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이 머물다 떠난자리 들꽃같은 그리움이 피어난다
탁승관 지음 / 미래와사람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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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승관 저의 [노을이 머물다 떠난 자리 들꽃같은 그리움이 피어난다] 를 읽고

시란 무엇일까? 

솔직히 예전에는 문학의 장르 중에 가장 어려운 분야로 인식하고서 쉽게 접근할 수가 없었다. 

그 만큼 시 한 편을 쓰기 위해서는 보통의 인식으로 쓰기 힘들다는 생각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이런 인식이 달라지는 계기가 있었다. 

시를 어렵게만 보지 말고 쉽게 접근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일상사에서 보고 듣고 느낌을 가장 쉽게 풀어 표현해보자라는 마음으로 써보았다. 

물론 처음에는 어려웠지만 자꾸 써보면서 점차 쉽게 쓰여짐을 체험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시를 그리 어려운 분야가 아니라 아주 쉽게 풀어 쓰는 대상으로 접근하면서 훈련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나에게 맞닥뜨린 탁승관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은 참으로 나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시를 만들고자 하는 모범을 보여주는 것 같아 너무너무 반가웠다. 

우리가 생활해나가면서 이따금씩 떠오르는 상념들, 시간이 지나가면서 아스라져 가는 기억들, 나이를 먹어가면서 흘러가는 일상들이 아주 따스하게 그려져 있고, 그 글 속에는 슬픈듯하지만 포근한 그리움의 감정, 가족에 대한 사랑의 감정, 자연에 대한 애정 등이 가득 묻어 나온다. 언제나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 자신은 시 한편을 만들기 위해서 아직은 많은 행을 창작하지 못한다. 

그러나 시인은 자연스럽게 아주 장편의 시행을 창작해내고 있으며 고유의 시행을 통해서 향기나는 시어로써 향기로움을 전하고 있으니 대단하시다. 

거기에다가 직접 시구에 맞는 사진으로 담아서 독자들에게 위로와 희망을 선사하고 있으니 그 정성이 대단하다 할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결과는 결국 시인의 이십대 초반부터 꿈꾸어왔던 작가의 꿈이 결국 이루어 냈다는 점에서, 첫 번째 작품집 발간이 어려운 것인데 포기하지 않고, 계속 이 번 네 번째 시집을 발간하였다. 

그리고 현재 진행형으로 지금도 계속 진행하고 있다고 둘째 딸이 프롤로그에서 적고 있다. 

그리고 둘째 딸이 그 나이 또래에 중도 휴학이라는 방황기에 접어들었을 때 딸에게 해준 아버지의 따뜻한 조언의 교훈이 자녀들에게 큰 힘이 되었다는 점이다. 

바로 가족에 대한 사랑을 바탕으로 우리 주변에 언제든지 얼마든지 볼 수 있는 하늘, 구름, 빛, 풀, 꽃 등의 자연의 생생한 모습과 낮과 밤, 봄 여름 가을 겨울 등 사계절 시간의 흐름 등의 배경과 관련된 것이 많아서 친화적이고,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이 들어 좋았다. 

동시에 세월이 꽤 지나서인지는 모르지만 예전의 고향의 모습, 지나온 많은 추억의 시간들이 파노라마식으로 겹치면서 뭔가 아련하고 애달픈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이 시집에는 시인의 따스한 감정과 스스로의 체험을 담은 다채로운 시들이 수록되어 좋았다. 

자연과 아름다운 배경이 자주 등장하며 이를 소재로 하여 추억과 기억, 현재, 내면의 마음, 자기성찰, 일상의 잔잔한 행복과 살아 있음에 대한 감사, 삶에 대한 깨달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어 나같이 나이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더 지나온 시간들을 회상해보면서 새로운 다짐을 해보는 의미 있는 각오도 다지는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이 세상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애정의 마음을 가지고 생활하셨던 시인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어 나도 모르게 위로와 함께 미소를 머금께 하였다. 

그만큼 시인의 시들은 무언가를 놓치거나 갈 길을 잃어 방황하는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함께 길을 가겠노라 말해주는 따뜻한 위로가 되리라 확신하면서 일독을 강력하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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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죽음 이후 - 그리스도인의 위대한 희망, 죽음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
테렌스 니콜스 지음, 김연수 옮김 / 샘솟는기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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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렌스 니콜스 저의 <죽음과 죽음 이후> 를 읽고

우리에게 죽음이란 무엇일까? 

나이가 적을 때는 생각 자체도 해볼 수 없는 주제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 가장 일 순위가 되어감은 실제 닥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실체이다. 

난 올해 칠십이 되었으니 적은 나이가 아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귀한 인연으로 만난 팔십이 넘으신 한 어르신과 매일 카톡 대화를 주고받는 특별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높은 정규 학력과 경력은 물론이고 현재의 나이에도 자원봉사 센터에서 외국인 영어통역 봉사를 하시고 계시는데 글쓰기를 좋아하시고, 사주 명리와 영어소설 한국어 번역 공부를 하신다. 

현재 미국 LA에 살고있는 따님과 매일 영어로 카톡 대화를 주고 받는 매우 앞서 나가시는 문화예술 및 지식인이라 할 수 있다. 

하루하루 생활하시면서 보고 듣고 느낌을 글로 써서 주고받는 중에 가끔 ‘죽음’에 대한 언급이 나오게 된다. 

친구들의 예를 들면서... 

그러면 용기를 갖고 즐겁게 임하시면서 이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시라고 강력하게 주문하곤 한다. 

어르신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좋은 것들을 다 전해주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한다면서 말이다. 

신앙도 가지고 계시기 연세가 계신 만큼 어쩔 수 없이 주변에서 보거나 직면하게 되면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죽음이란 나하고 전혀 관련없는 거 또는 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주위에서 하나 둘 떠나가고 있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을 대할 때면 ‘아이쿠!’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 죽음에서 아예 벗어나고 싶지만 벗어날 수 없는 불가피한 현실이라면 죽음이란 무엇인지, 죽음 이후에 대해서 어떤 세계가 있는지 상세하게 알아보는 기회를 갖는 것도 절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다행이 나의 이러한 의문에 갈음할 의미 있는 책이 나와 너무너무 반가웠다.

죽음에 대한 전통적인 가르침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도전, 죽음과 죽음 이후 세계를 직면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가톨릭 신학자로서 연옥 교리를 설명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연옥 교리를 수긍하지 않는다. 
대학교에서 신학 교수로 27년을 재직한 저자가 세인트 토마스 대학교 마지막 수업으로 ‘죽음과 죽음 이후 세계’를 주제로 강의한 교재를 책으로 출판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은 죽음이 후의 삶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 죽음이 이후의 삶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이 책은 저자의 깊은 통찰에서 시작된 죽음에 대한 길에 대한 안내서와 같다. 
이러한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확실한 길을 제시하면서 그 죽음을 대하는 자세를 설명한다. 
가톨릭 성도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안내서로 보인다. 
개신교 성도들에게도 죽은 이후의 가톨릭의 관점이 무엇인지를 쉽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화합 차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나같이 비그리스도인에게는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참으로 좋은 시간이 되었다. 
결국 이 책은 잘 죽기 위한 일종의 신학안내서라고도 할 수 있다. 
잘 죽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을 나열한다. 
더 사랑해야 하고, 더 나누고, 양보하고, 결국 인생이라는 게 준비하는 만큼 죽음 이후의 삶이 천국에서의 영원한 삶으로 이어짐을 말한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이 세상 가운데 불확실하고 고통만 있는 세상을 빨리 떠나고 싶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우리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못한다.그래서 이 책은 죽음을 새로운 시작이라고 말한다. 
신학적 접근을 통하여 죽음과 죽음 이후의 세계를 알려준다. 
저자가 죽음 이후의 세계를 경험하지는 못했지만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어떻게 대비할 수 있을는지를 알려준다. 
죽음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관한 깊은 신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그렇지만 누구나 언젠가는 맞이하게 될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를 심도 있게 살펴보면서 자신에게 닥칠 죽음을 준비하는 것, 그리고 두려움이 아닌 당당하게 맞이할 수 있는 죽음이 필요할 것이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죄에 대한 구세주로 믿고 고백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에 대한 소망을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는 나 자신에게도 어김없이 닥쳐 올 죽음의 세계! 
어떻게 잘 준비하고 대처해 나갈 것인가? 

이제 오직 나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 

책에서 서술하고 있는 죽음은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죽음에 대한 진지한 검토와 자세를 통해 나만의 성스러운 죽음을 준비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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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인간, 그리고 하나님 - 실재에 대한 통전적 앎을 위한 과학과 신학의 연대
이안 바버 지음, 김연수 옮김 / 샘솟는기쁨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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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안 바버 저의 『자연 인간 그리고 하나님』 을 읽고

 
 

인간으로서 나 자신에 대해 얼마만큼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정말 궁금할 때가 있다. 
벌써 나이 칠십이 되었으니 이제 인생 후반부에 접어들었고, 마지막인 죽음을 맞이해야 할 입장에 있지만 솔직히 나 자신을 이해 못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할 때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종교와의 관련성 여부이다. 

신봉하는 종교의 믿음과 신을 통하여 더 안정적으로 생활해 나갈 수가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본다. 

하지만 나 자신 아직 어떤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지 않아 자세한 종교적 지식을 갖고 있지 않다. 

많이 낯설기는 하지만 주변의 지인들을 포함하여 전문 신앙인을 통해 기본적인 지식 등은 들어 알고 있다. 

그렇지만 전문적인 종교적인 이론이나 지식 등에 대해서는 평소 대하는 바가 없어 너무 빈약하다. 

특히 인간과 신의 관계로부터 출발하여 자연과 인간 그리고 하나님과 관련 내용에 대해서도 솔직히 잘 알지 못할 정도로 생소하다. 다행히 이번 기회에 종교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우는 ‘템플턴 상’을 수상한 과학자이자 종교학자인 이안 바버의 이 책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어 참으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저자는 기술과 과학을 메타적으로 바라보며 이를 윤리, 종교와 연결하여 조화적으로 성찰하는 데 탁월한 진전을 이룬 저술가로서 실제에 대한 통전적 앎을 위한 과학과 신학의 연대를 주장한다. 

인간은 자연의 일부이자 하나님의 자손이자 본래 그대로인 존재다. 
세상의 규칙과 질서를 원했기에 과학이란 학문을 탄생시켰고 내적인 갈망을 해결하기 위해 신을 찾아 나선 것이다. 

저자는 인간을 앎에 있어서 과학과 신학의 연대를 주장한다. 

과학을 감안하고, 복음의 주된 메시지를 보존하면서 전통적인 맥락의 하나님과 자연과 인간에 관한 양상을 다시 구현할 수 있을까? 
과학 기술이 갖는 의미는 물론 과학과 신앙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균형있게 제공하는 이 책은 상호배타적이 아니라 양립 가능한 관계임을 제시한다.과학 속에서 인간다운 삶에 대한 이해, 신학적 맥락의 인간 이해에 대해 새로운 통찰을 담고 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과학과 종교의 대화 다섯 가지 핵심은 
진화론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서로 양립 가능한가? 진화론이 타락과 원죄 같은 전통적인 기독교 인간 이해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신경과학이 전통적인 인간의 영혼 이해를 지지할 수 있가? 오늘의 세계관 안에서 하나님의 전능 개념이 유지될 수 있는가? 그리고 생태학과 환경 윤리, 이와 관련한 사회적 정의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이 그리스도인을 과학과의 열린 대화로 나아가게 하고, 비그리스도인을 신학과의 진지한 대화로 이끌기를 기대한다. 

나 자신 비그리스도인이다. 그 동안 곁에서만 지켜보았던 하나님과 신학, 종교에 대해 더 자세하게 익힐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더 나아가 우리 지구촌의 가장 큰 문제인 환경 문제와 과학 등의 관계와 근본적 문제를 다루는 윤리학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더 심오한 내용으로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으로 장식할 수 있어 나 자신도 미력하나마 하나의 조그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자랑스럽다!


“소비문제와 관련해서 기독교 전통은 행복한 삶에 대한 비전을 제공해 주는데, 그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을 덜 소비하는 방식의 삶을 사는 것이다. 기독교 전통은 기본적 욕구가 충족되었을 시, 영적 성장과 인격적 관계성들의 증진과 공동체의 삶에 진정한 성취감에 놓이게 된다고 말한다.”(.285P)


“종교 공동체들은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최상의 상태에서 넓은 범주의 가치를 창출하는 데 헌신할 수 있다. 대안정책들의 결과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시, 종교기관들은 공익에 관한 균형잡힌 견해를 제시하는 데 있어서 잠재력을 지닌 공동체이기 때문이다.”(.295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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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3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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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저의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 을 읽고


 



각자 개개인이 갖고 있는 고유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나란 사람과 함께 동일인으로 생각하며 기억할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각자 나름의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당신의 얼굴, 이것만 있으면 완벽하다!' 

대한민국 대표 프론티어라 불리우는, 이어령 교수가 과학과 인문으로 말하는 얼굴의 완성법에 관한 얼굴 이야기에 흥미를 가질 필요가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생겼을까?’, 생각해본 적이 적어도 한 번은 있을 테다. 
그리고 적지 않은 독자들은 자기 맨 얼굴을 보며 이 부분만은 달라졌으면 하는 욕망을 품은 적이 있을 것이다. ‘창조의 아이콘’, ‘대한민국 대표 지성’ 이어령이 과거부터 우리 얼굴에 담긴 비밀과 앞으로의 ‘얼굴 완성법’을 밝히고 있다. 

책 속에는 아프리카의 초원부터 시작하여 얼어붙은 시베리아를 거쳐 한반도에 이르는 인류의 대장정이 펼쳐진다. 

한국인의 외모에 대한 과학적 비밀이 맑고 깊은 북방의 ‘바이칼호’ 속에 감춰져 있다. 

한국인들이 흔히 고치고 싶어 하는 작은 눈, 뭉툭한 신체 말단(코, 귀 등)이 만들어진 원인과 아울러, 그것들이 인류의 프론티어성, 곧 ‘모험 유전자’의 산 증거임이 드러난다.

『바이칼호에 비친 내 얼굴』의 얼굴 탐사는 과학이 책임지는 필연적 사실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을 넘어서는 가능성은 오롯이 인간의 창조에서 발견된다. 

그것이 바로 ‘문화’. 문화의 어원이 ‘문신’(文身)이라는 사실을 발견한 독자라면, 화장품과 성형을 뜻하는 영단어(Cosmetic)의 어원이 ‘조화 또는 질서’라는 것에도 그리 어색해하지 않을 것이다. 

이 문화 현상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무질서’를 극복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하지만 화장과 성형으로 ‘물리적’으로 고치는 것만이 꼭 해답은 아니다. 

왜냐하면, 얼굴을 진정으로 완성하는 것은 ‘표정’, 그중에서도 ‘눈빛’이어서다. 

내 얼굴에 ‘나’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인류 진화의 역사가 얼굴에 담겨 있다. 

먼 과거로의 여행이 여러분 얼굴에 담겨 있는 거다. 

직립보행(直立步行)을 하고 거리를 잴 수 있는 섬세한 눈을 지녔으며 멀리서 들리는 짐승의 발소리를 듣는 귀, 여기다 딱딱하거나 질긴 음식을 조각낼 수 있는 튼튼한 치아 등 오감(五感)의 진화가 바로 우리 얼굴에 담겨 있는 것이다.

지금 우리 얼굴 속에 미래로의 여행도 숨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먼 미래, 100만 년 후 우리 후손들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요? 

정말 궁금하지 않나요? 

그 실마리를 푸는 증거가 지금 여러분의 얼굴에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고금동서를 통틀어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나 아이돌은 과연 당대 최고의 미남미녀들이었는가. 

타고난 미모는 오히려 부차적이다. 

사람들은 무대의 그들이 문화적으로 생성하는 아우라에서, 그들의 표정에서, 한국적인, 더 나아가 세계적인 정신을 대변하는 무언가를 보고자 했다. 

이 책은 결국 바로로 그것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알파고와 이세돌로 읽는 인공지능과 생명과학 이야기, 

윤동주의 시로 읽는 꿈과 소망 이야기 등 다양한 테마로 한국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살펴보는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전 10권)의 최신작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어령이 말하는 우리가 조상으로부터 계승받은 것, 그리고 (그중에서) 계승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이어령에게 한국문화의 정수란 ‘생명’이다. 

한국인들의 태교에서, 젓가락에서, 또는 일제강점기의 유년기에서 보았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으며, 한국인의 얼굴에서 이어령이 보려고 하는 것도 역시 그 생명의 눈물, 생명의 눈빛이다. 

오직 그것만이 화장이나 성형을 뛰어넘어 영속적이며 자연의 무정함과 대결해 살아남는다. 

한국 바깥에서도 알고 싶어 하는 우리 문화의 개성과 저력을, ‘한국인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시선으로 직접 조명한다. 

‘생명자본’과 ‘문화유전자’ 두 키워드로 한국인의 미래상을 그리는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60년을 이어온 이어령 한국문화 대탐사의 완결편인 한국인의 얼굴이야기 읽기를 적극 권한다!


“내 얼굴을 찾는 순간은, 내 얼굴을 만지는 순간이 아니라 타인의 눈과 내 눈이 마주쳐 그 안에서 삶의 어떤 순간들, 행복한 순간이었든 슬픈 순간이었든, 생명의 어떤 순간들을 맛보았을 때, 비로소 내 얼굴은 완성되는 것입니다.”(216P)


“그 눈 안에는 시베리아로부터 추위를 견디며 이곳까지 걸어온 한민족이 보입니다. ‘나’라는 개체와 수천 년 내려오는 우리 DNA 속의 한국인의 얼굴이 마주치는 순간입니다.”(217P)


“이제 우리가 서로 눈을

마주할 때가 왔구나.

가면도 벗고 복면도 찢고

별과 별이 몇억 광년 떨어져 있어도

서로 마주 보듯이

어찌 흐르는 눈물을

성형하랴.

어찌 빛나는 그 눈빛을

화장하랴.

그게 내 얼굴이다.

그게 인간의 얼굴이다.

그게 내 나라의 얼굴이다.”(217~218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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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강의
이어령 지음 / 열림원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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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면서 벌써 교단을 떠난지 7년째 접어 든 나만의 교사 시절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당연한 소회이면서 아쉬움마저 드는 것은 그 이후 나만의 모습 변화와 함께 귀한 인연을 맺은 위 제자들이 자신만의 목표를 향해 열심히 임하고 있을 모습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그 동안 만나 소통을 한 제자도 많이 있지만 아직 대부분은 상면을 하지는 못하였어도 항상 마음으로 간직하면서 성원하고 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시간들은 역시 우리 학생들과 함께 했던 시간으로 솔선수범 부지런한 모습으로 앞장서서 보여주었던 행동들이다. 

05시에 기상하여 가장 먼저 학교에 출근하였다. 

전체 교실을 돌면서 칠판 오른쪽 상단에 오늘의 좋은 말 한마디를 적어 학생들이 등교하면 제일 먼저 만나도록 배려하였다. 

항상 목걸이와 어깨띠 구호를 통해 가져야 할 지켜야 할 자세를 적어 보게 하였다. 

손에 환경정화 통을 들고서 휴지를 언제든지 줍고 다녔으며 아침 등교시 교문에서 전체 학생들과 교직원으로 인사로 맞이하였다. 

수업 시간에는 질문을 많이 하도록 유도하였다. 

바로 이와 같이 학생들과 함께 하려 했던 소중한 교직 체험의 시간들은 언제 돌이켜 보아도 최고의 직업으로서 가장 보람찬 시간이었음을 자랑으로 간직하고 있다. 이 책은 이 시대의 지성, 故 이어령 선생님의 2주기를 맞아 출간된 『이어령의 강의』이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지 2년이 흘렀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의 글을 통해 선생의 앞서나가는 해박한 지혜를 구한다. 

평생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유로운 지적 유영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마지막까지 세상에 남을 이들에게 자신의 지혜를 나누고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생명 자본주의, 디지로그 등을 제시하며 빠르게 변하는 시대 속에서 우리와 이 사회가 살아남을 방법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 이 책은 젊음의 가치, 젊음의 조건, 젊음의 자격……이어령 선생님이 이 시대 젊은이에게 남긴 젊음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이어령의 강의』는 그런 그의 가르침을 담은 책이다. 

선생의 수많은 강연 중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10편을 가려 모았다.

“떴다 떴다 비행기”로 지금까지 회자되는 서울대학교 입학식 축사(2008)부터 ‘생명 자본주의’를 이야기한 한국선진화포럼 월례 토론회(2010), 그리고 “검은 카메라 렌즈” 앞에서 비대면으로 치러진 서울대학교 후기 학위수여식 축사(2021)까지, “전 세기의 모순과 문제를 떠안은” 채 “새 패러다임을 시작”한 젊은이들에게 이어령 선생이 전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떴다 떴다 비행기 날아라 날아라”

더 높은 세상을 향한 배움과 창조의 즐거움

적지의 최전선에서도 언제나 배움을 멈추지 않았던 선생은 단순히 지식을 쌓기 위해서가 아닌 “자기의 삶을 창조”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공부할 것을 당부한다. 

“배운 것을 취합해서 묻는 것”이라는 학문의 본질로 돌아가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가득 찬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끝없이 질문”하라는 것이다. 

선생은 “이 물음이 창조의 하나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며, 이를 통해 “종래의 패러다임을 바꿔” 뜨는 것에 그쳤던 우리의 삶을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게 해야 한다면서도, “지혜는 지식 속에서, 지식은 정보 속에서” 죽어가는 현실에 안타까움을 나타낸다.

“여러분은 사실상 어렸을 때 전부 천재들이었어요. 

왜? 끝없이 물었어요. 

어머니한테 묻고, 아버지한테 묻고, 사람들한테 물었는데 그 물음을 누가 죽였나요? 

어른들이 다 죽여버린 거예요.”(276p)(…)

“여러분이 나이가 들고 학교에 간다는 것은 질문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는 거예요. 

새가 왜 우냐고 어린애들이 물으면 답변을 못 하면서도 부질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인간의 모든 창조는 질문에서 나오는 것이지요.(277p)” 

이와 함께, 선생은 “문화의 힘, 언어의 힘, 예술의 힘이 세계를 지배”하는 새로운 시대에서 우리 젊은이들이 앞서 나갈 수 있는 창조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바로 ‘눈물’과 ‘외로움’이다. 

세종대왕도, 아인슈타인도, 퀴리 부인도 울부짖음과 상처가 있었기에 위대한 발명이 가능했음을 밝히며, 자신의 내면에 있는 고통과 외로움을 마주하고 그것을 극복하여 창조의 원동력으로 삼는다면 우리도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을 것임을 이야기한다.

세종대왕을 보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아인슈타인, 레오나르도 다빈치, 퀴리 부인, 이러한 천재들을 죽여왔느냐를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창조적인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니다. 

창조적인 사람을 따돌리고 못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결국에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남았기 때문에 창조적인 발상을 하지 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태 교류’를 통해 교감하는 종족이 오늘의 젊은이입니다.”

배움과 창조를 통해 젊음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전하지만, 결국에는 ‘생명’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창조해도 그 안에 “생명의 꽃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두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이어령 선생은 이 세대의 젊은이들을 “‘생태 교류’를 통해 교감하는 종족”이라고 표현한다. 

신체감각을 활용해 개발된 아이폰(iPhone), 위(Wii) 등을 사용하고, 영화 〈아바타〉를 보며 “지구인보다는 나비족”의 편을 드는 세대. 

선생은 이 세대가 기계와 산업이 “당연시된 현 문명의 프로세스를 어떻게” 생명 중심으로 변화시킬 것인지에 대해 물을 날이 머지않았다는 말도 남긴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들은 생명에 굶주려 있다. 

살고는 있는데 사는 게 아니다. (…) 

자기가 살아 있다는 걸 체감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고 사람을 죽인다. 

피가 분출되는 그 상황에서 자신의 생명 존재를 느낀다. 

그들의 일상에서는 자아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 

이게 아날로그 결핍증이 낳은 병폐라고 말한다. 

이어령 선생은 생명으로 가득한 세상을 꿈꿨다.

“리빙(living)을 라이프(life)로” 바꾸고 “산업 기술이나 기계 기술의 패러다임, 금융자본주의의 패러다임을 생명 시스템으로 바꾸”기를 바랐다. 

그리하여 선생은 “평범한 생명의 생동력을 사랑하고, 울고 환호하는 생생함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을 만들라”는 이야기를 덧붙인다. 

모든 것은 계산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던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컴퓨터나 과학이라는 이름 밑에” 의존하지 말고 “38억 년의 기나긴 세월 속에 축적된” 자연의 지혜를 배우며, 이를 인간의 기술과 융합해 새로운 시대를 이끌어가야 함을 강조한다.

과학을 맹신하는 사람이 인간의 지혜로 생명체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만들고 나서 보니 그 결과는 괴물이었다.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자연이 만든 생명체는 아름다움과 조화가 있는데 인간이 만든 생명체는 괴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1백 년, 2백 년밖에 안 되는 인간의 과학기술로 만든 생명이 신이 만든, 적어도 38억 년 동안의 긴 세월을 통해 만들어진 생명과 비교가 됩니까?

“우리는 멋있는 삶을 살아낼 멋진 사람들입니다. 오늘도 멋있게 사세요.”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 “디지털 세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앞당겨 학습하게 되었고, 동시에 살결 냄새나는 오프라인의 아날로그 세상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배움, 창조, 생명, 이 세 가지 모두 중요하지만, 선생은 그 무엇보다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주어진 것에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폭”을 넓히는 것. 이것이 가능해야 생명 가치를 바탕으로 한 배움, 창조가 가능하며, 비전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까지 우리의 젊은이들이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남을 따라가는 삶”이 아닌 나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삶을 살기 바랐던 이어령 선생. 

『이어령의 강의』를 통해 언제나 젊은이들이 잘 살기를 소원했던 그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란다.

아마도 10년 후, 20년 후 나는 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때 여러분은 필록테테스처럼 마지막 영광의 승리를 가지는, 상처와 함께 당당하게 트로이전을 승리로 이끄는 그런 숨은 활의 재능들을 꽃 피우리라고 생각한다. 

그날을 기대하면서, 그것이 실현되리라 생각하면서 여기에서 오늘 이 이야기를 마친다고 말하는 선생의 강의는 올곧으면서도 지혜로움으로 가득 차 학생들의 받아들이려는 각오로 가득 차있는 모습들이 참으로 대견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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