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 단독주택, 그것도 지하실 포함. 쓸 수 있을지 아닐지는 아직 모르지만 벽난로까지 있다. 오랜 아파트 생활 동안 난로에 장작을 때는 게 은밀한 꿈이었다. 바닥 아래는 다른 집이 없이 그냥 땅이고 지붕 위에는 하늘밖에 없다. 머릿속으로 그리던 것이상의 해방감이 느껴졌다. - P38
그래도 가나의 눈 표정에는 그녀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부분에서 소리 없이 떠오르는 뭔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자의 진짜 매력은 본인이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비롯된다. 화장도 웃음소리도 완벽하게 통제되는 것은 재미없다. - P52
새는 바람을 많이 피운다고 책에서 본 적이 있다. 새끼의DNA를 검사하면 다른 수컷의 새끼가 육십 퍼센트씩이나 된다는 모양이다. 원앙 한 쌍이 늘 같이 있는 것은 사이가 좋아서가아니라 바람피우지 못하게 암컷이 감시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정말일까. - P63
눈이나 입처럼 움직이지는 않아도 잠자코 남에게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도 차양과 귀는 어딘지 모르게 비슷하다. - P64
"오래된 걸 이것저것 손보는 게 즐겁거든. 황폐해질 대로 황폐해진 정원도 업자를 부르면 되살아나고, 다다미도 이불도 손질하면 새것이 되고, 장지도 덧문도 마찬가지야. 부엌 공사도 그랬어. 어둡지, 간장 냄새 나지, 전체적으로 기름때가 묻어 있었지만, 물론 그건 그것대로 운치가 있었지만, 싹 고쳤더니 몰라보게좋아졌어. 수명이 다해가던 게 되살아나는 게 뭐라 말할 수 없이기쁜 거야." - P85
우연히 호감 가는 여자가 나타난다 해도 그 뒤 식사에 초대하고, 두 사람의 개인사며취향, 사고방식, 라이프스타일을 맞춰보고, 메일 등등을 주고받으며 호의를 전할 생각을 하면 다소 귀찮다. 타인과 한 지붕 밑에서 살아갈 자신도 별로 없다. 나는 가족이 아니라 좋은 집을 원하는 게 아닐까. 그런 의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 P120
나는 마음 편히 쉴 수 없었던 주말을 그리워하는 걸까. 아니면 지금 이렇게 그저 멍하니 있는 나 자신을 용서하려는 걸까.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수증기처럼 사라져가는 의문. - P149
이 집에 군림하는 왕은 텔레비전이 아니라, 하물며 라디오도 아니고, 벽난로일 터였다. 불을 피우면 저절로 시선이 모이는 위치에 무게 있게 자리하고 있다. 오랜 세월 불을 잊은 벽난로는 지금은 차갑게 식어 커다란 입을 벌린 채 죽은 것 같은 상태다. 그래도 불이 뻘겋게 타오르면 되살아날 것이다. 그럴 터였다. - P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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