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우리같은 생명체에게 두려움과 공포의 또다른 이름이다. 내가 신의 근처에서 배회하는 것은 어떤 핑게를 대든 불안하다는 징표이다. 존재에 대한 불안...

 

토마스 홉스의 이야기

" 인간의 삶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쾌하며 잔인하고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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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에는 교육이 있어 일산에 있는 교육원에서 4일을 있다 왔다. 오랜 만에 서울구경도 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지만 내 성격상 여기 저기 뒤지고 다니는 성격도 아니고, 친구라고 해야 피고한 이들에게 또 하나의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아 조금 한가로운 저녁시간에 못다 읽은 의식의 탐구에 올인했다. 덕분에 의식이란 부분에 집착할 수 있어 행복했다.

 

의식의 탐구에서 인상적인 구절

사고 한다는 것, 즉 개념과 감각적데이터 혹은 추상적유형을 조작하는 일은 대개 의식적으로 하지 않는다.사고 할때 의식하는 것은 중간단계의 감각적표상과 관계된것으로, 이미지나 음조 소리없는 혼잣말과 그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기타 육체적느낌이다. 의식은 사고의 과정도 그 것의 내용도 알 수 없다. 당신이 스스로의 내면세계를 직접의식한다고 생각했겠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그것이 의식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것은 오직 암시적인 이미지나 무언의 말을 통해서이며, 혹은 그것을 밖으로 표출할 때 뿐이다!  내가 말을 하기전에 내생각이 뭔지 내가 어떻게 안단 말이야!

 

요즘들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우리 인간들은 동물과 구별되는 기준으로 자각한다는 사실을 가장 큰 차이점으로 이야기 하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의 사고나 의식도 일종의 이나스가 이야기하는 고정행위 패턴(FAP)나 코흐가 이야기 하는 좀비 작동체와 별다른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일종의 생존하기 위한 존재의 패턴일뿐이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는 것이다. 사고나 의식도 일종의 본능일뿐 결코 다른 생물과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생명체에게 자각이란 그 표현형태가 다를뿐 다 똑 같다는게 내 생각이다.

 

여담으로 요즘 나는 사고의 과잉이다. 생각도 안하고 살았으면 한다. 아무 생각없이 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가끔씩은 그 때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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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탐구 - 신경생물학적 접근
크리스토프 코흐 지음, 김미선 옮김 / 시그마프레스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꿈꾸는 기계의 진화 속편, 읽는 내내 칡뿌리를 씹어 먹듯 쓰지만 행복하였다. 이제 내게 이나스와 올리버 색스외에 또하나의 우상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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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한깨짱님의 "좀 더 나은 노예가 되는게 꿈인 사회 - 황석영의 '돼지꿈'"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좀더 나은 노예가 꿈인 사회라는 제목에 이 글을 읽기전에 동감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 삶 자체가 무언가의 노예가 되어야 살수 있는 사회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사회적으로 옳은 말을 하는 젊은이들이 있어야 우리 사회가 발전하겠지만, 저 같은 기성세대에게는 그런게 당연한게 되버렸습니다. 나약하고 무기력한 모습 그게 직장에서 몸부쳐 사는이의 운명아닐까요? 사는 것이 어쩌면 고역이 되어 버린 이 세상에서 살아 갈수 있는 방법은 니체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짜라투스트라처럼 거대한 운명이라는 파도에 정면으로 맞서고 싶은 그리고 땅에 두 다리를 꽉 딛고, 눈도 부릅뜨고, 현실을 고민하는 것만이 나 같은 소시민이 해야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니 입에 바른말만 하게 되네요.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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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새벽에 문자가 왔단다.  나이는 나와 갑이지만 입사 선배인 회사 동료가 아직 젊다면 젊은 40대 후반의 나이에 자식도 중고생 딸 둘을 두고 세상을 떠났단다. 간암으로 작년 거의 치료가 됐다고 순천 송광사 산악회 사전 답사할때의 그 얼굴이 선하다. 원래 몸집이 있어 건장한 체구였던 그는 약간 여윈 모습으로 아직은 기가 팔팔하게 이야기 하는 모습이 좋았다.

 

여윈 모습을 보이기 싫어 다른 이의 면회도 거부하였던 그의 뒷 모습을 보며 마음이 웬지 착잡하였다. 죽음앞에서 초연해 질수 없을까? 왜 그리도 우리는 생명줄에 그토록 집착하는지....요즘 읽고 있는 책이 크리스토프 코흐의 마음의 탐구라는 책이다. 나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이책들은 반드시 거쳐가야할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 꿈이 있다면 법정 스님이 죽음앞에서 말빛을 청산하고 세상에서 잠잠히 그리고 소리없이 사라지기를 염원하였듯이 그런 마음을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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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13-03-0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가 들어 돌아가시는 것은 쉽게 받아 들일 수가 있는데 젊은 나이에 돌아가시면 가슴이 휑하죠. 주변에 엄마들이 암으로 치료 받고 있거나 죽었다는 말을 들으면 한동안 뭘 못 하겠더라구요. 작년에 애아빠 동료분 부인이 뇌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아이가 어려 마음에 걸리더라구요. 살 사람은 산다 하지만, 그게 참 쉽지 않죠.

군자란 2013-03-11 12:17   좋아요 0 | URL
주위에 가까운 이의 죽음은 주위의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사건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죽음이라는 사건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아주 지극히 주관적인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말 내내 그 친구의 부재가 웬지 마음에 가득차 책을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