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개입하는 몇몇 소중한 사람들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들 덕에 나는 지나치게 망가지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아주 조금씩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불 동굴밖으로 나온다. 글도 그렇다. 나는 글을 쓰며 수시로 내게 개입한다. 글을 통해 세상에 개입한다. 그렇게 매일 고쳐질 가능성‘을타진한다. 포기하지 않고. _ 내 속엔애놔 개가 있어서 중 - P100

어린 시절이 끝나고 시간의 지배를 받게 되면, 취하지 않고 오늘을 견디는 인간을 찾기 어려워진다. 불안을 피하려 일에 취하든, 상처를 덮으려 술에 취하든, 수치를 잊으려 명예에 취하든, 고독을 이기려 시선에 취하든, 열등감을 지우려 폭력에 취하든, 무엇에도 취하지 않은 채 오감을 깨우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어린시절을 끝낸 인간은 어딘가 취한 채, 자신의 과거와 싸우느라 매일을 소비한다. 이 싸움은 잘해야 본전이다. 이겨야 기껏 사람꼴‘이며, 졌을 때의 상황에는 바닥이 없다. 바닥 없음을 목격하는 일은 너무 잔인해서, 다시 취할 거리를 찾게 한다. _ 곱게 취한 어른들의 세상 중 - P103

웃음은 울증과 변비에 두루 통한다. 이 병들에 필요한 것은 이완이기 때문이다. _ 글을 썼다기보다 똥을 쌌늘 경우 중 - P110

그럼 다시 저자로서, 글을 썼다기보다는 똥을 쌌다고 느껴질때 마음을 붙잡는 법. 나보다 많이 알고 많이 겪고 많이 써본 사람은 수두룩하다. 하지만 그들이 아무리 더 많이 알고 겪고 써도 두개의 프리즘을 가질 수는 없다. 이 불편하고 부당한 세상에서 그것은 드물게 공정한 일이다. 공정하다면, 운동화 끈을 고쳐 묶지 못할 것도 없다. - P112

하지만 실패는 다르다. 실패는 그 자체보다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이 나를 단련시키기 때문이다. 작은 실패가 중요한 건그 때문이다. 너무 한 방에 때려눕히는 실패 말고, 몇 번쯤 겪어도스리슬쩍 넘어갈 수 있는 실패. 몇 번 반복해도 그렇게 막 난리가나지는 않는구나, 하는 안도감을 주는 작은 실패들, 그 경험이 훨씬 소중하고 장기적으로 쓸모가 크다. _ 실패해도 괜찮다는 마음 중 - P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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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이 불안하고 소란한 세상에서
이윤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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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본디 내성적인 사람들에게 중요한 조건이다. 그들은 틈과 간격 속에서 판단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듣자마자 대꾸하고, 말하자마자 행동하는 것은 내성적인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속도다. 말보다 글이 편한 것도같은 이유에서다. 글에는 내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틈과간격이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조바심이 생기지 않고, 내성적인 사람들의 에너지는 조바심이 없을 때 발휘된다. _ 세상은 내게 결코 편지를 쓰지 않겠지만 중 - P16

내성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교감과 소통에 대한 갈망이 덜한 게 아니다. 다만 빨리, 한꺼번에 하지 못할 뿐이다. 머뭇거리고 주춤거리기 좋은 틈과 간격 속에서 내성적인 사람들은 더 깊고 단단한 통로를 낸다. 글쓰기도 그렇다. 잘 쓰고 못 쓰고를 따지기 앞서, 글을 적어나가는 과정에서 확보되는 거리가 쓰는 사람을 안심시킨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번 물러섰다가 한 번 더 고민한 뒤에 한 걸음만 나아가도 된다는 사실이 그들의 에너지를 끌어낸다. - P17

이것은 세계에 보내는 편지야.
세계는 결코 나에게 편지를 쓰지 않았지만.
-- 에밀리 디킨슨 - P19

쓰기‘가 통증을 줄여준다는 것, 그 이상의 이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아팠나, 어떻게 아팠나, 얼마큼 아팠나, 아프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병원에 가면 의사가 으레 묻는 말들에 대답하듯 그냥 내가 직접 묻고 답했다. 다른 점은, 병원에서는 문진 뒤에 처방을 따로 해주지만 글쓰기는 자문자답의 과정 자체가 처방이 된다는 점이었다. 쓰면 나아졌다. _ 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중 - P21

슬픔이 언어가 되면 슬픔은 나를 삼키지 못한다.
그 대신 내가 슬픔을 ‘본다‘.
쓰기 전에 슬픔은 나 자신이었지만
쓰고 난 후에는 내게서 분리된다.
손으로 공을 굴리듯,
그것은 내가 가지고 놀 수 있는 무엇이 된다. - P22

글쓰기도 마가지다. 적어도 내게 이것은 기계적으로 채워지는 루틴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태도에 가깝다. _ 쓰는 사람을 모욕하긴 힘들다 중 - P32

기쁨은 언어가 되는 순간 불어나고 슬픔은언어가 되는 순간 견딜 만한 것이 된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_ 그건 짜증이 아니라 슬픔이지 중 - P37

내가 겪은 일을 언어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은
희한하게도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것이 구체적인 세계에 어떤 영향력을 미치지 못해도,
‘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는 내게 구체적인 힘이 되었다. - P41

삶이 너무 지독할 때는 쓸 수가 없다.
하지만 지독하지 않으면 쓸 이유가 없다.
그 중간의 어딘가에
모든 글쓰기가 웅크리고 있을 것이다. - P44

마치 어떤 사람이 마음이 악해서가 아니라 단지 외투의 단추를 풀고 지갑을 꺼내기 귀찮아서 거지에게 적선을 베풀지 않은 것처럼, 삶은 나를 그렇게 대했다.
- 페르난두 페소아, 『불안의 서」 - P59

세상에서 나밖에 모르는 나의 고통을, 세상에서 내 고통이 으뜸이라는 술주정이 되지 않게 하면서도, 세상에 굳이 전달해야 하는 이유를 예리하게 찾아내야 한다. 고통받되 고통에 잡아먹히지 않고 고통을 바라보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_ 에세이가 술주정이 되지 않으려면 중 - P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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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하는 모든 일이 사실 시간과 불안을 이기기 위한 것 아닌가. _ 프롤로그 중 - P5

내게 가장 소중한 일은 하루하루를 지나친 기대와 미움 없이살아내는 것이다. 사는 일은 누구에게나 만만치 않으니 나 힘든걸 애먼 데 화풀이하지 않고, 최소한의 교양과 상식을 유지하며나이 드는 것이다. 다가오지 않은 것들을 염려하지 않고 흘러가는 것들에 목매지 않으며, 그렇게 사는 데에 글쓰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_ 프롤로그 중 - P6

세상은, 특히 한 인간의 생산성을 끊임없이 저울질하는 자본의 세상은 그가 지켜내고자 하는 품위를 절로 보장해주지 않는다. 품위가 훼손되는 방식은 다양하지만 훼손된 인간은 공통적으로 모멸을 느낀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유독 모멸에 예민하다. 그들이 시도 때도 없이 모멸을 느낀다는 게 아니라, 공기 같은 억압과 소리 없는 차별처럼 자신이 훼손될 만한 상황을 신속히 감지한다는 뜻이다. - P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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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판은 그 명판이 설치된 도 시에 관한 수많은 이야기를 직간접적으로 전한다. "항상 명판을 읽자"는 준칙은 주변 건축물들을 관찰하고 건물에 담긴 이야기를 찾아내는 훌륭한 방법이지만, 그렇다고 철판에 새겨진 모든 이야기가 진실만 다루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명판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명판에 실린 작은 글자들을 비판적으로 읽을 수 있어야 한다. _ 4장 도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들 중 - P90

한마디로 추상화가 핵심이다. 자연을 수학적으로 가공하면, 혼란스럽고 유기체적인 것이 규칙적이고 이해하기 쉬우며 반복해 사용할 수 있는, 궁극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변화한다. _ 4장 도시의 정체성을 만드는 것들 중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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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다. 역사적으로 스폴리아는 무너트린 건축물에서 가져다 새로운건축물을 짓는 데 사용한 돌을 뜻한다. 철제 들것이나 대포로 만든말뚝처럼 이런 재활용은 실용적인 차원에서 벌어진 일일 것이다. 적을 때려눕힌 뒤 전리품을 빼앗아 재활용할 수 있는데 새로 물건을 만들 이유는 없으니까. _ 3장 진화의 흔적 중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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