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송세월 - 초판한정 김훈 문장 엽서 나남신서 2168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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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알고 있기는 했지만, 그 야만성의 현실적 뿌리가 얼마나강력한 것인지는 알지 못했다. 그는 스물여섯 살이었다. 그는 순결했으므로, 순결한 만큼 세상에 분노했고, 순결한 만큼 세상물정을 몰랐다. 그는 세상물정에 아둔한 만큼 담대했고, 담대한 만큼 무모했다. 그는 기어코 일을 저질렀다. 아마도 그때 내가 동료 신앙인으로서 황사영의 곁에 있었더라면 나는 그의 행동을말렸을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이지만, 그의 순결하고 또 거침없어서 무모한청춘의 영혼이 살아남아 이 가짜뉴스로 어수선한 시대를 향해한없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_ 청춘예찬 중 - P237

남의 자식을 짓밟고 ‘내새끼‘를 밀어붙이는 이 고위층 갑질의역사가 계속되는 한, 저출산 정책에 수십 조를 퍼부어도 그 결과는 모두 헛것이다. 이미 헛것이 되었다. 이제 ‘아기가 타고 있어요‘도 점차 사라지고 ‘힘센 꼰대가 간다‘만 남을 판이다.

_ 아이들아, 돋는 해와 지는 해를 보아라 1 중 - P252

사람은 지나가지만 사람됨은 지나가지 않는다. 짓밟히고 억눌린 시대에도 사람은 사람다운 표정과 체취와 온도를 지니고 있었고 억압에 매몰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의 그때‘를 ‘사람의 자금‘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_ 박경리, 신경림, 백낙청 그리고 강웈구 중 - P264

구석기 시대 사람들이 따뜻한 양지쪽이나 고기 잡히는 물가에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돌도끼, 돌칼을 만들어서 사냥하고 먹고 남은 식량을 비축해서 겨울에 대비하는 삶의 방식과 교동도대룡시장의 형성 과정은 근본에 있어서 아무 차이가 없다. 인간은 사상이나 이념의 노예가 아니고, 노동과 교역은 인간이 지상에서 평화와 자유를 건설하는 토대이며, 생활은 영원하다는 것을 대룡시장에서는 쉽게 알 수 있다.

_ 아날로그는 영원하다 중 - P275

기다림과 그리움은 모두 아날로그의 사업이고, 디지털의 공간 속으로 제비는 돌아오지 않는다.

_ 아날로그는 영원하다 중 - P279

법의 적용과 집행이 법으로서 정당한 것이라 해도, 이로써 인간 세상에 정의가 구현되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확실치 않다‘
는 나의 말은 그야말로 확실치 않아서 내가 듣기에도 비겁하다.
이 민망함을 무릅쓰고 말하자면, 확실치 않은 것을 확실하다고믿을 때, 한쪽 둑을 막으면 다른 쪽 둑이 무너지고, 꿰맨 자리가계속 터지고, 터진 자리에서 또 다른 문제가 쏟아져 나온다.

_ 여덟 명의 아이들을 셍각함 중 - P283

정의 혹은 이념의 깃발을 들고 어깨를 거들먹거리며 땅 위를 걸어다니는 자들은 어리석다. 이 세계의 불완전성을 이해하는 것으로 그 불완전성을 해결할 수 없지만 그 불완전성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사람은 세계와 인간을 대하는 마음에서 겸손과 수줍음과 조심스러움을 갖출 수 있다. 겸손과 조심스러움을 상실한태도가 이 불완전한 세계 위에 지옥을 완성한다. 이 지옥의 이름은 파시즘이다.

여덟 명의 아이들을 생각함 중 - P283

정치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할일을 사법 영역으로 들이미는 것은 정치를 검찰권에 예속시킴으로써 정치의 영역을 스스로 폐쇄하는 결과가 될 터인데, 이러한 자폐 행위도 정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_ 말하기의 어려움, 듣기의 괴로움 중 - P294

그러므로 ‘정의는 무엇인가?‘라는 거대질문보다도 ‘무엇이 정의인가?‘라는 소박한 물음이 오히려 인간의 편에 가까울 것입니다.

_ 말하기의 어려움, 등기의 괴로움 중 - P297

이 냄새는 똥 냄새의 대척점에 있었다. 똥 냄새는 사람의 몸이빚어낸 소화의 결과물이 갖는 평화로움이 있지만, 최루탄 냄새는 화학적으로 생산된 독극물의 공격성으로 사나웠다.
이 냄새는 말을 하려는 사람들의 입을 틀어막고 모이려는사람들을 헤쳐 버릴 수 있었지만, 이 냄새에 대한 사람들의 적개심을 더욱 크게 불러일으켰다. 이 냄새는 그 시대의 앞을 철벽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냄새 속에서 외치고 또 외쳤고, 그 사람들 위에서 최루탄은 거듭 터졌다. 이 냄새는 정치의 냄새였고, 정치를 거부하는 냄새였다.

_ 인생의 냄새 중 - P327

참호 속에서 전사한 병사의 넋이 생활용구로 변해서 돌아온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날 집에 돌아와서 나는, 생활은 크구나, 라고 글자 여섯 개를 썼다.

_ 새와 철모 중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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