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나요, 청춘 - Soulmate in Tokyo
마이큐.목영교.장은석 지음 / 나무수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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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배고픈 보헤미안, 세 남자의 이야기다.

  예술에 그 뜻을 품고 있지만, 실제로 품은 뜻이 밥벌이에 그리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배가 고픈 보헤미안. 유독 이런 장르의 책들은 도쿄에서의 생활을 담고 있는 것 같다. 이 책도 도쿄에서의 유랑기다.




  사진쟁이 은석, 그림쟁이 영교, 그리고 음악쟁이 마이큐는 각각의 카테고리 속에다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세 명의 ‘쟁이’들은 이 책을 통해 소리쳐 외친다. 즐길 수 없는 일을 하기엔 혹은 즐길 수 있는 일만 하기에는 어차피 인생은 짧다고. 언제든지 다시 시작하는 법만 잊지 않고 있다면 무엇이든지 시작할 수 있다고. 인생이란 무엇을 이루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이다. 다 맞는 말이라는 것을 우리 역시 모두 가슴 속 깊이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들에게 ‘현실’이라는 것은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자꾸 망각하게 만든다.




  이 책에는 도쿄의 여러 면면들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함께 실려 있다. 이게 바로 여행 에세이를 읽는 묘미라고 할 수 있다. 사진이라는 걸 제대로 볼 줄 몰라서인지, 원래 예술이라는 것에는 영 눈이 어두워서인지, 그들이 담은 사진들에서 나는 어떤 일관성도 찾을 수 없었다. 여행과 에세이와 그들 내면의 모습이라는 어떠한 연관성도 찾지 못한 채, 나는 그들의 글과 사진을 바라보았고 책장을 넘겨나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하게도 어울리지 않아보이던 사진과 글이 하나가 되어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잘 지내나요, 청춘.

  제목에 대한 나의 대답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내 청춘이 잘 지내고 있는 건지. 지금 이대로가 괜찮은 건지.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지 말이에요. 정말 정답이라는 게 있어서 그 길로 누군가 나를 이끌어주었으면 좋겠어요.”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술술 넘어가는 책장과는 달리 내 마음에는 무언가가 쿵, 하고 내려앉는 것도 같았다. 모르겠다, 요즘 들어. 모든 것에서 자신감을 잃어가고, 모든 것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만 같다. 이런 게 소위 말하는 정신적인 방황이라는 걸까. 나야말로 제 2의 사춘기 속에서 한창 헤매고 있는 걸까. 사춘기 청소년들이 차츰 철이 들어가듯이, 나도 시간이 흐르면 알아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을까. 내 불안한 마음에 스스로 물어보게 된다. 저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리고 그들의 조금은 불안한, 조금은 어지러운 꿈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엿보면서. 어쩌면 그들로부터 약간의 다독거림을 받고 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청춘.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어떤 것과도 바꾸고 싶지 않을 만큼 소중한 말이 아닐까.

  아름다운 말, 청춘을 나이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면서 정의 내려 보길 바라본다.













      지금의 너는 힘들고 외롭겠지만,

      지금의 그 고통들이 너를 자라게 해서 다른 사람을 감격시킬 거야.

      네 미래를 기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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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안 1 - 마리 이야기
에쿠니 가오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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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리 적지 않은 <우안> 이야기를 읽자마자 <좌안-마리 이야기>를 펼쳐 들게 되었다. 남자의 시각으로, 그리고 여자의 시각으로 쓰인 같은 이야기의 책은 바로 이런 매력을 가지고 있다. 같은 상황을 언제나 남자와 여자는 조금은 다르게 받아들인다. 그것을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를 통해 이렇게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좌안>은 마리의 이야기이다. 마리의 시각으로, 마리의 생각을 담아 책은 앞으로 나아간다. 어려서부터 항상 자기 마음대로 천방지축 살아온 마리. 사춘기에 접어들며 마리는 점점 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린다. 마리의 인생에는 술과 숱한 남자들뿐이다. 그런 마리가 큐에게만 애정을 쏟으며 정착하기란 힘든 일일 수밖에 없다. 마리와 가장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바로 ‘정착’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마리의 인생은 큐의 것만큼이나 당장 내일도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흘러갈지 혹은 어디로 흘러갈지. 마리는 그렇게 수많은 남자들과 만남을, 이별을, 그 과정들을 반복한다.




  큐가 비극을 안고 태어났던 것처럼, 마리에게도 어려서부터 시련을 겪으며 자란다. 너무나 사랑하고 존경해마지않았던 오빠, 소이치로의 자살을 시작으로 마리의 웃음이 넘쳐나던 가정은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집안 공기는 무거울 대로 무거워져 있고, 누구 하나 밝은 모습을 되찾지 못하고 서로를 겉도는 느낌만을 주었다. 마리는 그때 처음, 상실의 아픔을 겪었고 상실이 불러일으키는 불안감을 맛본다. 마리의 정서는 그야말로 불안 자체가 되었다. 엄마가 가출을 했을 때도, 드디어 찾은 인생의 반쪽이 사고로 죽음에 이르렀을 때도.




  마리와 큐, 이들은 서로 각자의 사랑을 하고 각자의 인생을 산다. 거의 인생의 반 이상을. 그런 후에 만난 이들은 이제는 어느 정도 인생에 초연하고 모든 것을 겸허하고 자연스레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아마 그것은 끊임없이 마리의 의식 속에서 외치는 소이치로의 목소리, 더 멀리 가라고, 더 초연해지라고 주문하는 소이치로의 목소리 때문인 것도 같다. 아오이와 쥰세이 같은 열정적이고 불타오르는 사랑은, 적어도 이 둘 마리와 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그래서 뭔지 모를 허전함을 주기도 하고, 이들에게서 공허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들의 사랑은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종류의 사랑이 아니었기 때문에 <좌안>과 <우안>이 좀 더 생소하고 색다르게 느껴지는 건지도 모르겠다.




  큐의 이야기를 읽을 때도 그랬지만, 마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솔직히 무릎을 칠만큼 소설 속 인물들로부터 공감을 형성하지는 못했다. 내가 그렇게 작중 인물들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건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글을 ‘읽을 때마다’였던 것 같다. 역시 이번에도. 공감하지 못하면 그만큼 책을 완벽히 이해하기도 힘들고, 받아들이기도 힘들다. 그럼에도 왜 계속해서 이들의 글을 찾게 되고, 읽게 되는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럼에도 4권, 절대 적지 않은 양의 이 책을 읽고서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들의 모든 것이 인생에 대해 소리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인생이란 이런 거라고.




  ‘좌안’과 ‘우안’을 큰 흐름의 두 강이라고 하였는데, 마리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특히 더 이야기가 강의 느낌을 많이 주는 것 같았다. 파도가 치는 격정적인 흐름이 아니라, 잔잔하기 이를 데 없는, 고요하고 차분하고 섬세하게 그리고 담담하게 흐르는 강물의 느낌을 마리를 통해서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 인생이란 바로 이런 거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거였을까. 무언가 뻥 뚫리지 않은 것 같은, 조금은 답답하고 무거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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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안 1 - 큐 이야기
츠지 히토나리 지음, 양억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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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다. <우안-큐 이야기>. 예약구매까지 해가면서 기다리게 만들었던, 츠지 히토나리의 신간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도 그랬듯, 남자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먼저 손이 간다.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의 흐름을 파악하고, 여자 이야기를 읽으면서 공감을 형성하는, 이 둘, 츠지 히토나리와 에쿠니 가오리의 이야기를 읽을 때면 생겨나는 나름의 습관이랄까.




  마리와 큐. 이 둘이 주인공이 되어 <좌안>과 <우안>의 이야기는 각각 진행된다. 이 책은 큐의 이야기인데, 읽으면서 어떻게 여자의 이야기를 마리가 주인공이 되어 이끌어나갈지 의아한 마음도 들었다. 둘이 함께했던 시간보다는 떨어져 있던 시간이 많았기 때문이다. 마리와 큐는 이웃으로 인연을 맺는다. 그리고 둘의 사이에는 소이치로가 자리하고 있다. 마리의 오빠이면서 큐의 우상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 어려서부터 철학자와 같은 소리를 툭툭 내뱉어 또래 아이들과는 무언가 다름을 보여주었던 소이치로다. 그러나 그의 그러한 남다름, 비범함은 소이치로를 자살로 이끈다. 어린 큐에게 우상, 소이치로의 죽음은 충격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후 큐에게 나타나는 여러 징후들은 이미 저 세상으로 떠난 소이치로와 큐를 계속해서 이어준다.




  이야기 속에서 큐는 비상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소위 초능력이라고 불리는, 손쉽게 숟가락을 휜다거나, 예지몽을 꾼다거나, 공중부양을 하고, 물건의 위치를 이동시키는 등의. 어린 시절 우연히 발견하게 된 숟가락 휘기에서 그의 능력의 모든 것은 시작한다. 그리고 그의 이러한 능력은 더 세지기도 하고,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기도 한다. 이는 순전히 큐의 무의식적인 내면에 따라 좌우된다. 큐는 그 출생에서부터 자신의 인생에 비극을 안는다. 그리고 그 비극은 큐가 어린 시절을 거쳐 자라면서도 계속된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스쳐 지나가는 사람, 좀 더 깊숙이 들어오는 사람, 묘한 인연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그들과의 만남 속에서 큐는 인생이라는 것에 ‘통달’하게 된다.




  사람을 구원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났지만 정작 어떡해야 좋을지 방법을 몰라 헤매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큐는 자신의 운명을 조금씩 찾아간다. 주어진 운명을 거부하려하지 말고, 그저 있는 그대로 맞아들이라는 것. 자연스럽게.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려 애쓰는 것은 아무런 변화도 이끌어내지 못하고 아무런 힘도 갖지 못한다. 믿으려고 인위적인 노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다는 행위 자체에 의심을 품지 말아야 한다.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믿을 수 없는 일을 눈앞에 두었을 때, 우리는 그 순간 당장 자기 눈부터 의심하기 마련이다. 생각처럼 마음처럼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큐는 물이 흐르는 것처럼 당연하게 모든 것을 여길 수 있기까지 정말 힘들고 힘든 인생의 길을 달려왔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비해서는 상당히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이번 이야기에서는. 정말로 운명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 혹은 스치듯 생각해본 주제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운명이라는 키워드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에 빠져보게 된다. 마리와 큐의, 활활 타오르는 열정적 사랑이 아닌 조용하고 한결같은 마음을 읽으면서.













       인생과 인생 사이에는 강이 흐릅니다.

       내가 늘 이쪽에서 살아가듯이 그리고 마리가 저쪽에서 살아가듯이

       우리는 서로의 인생을 볼 수 없습니다.

       시작은 같은 장소였음에도

       강은 시간과 함께 하류로 나아갈수록 점점 넓어져서

       우리를 멀어지게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이 아닌가 싶습니다.

       나는 우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은 좌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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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노키오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6
카를로 콜로디 지음, 김양미 옮김, 천은실 그림 / 인디고(글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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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꿉친구를 다시 만난 기분.

  어린 시절의 나를 상상의 세계로 이끌어주었던 아름다운 이야기를, 정말 오랜만에 만났다.




  세상에 ‘피노키오’를 모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다. 피노키오만큼 유명한 캐릭터도 아마 없을 것이다. 항상 말썽을 일으키고 다니지만 절대로 미워할 수 없는 귀염둥이 ‘피노키오’. 1883년 카를로 콜로디의 손끝을 통해 세상에 나온 피노키오 이야기는 지금까지도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거짓말 하면 코가 길어지는 ‘피노키오’. 어려서부터 거짓말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을 주었던 피노키오다. 때문에, 이미 어린 시절을 지난 내게 피노키오, 하면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다는 간단명료한 사실이 떠오른다. 그래서 이 책 <피노키오>를 다시 읽으면서는, 다 아는 이야기였음에도 새롭고 재미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과 교훈을 안겨주었던 ‘피노키오 이야기’를 따뜻한 일러스트와 아이들, 어른의 눈높이에 모두 맞는 글로 다시금 전달하고 있었다. 자그마한 크기에 파스텔 톤의 삽화가 가득한 양장본 피노키오는 그 목차부터 색다르다. 서른여섯 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진 목차를 차례대로 읽는 것만으로도 이 이야기의 줄거리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게 만든다. 알고 있던 것보다도 피노키오가 겪는 에피소드도 많았고, 그 에피소드들은 하나같이 재미있고 즐거웠으며, 가르침을 주었다.




  피노키오를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만들어준 제페토 할아버지, 그리고 항상 피노키오가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파란 머리 요정님, 퉁명스럽게 구는 것 같으면서도 피노키오에게 옳은 말을 해주는 귀뚜라미와 달팽이, 그리고 이들과는 반대로 나쁜 꾀를 이용해 피노키오를 유혹하는 못된 친구들과 여우, 고양이. 그리고 종종 피노키오의 여정에서 피노키오를 궁지로 몰아넣는 무시무시한 어른들이 이 책 속에 등장한다. 그러나 이렇게 제각각인 이들에게도 모두 같은 규칙이 적용된다. 열심히 일을 하면 보상이 따른다는 것, 꾀를 부려서는 무엇도 얻을 수 없다는 것, 정직함은 거짓말을 이긴다는 것,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주면 언젠가는 그 도움이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 반대로 다른 이에게 해를 가하면 그것 역시 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것 등 말이다. 이 책은 이런 많은 교훈들을 그저 글로만 보여주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피노키오의 길고도 짧은 여행을 통해 ‘보여 준다’. 이 방법은 백 번 말로 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다가온다. 피노키오가 만난 사람들과 동물들과 곤충들은 모두가 다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고 있으며 독자들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필요한 지혜를 나누어준다.




  요즘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많은 도서들 중에는, 교훈을 주겠다는 목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설정해놓고 억지로 교훈을 주려 애쓴다는 느낌을 주는 이야기들이 솔직히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책 <피노키오>는 100년이 훌쩍 넘는 시간 이전에 지어진 작품임에도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도 않고, 재미와 교훈을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하지 않고 함께 전달해 주는 대단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지금까지도 피노키오를 읽게 만드는 힘인지도 모르겠다. 다시 읽어도, 그리고 언젠가 또 다시 읽게 되어도, 감동적이고 재미있으며 따뜻한 이야기로 기억될 책이다.




  안녕, 피노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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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 일러스트판
댄 브라운 지음, 김효설 옮김 / 북스캔(대교북스캔)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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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빈치 코드>를 읽었을 때가 이 년이 좀 더 된 것 같다. 그때 정말 충격적이랄 만큼 새로운 세상을 본 것 같았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허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그러면서도 사실과 허구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세상 말이다. 그리고 지금, 영화 <천사와 악마>가 개봉되었다는 소식에 서둘러 책을 찾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책으로 먼저 만나는 게 적어도 내게는 훨씬 기쁜 일이니까. 영화화되었던 ‘다 빈치 코드’를 봤을 때 그런 생각을 다시 한 번 절실히 느끼기도 했었다. 이번에는 이왕이면 일러스트가 가득하다고 들은 <천사와 악마-일러스트 판>.




  <다 빈치 코드>와 크게 다른 성격의 책은 아니다. 그럼에도 읽는 내내 온통 새로움과 놀라움뿐이었다. ‘WWW : World Wide Web’을 만든 과학자들의 집합소인 CERN, ‘스위스 유럽 입자 물리학 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천사와 악마>는 독자에게로 서서히 그 유혹의 손을 내민다. 여전히 사건을 접할 때의 귀찮아하던 랭던의 반응은 같아 익숙하기도 했다. 이제 독자는 과학과 종교의 만남을, 그리고 그 사이에서의 갈등을 제대로 맛보게 된다. 과학과 종교. 아이러니하면서도 참 잘 어울리는 조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둘을 조화시키고자 하는 사람들과 이를 온몸으로 막으려는 자들이 맞서 싸운다.




  완벽한 대칭을 자랑하는, 컴퓨터 그래픽으로도 온전하게 재생할 수 없다는 전설 속의 일루미나티(Illuminati), 그리고 나머지 앰비그램들, 갈릴레이의 죽음, 교회와 과학자들의 끝없는 싸움, 도피, 희생, 모든 것들은 그렇게 과거에 묻힌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반물질을 개발한 한 과학자의 죽음으로, 그리고 신의 계시를 받았다는 궁무처장의 광기 어린 행동으로 수백 년 전의 과거는 다시 현실이 되어 수많은 사람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내었다. 하나하나의 단서를 증거로 하여 서서히 좁혀져가는 범인의 정체, 한편 그럴수록 더 깊은 수렁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듯한 기분, 다 왔다 싶으면 다시 멀어지는 현실이 <천사와 악마> 속에 존재하고 있었다. 단서를 통해 과거 역사를 끄집어내어 현실과 연결시키고 그것을 형상화하는 댄 브라운의 능력에 정말 경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일러스트 판을 읽으면서 특히 매력을 느꼈던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역시 삽화들이었다. 아름다운 그림들과 사진들, 그리고 고대 4원소인 흙, 공기, 물, 불을 가리키는 앰비그램들의 환상적인 형상은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로버트 랭던이 되어 마치 직접 범인을 추적하고 있는 것처럼 만들었다. 그리고 실제로는 보지 못한 수많은 건축물들과 벽화들, 그림들이 바로 이 책 한 권에 들어있었다. 가만히 앉아서 아름다운 이들을 보기가 왠지 민망하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이것들 외에도 이 책의 매력은 넘치고 또 넘친다. 우리가 흔히 잘못 알고 있던, 그러기에 이제는 상식이랄 수도 없는 것들의 진실에 조금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고, 과거 기독교 사회와 과학 세계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었으며, 긴장과 떨림 속에 오랜 시간 머물 수 있었다. 한편 흥미롭고 빠른 사건의 전개와 함께 로버트 랭던과 여주인공의 로맨스 역시 읽는 재미를 더해 주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두꺼웠던 책이 읽는 동안만큼은 줄어드는 게 아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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