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Q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1
조엘 디케르 지음, 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조엘 디케르..

작가의 어머니는 혹은 할머니는 작가가 어렸을 때 뜨개질을 하시곤 하셨을까?

아무것도 아닌 실을 이리저리 떠서 다양한 무늬를 만들어내는 마법을 따스한 미소와 함께 작가에게 보여주곤 하셨을까?

우리 엄마가 그랬다.

꽈배기무늬가 멋지게 들어간 카디건이나 알록달록한 무지개 바지, 빨간 실로 딸기무늬를 넣어주셨던 조끼..

노랑색이 귀여웠던 망토까지..엄마는 늘 손뜨개로 만드신 옷을 맵시나게 내게 입히시곤 하셨다.

그것으로 생업을 삼기도 하셨던 기억이 또렷하다.

솜씨가 좋은 엄마를 바라보며 난 늘 가슴 조리곤 했다. 느닷없이 몇개의 뜨개코를 빼놓으셨다가 한참 뜨고 나서 뒤에 남은 코를 멋지게 잡아끌어 뜨개질을 이어가셨다. 그렇게 하고 나면 햇님 달님의 동아줄이 저렇게 생겼을거야..하고 끄덕이게 하는 꽈배기 무늬가 생기곤 했다.

엄마가 그렇게 코를 떼어 놓고 뜨개질을 할때면 저게 풀리면 어쩌지? 어린 걱정이 꽈배기 무늬보다 먼저 엄마의 뜨개 바늘위를 달렸다.

점점 줄어들기도, 점점 늘어나기도 하는 마법의 뜨개질을 보며 나는 꿈을 꾸곤 했다.

 

해리 쿼버트 사건의 진실.

두 권이나 되는 녹녹치 않은 분량(열권도 넘는 대작들도 있지만)에도 그리 어렵지 않게 읽히는 책이다.

잘 짜여진 뜨개코트 같다는 느낌. 과하지 않은 무늬들로 뽀송한 털이 섞인 크림빛의 뜨개코트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2.

 

꽤 잘나가는 작가인 마커스는 첫 작품의 성공 뒤에 글이 써지지 않자, 옛 스승인 해리를 찾아가게 된다.

그 곳에서 마커스가 만나게 되는 사건.

33년전 실종된 소녀의 사체가 해리의 앞마당에서 발견되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노라 켈러건.

실종 당시 15세였던 소녀.

해리는 주용의자로 체포되고, 해리가 그랬을 리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마커스는 조사를 시작한다.

해리를 통해 듣는 충격적인 이야기.

해리는 노라를 사랑했다고 한다. 노라 또한 해리를 사랑했다고 한다.

이 터무니 없는 사랑의 증언을 토대로 마커스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기 시작한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모든 오로라 사람들의 이야기가 드러나고 그들 사이의 연민과 애증과 애달픔이 드러나게 된다.

누가 노라를 죽였는가.

 

1부의 내용은 오로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느 누구도 뺄 것 없이 노라가 사라지던 1975년의 과거의 모습을 떠올리며 증언한다.

따로 벌어진 사건이겠지만 결국 하나의 바늘에 꿰어진 코일 따름이다.

잠시 앞 뒤로 순서만 바꾸어 배열되었을 뿐

2부에서 드디어 본격적인 무늬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마커스와 게할로우드..그들이 본 것은 정말이었을까?

해리가 혐의를 벗고, 다른 누군가가 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는 정말 놀라를 죽인걸까?

놀라의 비밀과 해리의 비밀이 고스란히 보여지게 되는 2부의 모습에서는 극한 상황에서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인간이 얼마나 교활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3.

범인이 누구인가?

이 소설은 그것이 중요하지 않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사람들의 이야기 .

그들의 속내와 만나게 되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조끼의 무늬도 중요하지만 실이 더 중요했던 엄마처럼 말이다.

절망은 상실은 사람을 얼마나 초췌하게 만드는가. 제니가 그랬고, 노라의 아버지가 그랬고, 루터가 그랬으며 해리가 그랬다.

욕심은 사람을 얼마나 간교하게 만드는가. 태미가 그랬고, 프랫이 그랬고, 트래비스가 그랬으며 해리가 그랬다.

사랑은 사람을 얼마나 달뜨게 하는가. 노라가 그랬고, 루터가 그랬고, 해리가 그랬다.

이 모든것을 우리는 사람이라 부르지 않을까? Human!

 

#4.

마커스와 해리의 대화를 토대로 쓰여지게 되는 글은 주고 받는 대화를 주축으로 이루고 있다. 마치 <악의 기원>이 주고 받은 편지로 이루어진 것처럼 말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의 모습에서 어느덧 훌쩍 커버린 제자와 스승의 조우도 볼 수 있다.

첫 코를 뜨고 이게 뭐가 될까? 가늠도 못하겠지만 어느 순간 모자도 되고, 장갑도 되어져 있는 것을 보는 것처럼,

과정 속에서 훌쩍 커버린 마커스를 만나게 된다.

서른 한가지의 가르침.

골라서 배우는 재미가 있을까?

 

 

< 해리가 이렇게 말했어요. ' 자네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게.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는 것이 두 가지 있네. 책과 사랑'>

마지막에 마커스가 남긴 한마디가 이 책의 마지막 매듭이 될것이다.

잘 짜여진 카디건이다. 과하게 치장하지 않고 따스하게 가슴에 품게 되는..

중간 중간 몇번인가 코를 놓치고 방황하긴 하지만, 어느새 찾아내어 흔적없이 뜨개질을 해 낸 멋진 작품이다.

 

크림색 카디건.

해리쿼버트사건의 진실은 내게 그렇게 남게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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