 몇번인가 코를 놓치고 방황하긴 하지만, 어느새 찾아내어 흔적없이 뜨개질을 해 낸 멋진 작품이다.

 

크림색 카디건.

해리쿼버트사건의 진실은 내게 그렇게 남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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