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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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에는 있는데, 혀끝에서는 맴도는데 그것을 글로 써서 표현하는 것이 참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읽기에만 익숙한 사람에게 그 책을 써서 요약한다는 것은 고문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 전에 읽었던 종교적경험의 다양성도 그렇고 이 책또한 그렇다. 그래서 어렸을때 독후감을 쓰는 연습을 했어야 했는데 노느라 정신이 없어 이 나이에 내 생각을 표현한다는게 참 서툴다. 

종교적경험의 다양성을 읽었을때에도 참 좋은 책이긴 한데, 그 좋은 느낌을 한마디로 정리한다는게 고문처럼 어려워 안좋은 점만 써놓고 내 생각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것 같아 몇번이고 삭제할까 망설였지만, 그래도 책을 읽은 느낌만은 있어야 겠다는 생각에 그냥 놔두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여담으로 지난주 주말에 월드컵 8강전으로 아리헨티나 대 독일, 브라질 대 네덜란드를 봐야하는지 한참 고민했다. 이 책이 하도 재미있어 읽고 싶은데, 축구는 봐야하고, 결국은 축구를 봐야 했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책이다.  

어쩌면 의식을 연구한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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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한 과학
토머스 루이스 외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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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짱한 책! 쉽고 재미있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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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ㅣ 한길그레이트북스 40
윌리엄 제임스 지음, 김재영 옮김 / 한길사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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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가장 특출한 장점은 신앙의 내밀한 부분을 공개적으로 학문이라는 영역 안으로 들여왔다는 것이다. 아쉬운 것은 그 예가 주로 기독교인의 체험을 위주로 나오기에 다른 종교인들의 신앙체험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에 읽었던 이슬람의 셰계사와 비교해 보면  이슬람과 기독교의 신앙행위는 거의 비슷한 한줄기 두가지인듯 싶어 별다른 차이점이 없어 보였다.  

만약 윌리엄 제임스가 다른 동양종교의 신앙체험도 같이 연구했다면 좀더 다양한 시각을 우리에게 제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읽으면서 느꼈던 한계는 이 저자의 환경이 유럽이라는 시대정신의 질풍노도의 시기에서 한발 비켜난 근본주의 기독교의 천국 미국이라는 청교도정신을 국가정신으로 한 신천지의 국가였으며, 만약 그시대 미국의 종교적 근본주의 풍토에서 종교를 이야기 할때 그것을 기본적으로 부정하고 비판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저자는 이 책 곳곳에 기독교 신앙인들의 비판을 피하기위해 변명을 해댄다. 하지만 이 책은 시간을 투자한 가치는 충분히 하는 책이다.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번역문제다. 역자도 저자의 문장이 보여주는 독특한 맛이 사라져 버리기에 완역을 원칙으로 하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문장 자체가 만연체가 되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예시된 인용은 쉽게 번역이 되었지만 정작 중요한 저자의 주장은 무엇인지  후반부로 갈수록 더하다.....너무나 불친절한 책이다.... 무책임하다.  

좋은 책을 왜 이렇게 만들수 밖에 없는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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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8-01 22: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나온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이 제목의 유사성에서 볼수있듯 이 책을 생각한것 같아 알게되었습니다.

군자란님 안녕하세요.^^
기억의 꿈님 페이퍼의 칼 세이건의 유언에 대한 제 댓글에 답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보고 찾아왔습니다. 글들을 둘러보니 느껴지는 관심주제와 그에 대한 생각, 가치관이 저와 비슷하신것 같아 반갑습니다. 즐겨찾기 추가해뒀으니 자주 오겠습니다. 부담없이 내 하고 싶은 대로...좋네요.^^ 군자란...무엇인가? 이런 연상작용이...하핫

혹시 못보실까봐 옮겨봅니다.
군자란//댓글에 답글 주셔서 감사합니다,군자란님. 마음에 드셨다니 좋네요.^^
제 생각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죽음관이나 유언을 보면 그 사람의 많은 것이 담겨있는 경우가 많은것 같습니다. 칼 세이건 뿐만 아니라 마음에 와닿은 유언을 더 옮겨봅니다.

'우물쭈물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 영국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 묘비명

'적어도 최후까지 걷지는 않았다' - 일본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미리 작성해둔 자신의 묘비명

군자란 2010-08-02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사합니다. 반갑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과연 그 사물의 존재를 안다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나의 의식이 알고 있는 것이 과연 그 사물의 전부일수 있을까? 자기 자신의 의식을 타자화 시키고, 객관화시켜야할 필요가 가끔씩은 필요 할것 같다. 내 주변에는 나 자신을 기만하는일이 너무 당연하게. 그리고 부지불식간에 이루어 지기에  그 기만을 깨닫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기만에 의식와 감정이 어우러지면 그 일을 깨닫기에는 더욱도 어려워 지는 것 같다.   

어떤 사물에 대한 지식이 그 사물자체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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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체오페르 2010-08-01 2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합니다.
사람 역시 마찬가지죠.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 가지는 느낌은 그 사람 자신이라기 보단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이미지인경우가 대부분이죠.
언어,말이란 것도 필연적으로 왜곡을 어느정도 내포하고 있을수밖에 없듯이요.
A라는 사람이 B라는 사람에게 말을 할때 일단 자신의 의식을 100%표현하기 어렵고, 그 말을 B가 받을때도 100% 그대로 받아들여지기 어렵죠. 벌써 2번의 필터링이 생기는데...
SF에 나오듯 우리의 마음을 순수하게 그대로 교류가 가능하다면 이 세계는 좀더 평화로워 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군자란 2010-08-02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자신의 의식을 쫓아가며 관찰하는 것도 꽤 재미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인간 의식의 지향적자세로 인하여 언어를 수단으로 생존욕구를 극대화하여 현실에 대한 욕망이 투영되어 생기는 현상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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