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립학회에 파팽의 자리는 더 이상 없었다. 그는 1713년 쓸쓸히 런던에서 사망했는데, 실제로 증기기관을 발명한 토머스 뉴커먼은 파팽의 개념 설계를 그대로 베끼다시피 했다. 역사는 거의 언제나 영국인이 이기는 것으로 끝난다. _ 혁명은 밥솥 안에서 중 - P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