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길이 우리 혼자만의 힘으로 결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다. 우리가 살아가는 정원은 우리보다 앞섰던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의해 성장하고 보살핌을 받아왔다. 우리앞에 열린 길은 과거의 역사가 파생되어 나온 결과이며, 다른 사람들이 밟은 지난 발걸음으로 다져진 길이다. 단순히 우리의 발걸음만 중요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 방향을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울 수 있다. 정원을 가로지르는 길은 우리가 앞으로 보거나 만나지 못할 이들의 결정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뀐다. 보르헤스가 그려낸 상상 속에서 우리가 결정한 길들은 가차 없이 새로운 방향으로 향하고, 우리가 지나온 궤적은 다른 곳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한 번도 주목한 적 없는 서로 다른 인생의 고유한 디테일들, 생존의 윤곽을 결정한 교토와 고쿠라의 숨겨진 순간들에 의해서.
_ 들어가며 중 - P23
나는 인류의 역사가 단순히 무질서와 확률, 혼돈으로 규정되는 세상에질서와 확실성과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꾸준하지만 헛되이 투쟁하는 과정일까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장난삼아 매혹적인 생각을 한 가지 떠올렸다. 우리와 우리 주변의 모든 상황이 그저 다 우연이며 길들일 수 없는 우주가 던져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임으로써, 난잡하고 불확실한 현실을 맞이하는 법을 배우고 이 혼돈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었다.
_ 들어가며 중 - P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