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욕망의 유전자 - 직립에서 정장까지, 건축으로 읽은 문화의 계보
서현 지음 / 효형출판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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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호칭을 시작한 것은 진시황이었다. 황皇과 제帝는 모두 신성한 숭배의 대상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그는 하늘과 더 가까워졌다. 아니, 그렇게 포장하기 시작했다. 천명응수권, 즉 하늘이 내린 뜻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개념이 형성되었다.

_ 구ㅏㄴ력 중 - P78

야훼는 자신이 유대인들을 이집트의 구속에서 구해냈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따라야 할 의무를 요구한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마라. 그래서 유대교는 단일신교가 되었다. 그런데 유일신 개념이 훨씬 먼저 등장한 곳은 고대 이집트였다. 무력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제왕의 사례처럼 유일신도 놀랍게 폭력적이다.

_ 피라미드 중 - P94

분리를 사회적 체제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강제 대상을 시각적으로 구분하는 방식이 필요했다. 똑같이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난 사람을 구분하는 방법은 복장이었다. 이들에게는 주인과 다른 복장이 강요되었다. 이런 시각 규제는 노예들의 이동과 공간 점유를 강제하고 감시하는 유효한 방안이었다. 위반자 적발과 처벌이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_ 노예 중 - P127

유럽에서는 로마제국 해체 이후 정치 단위가 작아지면서 결국노예제가 사라졌다는 것이 일반적 설명이다. 대개 4, 5세기 정도 이후의 현상으로 파악된다. 특정한 정치적 결단으로 사라진 것이 아니라 노예 유지가 불합리해진 경제 체제가 되었다는 게 일반적 설명이다. 노예도 먹여야 일을 시킬 수 있다. 먹여 살려야 하는 노예를 유지하는 것보다는 자신이 먹고살며 지주에게 소출을 바치는 농노제가 이득이 되는 사회였다는 것이다. 이 상황을 중세 봉건 체제라고 부른다.

_ 노예 중 - P129

귀족이 사라진 사회여도 어떤 방식으로든 계층과 계급은 살아남았다. 대체로 낮은 계급은 자신보다 높은 계급, 즉 자유도가 높은 계급을 선망한다. 그래서 낮은 계급은 어떤 방식으로든 높은 계급을 모방하고 과시하려고 한다. 그걸 계급욕망이라고 부르려고 한다.

_ 귀족 중 - P136

균분 상속의 더 큰 문제는 결국 분쟁으로 빠져들기 쉽다는 점이었다. 항상 불만은 비교에서 나온다. 비교 대상이 유사할수록 작은 차이에도 불만은 커진다. 세습의 영속성을 위해서는 장자에게 권력과•재산을 집중시켜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학습 결과였다. 이런 문제가 관찰된 후 프랑크왕국은 카페 왕조에 이르러 장자 상속제를 시행하게 되었다.

_ 문자 중 - P140

그리스도교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는데 세 사람의 중요한 구성원이 필요했다. 그것은 예수, 바울,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다. 이 세사람의 이상한 인연이 조합되어 오늘의 그리스도교를 만들었다. 그과정을 서술하면 고스란히 유럽의 역사가 완성된다.

_ 소명 중 - P145

약탈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이 성곽이라면 지옥의 위험으로부터보호해 주는 것은 바실리카였다. 도시 한복판에 세워진 바실리카는지상에 구현된 천국이었다.

_ 바실리카 중 - P165

유럽의 역사는 그리스도교 영향을 부인할 길이 없게 되었다. 유럽이 세계를 지배하면서 그 영향은 지구 곳곳에 미치게 되었다. 서양건축사에서는 바실리카의 변화를 대개 양식사로 설명한다. 비잔틴양식, 로마네스크 양식, 고딕 양식, 그리고 르네상스 양식. 양식사로보는 유럽의 건축 역사는 교회를 빼고 설명하면 대단히 곤란하다. 그런데 로마네스크 양식은 로마와 관련이 없고 고딕 양식은 고트족과 관련이 없다.

_ 바실리카 중 - P167

색은 중립적이지만, 피와 결합된 이 단어는 비칭이다. 그건혐오의 표현이다. 파란 혈통과 달리 노란 혈통은 계급이 아니고 민족이 지칭 대상이다. 별문제 없어 보이는 단어지만, 막상 유대인들 앞에서는 지금도 절대 사용하면 안 되는 금기 표현이다. 이들이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된 이유는 예수를 죽인 자들이기 때문이다. 여기도 연좌제가 적용되었다.

_ 황금 중 - P170

시간은 신이 만든 것인데 시간이 지났다고 이자를 받는 것은 규범에 어긋났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융은 귀족의 사업이 아니었다. 유대인은 이자를 받으며 대출을 해서 자산을 키우는 자들이고, 그래서 무시와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베니스의 상인이었던 샤일록이 대표적인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금화를 상징하되 반짝이지 않는 현실적 색이 노란색이 아니었을까 추측할 따름이다.

_ 황금 중 - P178

1506년 베드로 성당이 착공되었다. 경험해 보면 건설 사업의 가장 큰 문제는 재원 마련이다. 건물은 돈이 짓는다. 그래서 건설사업의가장 일반적 문제는 예산 부족이다. 여기서도 문제였다. 십자군 전쟁에 사용되었던 방안이 있었다. 교황이 면벌부 발행과 판매를 허가했다. 그런데도 판매 매상이 부족했고 시장 확대가 필요해졌다. 죽은 자들 몫의 면벌부도 더 팔기로 했다. 그런데 죽어 연옥에 갇혀 있는 그들은 지불 능력이 없었다. 연옥은 천국이나 지옥에 이르기 전에 머무는 임시거처다. 불안에 떨어야 하는 곳이다. 이 역시 공의회를 통해서 공식 교리화된 추상적 공간이다. 요한 테첼Johann Tetzel, 1465~1519 은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선전문을 들으면 세계사 교과서에서 그가 누구였는지 쉽게 알 수 있다.

_ 인쇄 중 - P181

초기 인쇄술에서 면벌부는 중요한 시장이었다. 한 장짜리 문서이니 제본이 필요 없고 그래서 초기 투자비도 적었다. 그런데 인쇄술이 성공하려면 더 큰 시장이 확보되어야 했다. 종교 서적이 그 시장임이 틀림없었다.

_ 인쇄 중 - P185

그러나 구원에 이르기 위해 루터가 이른 결론은 세 개의 단어로축약된다. 오직 은총sola gratia,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성서 sola scriptura.. 여기 선행이 없다. 루터에게 구원은 인간의 힘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었다. 구원은 신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에 대한 믿음만 있으면 구원을 얻는다. 선행은 구원의 조건이 아니고 믿음의 결과로 행하는 것이다. 이건 전복적이고 도발적 주장이었다. 사실 이건 루터의 개인적 해석이었다.

_ 성서 중 - P192

이제 성서를 읽는 것은 개인적 책무였다. 구원의 문은 가족 동반 입장이 아니고 개인 입장이다. 결국 나는 혼자 남게 되었다. 이전까지 농경사회는 규모가 경쟁력 지표였다. 그래서 결속도 중요했다. 종교는 가족 단위의 생활을 의미했다. 면벌부도 자신의 구원보다 먼저 간 가족을 연옥에서 구출한다는 의미였다. 그러나이제 가족은 핵가족으로 분해되어도 무방했다.

_ 성서 중 - P197

앞서 설명한 대로 가톨릭 국가에서는 중앙정부로서 왕실이 존재했지만, 지방 행정은 가톨릭 교회가 챙겼다. 대체로 교회가 유아 영세, 혼인 성배, 장례미사 등을 기록했는데 그게 호적 관리가 되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중세 개인, 가족 기록은 교회가 소장한 것들이다. 교회는 출생과 결혼, 사망을 포함하는 행정 외에 빈민 구휼의 사회안전망이 되었다.

_ 프로테스탄트 중 - P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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