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김중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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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느 날의 뉴스

천국에 가게 해주겠다며 신도들에게 수억대의 돈을 받은 일면 '숙모님'이 잡혔다는 뉴스를 본다.

기도 해 주는 댓가로 헌금을 하라며, 마치 빙의 된 무속인처럼 집안의 우환까지 미리 귀뜸해주며 금품을 요구했단다.

천국에 가게 해주겠다며..

그녀에게 헌금을 한 사람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천국에 도착했을까?

확인할 방도가 없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지 않는다. 그곳이 천국인지 지옥인지..아니 그 이전에 사후세계라는 것이 있기는 한건지..알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 할 수 없는 어떤 것을 위해 노력하고 애쓰곤 한다.

 

구동치의 일이 그렇다. 전직 경찰출신인 탐정. 그리고  ​'딜리터deleter'​​.

어느 날 어떻게 죽을 지 모를 사람들이 자신이 죽고 나면 꼭 없애고 싶은 것들을 미리 의뢰해 둔다. 그렇게 의뢰를 받은 후 그 사람의 사망이 확인되면 구동치는 계약대로 주문한 것들을 삭제하기 시작한다. 아무도 모르게..마치 처음부터 그런 것은 없었던 것처럼 ..

구동치가 의뢰받은 일을 제대로 완수했는지 아닌지를 의뢰인들이 확인할 방법은 없다. 마치 천국에 잘 도착했는지 확인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눈 속의 불안은 아직 껍질을 깨고 나오기 전의 새와 같다. 불안은 자라서 공포가 되기도 하고, 폭력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작은 점이 되어 사라지기도 한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불안을 사랑했다. 불안하지 않으면 아무도 탐정을 찾지 않을 것이다. 구동치는 사람들의 불안에 먹이를 주며 살아가는 사람이었다. (p52) >​

 

# 2. 악어의 눈물

지독한 냄새가 지배하고 있는 악어빌딩 4층. 구동치의 사무실이 그 곳에 있다.

재개발이 시작될 마을, 그 곳에 자리한 악어빌딩. 악취가 빌딩의 주인이고 사람들이 그 곳에 세들어 사는 ..

악취. 어떤 것이든 살아있었던 것이 죽고 나면 제가 살았던 흔적을 남기고 싶어하는 마지막 발악처럼 형체도 없이 오래도록 머문다. 악어빌딩의 악취는 살았던 이가 많았고, 그들의 흔적과 이야기가 때론 발효되고 때론 부패하며 내는 삶의 마지막 가스층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딜리팅을 의뢰받은 사람이 죽는다. 구동치는 그 사람의 흔적들을 지우기 시작하고, 그러다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그의 죽음과 그가 없애주기를 바랐던 물건을 사이에 두고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들. 그가 만나게 되는 사람들 사이의 이해관계와 치졸함, 그리고 비열함.

죽은 사람을 위해 눈물을 흘려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의 딸을 제외하곤..

사람을 만나고 사람을 잃으며 구동치는 자신의 일을 계속해도 좋을지를 고민하게 된다.

< 살아있으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려는 마음이 삶을 붙잡으려는 손짓이라면, 죽고 난 후에 좋은 사람으로 남아 있으려는 마음은 어쩌면 삶을 더 세게 거머쥐려는 추한 욕망일 수도 있었다.(p328)>

# 3. 김중혁의 글.

언젠가 나는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으며 입가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로 웃었다 굳었다는 반복한 기억이 있다.

김중혁의 글에서만 느껴지는 <김중혁스러움> .

어느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서사는 그가 타고난 이야기꾼임에 반론을 제기하지 못하게 한다.

자칫 사족처럼 열거하다 이야기의 핵심을 비껴가거나 너무 돌아가게되어 지루해지기 십상인 글을 있는대로 펼쳐두고 꼼꼼하게 모으고 다시 펼치기를 반복한다. 야무진 어부가 그물을 엮듯이말이다.

크게만 만들겠다고 엉성하게 엮거나 쫀쫀하게 만들어보겠다고 답답하게 엮어내는 초짜 어부의 어리숙함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물 실을 넓게 펼쳐두고 턱하니 주저 앉아 적당한 크기로, 작은 고기들은 빠져 나갈 수 있게 수완좋은 어부가 하듯이 잘도 엮어낸다.

또한 그의 글이 갖는 <김중혁스럼움>의 중요한 코드. 유머.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순간 아무렇지도 않게 툭 뱉어내는 그의 유머는 '우와` 이 사람 대체 뭐야?' 하는 반문을 하게 한다. 어이없음이 아닌, 대단한 배치인게다.

장례식장 조화 사이에 느닷없이 튀어오른 작고 푸른 청개구리처럼..슬며시 미소짓게 만들고 오래도록 기억하게 만드는 것이다. 상처가, 슬픔이,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유지하며 기억을 파헤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암시라도 하듯이 말이다.

# 4. 구동치는 아마

책을 읽으며 나는 내내 구동치는 아마 마동석이라는 배우와 닮았을까? 생각했다.

 

 

어쩐지 잘 어울리는 ..만약 이 소설이 영화나 드라마로 재구성된다면..구동치 역할로 어울리지 않을까?

구동치의 냉소적인 모습, 그리도 치밀한 모습.

마치 삶의 어느 한 부분을 내려놓은 사람처럼 초연하기도 , 처연하기도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뜨겁게 끌어안은 사람이겠다 싶어졌다.

# 5. 나는

나는 얼마나 내 삶을 끌어안고 있는가.

치밀하게 내가 살아온 길들을 기억하거나 분류하고 있는가.

나는, 딜리팅을 의뢰할만한 무엇이 있는가.

많은 생각들이 머리속을 뛰어다닌다.

딱히 남기고 싶은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딱히 지워버리고 싶은것도 없다. 그만큼 애정없이 살아온 것일까? 하는 의문이 바닥에 주저앉아 저혼자 그림자의 길이를 늘이고 있다.​

내가 그늘에 숨지 않는 한 내의지와는 무관한 길이로 제 존재의 영역을 살아내는 그림자. 저마다의 기억이 바닥에 누워 그림자라는 것이 되어진것이라면, 내 그림자의 길이는 얼마나 될지 궁금해졌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은 있다. 꺼내어 확인하기를 거부하는 것 뿐이다. 내가 딜리팅을 의뢰하고자 한다면, 나는 아마 그 기억들을 마주하고 파헤치는 과정을 겪어야 할게다. 세상에 남기고 싶지 않은 기억.

그건 아마 내가 세상에 저지른 오류의 다른 이름이지 않을까? 지워버리고 싶은 오류..

나 역시..좋은 사람으로 되도록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는 욕심이 있다는 말이다.

내 흔적은 악어빌딩의 악취처럼 지워지지 않더라도..

<일요일의 기다란 그림자는 이미 월요일에 가 닿아 있는 것 같았다. 자동차는 그림자를 밟으며 빠르게 시간을 건너갔다(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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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는재로 2014-04-05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마동석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어딘지 묵직하지만 인간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구동치라는 인물이 가지는 매력이죠

나타샤 2014-04-08 15:08   좋아요 0 | URL
구동치 캐릭터가 참 아프구나 싶었어요. 더 이상 압착 불가능한 최대치까지 누르고 있는 듯한..
*^^*
흥미로운 작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