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잠들기 전에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6
S. J. 왓슨 지음, 김하락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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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께가 만만치 않은 책을 접하게 되면 으레 가슴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400여 페이지가 되는 이 책 <내가 잠들기 전에> 역시 우선은 표지가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고, 그 다음에는 두께가 마음에 들었다. 잔뜩 기대가 되는 가슴을 안고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는 오늘을 기록하고 있었고, 2부는 11월 9일부터 23일까지의 연속된 일기들을 나열하고 있었고, 마지막 3부에서는 새로이 맞게 된 오늘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이야기에 앞서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간질 수술을 받은 한 환자가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지 못했던 실화에서 비롯된 것임을 밝히고 있었다.


주인공은 크리스틴 루카스라는 여성이고, 그녀의 시점으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여느 때처럼 잠에서 깨어난 크리스틴은 자신이 지금 웬 모르는 침대 위에 누워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리고 반대쪽에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낯선 남자가 자고 있다. 술에 잔뜩 취해 모르는 남자와 하룻밤을 함께 했나보다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뒤척이고 있을 때,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그러고는 자신이 크리스틴의 남편 벤이며, 결혼한 지 20년이 되었고, 이곳은 그들의 침실이라고 알려준다. 더불어 크리스틴이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기억 상실증에 걸렸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모든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린다고, 그래서 매일 아침 이 같은 설명을 반복해준다고 말해준다. 분명히 결혼한 기억도, 교통사고를 당한 기억도 없는 크리스틴은 화장실로 갔고 거울에 비치는 주름이 쭈글쭈글한 어떤 여자, 그럼에도 자기 얼굴이 분명한 스스로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한 것인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교사라는 벤이 학교로 출근을 하고, 크리스틴이 그저 망연자실해 있던 중 전화 한 통화를 받게 된다. 자신의 주치의라는 내시다. 내시는 크리스틴을 만나 그녀가 써 왔던 일기를 전해주고 떠났다. 일기장에는 ‘벤을 믿지 마라’라는 이상한 문장이 적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이 하루하루를 기록해왔던 것임을 알고는 한 장 한 장 읽어나간다.


영화 <메멘토>가 생각났다. 그의 경우에는 크리스틴보다 상황이 훨씬 안 좋았다. 기억이 하루도 채 가지 않고 몇 분이 지나면 백지화되는 것이다. 자신의 몸을 도화지 삼아 모든 것을 기록하고 발버둥치는 모습이 참 안타까웠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의 주인공 역시 자신의 기억에 의존하지 못한 채 벤이 들려주는 것과 쓴 기억도 나지 않는 자신의 일기장에만 기대야 했다. 크리스틴은 어떻게 자기가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생각할수록 화가 나고 답답했다. 그녀의 심정을 완벽히 이해할 수는 분명히 없겠지만, 얼마나 답답할지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크리스틴은 일기장을 보면서 기억을 되살리고자 노력한다. 자식이 없다고 말했던 벤의 말과는 달리 실제로 자식이 있고, 절친했던 친구가 멀리 이민 갔다는 말과 달리 가까이 살고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접하면서 크리스틴은 벤이 진실만을 말해주는 것이 아님을 알고 다시금 혼란에 빠진다. 그리고 벤을 밀어내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매일 매일 크리스틴의 곁을 지켜주고 매일 매일 지겨운 설명을 반복하고, 크리스틴의 모든 것을 책임져 주는 벤에게 왜 그런 마음을 갖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다 크리스틴을 위한 선의의 거짓말임을 왜 모르는지 왜 벤의 순수한 마음을 몰라주는지 나도 그때는 그저 아무런 진실도 모른 채 크리스틴이 답답하기만 했다.


친구와의 전화 통화 속에서 밝혀진 엄청난 비밀과 그 반전을 알고 나서야 나는 내가 얼마나 잘못 생각하고 있었는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기억을 잃은 사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지 이 책을 통해서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믿을 수 있는 거라곤 일기장밖에 없기 때문에 항상 의심해야 하고, 자고 깨면 언제나 모든 것이 그저 낯설어 깜짝 놀라야만 한다. 얼마나 밤에 잠드는 것이 두려울까. 항상 새로운 환경에 놓여야 하는 것은 정말 스트레스 받을 일인 것 같다. 그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찾으려 애쓰고 기억을 되돌리기 위해 노력하는 크리스틴이 정말 대단해 보이기도 했다.


자기가 쓴 글이 미처 알지도 못하는 나라들을 포함하여 37개국으로 번역의 과정을 거쳐 출간되는 기분은 어떨지 감히 상상해보았다. 굉장히 짜릿하고 흥분되는 일일 것이다. 이 책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말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야기는 탄탄했고, 전개도 빨랐고, 주인공의 심리 묘사도 아주 생생하게 전달되었다. 또 곳곳에 그려져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들 역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읽어나가기에 재미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내 머릿속에 남아있을 이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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