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학의 역사에 나타난 이데올로기와 합리성 대우학술총서 신간 - 과학/기술(번역) 598
조르주 깡귀엠 지음, 여인석 옮김 / 아카넷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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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르크스주의를 한 번이라도 접한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 대해 부정적 시각을 견지할 것이다. <독일 이데올로기>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 카메라 옵스큐라에서 실제 사물에 대한 상, 이미지가 거꾸로 맺히는 것처럼 현실의 실제 관계를 왜곡하여 표상하는 현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사물과 인식의 관계의 역전"(42)을 일컬을 때 이 개념을 사용했다.<자본>에서 실제 노동자가 생산품에 자신의 노동을 통해 가치를 부여한 것을, 화폐는 마치 그 가치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처럼 마술같은 효과를 내세움으로써 현실을 왜곡한다고 마르크스가 말한 것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실제로 이데올로기라는 용어는 18세기 프랑스에서 이데올로그들이 만들어 낸 용어이다. 이데올로기는 "관념의 생성에 관한 과학"이다. 오히려 관념들의 연합을 연구하고 실증적으로 다룸으로써 당시 신학이나 형이상학에 반하는 자유주의적 가치를 보이기도 했다.(42)

 여기서 말하는 이데올로기가 전적으로 부정적인 의미만을 띄는 것은 아니다. 캉길렘은 자신이 미셸 푸코와 루이 알튀세르 이론에서 영향을 받아서 과학적 이데올로기 개념을 도입한다고 말한다. 특히 알튀세르에게 이데올로기는 현실과는 다른 상상적 인식에 관한 것이며 마르크스와 동일한 궤를 이루는 용어이다. 하지만 캉길렘이 말하는 이데올로기는 "과학성을 성립할 수 있는 장애물이기도 하지만 조건"(46)이다. 한마디로 과학적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빌려온 과학성의 기준을 넘어서서 대상에 적용되는 설명 체계"(53)이다.

 캉길렘은 과학철학과 과학사를 연구한 의사이다. 먼저 철학을 공부한 후 다시 의학박사를 받은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이며, 물리학과 화학에 기반을 두어 과학철학을 연구한 가스통 바슐라르와 후에 광기, 성, 감옥, 규율권력, 생명정치, 신자유주의, 통치성 개념을 연구한 철학자 미셸 푸코를 잇는 계보에 속한다. 이 계보는 역사적 인식론으로 불리며, 흔히 가정하는 연속적인 과학적 진보를 믿기 보다는 과학사는 불연속적으로 진행하며 각 과학적 영역에는 고유한 합리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을 한다.

 특히 이 글에서 캉길렘이 개진하는 주장 하나는 생물학적 합리성을 다른 합리성을 가진 다른 영역에 확장시키는 것이 이데올로기라는 것이다. 개체는 다양한 기관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한 유기체이며 유기체의 생명과 질서에 관한 은유에 빗대어, 사회에도 동일한 규칙과 합리성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 역시 과학성을 벗어난 담론이다. 또한 우리가 영구불변한 진리로 여기는 물리학의 합리성을 생물학의 영역에 적용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 캉길렘은 돌연변이가 발생하는 현상은 물리학에서는 마이너스 엔트로피의 양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차이가 없다고 말하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생명체는 정상적 기능을 할 수 없으며, 자가생식이 불가능하고, 생존을 할 수 없는 상태라고 지적한다(158). 
 
 이 글에서 꼭 읽어봐야 할 부분은 제2부 3절 생명과학의 역사에서 정상성 문제이다. 생물학에서 왜 정상성 개념이 중요한지 짚어내며, 나온지 200년을 겨우 넘긴 새로운 학문의 과학성을 성립하는 과정의 역사를 다룬다.

 이 리뷰는 이 책의 가치를 단순히 어렵다고 폄하한 한 리뷰어의 글을 반박하고자 쓴다. 이 책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책은 아니고, 당대의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며 정밀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문지식이 필요하다. 게다가 그의 학술적 작업은 역사적 인식론의 계보에서 생물학과 의학의 역사에서 과학성이 어떻게 성립하는지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철학적 작업이기도 하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이 글이 어렵기만 하지는 않다. 전문서를 기준으로 한다면, 문체도 그렇고 번역자의 노고 덕분인지 꽤 깔끔하게 잘 읽힌다. 책도 본문만 친다면 160쪽 내외에 지나지 않는다.

 죽음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철학적 사유는 많아도 이에 관한 과학사적 사유, 과학철학적 관점은 대중적으로 접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한다. 특히 질병이란 무엇인지, 건강이란 무엇인지, 생명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사유가 궁금하다면 난 캉길렘의 저서를 꼭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미 과학철학이 널리 알려진 와중에, 생명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내세운 캉길렘의 관점은 단순히 의학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 관한 새로운 앎을 열어줄 것이다. 특히 정상과 병리를 규정하는 것에 관한 캉길렘의 박사학위 논문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은 그의 대표 저작이자 우리에게 정상성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되묻게 한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캉길렘을 68 혁명 세대의 철학, 부르디외나 자신의 철학, 라캉의 철학을 이해하려면 캉길렘의 사유를 이해해야 한다고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의 영어판 서문(1978)에서 주장한다. 생명체에게서 오류의 역할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이러한 생명체인 주체가 과연 불변하는 진리를 생산하는 것이 옳은건지 묻게했기 때문이다. 푸코의 평가는 차치하더라도, 물리학과 화학에서의 과학적 엄밀성이 지배하는 것 같지 않은 생물학과 의학의 문제를 탐구한 캉길렘의 글이 더 많이 읽히기를 바라며 도서관에서라도 많이 대여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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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머 씨 이야기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유혜자 옮김, 장 자끄 상뻬 그림 / 열린책들 / 199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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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는 이 책을 먼저 읽었지만 좀머 씨를 생각하면 인간실격의 요조가 떠오르는 건 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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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빅퀘스천 - 우리 시대의 31가지 위대한 질문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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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쓰기 재능을 가진 뇌과학자라니! 박식한데다가 깊이 있는 글들로 가득차 있다. 때는 이르지만 올해의 책으로 꼽을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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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그리고 무한 - 칼링가 상 수상자 대표작 김영사 모던&클래식
조지 가모브 지음, 김혜원 옮김, 곽영직 해제 / 김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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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은 아직도 현실세계에 대해서 신비한 마법과도 같다.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현실, 그 가슴 뛰는 마법>처럼 과학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모든 지식을 알게 된다는 지루함보다는 오히려 호기심과 경이를 자극한다. 이 책은 약 50년전에 나온 책이지만 현재 발행된 고등학교 과정까지의 과학책보다 오히려 최신의 과학적 지식을 쉽게 전한다.


 피타고라스는 음악의 질서를 현의 길이의 비례를 통해 찾았다. 그러한 수적 비례를 통한 질서를 조화로운 우주도 동일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우주Kosmos를 수의 세계로 이해하려는 기원전 3,4세기의 한 철학자의 세계관은 17세기 과학혁명을 지나 21세기에서도 유효한 관점이다. 세계는 수학을 통해 양화시킬 수 있으며, 예측하고 필연적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의 저자 조지 가모프는 이러한 피타고라스의 세계관을 받아들인다. 단순히 수를 세는 행위에서부터 우리를 둘러싼 자연세계, 궁극적으로는 우주의 신비를 밝히는 과학을 그 어느 과학자보다 재치있게 표현한다. 원자의 구성부터 우주가 탄생하는 순간을 계산하고 그 증거에 대한 예측까지(그의 생각은 후에 빅뱅 이론으로 불린다)과학과 수학을 통해 인간의 상상력과 호기심은 사실을 탐험하는 도구가 된다,


 수가 무한을 세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의 지각을 뛰어넘는 우주의 구조를 파악하기 위한 준비가 된 것 같다. 실존할 수 없는 허수를 정의함으로써, 위치를 새롭게 표현할 수 있는 도구를 얻고, 무한한 우주에 대해 탐구할 수 있다. 또한 미시의 세계, 원자의 구조를 어렵지 않게 들여다 볼 수 있으며, 20세기 혁명적인 과학이론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이해도 쉽게 할 수 있다. 또한 유전자에 대한 지식이 그의 사후에 급속하게 이루어진 탓에 생물학이 발견한 더 많은 사실을 알 수는 없지만, 이 당시 알려진 유전적 지식의 신비로운 발견은 사라지지 않았다. 거시우주에 대한 내용이 그의 전작에 많이 기술된 탓에 분량이 조금 적은 것이 아쉽다.


 다양한 과학의 분야의 발전으로 이러한 천체물리학과 미시세계를 다루는 물리학, 위상기하학, 생물학의 지식을 통합하여 이해하는 것은 일반 대중의 힘으로는 너무 어렵다. 연구에만 파뭍히지 않고 자신이 경험한 과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서술하는 것은 또한 과학자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작업을 해낸 조지 가모프 덕분에 50여년이 지난 후에도 과학의 경이를 간직되어서 다행이다. 과학은 일부의 것이 아니라 모두가 이해해도 좋은 더이상 비밀스럽지만은 않은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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