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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깐깐하게 무엇에 대해 말하면 좋지 않은 태도라고 욕 듣기가 쉽다.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며 꼬치꼬치 캐물어야 할 분야도 있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철학하는 사람이 글을 쓰거나 질문할 때 그랬으며


특히 책을 읽을 때, 전문서를 읽을 때가 그러하다.


 왜 이러한 꼬장꼬장한 태도를 취해야 하냐면, 철학이 엄밀한 개념을 추구하는 학문이기도 하거니와


제3세계에서 철학을 하는 입장에서 보통은 번역서를 통해 다른 나라의 학문을 수입하여 배우므로


번역이 잘못되었다면 철학서를 자칫 잘못 이해할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번역은 진짜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이다.



 몇몇 번역서에서 네이버 사전을 가지고 뜻을 짐작해내는 이 어설픈 사람에게도 눈에 띄는 오역들이 많다.


그래서 학문 분야의 번역서 및 거의 모든 분야의 번역서를 예전처럼 편하게 읽을 수 없다.


책이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안 건 대학원생이 된 이후에서였다(학부는 이런 분야가 아니었으므로...)



 그래서 내가 원하는 건 제대로 책의 오역을 짚어내고 정확하게 독해하는 것인데


그런 데 도움을 주는 책이 <잔혹한 책읽기>이다. <번역의 탄생>이 한국어답게 들이미는 번역을 알려주며


한국어의 특성에 대해 깨닫게 하는 번역계몽서였다면, 잔혹한 책읽기는 그리스 로마 문헌학자, 서양 고전학 연구자인


강대진의 번역비평서이다. 전문지식을 가진 학자가 어떻게 이 책이 이런 오역을 하는지 단순히


문법상의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 수의 번역이 그리스 로마 문화, 문헌에 대한 무지로 인해


오역한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 


 번역 비평은 주제별로 하는 것은 아니고 각 책마다 한 장으로 이루어져 있고, 


총 12장 중 영어책은 6권, 불어 책은 5권, 독어책이 1권이다(그리스어, 로마어, 영어, 불어, 독어... 저자의 어학실력이 부럽다)


손이 많이 가는 번역이지만 제대로 비평하며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련지 모르겠다.


번역 시비에 관해서 소송당한 분들도 있고... 참(이유는 오역을 지적한 일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무서운 일을 그리고 독자 입장에서는 소중하고 귀한 작업을 한 저자 강대진에게


감사한다.



목차

- 서문

1. 그리스 미술
2. 라틴문화의 이해
3. 로마제국사
4. 고대 그리스의 미술과 신화
5. 서양건축기술사
6. 매혹의 그리스 - 낯선 곳으로의 열정
7. 그리스 신화 - 1. 신들의 시대
8. 신의 가면 3 - 서양신화
9. 사생활의 역사 1 - 로마제국에서 천 년까지
10. 창조자들
11. 중세의 가을
12.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ps. 내가 번역비평서나 번역 기술에 대한 책을 즐겨 읽는 이유는 여전히 회피하는 습관 때문이다(말과 사물이여... 아직도 난해하다)


아직 읽는 중이라 정확한 리뷰를 하기는 힘들지만, 책을 번역하는 일을 


엄청난 책임을 요구하며 사명감을 가져야 하는 일 같다.


 멋진 번역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뜻을 곡해하여 독자를 방해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하지만 나도 곡해하고 있다ㅠ)


오역을 안할 수가 있을까? 모든 일이 차이를 낳는 반복이면, 원본 그대로는 없겠지만


어차피 다 같은 오역이나 다 동일한 질을 가진 번역일 수 없다. 의미 있는 번역이 있을 터이다.


덧붙임 1.


로마로 돌아오자면 자신의 군대를 버려야 한다는 전통을 모르므로

오역을 저지른 번역자를 지적하는 대목에서(61쪽), 저자는

"로마로 돌아오기 위해선 그의 군대를 내쫓아야 했음은 물론이다"(라틴문학의 이해 101쪽)

라는 문장에서 내쫓다는 표현은 '해산시켜야''한다는 표현으로 바꿀 것을 지적한다.

Pour rentrer a Rome, il lui fallait se défaire de ses armées p59


미세한 소립자급 오타로 생각되지만

내가 본 초판 1쇄본에서는 défaire의 é가 빠져 d faire로 쓰였다.

그래서 '(작은 따옴표)가 빠진 게 아닌 가 생각했으나

그럴리도 없고 내쫓다나 해산시키라는 표현이라면 défaire라는 단어가 맞을 것 같다.


깐깐한 저자에게도 오타는 피할 수 없는 실수이다(대체로 이러한 실수는 교정을 보는 편집자의 책임이기도 하다)


75쪽에서도 마찬가지로 l'accent aigu가 붙은 é가 생략되어 표기되었다

아무래도 글에서 é가 인식이 안 되어서 이런 자잘한 실수들이 생긴 듯 하다.

l'égypt로 쓰여진 듯 한데, l' gypt로 표기되었다.

난 의미상 오류를 찾아내는 데는 별 재주가 없지만

형태상 뭐가 빠진 걸 보는 거만 잘한다.


Le titre implique souvent une carriere au service du prince, qui conduit du service militaire aux procuratele et aux grandes prefecture : celles des dux flottes, des vigiles, de l'annone, de l'Egypte, du prétoire p.14



79쪽 Dès 84, il devint censeur... 인데 Dés 84로 되어있다

dés란 단어는 불어에 없는 걸로 알고 있고

Dès ~부터라는 뜻이다.


오만한 타르퀴니우스Tarquinius Superbus도 Suberbus라 쓰여있다.

번역자의 superbum이 훌륭한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만한이라는 의미를 가진다고 지적하면서

타르퀴니우스의 칭호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이다.



표기 오류가 있지만 책은 재밌게 읽고 있다(서양 고전에 대한 상식도 쌓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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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4-15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보고 책이 땡기네요.^^.

prouesse 2015-04-15 00:54   좋아요 1 | URL
책에 나온 저자의 글을 보면 신뢰가 갑니다. 강추합니다!

Cathy.Kwak 2015-05-23 1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대진 교수님과 일리아스 읽고 있는 중입니다,, 교수님과은 방송대 `신화의 세계`를 인연으로 강의를 이주에 한번 듣고 있는데 넘 좋습니다,, 고전을 너무 흥미롭고 쉽게 접하게 해주셔서 일리아스도 거뜬합니다,,

prouesse 2015-05-27 03:20   좋아요 0 | URL
좋은 선생님에게 강의를 직접 들으신다니 부럽네요^^ 좋은 안내자를 만나는 것도 행운인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처음의 태도는 '빌어먹을 것'이었다.


딱히 경제적 전문지식이 없어서일지도 모르겠지만, 내게는 '공공의 것'을


민간에게 넘겨주는 행위 자체가 고깝게 보였다. 이윤을 생산하기 위한 자본주의 경제에서


단순히 효율성을 위해 모든 관리를 민간에게 넘긴다면, 물 등의 공공재라든가


철도, 항만 등의 SOC를 이용하기 위한 일반 시민들의 비용이 급증하게 된다는 생각이었다.



 경제사 영역에 대한 다른 이야기를 접했을 때(예를 들면,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에서 푸코의 이야기)


어쩌면 생각할법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현재의 경제 양극화라든지, 빈부격차나 


고질적이며 넘기 힘든 경제적 난제들을 생각해 볼 경우, 신자유주의를 아무런 비판 없이 수긍하거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더라도 체념하게 되는 것은 내가 취하고 싶은 태도는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나의 출발점은 사태에 대한 이해고 그러기 위해서는 또 책을 꺼내든다.


단순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도식적 해결(왜 그런 일이 생겼나? 신자유주의 때문이지. 라는 간단한 해결)보다 사태에 대한 적절한 이해를 할 수 있는 복잡하지만 심층적인 안내를 해주는 책들을 읽고 싶었다.


첫 번째 책은 복잡하지만 심층적 이해와는 다르지만 다양한 관점을 취할 수 있는 책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것은


비전문가도 경제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으며 내야 한다는 저자의 문제의식이다.


별다른 수식어가 또 필요하겠냐만 장하준 교수의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이다.


원제가 더 마음에 든다. <Economics -The user's guide>


대세이자 거의 절대적 진리로 여겨지는 신고전주의 경제학파의 지식에 더하여, 고전주의, 마르크스, 개발주의, 오스트리아 학파, 슘페터 학파, 케인스학파, 제도학파, 행동주의 학파 등 다양한 학파의 이야기를 더한다(4장). 그리고 2부에서는 실제 경제의 대상이나 난제들(생산량, 금융, 불평등과 빈곤, 일과 실업, 국제적 차원 등)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두 번째로 고른 책은 <신좌유주의의 좌파적 기원>이다. 홍기빈 교수 이름은 들었지만 정작 저자인 조하나 보크만은 처음 들어보는데, 책 제목이 매력적이기도 하고, [로쟈의 저공비행] 서재에서 보았기 때문에 그냥 샀다(내가 매출 10권 중 1권은 올렸답니다).


 신자유주의는 복지 국가가 해결하지 못한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었지만, 그 반발이 애초부터 극심했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정말 신자유주의가 우리 삶을 뿌리채 잡아먹고 있는건지,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는 이를 해결할 것인지, 과연 해결방안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물음을 해결하고 싶다.














신자유주의가 삶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삶을 빼앗는 무엇에 대해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는 아니였을까? 논문 글쓰기와는 정작 관련없지만 당장 궁금한 것들이다. 자유주의와 생명정치와 관계를 잘 설명해내는 것이 원래 내논문의 목표이기도 했으니까 아예 무관한 바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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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의 역사 1권을 강독하면서(구경하고 따라하면서) 느끼는 바지만


문체는 여전히 복잡하고 어렵다. 무슨 말을 이리 복잡하게 쓰는가 싶다.


 푸코의 성의 역사가 읽기 쉬워진 탓은 아마도 내 사전 찾고 의미 찍기 실력이


나아져서인 듯 하다. 별로 좋아할 건 없다.



새로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고통과 희열이 공존하는 과정이다.


현재로서는 걍 고통만 가중되는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외국어를 익히는 데


무조건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줄은 알지만, 당면한 과제가 많아서


초조하고 불안하다. 아직 논문 목차나 개요를 짜지도 못햇다. ㅠㅜ


교수님을 당장 피해다니는 수 밖에 없다.



 이전에 말과 사물 강독을 해봤던 적은 있는데, 이전에는 무슨 깡으로 


그걸 읽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다. 지금과 마찬가지로 단어만 무조건 찾아댄다.


책은 또 다시 봐야하는데, 읽어내야 할 것들을 잘 찾아내고 숨겨져 있는 새로운 것들을


조합해서 의미를 제대로 간파해야한다.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내가 프랑스어를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분간은 이를 우선하여 작업을 진행하겠지만 


난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죄책감과 조금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기대감을


계속 오갈 것 같다.



물론 한국어 실력을 더 길러야 한다. 내 요상한 한국말을 개선하기 위해


<고종석의 문장 1>을 읽을 것이고, 번역을 잘하기 위해서(외국어와 한국어의 차이를


비교하니 한국어의 특색을 잘 읽을 수 있다) 이희재의 <번역의 탄생>을 읽는 중이다.


또 학술적 글쓰기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어서 <공포를 날려버리는 학술적 글쓰기 방법>까지


사놓았다. 내가 불안해하는 각각의 욕구마다 책을 마련해놓으니 순간 안심은 되지만


뭐든지 책으로 해결보려는 끈덕진 습성 때문에 조금 우습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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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를 단순히 우울로 번역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맹정현의 신간이 나왔으므로 글을 적는다.


내가 습관적으로 구매하는 분야 중의 하나인 멜랑콜리에 관한 저술이 새로 나왔다. 


맹정현의 글쓰기 문체를 닮고 싶은데, 리비돌로지 서문을 읽으면서 저자를 부러워하게 되었다.


세간의 평도 좋고,


내가 책을 성실히 읽는 편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많이 구매하는 저자가 있는데 그게 맹정현의 책이다.


또 나도 모르게 많이 구매했던 저자는 하이데거였다.(개인적으로는 하이데거의 학문적 성취는 존경하지만 좋아하지는 않는다).


책이 15000원이니 두꺼운 책은 아닐테고, 집에 책을 둘 공간이 없긴 하지만 


곧 사게될 듯 하다.



나는 책의 목차를 유심히 보는 편인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프롤로그
들어가는 글: 감정의 거짓말
1강. 애도, 슬픈 노동
2강. 대상의 그림자에 갇히다
3강. 당신을 먹고 당신이 되다
4강. 멜랑꼴리, 초자아의 만찬식
5강. 감정의 민간요법에서 우울의 정신분석으로
6강. 멜랑꼴리의 검은 구멍
7강. 죽어 있는 삶인가, 살아 있는 죽음인가
찾아보기

책이 속해 있는 총서 제목은 '프로이트 커넥션'이다. 출판사의 글을 참조하면 
'초반에는 정신분석학에서 우울증에 대한 논의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프로이트의 두 논문, <애도와 멜랑꼴리>와 <자아와 이드>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물론 프로이트의 저술이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진 않는다. 프로이트의 논리에는 멜랑꼴리에 대한 해결되지 않는 모순들이 발견된다. 바로 거기서부터 라깡을 경유한 멜랑꼴리에 대한 탐구에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다. 중반부에는 그러한 모순점들을 라깡의 관점에서 접근하여 멜랑꼴리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후반부에는 그동안의 논의들을 토대로, 애초에 이 책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주제, 즉 우울에 대한 주체의 여러 가지 포지션들을 검토한다. 우울과 불안은 어떻게 다른지, 신경증적인 우울증과 정신병에서의 우울증은 어떻게 다른지, 신경증에서 우울이라는 감정이 나타날 수 있는 다양한 계기들은 무엇인지, 또 동일하게 정신병의 범주에 속하는 멜랑꼴리와 편집증의 유사성과 차이는 무엇인지 등의 세부적인 문제들을 다루게 될 것이다.'

내가 우울증에 관심을 두는 이유는 학문적 호기심이기도 하고, 근대의 근본 정서이라는 하이데거의 논의에도 공감해서이다. 개인적으로 '냉소'에도 관심이 가는데, 이것은 어떤 것에 대한 태도이지, 감정까지는 아닌 듯 하다. 
'냉소'와 '우울'을 동시에 겪는 주체는 세상에 직접적인 개입을 회피하는 주체라는 게 나의 어설픈 가설이다.
내 사고구조가 별로 체계적이지 못해서 이건 그저 나의 직관에 불과할 뿐이지 이를 뒷받침할 
근거들을 당장 제시하지는 못한다.

아무튼 저자의 글쓰기에 대한 신뢰에 더하여 내가 관심가는 주제인 멜랑콜리에 대한 책이니 
또 아니 살 수가 없다.

또 사야할 책은 'The government of life : Foucault, biopolitics, and neoliberalism'이다.

내 논문주제가 포함된 책인듯 하고, 하지만 내용이 실한 책일지는 잘 모르겠다.
일단 도서관에 신청해놨는데, 도착하면 읽어보고 필요하면 사야겠다.
렘케의 'biopolitics- an advanced introduction'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서가에 없는 도서라고 신청해놨긴 했는데
내 논문에 관해서는 처음으로 읽어야할 책이다.

 뭐 그 책이 당장 없어도 푸코의 인간학, 통치성 강의, 말과 사물만 꼼꼼하게 정리하는데도 
한참이 걸리므로 상관없다. 당장 할 일을 피하기 위해 멜랑콜리에 관한 책에 집착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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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는 내 의지와 다소 관계없이 읽었던 책들이다.


물론 그 책들 모두 현대 철학 및 논문을 써야하는 내 미래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책들이지만


당장 읽고 싶었던 책들은 아니었다. 언젠가는 꼭 읽어야지 생각했지만...



 2월에는 다소 하스스톤에 정신을 빼앗기며 공부를 안하기는 했지만


뒤늦게 noo-politics라는 이상한 용어를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고심하며, cortex와 axon,


dendrite를 배웠던 것을 떠올리며,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괜시리 발동했다.


그래서 유시민의 정치카페를 들으며 충동구매했던 <김대식의 빅퀘스천>을 


시험 대비 하는 것처럼 꼼꼼하게 보았다.


 자신의 분야에서 이미 인정받는 학자이면서 다른 분야에 사람이 보기에도


인문학적 지식이 충만한 과학자의 글쓰기는 너무 부러웠다. 사건의 본질적 핵심을 잘 건드리며


과학이 갖는 장점인 미래 사회에 대한 기술적 변화를 구체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점에


철학이 하는 역할은 다소 무력하기도 한 것 같다.


 현실과 분리된 체계의 정합성만을 논의하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는 별로 추구하고 싶은 일은 아니다.


과학기술로 인해 사회의 부, 소유, 민주주의, 생활방식, 생명이 변화할진데


현실의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는 논박은 사회에 실질적으로 무슨 정치적 효과를 던질 지


의심스럽다.


 새로운 지식이 더해지는 중이라서 뉴턴의 프린키피아처럼 완전한 체계를 서술하는 작업보다는


새로운 진리가 검증받고 추가되는 생성하는 과정으로서의 과학에 대한 지식을 흡수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생각해보고 미래 사회에 대한 예상 및 위상변화를 


감지해보고 싶다.


김대식의 빅퀘스천은 별 5개를 모두 주고 싶다.


러셀의 과학의 미래는 별 4개. 당시 시대의 과학적 발견에 비해 현대의 과학적 진리는 


그의 글에 의문을 품게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러셀의 재기넘치는 문체와 통찰 때문에


책을 꼼꼼하게 보고 있다.


 아이패드 에어2를 사면서 내 독서 습관도 많이 바뀌었는데, 정말 중요하고 내 주의가 수반되어야 하는 책의 부분은


타이핑을 치고, 아니면 camscanner로 사진 찍는다. 





 또 이제 논문 작성을 하려면 책을 많이 빌려야 해서 무슨 책을 빌려야하나 생각하면서


도서관 대출내역을 꾸준히 봤는데 빌리기만 해놓고 안 본 책이 90% 넘는다.


정작 봐야할 책은 2년 반 동안 3번 빌리고 읽다가 말아서 안타까운데, 


그 책은 T. Lemke의 <Biopolitics-an advanced introduction>이다. 그래서 또 4번째 빌릴 예정이다.


어쨌든 대출내역을 보며 다시 빌릴 책을 정리하니 18여 권정도 된다.


논문도 다 찾아서 정리하고, 책도 다 일괄해야하니 참 할 일은 많다.



과학 관련 도서를 빌리는 것은 아마 지금 해야할 일을 안하기 위한 반발적 독서일진데


그래도 급변하는 현실에 대한 자각을 일깨우는 독서라는 점에서 위안을 삼을 예정이다.


 또 느낀 건 러셀처럼 글을 잘 쓰고 싶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과 과학자 김대식의 차이는


문체의 정합성이나 재기넘침, 심도의 깊이가 다르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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