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을 보고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가 직감적으로 소환되었다. 별을 보지 않는 천문학자라니...40대초반 행성을 연구하는 여성이자 기혼의 비정규직 천문과학자 에세이다. 그 시대 나이처럼 솔직하고 발랄하지만 현실의 고민 또한 느껴진다. 특히, 젠더 관점에서 여성 과학자들이 겪어야만 일상의 어려움을 격하지 않으면서 소개한다. 공감을 이끌어내는 방식의 글쓰기는 화려한 미사어구가 아니라 독자를 그 자리에 대입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살아가는 여성과학자도 있다는 괴짜이야기의 현장속 특수성이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보편적인 인식과 관점이 녹아있는 글이다. 그리고 미괄식의 정리와 더불어 편하게 써내려간 이 글을 추천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뛰쳐나가지 않은 날이 드물다. 왜 늘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마지막 순간에야 일어서는지. 엄마는 늘 뛰어다닌다. _ 즐기세요 중 - P77
알고는 있지만 설명하기가 어려울 때도 모른다고 하고,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을 때도 모른다고 한다. 확답을 잘 하지 않고, 그럴 가능성이 높거나낮다고만 한다. 우린 항상 잘 모른다. 자연은 늘 예외를 품고 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사실이 전부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 그것만이 언제나 어디서나 진실이다. _ 백퍼센트의 별똥별 중 - P95
아이를 키우면서 얻는 행복이 천국 같다던데 하고 묻는 친구에게 나는 천상의 기쁨과 동시에 그만큼 깊은 지옥도 만나게 된다고 답해주었다. 결국은 다 상쇄되지 않을까. 그날 밤, 가슴이 너무아려와 일기장을 펴놓고도 한 글자를 적지 못했다. _ 감정의 진폭 중 - P116
보이저는 창백한 푸른 점을 잠시 응시한 뒤, 다시 원래대로 기수를 돌렸다. 더 멀리, 통신도 닿지 않고 누구의 지령도 받지 않는 곳으로, 보이저는 수명이 다하는 날까지 전진할 것이다. 지구에서부터 가지고 간 연료는 바닥났다. 태양의 중력은 점차 가벼워지고, 그 빛조차도 너무 희미하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춥고 어둡고 광활한 우주로 묵묵히 나아간다. 그렇게 우리는 각자의 우주를 만들어간다. 그렇게 어른이 된다. _ 창백한 작은 점 중 - P156
해 지는 걸 보러 가는 어린 왕자를 만난다면, 나는 기꺼이그의 장미 옆에서 가로등을 켜고 그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 왜 슬픈지 캐묻지 않고, 의자를 당겨 앉은 게 마흔세번째인지 마흔네번째인지 추궁하지도 않고, 1943년 프랑스프랑의 환율도 물어보지 않는 어른이고 싶다. 그가 슬플때 당장 해가 지도록 명령해줄 수는 없지만, 해 지는 것을보려면 어느 쪽으로 걸어야 하는지 넌지시 알려주겠다. 천문학자가 생각보다 꽤 쓸모가 있다. _ 해지는 걸 보러가요 중 - P165
지구 밖으로 나간 우주비행사처럼 우리 역시 지구라는 최고로 멋진 우주선에 올라탄 여행자들이다. 어쩌면 그래서우리의 생이 그토록 찬란한 것일까. 여행길에서 만나면 무엇이든 다 아름다워 보이니까. 손에 무엇 하나 쥔 게 없어도 콧노래가 흘러나오니까. _ 여행길 음악 중 - P255
소행성은 공룡을 포함해 지구 생명체 일부를 몇 차례나 멸종시켰지만, 그래도 지구에는 흐드러지게 생명이 꽃피었다. 위기를 이겨낸 우리의 마음속에도 언젠가는 봄꽃이 간질간질 피어나리라. _ 수분하는 여행자 중 - P195
버클리의 존 R. 설 교수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피를 뿜어내는 유기물 기계를 설계한다면 심장과 비슷한것이 나오겠지만, 의식을 만드는 기계를 설계한다고 할 때 1,000억 개의 뉴런을 떠올릴 사람이 과연 누가 있겠는가?" _ 뇌 중 - P96
남들이 보기엔 저게 대체 뭘까 싶은 것에 즐겁게 몰두하는 사람들,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정치적 싸움을 만들어내지도 않을, 대단한 명예나 부가 따라오는 것도 아니요, 텔레비전이나 휴대전화처럼 보편적인 삶의 방식을 바꿔놓을 영향력을 지닌 것도 아닌 그런 일에 열정을 바치는 사람들. 신호가 도달하는 데만 수백 년 걸릴 곳에 하염없이 전파를 흘려보내며 온 우주에 과연 ‘우리뿐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무해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동경한다. 그리고 그들이 동경하는 하늘을, 자연을, 우주를 함께 동경한다. _ 프롤로그 중 - P13
오늘 내가 할 일은, 애써서 받은 그 ‘연구 면허‘가 별무소용인 종잇장이 되지 않도록 연구자로서 할 일을 다 하는 것뿐이다. 평가하고 평가받는, 누구나와 같은 그 삶 속을 묵묵히 걸어가는 것뿐이다. 내일도, 그리고 모레도. _ 박사님이시네요 중 - P36
대학이 그들에게 배운 것보다 배우는 즐거움과 괴로움을,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만의 의견을 갖는 다는 것의 뿌듯함을 일깨워주기를 바란다. 자신을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눈을 들어 앞으로 나아갈 세상을 바라보는 법을 배우는, 그 즐거움과 괴로움을, ‘우주의 이해‘에서도, ‘글쓰기의 이해‘에서도, ‘시민교육‘이나‘전자기학, 천체물리학 개론‘에서도 가르쳐주길 바란다. 어쩔 수 없이 대학을 꼭 다녀야만 한다면, 대학 졸업장이라는,그 한없이 틀에 박힌 문서 하나가 주는 즐거움과 보람을 위해 기꺼이 젊음을 바칠 수 있기를, 넘치게 바란다. _ 시적 허용은 하용되지 않는다. 중 - P63
요즘에는 봄의 확실한 첫 신호로 여겨지는 스노드롭 꽃무리는아마 세심하게 가꾸어진 정원에서부터 퍼져나와 잉글랜드와 웨일스,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곳곳의 적절한 장소에 자리 잡았을 것이다. 일단 알뿌리 몇 개가 뿌리를 내리고 나면 알뿌리에 다시 생기는 새끼알뿌리나 꽃에서 날아간 씨앗을 통해 금세 퍼진다. 18세기말에도 스노드롭은 정원 식물로 여겨지긴 했지만 영국에서 야생으로도 자랄 수 있다는 인식이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_ 스노드롭 중 - P29
프림로즈는 보존하고 싶다는 영원한 욕망을 자극한다. 설탕을입히든, 은박으로 포장하든, 눌러서 말리든, 그림으로 그리든, 시로 쓰든, 자연 서식지에서 보호하는 말이다. 사실 프림로즈는 놀랍도록 오래 살기도 한다. 삽이나 환경의 변화로 방해받지 않는한 수십 년 동안 봄마다 계속 꽃을 피운다. 땅을 뚫고 올라오는 이친숙한 꽃들은 그 아름다움이 워낙 자주 찬미되다보니 해마다 우리를 놀랍게 한다는 사실 그 자체로 놀랍다. 프림로즈는 여전히봄마다 어김없이 사라지며 그들의 짧은 삶이 왜 조금 더 길지 않은지를 슬퍼하게 만든다. _ 프림로즈 중 - P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