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일은 자기 자신을 학자로 규정했다. 그것이 그의 목표였고,
목표를 향해 스스로 자기를 만들어갔다. 여러권의 여행기를 낸 것을 보면 대중과의 친숙한 교류도 완전히 배제하려 한 것은 아닌것 같지만, 관심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가 천착하고 정리해 완성하려 했던 학문은 원칙적인 것이었다. 언제든 다른 사람들이 가져다 활용할 수 있는 뿌리에 해당하는 부분을 다지고 싶었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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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면회 온 아내에게 전향을 하기로 했다는 사실을 알렸다.
전향 없이는 앞날을 보장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고, 전향하겠다는 의사 표시는 계속 기다리겠다는 아내의 결심에 대한 대답이었다.
당연한 결과처럼 보였지만 그로서는 자신의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 태어나는 고통을 겪으며 내린 결단이었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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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자주 나를 화들짝 놀라게 만드는 것: 딱딱하게 굳어버린슬픔 - 경화증에 걸린 것처럼.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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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죽은 세월이, 해묵은 옷을 입고, 하늘의 발코니에서 굽어본다.
_보들레르, 「악의 꽃 - P293

그 길 끝에서 마주하는 것이 국보인 고달사지 승탑이다. 이 승탑은 고려 초기 팔각원당형 승탑 가운데 가장 뛰어난작품으로 평가받는다.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이나 연곡사 동승탑·북승탑이 섬세한 아름다움으로 사랑받는다면, 고달사지 승탑은 장중함으로 보는 이를 압도한다. 신라 양식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고려 특유의 힘찬 조형미를 보여 준다. - P78

그렇다. 영원한 것은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도, 끝내 사라지지않는 것도 없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사람들에게 사랑과희망, 믿음을 전해 줄 것만 같았던 절도 결국 사라졌고 그 절을 세우고지키던 사람들 또한 모두 떠났다. 고달사의 아름다운 석등은 고향으로돌아갈 기약조차 없이 서울 하늘 아래 서서 옛 절터를 묵묵히 그리워하고 있으니, 역사는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제시하는 것인가. - P81

불국사 삼층석탑이 중앙 귀족 사회의 권위와 이상을 담아낸 장중한 석탑이라면, 진전사지 삼층석탑은 지방 호족의 새로운 문화적 역량을 보여 주는 탑이라 할 수 있다. - P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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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내려놓고 폐사지를 찾아가면 비가 내리기도 하고, 하염없이 눈이퍼붓기도 했다. 때로는 바람이 몹시 부는 폐사지에 망연히 앉아 지나간 옛날을 회상했고, 그러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무덤의 노래‘ 한 구절을 떠올리며 돌아올 때가 많았다.

나에게는 상처 입히지 못하는 것, 묻어 버리지 못하는 것, 바위라도 뚫고 나오는것이 있다. 그것은 나의 의지다. 이 의지는 묵묵히 변함없이 세월을 뚫고 걸어간다. - P7

모든 것은 깊은 과거로 사라지고 곧 망각으로 덮인다. 영광의 광채에 사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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