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탈진 음지 - 조정래 장편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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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장편으로 다시 태어난 조정래의 <황토>를 읽고 많은 것을 느꼈었다. 그리고 이번에 역시 장편으로 새로 모습을 바꾼 <비탈진 음지>를 만나게 되었다. 불과 40여 년 전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사람 사는 이야기가 이 책 <비탈진 음지> 속에 그려져 있었다.  

 

1960년대의 산업화로 우리나라는 순간 급변을 맞았다. 농촌 인구의 도시 이동은 유행이, 아니 살기 위해 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도시로 상경한 농촌 사람들은 저임금 노동자가 되어 먹고 살아야 했다. 도시에 사람은 많아지고, 돈 벌 수 있는 일은 적어지면서 도시 빈민이 무더기로 양산되는 문제가 발생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도시에서 죽어나갔다. 그렇게 돈도 집도 없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한 사람들 1세대의 이야기가 바로 <비탈진 음지>다. 이 책의 저자는 텔레비전 화면에서 우연히 40여 년 전 무작정 상경 1세대의 모습이 현존하고 있음을 접하고 이 책을 장편으로 개작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카알 가아씨요. 카알 가아씨요.” 복천(福千) 영감의 목청 뽑는 소리로 이야기는 시작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게 복천 영감의 삶에 ‘복’이라는 것은 애초에 배당이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서울에서 칼을 갈며 그러나 서울 냄새를, 서울에서 사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복천 영감의 사연이 실타래를 풀어가듯 술술 펼쳐져 있었다. 가혹한 운명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던 복천 영감은 결국 일찍 아내를 보내고 그나마 있는 재산도 잃어갔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살 길을 찾아 훔친 소를 팔고, 삶의 터전을 버리고 두 자녀와 함께 서울로 야반도주를 했다. 그리고 도착한 서울. 도착하자마자 고향 사람을 만나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뿐, 서울의 냉혹함과 가혹함에 치를 떨게 된다. 목이 말라 당장 죽을 것 같아도 돈이 없으면 물 한 모금 먹을 수가 없는, 무조건 돈이 최고인 세상, 돈이 없으면 사람이 죽어가는 세상, 그곳이 바로 서울의 모습이었다. 일을 하려고 해도 어디 쉬운 일이 없었고,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칼을 갈아주는 일이었다.  

 

복천 영감의 삶 속에 등장했던 떡장수 아줌마, 술집 아가씨가 된 식모, 복권 파는 소녀, 두 자녀, 그리고 복천 영감에게 해를 입히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서울 밑바닥을 기면서도 서울을 떠나지 못하고 살아야했던 그 시대의 많은 사람들 이야기가 복천 영감의 삶에 둘러싸여 있었다. 가난을 떨쳐버리려고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가혹한 운명은 복천 영감을 피해가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금 살만하면 한 번씩 시련을 안겨주며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1970년대의 그분들이 있었기에, 살고자 악착같이 살아주었기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40년이라는 시간은 서울의 모습을, 아니 세상의 모습을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꾸었다. 지금 서울 상경 1세대들은 그 때의 일을 추억으로 회상할 수도 있고 절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으로 남겨두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잘 사는 사람들은 감히 넘어다 볼 수 없을 만큼 높은 담벼락 안에서 보호 받으며 살고 있고, 못 사는 사람들은 오늘도 쉴 곳, 잘 곳을 찾지 못해 헤매고 어딘가를 배회하고 있을 것이다. 살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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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비망록 - <오만과 편견>보다 사랑스런
시리 제임스 지음, 이경아 옮김 / 좋은생각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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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의 작품들 중 <오만과 편견>을 제일 좋아한다. <오만과 편견>은 특히 몇 번을 읽어도 질리지 않는 것 같다. 통통 튀고 애절한 사랑 이야기란. 신간 코너에서 <제인 오스틴의 비망록>이라는 책 제목을 발견했다. 제인 오스틴은 무엇을 잊지 않으려고 중요한 것들을 그렇게 적어둔 것일까.


영국 초튼의 오래된 저택 다락방에서 자그마치 200여 년 전에 쓰인 제인 오스틴의 비망록이 발견되었다. 쥐 소탕을 목적으로 대저택의 지붕을 수리하던 과정에서 인부들이 발견한 낡은 함과 그 함을 가득채운 원고, 그리고 루비 반지. 역사적으로 또 문학적으로 굉장히 대단한 일을 해낸 거라고, 지금이라도 발견해서 참 다행이라고 인부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을 가득 안고 책장을 서둘러 넘겼다.


<제인 오스틴의 비망록>은 제인 오스틴이 직접 쓰는 형식으로 책을 읽고 있으면 정말 그녀의 비망록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녀가 살아온 시대와 그녀가 처한 현실의 한계, 그리고 그녀의 사랑과 삶을, 가족과 친구들로 둘러싸인 그녀의 인생을, 그리고 그 속에서 그녀가 느꼈던 솔직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제인 오스틴이 살았던 19세기 영국 여성들에게 있어서 결혼이라는 제도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의미를 갖고 있었다. 여성들은 좋은 조건의 남자, 이를테면 부유한 집안의 남자를 만나 시집을 가서 남은 인생을 평온하고 안정적으로 사는 것을 인생의 목표라 생각했다. 하지만 우리의 제인 오스틴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이 결혼하는 것은 오직 사랑 때문이지 사랑이 없다면 절대 결혼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래서 힘든 가정 형편을 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제인 오스틴은 그 기회를 잡지 않았다.


제인 오스틴에게 어느 날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 다가온다. 출중한 외모뿐만 아니라 제인 오스틴과 책에 있어서도 대화가 잘 통하고 마음까지 잘 통하는, 한 마디로 사랑하는 남자가 나타난 것이다. 여성 작가라는 한계 때문에 책을 내지 못하고 트렁크에만 담아둔 몇 편의 이야기를 애시포드 프레데릭은 극찬을 해준다. 이미 작가가 되기를 포기한 제인에게 반드시 소설가가 될 수 있다고 끊임없이 용기를 북돋아 준 남자 프레데릭. 비록 예기치 않게 첫 만남은 짧게 끝나버리고 말았지만, 제인은 그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다시 만났을 때 둘은 드디어 진짜 사랑에 빠진다. 그렇지만 여느 이야기가 그렇듯 둘 사이에는 장애물이 있었고, 극복해 나가는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 않았다.


<오만과 편견>의 이야기를 쏙 빼닮은 제인과 프레데릭의 사랑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그지없이 슬프기까지 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쓰는 과정이 그녀의 비망록 속에서 너무 깔끔하리만큼 잘 맞아 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의 비망록> 이야기가 그렇게 끝나고, 한껏 그 여운에 잠겨 있을 즈음 읽은 작가의 말에는 그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옥스퍼드 대학의 메리 I. 제스 박사도 제인 오스틴 문학재단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메리 I. 제스는 제 이름의 철자를 다르게 배열해 만든 가공의 인물입니다.’ 라니. 그러니까 애초에 <제인 오스틴의 비망록>이라는 것은 발견되지 않은 것이다. 루비 반지는 없었던 것이다. 제인 오스틴의 실제 사랑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프레데릭이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일지도 모른다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마 독자들 중에는 ‘작가의 말’ 정도는 건너뛰는 이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 맙소사! 순간 아찔해지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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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잠들기 전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
S. J. 왓슨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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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가 만만치 않은 책을 접하게 되면 으레 가슴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400여 페이지가 되는 이 책 <내가 잠들기 전에> 역시 우선은 표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에는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잔뜩 기대가 되는 가슴을 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오늘을 기록하고 있었고, 2부는 11월 9일부터 23일까지의 연속된 일기들을 나열하고 있었고, 마지막 3부에서는 새로이 맞게 된 오늘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야기에 앞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간질 수술을 받은 한 환자가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했던 실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었다.


주인공은 크리스틴 루카스라는 여성이고, 그녀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깨어난 크리스틴은 자신이 지금 웬 모르는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남자가 자고 있다. 술에 잔뜩 취해 모르는 남자와 하룻밤을 함께 했나보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뒤척이고 있을 때,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그러고는 자신이 크리스틴의 남편 벤이며,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고, 이곳은 그들의 침실이라고 알려준다. 더불어 크리스틴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렸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린다고, 그래서 매일 아침 이 같은 설명을 반복해준다고 말해준다. 분명히 결혼한 기억도, 교통사고를 당한 기억도 없는 크리스틴은 화장실로 갔고 거울에 비치는 주름이 쭈글쭈글한 어떤 여자, 그럼에도 자기 얼굴이 분명한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교사라는 벤이 학교로 출근을 하고, 크리스틴이 그저 망연자실해 있던 중 전화 한 통화를 받게 된다. 자신의 주치의라는 내시다. 내시는 크리스틴을 만나 그녀가 써 왔던 일기를 전해주고 떠났다. 일기장에는 ‘벤을 믿지 마라’라는 이상한 문장이 적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 하루하루를 기록해왔던 것임을 알고는 한 장 한 장 읽어나간다.


영화 <메멘토>가 생각났다. 그의 경우에는 크리스틴보다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 기억이 하루도 채 가지 않고 몇 분이 지나면 백지화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도화지 삼아 모든 것을 기록하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지 못한 채 벤이 들려주는 것과 쓴 기억도 나지 않는 자신의 일기장에만 기대야 했다. 크리스틴은 어떻게 자기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답답했다. 그녀의 심정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분명히 없겠지만, 얼마나 답답할지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크리스틴은 일기장을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고자 노력한다. 자식이 없다고 말했던 벤의 말과는 달리 실제로 자식이 있고, 절친했던 친구가 멀리 이민 갔다는 말과 달리 가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접하면서 크리스틴은 벤이 진실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님을 알고 다시금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벤을 밀어내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매일 매일 크리스틴의 곁을 지켜주고 매일 매일 지겨운 설명을 반복하고, 크리스틴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는 벤에게 왜 그런 마음을 갖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다 크리스틴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임을 왜 모르는지 왜 벤의 순수한 마음을 몰라주는지 나도 그때는 그저 아무런 진실도 모른 채 크리스틴이 답답하기만 했다.


친구와의 전화 통화 속에서 밝혀진 엄청난 비밀과 그 반전을 알고 나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기억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지 이 책을 통해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믿을 수 있는 거라곤 일기장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의심해야 하고, 자고 깨면 언제나 모든 것이 그저 낯설어 깜짝 놀라야만 한다. 얼마나 밤에 잠드는 것이 두려울까. 항상 새로운 환경에 놓여야 하는 것은 정말 스트레스 받을 일인 것 같다. 그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찾으려 애쓰고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크리스틴이 정말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자기가 쓴 글이 미처 알지도 못하는 나라들을 포함하여 37개국으로 번역의 과정을 거쳐 출간되는 기분은 어떨지 감히 상상해보았다. 굉장히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는 탄탄했고, 전개도 빨랐고, 주인공의 심리 묘사도 아주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또 곳곳에 그려져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들 역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어나가기에 재미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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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
로라 리프먼 지음, 홍현숙 옮김 / 레드박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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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표지 그림과 책 이름에서부터 공포 영화의 제목을 떠올리게 될 만큼 좀 무시무시한 느낌을 받았다. 스티븐 킹이 뽑은 올해의 소설이라는 띠지의 광고 문구에 홀리듯 이 책을 골랐다. 귀신이 나오는 등의 공포 소설이 아니기를 간절히 바라며 한 문장 한 문장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책은 과거의 한 납치 사건과 그것에서 극적으로 살아남은 엘리자라는 여성의 현재 모습을 번갈아가며 묘사하고 있었다. 엘리자를 납치했던 남자는 여러 여자들을 납치해 강간하고 살해했으며 알 수 없는 이유로 엘리자만 살려두었다. 그리고 그는 살인범으로 체포되었다. 그로부터 23년이 지났다. 엘리자는 단란한 가정을 꾸렸고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는 중년의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왔다. 발신인은 월터 보먼. 바로 엘리자를 6주 동안이나 납치했었던 그 연쇄살인범의 이름,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름이었다. 사형 선고를 받고 사형수 수감 건물에 있는 월터가 왜 20여 년이 지난 지금 엘리자에게 편지를 쓴 것일까.


바로 그 편지 한 통으로 엘리자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월터는 편지에서 그치지 않고 전화까지 이용했다. 무슨 염치로 그러는 줄 모르겠지만 엘리자에게 직접 만나자며 그녀의 삶에 들어왔다.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하고 싶은 만남이었지만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엘리자는 월터 면회를 가고 말았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화가 많이 났다. 이름으로 부르기조차 껄끄러운 범인은 20대 초반의 나이에 10대 소녀들을 연쇄적으로 강간하고 살해했다. 그렇게 잔인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 마지막 생존자를 이제와 왜 만나자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번 준 상처로도 부족하여 또 어떤 상처를 남기려고 하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감옥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사람들을 제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그가 더욱 사악해 보였고 무섭게 느껴졌다. 그리고 인권 운동가라는 감투를 쓰고 감옥 밖에서 그 연쇄살인범을 물심양면으로 돕는 바버라 라포투니, 그녀를 보면서도 화가 치밀었다. 도대체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무슨 인권이 있단 말인가.


이 이야기는 추리소설이다. 그러나 여느 소설들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보통의 추리소설이 독자와 함께 범인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라면, <나는 네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다>는 이미 범인이 누군지 밝혀진 사건을 그리고 있었다. 자신이 납치했던 피해자를 만나겠다는 범인과 그것을 거부하는 피해자의 이야기다. 그것으로 인해 피해자의 과거 상처는 아무는 듯 싶다가도 다시 벌어져 현재의 삶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엘리자의 하루하루가 너무 위태로워 보여 책을 읽으면서도 조마조마했다.


특히 다른 피해자, 이미 그 사고에서 살해당한 피해자의 어머니를 만나는 장면은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다. 딸을 잃은 어머니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엘리자와 살인범을 한 패로 몰아가며 둘이 애인 사이였다고 말하는 그 어머니의 말이 또 한 번 엘리자에게 상처로 남을 것임이 분명하기에 너무 안타까웠다. 또 결국 사형 날을 하루 앞둔 범인과 마주하게 된 엘리자의 모습도 상당히 충격적이었다. 이야기의 전개 자체는 그리 흥미롭지 않을 수도 있지만, 각 인물들의 심리에 집중하게 되어 읽을수록 빠져드는 것 같았다. 앞서 띠지에서 읽었던 스티븐 킹이 뽑았다는 말에는 공감할 수 없지만 그래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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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후에 남겨진 것들
김주연 지음 / 블루닷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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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고 초록의 산뜻한 표지가 신간이 진열되어 있는 여러 책들 사이에서 유독 눈길을 사로잡았다. <키스 후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제목이 또 한 번 책을 읽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다. <로마의 휴일>을 읽은 후로, 더 그런 이야기들을 찾고 있는 것 같다.


공중파 라디오국을 배경으로 벌어지는 러브 스토리와 방송국 사람들의 사는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었다. 주인공은 서른세 살의 9년차 방송 작가 한주경이다. 이 책의 저자 김주연 역시 올해 서른세 살의 방송 작가다. 저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 책 속에 펼쳐져 있었다.


봄 개편을 앞두고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닌데, 조기 폐경일지도 모른다는 진단까지 받게 된 한주경. 서른셋 나이는 그녀를 몹시도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새벽 시간, 모두가 잠에 빠져 있는 시간이 되면, 한주경은 일어나 커피를 마시며 어김없이 노트북 앞에 앉아 있어야 했고, 사람들의 사연을 리라이팅해야 했다. 또 자신의 과거도 눈물을 머금고 사연으로 승화시킬 수 있어야 했다. 연애는 그녀에게 사치일 뿐이라고 스스로 위안을 삼아 본다. 그녀는 2년 동안 쿨FM의 <김복남의 스페셜 쇼> 원고를 맡던 것을 그만두고, 최고의 미소년 아이돌 루이가 새롭게 DJ를 하게 될 프로그램 <루이의 뮤직 인 헤븐>의 방송에 합류하게 된다. 첫날부터 루이와 한주경 사이에서 트러블이 생기고, 루이는 한주경의 자존심을 폐지 구기듯이 구겨버리곤 한다. 이를 갈며 하루하루를 버티던 한주경 앞에 어느 날, 루이의 게스트, 제이가 등장하는데 어딘가 낯익은 얼굴이다. 7년 전 떠났던 유럽 여행에서 갈가리 그녀의 가슴을 찢어놓은 남자다. 고정 게스트가 되어 시시각각 그녀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제이는 한주경의 마음을 달래보려 애를 쓴다. 루이는 루이대로 한주경의 마음을 잡으려 물질 공세부터 낯간지러운 말까지 가리지 않고 해댄다. 왜 꼭 호박은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것일까.


한주경 앞에 갑자기, 그리고 동시에 나타난 두 남자 루이와 제이는 그렇게 한주경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뜻밖의 과거가 불현듯 모습을 드러내고, 그 속에서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갑작스러운 루이의 고백은 오글거리는 인터넷 소설을 능가하는 것 같고, 루이와 제이의 역사는 사연 깊고 슬픈 이야기였으며, 제이와 한주경의 과거는 거의 미스터리 소설 그 이상이었다.


평소 라디오 방송은 찾아 듣는 편이 아니라 그런지 새롭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겉으로 드러나는 라디오 방송뿐만 아니라, 한 편의 방송을 위해 PD, 작가들을 포함한 스텝들이 얼마나 바쁘게 뛰고 또 뛰는지도 잘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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