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정철상 지음 / 라이온북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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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번 직업을 바꿔야만 했던 남자

정철상 글


공부에 대한 머리가 없어(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학력을 쌓지 못하고 인맥도 없어서 변변한 직장에 들어갈 수 없었던 저자가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죽도록 일해서 오늘날의 번듯한 모습으로 설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열심히 사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끊임없이 도전하고 좀 투박하더라도 끝까지 일을 완수하고자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직장을 서른 번 이상 옮겨야 했던 저자지만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선다. 이런 다양한 경험이 현재의 위치에 있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자기 계발 중

특이하게 뉴스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너무 방송 뉴스를 보는데 시간을 많이 투자하지 말라는 대목이 머리를 쳤다. 대부분 깊이 있는 것도 아니고 편집자에 의해 각색된 것들이기에 생각과 사고의 폭을 넓힐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일주일에 2~3번 보면 된다고 한다.


자신을 있게 한 원동력을 그는 6가지로 말하고 있다. 사랑, 가난, 연애, 교육, 책 그리고 실패다.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을 찾아 볼 일이다. 그리고 거기에 열정을 부을 때 삶이 달라지리라. 으래 그렇듯이 인생의 멘토를 이야기한다. 벤저민 플랭클린, 공병호, 피터 드러커가 그들이다. 멘토는 나를 이끌어 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반드시 롤 모델이 있어야 한다. 성장해야 하고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에게는 열정이 있다. 끊임없이 도전하는 적극적인 자세가 있다. 청년에게는 끊임없는 도전정신과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다. 그 앞에 펼쳐진 드넓은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좌충우돌할 수 있지만 항상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청춘이다. 오늘날 청년들이 입시와 취업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부딪치고 싸워 이기길 바란다. 적극적인 자세를 배운다. 나와 함께 하는 이들이 많지 않더라도 나의 길을 묵묵히 가고자 새롭게 마음을 다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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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인정한 믿음 - 영의 생명을 보호하는 7가지 진짜 믿음 Spurgeon Wisdom 2
찰스 H. 스펄전 지음, 송용자 옮김 / 터치북스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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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인정한 믿음

찰스 스펄전 지음/ 송용자 옮김


7가지 믿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편집자가 스펄전 목사님의 설교가운데 예수님께서 직접 믿음에 관해서 언급하신 구절을 선택했다고 한다. 다소 도전적인 자세로 책을 읽도록 충고한다. ‘내 안에 예수님은 계신가?’ ‘그러면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열매 없는 신앙은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극상품의 포도에 접붙임 봐 됐는데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이런 가지는 잘라 내야 한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예수님은 저주 하셨다. 결국 이 무화과나무는 뿌리부터 말라 죽었다. 너무나 섬뜩한 얘기다. 그러나 이것이 실상이다. 반석위에 기초를 쌓는 믿음과 예수 그리스도위에 연결된 믿음 그리고 거듭남을 통한 믿음을 저자는 적고 있다. 또한 우리가 범하기 쉬운 위선에 대해서 저자는 날카롭게 지적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열매 맺을 수 있는 길은 예수님에게 붙어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 사람을 말할 때 우리는 열매로 판단한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하면서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또는 실한 열매가 아니라 쓸모없는 열매만 맺는다면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돌아보면 향기로운 열매보다 악취가 나는 열매를 더 내놓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고 마음이 많이 찔린다. 특별히 위선자의 모습이 내 안에 많은 것을 보고 애통한 마음이 든다.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없고 지속적인 투쟁이 없어서 내적 외적 열매가 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음을 돌아보게 된다. 좀 더 단순히 믿음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초기 사도행전의 제자들처럼 외적인 것보다 본질적이고 내적인 복음전도의 삶과 말씀과 기도에 착념하는 삶을 살아가고자 다짐한다.


스펄전 목사님의 날카롭고 단순한 메시지를 듣고 싶은 이들에게 많은 유익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너희가 무엇을 보러 광야에 갔더냐? 말씀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아니라 회개와 결단의 메시지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젊은이들에게 도전이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 날 주님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는 칭찬을 모두 들을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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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 내 인생의 전환점
강상구 지음 / 흐름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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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에 읽는 손자병법

강상구 지음


인생을 어느 정도 경험 해 본 나이, 40에 손자병법을 다시 읽는 것은 어떨까? 직장에서 중간간부가 되고 대외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접하게 되고 난 후 세상을 보는 눈은 20대 팔팔했던 때와 분명히 달라질 것이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비굴해졌다고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살아가기 위해 상대를 속여야 한다는 것이 좀 서글프지만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저자가 기자란 직업을 가졌기에 현장에서 수많은 권력자들, 소시민들을 만나보고 내린 결론일 것이다. 오늘 인사청문회 소식을 들었다. 위장전입이 처벌대상이란다. 본인이 2번 위장전입을 했지만 권력에 오르면 위장 전입자들을 처벌할 계획이란다.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 것은 필요하지만 양심까지 다 팔아야 하는 지 생각해 볼일이다.


손자병법을 원문으로 읽어 본 일이 없기에 저자가 하는 말에 토를 달 만한 위치에 있지 않다. 저자는 원문의 순서대로 동일하게 구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양 전쟁사나 중국 역사에서만 예화를 가져온 다른 책들과는 달리 예화를 우리 역사에서 가져오는 시도를 했다. 대부분 삼국사기에서 가져왔다.


저자가 40에 읽은 손자병법은 비겁의 철학이다. 되도록 싸우지 말아야 한다. 왜 첫 번째 돈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싸움이 시작되었으면 반드시 이겨야 한다. 어떤 방법은 그 다음 문제다. 이기되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 어설프더라도 빨리 마무리해야 한다. 진정한 싸움꾼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자이다.


이 책을 통해 손자병법과 삼국사기를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의 말처럼 인생은 선과 악이 아니라 ‘삶’ 그 자체일까? 그 경계가 애매보호하기에 그 ‘무엇’을 추구하기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일까? 결론은 독자의 몫이다. 저자의 말처럼 손자병법은 싸워 이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공존하는 법을 배우는 책일지도 모른다. 싸움이라는 것이 남의 것을 빼앗는 것이라면 적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사오든지 내 마음에서 그 욕심을 내려놓으면 되지 않을까? 일단 싸움이 일어나면 서로 간에 적지 않은 피해가 있기 마련이고 계속적으로 그 영향이 내려오기 마련이다. ‘공존의 방법’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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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임재 연습 -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발견하기
앤드류 머레이 지음, 정혜숙 옮김 / 브니엘출판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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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의 임재연습

앤드류 머레이 지음/ 장혜숙 옮김


제자들이 3년동안 예수님과 함께 하면서 많은 말씀을 들었고 이적과 능력을 체험했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로 신앙고백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붙잡히심을 보고 도망하고 예수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다. 이런 그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기도하면서 오순절 성령강림을 체험하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담대한 복음의 증인이 되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저자는 성령님에 대해서 아주 조근 조근 설명하고 있다. 성령님의 실체와 활동 그리고 어떻게 우리가 성령님을 내 안에 모시고 충만하게 하며 그 축복이 넘치게 할 수 있는지 본문을 통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독자들이 조금 이론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곰곰이 생각하면서 묵상할 때 잔잔한 감동이 밀려올 것이라 생각된다.


우리가 구원받은 자로서, 구별된 자로서 살아가려면 반드시 성령 충만을 입어야 한다. 어떻게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는가? 저자는 먼저 오순절 성령강림이 신성한 사실임을 굳게 믿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현재 내가 이러한 축복을 소유하지 못했음을 깊이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 있을 때 성령 충만을 덧입고자 하는 강한 소원이 생긴다. 그리고 저자는 말한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나는 성령 충만의 축복을 소유할 것이다.” 라고 계속해서 고백하라고 권한다. 더 나아가 “나는 값비싼 진주를 구하는 구매자다. 나는 오순절의 충만한 축복을 얻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나는 그것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가질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러한 결정에 의해 나는 머무르고 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는 데 방해 요소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욱 견고한 믿음으로 이를 이겨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성령의 축복을 받은 자는 이제 성령이 나를 온전히 지속적으로 사로잡아 내 안에 충만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하여 내 안에서 성령의 축복이 차고 넘쳐서 강물이 흐르듯이 흘러나와 생수의 강이 되기까지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 나의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소원을 내 안에 채워가야 한다. 골방에서의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하나님에 대해 알아감의 신실한 노력과 열정을 통해 조금씩 나를 버리고 하나님을 채워가 결국 하나님이 나의 일부가 아닌 전부가 될 때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다. 결국 문제는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어야 한다. ‘순종’이라는 훈련을 통해 우리가 조금씩 자아를 버리고 하나님을 체험해 가고 그의 세계에 들어가게 되는 것 같다.


많은 신자들이 성령 충만함을 덧입고 이 땅에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길 소망한다. 특히 이 땅에 젊은이들이 하나님이 나의 전부임을 고백하고 복음의 증인의 삶을 살아가길 간절히 소망한다. 성령 충만함을 통해서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받고자 다짐하며 많은 이들이 이 책을 통해 도전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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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 - 1659년 5월 4일의 비밀
오세영 지음 / 시아출판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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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벌

오세영


치열한 싸움. 병자년의 국치를 갚기 위한 이완과 유형원 그리고 윤헌을 비롯한 북벌파의 노력과 왕권을 회복하기 위한 효종 그리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송시열과 송준길을 비롯한 서인들의 모습과 소현세자의 억울한 죽음을 복수하고 새롭게 왕위를 계승하고자 하는 성명욱과 그의 상단 사람들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숨 막히게 전개된다.


소현세자에게서 느꼈던 연민이나 부국강변에 대한 의지보다 복수에 대한 느낌이 강하다. 정치논리가 깊이 깔려 있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과 이익이 충돌하는 것이 극단적이다. 이처럼 정치판에 정치가 실종되면 서민은 등 꼴이 터진다.


청의 철저한 감시 때문에 조선에서 군사력을 강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이러한 가운데 북벌계획은 훈련도감 대장 이완과 효종의 강력한 의지 가운데 차근차근 진행된다. 그러나 소현세자를 따랐던 성명욱은 그들의 무모함을 지적하며 북벌계획을 저지하고자 하고 더 나아가 효종을 암살하려 한다. 암살은 실패하지만 결국 독살시킨다. 반면 우암 송시열과 송준길을 중심한 서인들과 대신들은 표면적으로는 북벌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의지가 없고 이 핑계 저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고 결국은 주저앉게 만든다. 그들은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왕권을 무력화시킨다. 특히 송시열은 노회한 교활한 정치인으로 등장한다.


연암 박지원이 허생전을 통해서 보여주었던 양반들과 지배계층의 무능함과 비겁함을 곳곳에서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미완의 허생전을 이어 이 책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도 북벌은 여전히 미완으로 끝난다. 허생과 이완이 윤헌에게 북벌의 바톤을 이어 주지만 윤헌 역시 역사 속에서 살아진다.


우리에게 북벌은 어떤 의미일까? 현실적인 이들에게는 무모한 불장난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오랑캐에게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한 숙원으로 인식되었을지 모른다. 저자는 북벌이 실패한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고 있다. 최소한 청이 망할 때 까지 특별한 변란 없이 서로의 이익을 주고받았다. 소로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고 본다.


언제나 지배계층은 변화를 싫어한다. 그러나 국가와 조직은 끊임없이 변화해야 한다. 누가 이러한 변화를 주도할 수 있을까? 열정과 패기와 용기를 가진 이들이 필요하다. 제 2의 윤헌 종사관을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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