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유산
심윤경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이 심윤경작가 팬으로 만들었다.>

1. 어디선가 본 작가의 이력은 궁금증을 자아낸다. 한겨레문학상외에 생물학 전공 이력이다. 그러다가 첫번째 읽기 시작한 책이 <영원한 유산>이었다. 자연과학 전공이라는 동질성에 살짝 어린 동년배 작가의 글은 매니아로 만들기에 출분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젊은 작가 소설에 흥미가 떨어진 시점에 심작가는 국내소설 읽기에 불쏘시개 역할을 했다.

2. 이 책을 읽기 2주전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시중인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에 다녀왔다. 고 이건희 회장이 생전에 모았던 미술작품 전시였다. 초대권이 있었던 바, 집사람은 관람에 소극적이어서 나 혼자 봤다. 전시작품을 봐야 하는가 아니면 수집가의 행적을 봐야 하는가 이슈로 집약되었다. 이 전시는 동산인반면, 책의 벽수산장은 부동산이란 차이가 있을뿐, 미술품과 건축물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가 문제는 고스란히 남는다.

3. 작가의 말에 한장의 사진이 소개되어 있다. 할머니와 함께 찍은 작가의 어릴적 사진이다. 그런데 희미하게 배경이 보여지는 건축물이 벽수산장이었다. 물론 현재는 철거되고 없는 건축물이다. 손꼽히는 왕실 친족의 친일파 윤덕영이 짓은 건물은 해방이후 전쟁을 걸쳐 UN산하 기구(언커드)로 활용된 바 있다.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문헌조사와 인터뷰까지 하면서 이 건축물이 가지는 의미와 맥락을 소설이 넣었다. 그런 점에서 한 편의 작품을 쓰기위해 철저히 준비하는 김훈 선생을 보는듯한 느낌도 받았다.

4. 이 소설의 주인공은 엄밀히 말하면 인물이 아니라 건축물이다. 그 건축물은 희대의 친일파 윤덕영이 남긴 대저택 벽수산장이다. 이 저택은 지금은 유엔 산하 한국통일부흥위원회(UNCURK)의 사무실로 사용된다. 소설에서는 언커크로 불린다.

5. 독립군의 아들 언커크 책임자 전담 통역사(이해동), 친일파 윤독영의 막내딸(윤원섭) 그리고 언커드 책임자(애커넌)이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비밀공간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미스테리 소설로서 구성 또한 치밀하다.

˝해동이 가진 것은 온통 미미한 것들뿐이었다. 아버지가 돼지막에 숨겼던 인쇄기, 생전에 고모가 쌓은 덕과 인정, 애커넌 씨와 개인간 고용으로 만들어진 언커크의 일자리. 그런 미미한 것들은 길가의 거미줄처럼 금세 더럽혀지고 아무 발길에나 찢어지고 제일 먼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런 것이 존재했다고 증언해줄 사람들도 뿔뿔이 흩어져 그것이 실제 있었다고 말할 근거조차 희박해지는 것들뿐이었다. 그에 비하면 윤덕영은, 벽수산장은 언커크는 얼마나 확실하고 단단하고 부인할 수 없이 존재하는가. ˝(248p 중)

6. 이 소설의 백미는 이해동에게는 벽수산장이 추악한 적산 건물이지만, 아버지의 유산을 절대적으로 우상시하는 윤원섭에게는 보존해야만하는 아름답고 영원한 유산이다. 실제 이 건물은 해동이 보기에도 아름답다. 대상의 가치는 그렇게 시점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역시 그 시점의 승패를 결정하는 건 힘의 문제다. 영원하고 아름다운 것의 기준은 어디에 있는가?

7. 윤원섭이 애커넌을 설득하는 논리와 욕망 또한 잘 그리고 있다. 윤원섭의 내면과 욕망을 철저하게 그려내는 작가의 글이 부러운 지점이자 이 작가에 빠진 이유가 아닐까?

8. 화재로 인한 건축물 훼손은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저택은 다시 복구될까? 아니면 이대로 무너져 기억 속으로 사라질까? 해동은 어느 쪽을 바라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저택은 나라의 것 같기도, 유엔의 것 같기도, 윤원섭의 것 같기도 했다. 친일파의 자손이 빌붙은 썩어빠진 집이기도 했고 세상에 다시 없이 아름다운 것이기도 했다. 적산, 그것은 그렇게 사람을 혼동되게 했다. 썩어문드러져 짜내야 할 고름인지, 다시 얻지 못할 귀중한 자산인지 알 수 없었다.˝ (274p)

9. 어느 수집가가 모았던 국내외 미술품 자체는 귀중한 문화 유산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다양한 형태의 일탈행위 또한 보지 않을 수 없다. 또다른 영원한 유산에서 소설에서와 같은 질문을 만났다.

9. <영원한 유산>, <나의 아름다운 정원>, <설이>, <사랑이 달리다>까지 읽고 <서라벌사람들> 읽고 있다. 신간 <나의 아름다운 할머니>는 주문하여 다음주중에 읽어볼 예정이다. <나의 아름다운 정원>의 동구 할머니와 정반대 캐렉터이지 않을까 생각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