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 - 쇠락하는 산업도시와 한국 경제에 켜진 경고등
양승훈 지음 / 부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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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측은 그저 노동자와 전면전을 피하면서 설비를 자동화하고 정보통신장비를 늘리고 조직을 재편하면서 생산 합리화를 수행했다. 노동조합은 생산 합리화에 따라 생산속도가 빨라지는것만 문제 삼았다. 하지만 생산 합리화가 기대하는 결과는 지난장에서 살펴봤던 노동자의 숙련이 필요 없는 작업장이다. 숙련이 사라진 작업장만 가득한 지역을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런 산업도시는 그저 제품만 찍어 내고 연구개발이나 현장의 혁신이 벌어지지 않는 단순한 ‘생산도시‘라 불러야 한다. - P192

노동자의 숙련과 회사의 처우를 교환하는 생산성동맹은 이미 와해된 상태였다. 정규직이라는 안전판이 없는 상황에서 생산직 노동자는 밀물처럼 들어왔다가 썰물처럼 떠나고 쫓겨났다. - P200

산업 가부장제라는 말은 낯선 말이고, 기존의 가부장제와는 좀 다른 개념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산업 가부장제는 특정 산업이 지배하고 있는 지역에서의 불균등한 성별 분업 구조가 만들어 내는 가부장제를 의미한다. 한편에서는 전통적 가부장제가 여성의 고학력화와 화이트칼라 및 전문직 노동시장 참여를통한 ‘맞벌이 모델‘로 무너지고 있다. 그에 비해 앞서 설명한 공간 분업과 국가의 공간 계획으로 조성된 산업지구에 역사적으로 누적된 가부장제가 바로 산업 가부장제라 할 수 있다. - P208

그러나 청년층의 고용 상황을 보면 ‘미래‘가 없음을 더욱더 직감할수 있다. 연령대별로 수도권(서울,경기)이나 동남권(부산, 경남)의 다른도시와 비교했을 때 울산의 40대 고용률은 견조한 수준이다. 30대도210tec비교적 괜찮은 수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울산의 20~29세 청년 고용률은 20년 동안 계속 하락해 왔다. 청년들에게 적절한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며 미래 전망이 불투명한 것이다(도표 3.7 참조). - P221

따라서 울산의 일자리 문제의 본질은 총량 부족이 아니라 화이트칼라 일자리의 부족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화이트칼라 일자리부족은 일시적인 시장 상황에 따라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4장에서 분석했던 공간 분업에 의해 점차 생산도시로 전락해 가는 울산의 경로에의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구직 수요와 구인 수요 간의 구조적 격차를 ‘구조적 미스매치‘라 부른다. 울산을 이끄는 3대 산업의 구상 기능이 계속 수도권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기존 대기업 일자리에서 사무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 P229

청년들은 현대중공업의 사내 하청 업체 비정규직, 현대자동차의사내 하청 아르바이트, 그 외 자동차·조선·석유화학 회사의 부품·모듈 하청 업체(N차 벤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과 세상 무섭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또 회사의 본공(상용직·정규직)이나 사무직으로 일하는 ‘형들‘을 보면서도 일이 고되고 늦게까지 일해 잠만 자는 모습, 벌이가 부족해 가정을 꾸리기에 빠듯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결국 그 길을 ‘미래의 진로‘로 선택하지 않게 된다.
최근에는 쿠팡·컬리 등 e-커머스 회사의 물류센터가 양산과 김해에 크게 세워져 다양한 형태의 플랫폼 노동이 청년 세대를 유혹한다.
청년들은 공장보다 벌이가 더 좋거나, 시간을 좀 더 유연하게 쓸 수 있는 플랫폼 노동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공장 노동은 점점 더 취업에서 ‘진로‘가 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아르바이트 후보지에서도빠지게 됐다. - P235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떠나는 것이 별스럽지 않다고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산업도시 울산과 동남권의 창원과 거제에서 청년이 비전을 찾지 못해 서울로 떠나는 일은 그 자체로 대한민국 산업도시 전체의 위기를 상징한다. 수많은 청년이 서울수도권이 아니어도성실하게 일하면 살만한곳, 국가와 대자본이 수많은 노동력을 흡수하기 위해서 만들었던 곳이 바로 울산으로 대표되는 산업도시였기 때문이다. 청년은 자신들이 배운 것을 발휘할 수 있는 대졸 일자리의 부족앞에서 울산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 산업도시의 미래 전망이 토대부터 흔들리고 있다. - P244

외벌이 남성 생계 부양자 경제는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부터 1998년 IMF 전환기까지 잠시 ‘환상‘처럼 떠올랐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IMF 이후 평생직장이 사라지고 여성이 일자리를 찾아 사회로 나왔다는 서사가 있다. 하지만 그 전에도 여성은 ‘야쿠르트 아줌마‘부터 시작한 각종 방문판매원이나 미싱사 같은 다양한 경공업 노동을 전업과 부업의 형태로 수행해 왔다. 그러다 남성 위주 정규직 화이트칼라 직군이수도권에서 늘고 산업도시에서 남성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이 오르면서 일시적으로 남자가 돈을 벌고 여성이 육아와 가사를 전담하는 ‘전업주부‘로 불렸을 따름이다. 노동사회학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 다양한서비스 산업과 비공식 경제, 그리고 경공업 근처 외부 노동 시장을 계속 맴돌았던 것이 해방 이후 대다수 한국 여성의 노동 경험이었다.‘‘ - P256

금융 산업의 클러스터는 서울 여의도와 강남-역삼역, 광화문을지로 반경 5킬로미터 안에 모여 있다. 미디어 산업은 서울 여의도와 상암DMC 주변에 모여 있다. IT 산업도 강남역-판교, 구로-수원 광교인근에 집결해 있다. 유통이나 무역, 항공 회사의 본사 모두 서울에 모여 있다. 전국의 실력 있는 고등학생은 42개에 달하는 서울 소재 대학으로 집결한다. 서울과 수도권의 인구를 합치면 2500만이 넘는다. 지식의 생산, 재화의 생산, 노동력의 공급, 막대한 소비자가 있는 것이다. 서울수도권은 모든 것이 상승작용을 하며 입지의 가치를 높인다. - P261

‘여성‘ 일자리를 만들든, 기존의 고임금 일자리 중 여성이 참여할수 있도록 채용에서 차별을 철폐하든, 둘 다 진행하든지 이젠 미룰 수없는 상황이다. 최소한 상황 인지가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없다. 아빠들이 피땀 흘려 일한 돈으로 공부를 마친 딸들이 묻는다. "왜울산에 살아야하죠?" 이 질문에 울산은 답하지 못하고 있다. - P269

그러다가 최근 10년간 산업도시를 되살려 내는 조치에 한창이다. ‘하르츠 개혁‘, ‘슈투트가르트 협약‘, ‘산업4.0‘(이하 독일), ‘제조업 르네상스‘, ‘IRA‘(이하 미국) 등 산업 정책, 기술정책, 혁신 정책, 노사관계 정책, 지역 정책을 망라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려 내려고 애쓰는 중이다. 그 이유는 지역에 제조업이 존속함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의 마중물이 된다는 점에서다. 그리고 제조업처럼 평범한 수많은 사람을 균등한 임금으로 고용할 수 있는 산업이 없기 때문이다. - P286

성평등을 고려해 전망 있고 안정적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노동시장정책, 달라진 학력 구조를 반영하는 직군 구조의 설계, 원하청 간이중노동구조가 만드는 차별의 해소라는 과제가 모두 앞에 놓였다. ‘평범한 노동자 중산층 3대‘를 이루기 위해 수면 위로 드러내야 하는 숨은가정이다. - P290

문제는 산업도시 울산을 살리기 위해 정부가 빠른 처방을 해야 할 이유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데 있다. 제조업 내에서 중화학공업의 입지가 줄어들고, 중화학공업 가치사슬 내부에서 울산 사업장의 입지가 줄어들고, 울산 사업장 내부의 노동시장 이중 구조가 더 악화되는 상황에서 산업도시 울산에 무엇을 기대하고 자금을 투여하거나 투자하겠는가. 앞선 위기에서 정부와 대기업이 자금을 지원하고 투자했던 것은 울산의 ‘중요성이 여전히 공고하고 앞으로 커질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었다. 제조업 관점에서 울산에 남은 것은 기존의 설비투자라는 ‘매몰비용‘과 기존의 제조업 생태계가 보유한 ‘일자리‘ 개수정도다. 뿌리기술, 혁신적인 기술 기업, 연구개발 기반 모두 울산의 취약점이다. 심지어 울산의 남성 청년이 정착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울안정적인 일자리 전망도 없다. 물론 여성 일자리의 전망도 없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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