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자체가 우리의 기대만큼 직선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p.22)
"진정한 허무주의는 자기 자신도 안전지대에 두지 않으며 저항 하는 사람들에 대해 냉소를 보이지도 않는다. ‘진보의 허위’까지 꿰뚫어 보는 감각으로서의 허무주의가 필요하다. 허무주의는 방관주의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정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p. 21)
가령 참 순정하고 아름다운 친구가 모진 병 끝에 일찍 세상을 뜨면 모든 게 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 몇 년 사이에도 노회찬 의원의 슬픈 죽음을 비롯해 무척이나 경외하고 좋아했던 분들이 서둘러 밤하늘의 별이 되는 걸 지켜보며 허무주의에 경도되는 내 마음을 만나곤 했다. (p. 21))
어느 푸르스름한 저녁에 〈비정성시>를 보며, 문청의 깊은 눈빛, 로렐라이의 청아한 선율, 관미의 단아한 표정을 다시 내 마음에 담고 싶다. (2019) (p. 19)
‘푸르스름‘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우리말의 풍부함과 아름다운 어감이 이 네 글자에 오롯이 스며들어 있다. 나이가 들수록 모국어의 표현 가능성에 대해 한층 민감해지는 자신을 발견한다. 내가 유일하게 문학적 언어를 운용할 수 있는 모국어의 드넓은 바다에 한 바가지의 물, 그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다는 마음을 책 제목에 담았다. (p. 4) _ 머리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