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들을 위한 외국어 사전
샤오루 궈 지음, 변용란 옮김 / 민음사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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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Sorry of my English

  처음부터 독자에게 웃음을 주는 주인공이자 화자, 좡 샤오 차오(이하 Z)다.




  이제 스물하고도 넷이 된 그녀는 중국인으로 부모님의 등쌀에 떠밀리다시피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떠나온다. 런던에 도착해 친구라곤 오직 영어사전뿐인 적응기를 거치는 동안 Z는 영화관에서 만난 남자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다. 자신보다 스무 살이나 더 많은, 집에는 자그마한 정원이 있고 조각을 하는 영국인 남자. 둘은 그렇게 연인이 되었고, Z는 곧바로 모든 짐을 싸들고 그의 집에 들어간다, 자연스럽게. 그리고 둘의 좌충우돌까지는 아니지만 작은 에피소드들이 생겨난다. 문화적 차이, 원활하지 않은 커뮤니케이션 등으로 둘은 힘든 시기를 보내기도 하고 다툼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사방 둘러보았지만

  내 돈 빼앗을 것이다

  

  이 책은 Z의 영국에서의 일지 형식으로 쓰여 있다. 2월, 3월,..., 그렇게 다음 해 2월이 되기까지 그녀의 문체는 조금씩 변해간다. 갓 쓰인 글 속에서 그녀는 목적격 조사를 사용하지 않았다. 현재와 과거, 그리고 미래를 구분하기는커녕 상황에 맞는 단어조차 쓰지 못했다. 그야말로 비문투성이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시행착오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그래서인지 처음에는 별로 흥미도 일지가 않고 답답하다는 생각만 들었다. 이런 식으로 언제 다 읽는담?! 그러나 그런 그녀의 글이 조금씩 변화를 보인다. 그러면서 책을 읽는 속도에도 마음에도 활력이 붙기 시작했다. 서툴기만 했던 그녀의 언어가 점차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은 이 책을 읽는 재미를 한껏 더해주었다.




  서로 다른 문화권 사람들의 사랑 이야기 역시 이 책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다. 동양 문화권의 중국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들이 서양인 영국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고 또 그 반대이기도 하다. 예전에 나도 더치페이 문화가 당연한 그들의 문화에 놀랐던 적이 있다. Z는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남자에게 모든 것을 의존하고, 남자는 점점 이를 부담스러워 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공유하고자 하는 Z와는 달리, 남자는 연인 사이에서도 프라이버시는 존중해주어야 함을 주장한다. 이렇게 둘은 사고의 차이로 인해 점점 거리감을 느끼게 되고 그 속에서 Z는 더욱 외로움을 느낀다. 남자의 권유로 역시 등 떠밀리다시피 떠난 여행을 통해 Z는 또 다른 세계를 만난다. 넓은 세계를 바라보면서 그녀 역시 조금씩 눈을 떠가고 많은 것을 배운다. 이 여행에서 Z는 급격한 성장의 모습을 보여준다. 오직 부모님에게 의존하고, 사랑하는 남자에게 의지할 뿐이었던 그녀가 스스로에 대한 모습을 찾아가고 정체성을 찾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그녀의 어학연수 기간 중 가장 뭔가를 남길 수 있었던 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문화를 만나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면서 그녀가 겪어야 했던 많은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재사회화 과정의 전달은 센스 있는 번역가에 힘입어 더욱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서양에서 우리는 외로움에 익숙해요.

       나는 당신이 외로움을 경험하고,

       당신 혼자 있는 기분이 어떤 느낌인지 탐험해 보는 것이

       당신을 위해 좋다고 생각해요.

       얼마 지나면, 당신은 고독을 즐기기 시작할 거예요.

       당신도 더 이상은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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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대왕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9
윌리엄 골딩 지음, 유종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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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작을 너무나 늦게 만나 안타까운 마음이 가득이다.

  <파리대왕>이라는 제목부터가 참 독특하다. 이 책은 ‘상징소설’답게 작은 것 하나하나가 각각 상징하는 것들을 무수히 많이 담고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곳은 웬 무인도 같다. 비행 사고로 아무도 살지 않는 섬에 내던져진 십대 초반의 어린 소년들. 때 묻지 않은 영혼을 갖고 있는 아이들은 처음에는 무작정 좋았다. 어른들로부터 벗어나 뭐든지 맘껏 할 수 있는 신나는 세상을 만났으니까. 공부하지 않아도 되고, 먹고 싶은 것은 나무에서 따먹으면 그만이다. 이런 게 바로 천국?




  그렇게 무인도에 불시착한 아이들은 처음에는 우왕좌왕 정신없이, 그러면서도 마음대로인 생활을 하다가 문득 ‘대장’의 필요성을 느낀다. 처음 소라를 불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아이들을 끌어 모았던 랠프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대장이 된다. 그렇게 아이들만의 작은 하나의 민주사회가 형성되었다. 랠프는 무엇보다도 구조를 간절히 원했다. 지금의 상황에서 구조 받을 수 있는 방법은 불을 피워 지나가는 배나 비행기가 자신들을 발견해주는 일. 따라서 아이들은 랠프의 지휘아래, 장작을 모아다 불을 피운다. 그러나 어느 사회에나 부적응자는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장의 반대쪽에 의견을 두는 이들도 존재한다. <파리대왕>에서 랠프에 맞서는 아이가 바로 잭이다. 그는 모든 것을 힘으로 제압하려 하고 생각하기보다는,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보다는, 마음 가는대로 하고자 하는 행동파이다. 그런 잭의 눈에 랠프는 그저 답답한, 말만 잘하지 행동으로는 옮기지 못하는 아이로만 여겨진다. 아이들의 뇌를 잠식해가는 공포와 불안감이 점점 이들의 불화를 촉진시켰다.




  이렇게 패가 갈리기 시작하면서 무인도의 아이들은 극으로 치닫는다. 이성과 생각을 중시하는 랠프 편과 사냥을 즐기는 잭 편, 둘로 나뉘어 이들은 극도로 갈등을 빚어낸다. 누가 이들을 선하고 착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들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니었다. 환경과 상황이 이들을 이렇게 만든 것일까? 이제 잭과 아이들은 저자에 의해 ‘야만인’으로 명명된다. 야만인이라는 표현이 정말 잘 어울릴 만큼 이들은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행동을 일삼는다. 잭은 독재자로 군림하여 양쪽을 날카롭게 깎은 창을 만들어내고 자기에게 반하는 ‘것’들은 모조리 찌른다.




  ‘야만인’들이 멧돼지를 잡는 과정이 묘사된 부분에서는 정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끔찍하고 야만적인 이들의 모습은 상상조차 불가능했다. 사냥에 그야말로 목숨을 거는 잭을 보면서 치가 떨림을 느꼈다. 왜 이런 야만성을 띄게 되었을까? 이들이 섬에 불시착하지 않았어도 그랬을까?




  처음엔 그저 <톰 소여의 모험>과 같은 재미있는 이야기일거라는 생각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었다. 그리고 저자는 어느 정도까지는 내 기대에 맞추어 주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아이들이 변해가는 모습에 점점 마음이 무거워졌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역시 노벨상은 괜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저자가 책 속에 삽입한 수많은 요소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것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는 더 분명해진다. 이성적임과 비성적임, 환경이 주는 영향, 악과 본성의 진실한 내면적 모습 등이 이 책 속의 아이들을 통해 드러나고 있었다. 참으로 묘한 느낌을 받은 책 한 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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햄릿 - 완역본 하서 완역본 시리즈 3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김재남 옮김 / (주)하서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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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윌리엄 셰익스피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 바로 <햄릿>이 아닐까 싶다. 그의 명성만큼이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는 구절과 함께 <햄릿> 역시 유명하다. <햄릿>은 <오셀로>, <리어 왕>, <멕베스>와 함께 ‘셰익스피어 4대 비극’ 중 한 편이다. 각 제목들 모두 낯익다. 그리고 적어도 한 번씩은 읽어봤음직한 작품들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들은 읽어봤다는 사실보다도 얼마나 깊이 있게 받아들이고 또 생각해볼 수 있었는지가 더욱 관건이 되는 작품들이다.




  사실 얼마 전에 읽은 <셰익스피어는 없다>라는 책을 읽고서 셰익스피어의 존재 자체에 상당히 논란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의 작품 말고는 그의 생전에 대한 기록이나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는 것이 주장의 주된 근거이다. 그만큼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들은 그의 존재 자체를 떠나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작가가 누구고, 진실의 여부를 떠나서 위대한 작품은 그 작품으로서 평가받는다는 말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까지도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또 끊임없이 연구되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부터 해서 많은 심리학 연구에서도 햄릿은 주요 연구대상이 되곤 한다.




  이 책 <햄릿>은 극작품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각색되기도 하고 변형되기도 하였으나, 그 본래 모습은 주된 큰 줄거리 흐름 속에 유지되어 있다. 억울하게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유령이 성을 떠돈다는 소문이 돌고 이는 결국 햄릿에게까지 이르게 된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알게 된 햄릿은 복수의 칼날을 갈게 된다. 아버지는 숙부에게 독살을 당하고, 아버지를 그토록 사랑해마지않으셨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시자마자 숙부의 여자라는 자리로 돌아서 버린다. 이러한 갑작스러운 모든 상황이 햄릿에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이다.




  햄릿의 곁에 있던 사랑, 오필리아, 그리고 진정한 우정을 맹세한 충복들, 그리고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대며 예쁨 받고자 하는 간신들. 어느 시기에나 존재하는 인물형들이 <햄릿> 속에서도 그 캐릭터를 대표하여 존재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미 지어진 시기가 오래되었음에도 익숙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다시 만나본 햄릿, 그래서인지 더 반가운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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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배운 영어 사용설명서 - 배울 만큼 배우고도 말 못하는 당신을 위한 영어회화!
이근철.박수홍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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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고 보니 그러네. 정말 10년이나 영어를 배웠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데, 도대체 나는. 나오는 거라곤 한숨뿐이다. 왜 이렇게 외국어는 어려운 거야! 영어 공부가 어렵게 느껴질 때면, 차라리 미국에서 태어났더라면, 하고 바랐던 적도 있었다.




  이 책 <10년 배운 영어 사용설명서>는 어떻게 하면 머릿속에 죽어 있는 영어를 끄집어내어 ‘잘’ 활용할 수 있는지, 그 방법적인 측면을 제시해주는 책이다. 즉, 영어를 잘 ‘아는’ 사람이 되기보다는 잘 ‘하는’ 사람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담겨 있다. 어떻게 하면 되는가? 그 해결책으로 제시된 방법이 바로 ‘U-M-R 영어회화’다. U는 활용(Use), M은 기억(Memorize), R은 연상(Remind)을 각각 가리킨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영어를 쓰기에 앞서 ‘R-M-U’의 순서를 지킨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영어를 사용하려면 반대로 즉, U-M-R의 과정을 밟아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배워서 활용한다는 개념보다는 활용하면서 배운다는 개념인 것이다. 어찌 보면 참 일리 있는 말이기도 하다. 막연하게 그렇구나, 하고만 넘어가기에는 중요한 개념이기에 여기에 언어중추, 운동중추 등의 뇌 구조의 활동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보다 설득력이 있다.




  앞으로 어떤 식으로 영어를 학습해야 할지를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면 이제는 어떻게 실생활에서 쓰는지를 알아볼 차례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개의 챕터로 상황이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그 상황들은 하루 24시간을 기준으로 순서대로 나열되어 있다. 우선 쉬운 일상회화로 일어나기, 씻기, 아침식사, 화장하기와 옷 입기, 출근이다. 두 번째는 출근 후의 상황으로 비즈니스 회화라는 제목 아래 인사, 업무 진행, 결재와 보고, 전화와 컴퓨터, 점심식사로 나누어져 있다. 셋째 장은 점심식사 이후의 시간이다. 티 타임, 휴식과 수다, 약속 잡기, 퇴근과 야근, 회식과 술자리로 이루어져 있다. 넷째 장은 퇴근 후의 일상으로 운동, 공부, 저년 식사와 외식, TV시청과 독서, 가족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은 기타 자주 접하게 되는 상황으로 영화와 스포츠 관람, 쇼핑, 여행, 기념일과 파티, 집안일로 되어 있다. 각각의 키워드만 보아도 정말 자주 쓰일 표현들이 가득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만화책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마치 한 권의 재미있는 그림책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드는 책이었다.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일려야 일 수 없는. 각 상황은 일단 몇 가지의 패턴으로 구성된다. 그리고 그 패턴을 이용하여 자신이 적절히 응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여기에 필요한 기초적인 문법이 설명되어 있고, 패턴들이 사용된 대화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서 상황을 떠올리기에 더 효과적이다. 이렇게 놀이 같은 공부가 끝나면 짤막한 퀴즈를 풀어 확인해볼 수 있고, ‘네이티브’들이 실제로 사용하는 어휘와 구문들을 알아봄으로써 우리가 배우는 영어와 실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게 각각의 챕터가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실제로 발음을 들으면서 학습할 수 있도록 CD가 부록으로 책 속에 들어 있다. 이 점 역시 이 책의 장점 중 하나이다. 실제로 같은 단어를 두고도 외국인과의 발음 차이로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민망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게 바로 원어민의 발음을 많이 들어보는 것.




  왠지 모르게 이 책을 읽고 나면 자신감이 조금은 붙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장 네이티브를 만나 대화를 하고 싶은 느낌이 든다. 이 책 한 권으로 영어를 정복하겠다는 욕심을 갖는다면 그건 정말 말 그대로 ‘욕심’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아무리 해도 영어회화 실력이 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은 새로운 시각으로 영어를 바라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틈틈이 수시로 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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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카드 게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4
E. L. 코닉스버그 지음, 햇살과나무꾼 옮김 / 비룡소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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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혀 성장소설답지 않은 제목이다. 그렇지만, 정말 성장소설다운 이야기이다.




  이 책의 제목이 가리키기도 하는 ‘침묵의 카드 게임’이라는 것은 우리가 종종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그리고 실제로도 아마 한두 번쯤은 겪어봤을 경험이다. 목적에 따라 즐거운 게임이 될 수도 있고, 절실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카드에 단어나 글자들을 쭉 적어놓고, 맞으면 고개를 끄덕이는 등의 신호를 준다. 그렇게 단어를 선택하기도 하고, 때로는 자음과 모음으로 글자를 만들어나가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에 입을 벌리고 하는 말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침묵의 카드 게임>의 두 주인공은 브란웰과 코너다. 이들에게 카드 게임은 시작은 게임에서 비롯되었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단단하고 견고한 우정이 되어 둘 사이를 연결해주는 끈이 되어준다. 이 열네 살 소년들에게는 이상한 공통점이 많다. 그 중에서도 배다른 누나나 혹은 동생이 있다는 것이 특기할 만한 공통점이다. 사춘기 아이들에게 이러한 점은 보통의 가정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다. 남다르다고 할 수 있는 이런 가정환경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그들의 가까운 미래가 바뀌곤 할 정도로, 무겁고 어려운 가족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어느 날, 배다른 동생을 ‘고의로’ 떨어뜨렸다는 누명을 쓴 브란웰은 실어증에 걸려 말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언어에 민감하고 관심이 많던 브란웰이 말이다! 어린 브란웰이 받았을 충격이 상상이 되었다. 이 가엾은 친구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코너가 벌이는 기발한 수사방식이 바로 침묵의 카드 게임이다. 코너는 브란웰이 실마리로 골라준 카드만을 가지고 수사를 시작한다. 그 수사 과정에서 정말 놀라운, 그리고 감동적인 둘의 우정이 피어난다. 코너는 그들만의 카드 한 장 한 장을 통해 그 동안 브란웰이 안고 있어야만 했던 고민과 상처들을 생각하게 되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면서 코너는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당연히 열네 살 소년 혼자서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이다. 그래서 저자는 코너가 배다른 누나의 도움을 받게 해준다. 이러한 설정은 코너에게도,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혈연으로 연결되지 않은’ 가족 구성원들과의 연대감을 형성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느끼게 만든다.




  어른들과 아이들에게 자칫 혼란으로 다가올 수 있는 민감한 문제를 저자 E.L. 코닉스버그는 웃음을 지으며 받아들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어른도 아이도, 완벽한 존재는 아님을. 그렇기에 서로 노력하고 한 발짝씩 양보해야 함을. 그럼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가족이 재탄생함을 여실히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성장소설이라는 장르는 비단 성장기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책이 아니라 어른들도 읽어야 하는 책인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외국의 성장소설에서만 느낄 수 있는 위트 넘치는 문체들이 이 책 곳곳에 담겨 있어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한 문장 짓기’라든지 그들만의 언어 암호라든지, 재미있는 요소가 역시 곳곳에 숨겨져 있다. 뉴베리 상을 수차례 수상한 작가다운 속도감 있는 전개와 놓치지 않는 교훈과 재미, 모든 것이 <침묵의 카드 게임> 속에 녹아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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