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스 - 성공자가 준 운명의 열쇠
이누카이 타보 지음, 홍성민 옮김 / 국일미디어(국일출판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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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성공 소설들이 떠올랐다. <마시멜로 이야기>나 <연금술사>, 또 최근에 읽은 <1% 다르게> 등. 이들 소설에서 공통점을 찾아본다면, 책 속의 주인공들이 각각 훌륭한 ‘멘토’를 우연히 만나 삶을 제대로 사는 방법들과 지혜를 배운다. 그리고 그동안 부족함으로 가득했던 자신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된다. 이 책 <찬스> 역시 마찬가지다.




 주인공 이즈미 다쿠야는 많은 성공자를 만들어 낸 위대한 성공자로 묘사된다. 그가 어떻게 해서 그런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과정이 이 책 속에 그려져 있다. 그는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퇴직으로 대학을 중퇴하고, 중고차 매매를 하면서 당장 눈앞이 막막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빨간 페라리를 몰고 있던 남자, 유미이케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바로 이 만남이 다쿠야의 인생역전의 발로가 되었다. 유미이케는 다쿠야의 진정한 멘토가 되어 주었다. 그가 옳은 길을 갈 수 있도록, 그리고 옳은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봐주고 정신적 도움과 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후원자가 되어 주었다.

 멘토 유미이케는 다쿠야에게 절대 공짜로 성공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스스로 발품을 팔게 하고, 나름대로의 과제도 주면서, 그에게 질문과 대답을 끊임없이 요구하며 자발적으로 터득하게끔 만들었다. 다쿠야는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유미이케의 권유로 정체원(지압이나 안마 따위로 등뼈를 바르게 하거나 몸의 상태를 좋게 해주는 곳)의 운영을 맡게 되고, 많은 위기와 실패를 경험한 끝에 성공의 길로 차츰차츰 들어선다. 적자로 시작한 사업은 안정적인, 아니 오히려 넘쳐나는 흑자를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유한회사 치쿠다쿠’를 설립하고 기업의 사장이라는 자리에 오르게 되어, 성공자라 불리우며 인터뷰까지도 하게 된다. 조언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가 멘토로부터 받았던 것처럼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된 것이다.




 독특했던 것은, 성공에 대한 저자의 남다른 시각이었다. 보통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하고, 심하게 말하면 경쟁자를 밟고 넘어서야 한다고까지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에 등장하는 멘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성공을 바닷물에 비유한다. 바닷물을 두 손으로 뜬다고 해서 바닷물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니듯이, 성공 역시 그 양이 무한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함께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말하는 불로소득 역시 일리가 있었다. 대부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불로소득이라는 개념이 이 책에서는 긍정적으로 묘사된다. 이 책에서 멘토가 말하는 불로소득은 다른 사람에게도 재화를 제공하면서, 소득을 올릴 수 있고, 자신의 가족에게까지 소득을 가져오기 때문에 여러 곳에 긍정적인 효과를 주는 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의 멘토처럼만 생각한다면 사실상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일만큼 그는 설득력이 있었다.




 위대한 만남은 이렇게 우연을 가장하고 나타나는 것일까. 책 속의 주인공 다쿠야가 몹시 부러웠다. 나도 성공자를 만나고 싶다. 내게도 든든한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성장 소설 속에 등장하는 멘토들은 하나같이 성인군자 같고. 주인공에게 시련이 닥쳤을 때, ‘시기적절’하게 등장한다. 이게 바로 유미이케가 말하는 “위대한 에너지”인지도 모르겠다.

 

 나도 오늘, 유미이케를 멘토 삼아, 책상머리에 구체적인 계획이라도 붙여보고 싶다.

 







  “성공이란 성장과정일세.

    실패하면 왜 실패했는지를 배우는 것이고,

    만약 성공했어도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배우는 것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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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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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폴레옹의 후계자임을 자청하는 뵈를레.

 양심의 가책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인간. 삶을 하나의 큰 ‘놀이’라고 말하는 인간이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나폴레옹 놀이>인가보다.




 이 책의 저자, 크리스토프 하인은 매력이 많은 작가인 것 같다. 지금까지 읽은 몇 안 되는 이 저자의 책들은 거의 다 자전적이고 고백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처음부터>나 <낯선 친구> 등이 그런 느낌을 주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크리스토프 하인은 그의 책 속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삶을 살았다. 목사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대학에서 거부되는 이른바 종교적인 박해를 당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고, 어려서부터 전쟁과 분단의 현실 속에서 살아야 했기에 침묵을 강요받을 때도 있었다. 그런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저자는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어쩌면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쪽으로 발산이 된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소설 속에 곧잘 등장하는 것이 바로 성에 대한 금기와 정치, 혹은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금기의 폭로인 것 같기도 같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사랑과 연애의 경험에 대해서도 변호사에게 털어놓고 있는데, 그 내면을 살펴보면, 온전한 것은 찾아볼 수 없었고, 주인공도 거기에서 어떤 만족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책 속에서 역자도 밝히고 있지만, 여기서의 놀이는 도박이나 게임과도 일맥상통하는 단어이다. 주인공 뵈를레는,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지만 전쟁으로 인해 어렸을 때는 좀처럼 감당하기 힘든 가족의 해체를 겪게 되었고, 새로 만들어진 가정 속에서 자라 변호사가 되었다가 정치계에 입문하기도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을 놀이화시켰으며, 자신은 그 놀이의 주인공이 되는 위대한 놀이꾼이라 생각했다. 그가 후레자식이라고 부르는 이복동생과의 놀이에서의 승리가 어쩌면 그에게 짜릿함을 안겨준 제대로 된 놀이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다. 신기하게도 그는 정말로 천재적인, 명석하면서도 뛰어난 머리를 갖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노예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자유를 찾고 있지만, 실은 억압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리고 놀이를 그의 당구대 속 당구공과 당구를 치는 사람으로 치환하여 설명하곤 한다. 마지막으로 나폴레옹에 빗대는 것까지. 이렇게 세 가지면 그의 인생과 놀이를 다 설명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 책은 뵈를레가 변호사 피아르테스에게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고 자신을 변호하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뵈를레는 일면식도 없었던 한 사내를 지하철에서 살해한다. 살인도구는 당구 큐대로, 바크날이라는 남자의 이마를 가격하고 죽인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그렇게 살인을 저지른 후, 바크날에게 달려들어 마치 자신이 살해하지 않은 양 의사행색을 하며 그를 살려내고자 애썼다는 점이다. 물론 그는 살인죄라는 명목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그 감옥에서 자신의 현실이 부당함을 호소하고 있다. 그의 편지글은 흥미로웠고, 어렸을 때의 경험으로 돌아가 서술하는 것도 새로웠지만, 끝으로 갈수록 주인공에게 뭔가 보채고 싶고, 빨리 말하라고 윽박이라도 지르고 싶었던 마음이 생겨났었다.

 

 아직도 나는 왜 그가, 자신의 저지른 살해를 살인이라는 죄로 보지 않는지, 어째서 자신의 죄를 합리화시키고, 정당방위였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는 없다. 이게 바로 블랙 유머의 효과일까? 그는 분명, 존재성이 흔들리고 있는 것 같다. 그가 편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괴물이라는 단어가, 바로 이 책의 주인공이자 변호사인, 그리고 저자 자신인 그에게 어울리는 단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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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키핑
메릴린 로빈슨 지음, 유향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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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한 번 더 읽자!”

 책을 덮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렸던 생각이었다. 그래서 마지막장을 덮고 곧바로 다시 첫 장으로 돌아가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 책 <하우스키핑>에는 어떤 눈에 띌만한 사건이나 사고가 있는 것은 아니다. 이야기는 이 책의 주인공이자 화자인 나, ‘루스’의 서술로 진행된다. 나와 여동생 ‘루실’은 어려서부터 여러 사람의 손을 타고 자란다. 대부분의 배경은 아이다호 주의 핑거본 마을. 엄마의 자살이 있은 후, 할머니의 밑에서,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을 때는 외고모 할머니 두 분 밑에서, 그 후에는 이모 밑에서 자라게 된다. 이때쯤 루스와 루실은 사춘기를 맞고 둘은, 각각의 방법으로 내적인 갈등을 겪으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루스와 루실은 서로 다른 길을 걷기 시작한다. 방랑벽이 있었던 이모는 보통의 보호자들과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보이는데, 바로 여기에서 둘이 다른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루실은 이모의 모습에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말 그대로 평범한, 보통의 삶을 찾아 집을 나선다. 그리고 루스는 점차 이모와 비슷한 성향을 띄게 되고, 그들만의 생활을 즐기게 된다. 그렇지만, 루스와 이모의 생활은 다른 이들의 눈에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것이기에, 저절로 마을 사람들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인식되어 버린다. 둘을 떼어놓아 각각에게 정상적인 삶을 만들어 주려는 마을 사람들로부터의 관심에서 벗어나기 위해 둘은 그들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르고 도망쳐 마을을 떠난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각각의 것들, 이를테면 등장 인물들의 죽음이나, 학교에 가지 않는 것, 집에 불을 지르는 것 등등이 상징하는 바가 있었음은 책을 다 읽고 나서 문학평론가의 글을 읽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것이었다. 

 

 사실 처음에 <하우스키핑>이라는 제목과 함께, 권위 있는 인물과 기관으로부터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을 알고서, 제목 그대로 살림을 소재로 하는 여성들의 소소한 이야기를 다루면서 즐거움과 유쾌함을 주려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유쾌함과는 거리가 좀 있는 작품이었다. 속도감이 느껴지는 전개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조금은 별난 삶에 대한 묘사가 약간은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문체 자체도 화려하지 않고, 유유히 흐른다는 느낌이었던 것도 한몫을 했던 것 같다. 뭔가의 의식의 변화가 답답할 만큼이나 느렸기 때문에 울연하기도 했고, 그것은 옮긴이의 권유처럼 두 번째 읽었을 때도 큰 변화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보잘 것 없는 문학적인 감수성에 또 한 번 절망감을 느끼며, 좀 더 여유를 두고 다음에 읽을 기회를 가져봐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음미하듯이 천천히 말이다.




 정상적인 삶이란 무엇일가?

 과연 지금 나의 삶이 지극히 정상적이고, 당신의 삶은 정상적인 나와 다르기 때문에 비정상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우스키핑>의 마을 사람들은 그들 대다수가 살아가는 방식을 정상이라 인식했고, 그 자신들과는 다르게 살아가는 루스와 그녀의 이모를 비정상적이라고 단정 짓는다. 그리고 인위적으로라도 그들을 정상적으로, 아니 그들처럼 살게끔 만들려는 시도를 한다. 다수가 비슷하다고 해서 정상이라고 확신할 수 있는 걸까?

 적어도 루스와 그녀의 이모는, 그들 나름대로 지극히 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루실’이 말하는 보통과는 다른 삶을 살겠지만, 루스가 이모의 모습에서 언뜻언뜻 엄마의 모습을 발견했을 때, 루스는 이모와 함께 가정을 꾸렸고, 가족의 부재라는 것에서부터 벗어나고 있었다. 나름대로의 하우스키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밤 과수원에서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추위에 저항하지 않고 그냥 편안하게 받아들이면,

  추위가 더 이상 불편한 것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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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 너무 뜨겁거나 실패가 너무 많거나 - 나는 생각 한다 그러므로 일이 일어난다
마티아스 브뢰커스 지음, 이수영 옮김 / 알마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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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공한 사람에게는 항상 무수한 스포트라이트가 따른다. 그에 비해 실패 뒤에는 참혹함과 좌절이 따르게 마련인 것 같다. 실패는 숨기기에 급급하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지만, 이 말도 성공했을 때에나 통하는 말인 것 같다. 항상 실패는 성공의 저편에 가려져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코기토 에르고 붐이다. Cogito ergo bum. 생각하자마자 일이 일어난다는 뜻이다.




 처음에 이 책이 자기계발서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기계발서라는 분야에서, 아니 내가 여태껏 접했던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상당히 어렵게 느끼면서 읽었던 책이다.

 저자 마티아스 브뢰커스는 이 책 <성공이 너무 뜨겁거나 실패가 너무 많거나>를 통해 49가지의 실패 이야기를 담아내면서 실패가 삶이라는 것 자체에 내재되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따르면, ‘머피의 법칙’은 보편적인 자연법칙이기 때문에 실패할 가능석이 있는 일들은 연이어 모두 실패로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마치 상식 관련 서적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각각 49개의 장에서는 보통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상식을 포함하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지식에 대한 것들까지를 가볍게 아우르며 설명을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서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읽고 나서 유익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블랙홀이 검지 않을 수도 있고, 또 구멍이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마약 중독은 동물에게도 일어난다는 사실 또한 생소했던 거라 새롭게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잘못된 개념을 쓰고 있는 경우에 대해서도 작가는 설명하고 있는데, ‘일출’과 ‘일몰’이 그것이다. 지구가 태양 주면을 돌고 있기 때문에, 태양이 바다 속에서 떠오르고,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이 바다와 함께 뒤로 넘어가고 있다는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을 우리가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잘못을 알고 제대로 된 표현을 하기에는 태양이 진다는 것이 우리의 감각에 너무 깊숙이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것을 잘못된 개념이 잘못된 사고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과 연결 지어 서술하고 있다. 살아있는 전설로 알려져 있는 천재 스티븐 호킹의 이야기, 뛰어난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 잘 알려지지 않은 아인슈타인의 이야기 등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 카에다’라고 일컫고 있는 빈 라덴의 조직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 이 알 카에다라는 말이 바로 그들이 직접 사용해본 적도 없는 이름인데, 서방 사람들에 의해 발명된 이름이라는 것이 새로웠다. 이것은 아랍어로 ‘기초’, ‘토대’, ‘규범’ 등의 뜻으로 쓰는데, 흔히 ‘요강’으로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읽으면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아랍, 그들의 말로 “나는 화장실에 간다.” 는 말을 우리는 빈 라덴 조직을 대표하는 위협적인 이름으로 쓰고 있었다. 이런 명칭을 갖게 된 것은 파키스탄 숙소에 모인 사람의 목록을 가리키는 것에서 기인한다.  

 

 이 책은 이런 실패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통해서 독자에게 이면에 숨겨진 실패를 당당하게 받아들이고, 성공을 향한 발돋움으로 밟아나가야 함을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다소 어렵게 느껴지기도 했고, 그런 까닭에 책의 두께에 비해 읽는 시간 또한 오래 걸렸다. 다만 책을 다 읽었을 때에는 그래도 유익한 책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에 따라서 실패가 삶에 내재되어 있는 것이라면, 성공에 다다르기 위해 꼭 밟아야 하는 단계가 바로 실패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항상 실패를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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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리 - 제1회 문학의 문학 5천만원 고료 소설 공모 당선작
우영창 지음 / 문학의문학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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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치 않은 표지의 그림.

 여기에서 눈치 챘어야 했다.

 저자 소개를 읽으면서,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증권회사에 입사한 것이 신기하고 놀랍기도 했다. 아직 졸업 전인 나로서는 직업은 무조건 전공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내가 갖고 있는 이런 선입견이라면 선입견에 일침을 가해주었다. 더구나 당선작에 대한 상금으로 받은 5천만 원을 술값으로 쓰겠다는 것을 보면서 아, 보통 사람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증권회사에서의 경험을 한껏 발휘하고 있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맹소해가 바로 증권사에 몸담고 있는 30대, ‘골드 미스’다. 이름부터도 참 독특하다. 그리고 이야기가 펼쳐지는 배경은 물론 증권회사다. 처음 책을 펼쳐 몇 장을 읽는 동안, 온통 증권 시장에서 주식, 펀드 등이 돌아가는 일들만이 어지럽게 나열되어, 만만치 않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돌아보면, 아직 나는 이 책을 제대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한참 책을 읽는 동안에도 나는 왠지 이 책을 겉돌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경제에는 무지한 내가 주식과 펀드로 가득한 글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은 무리였다. 그래서 초반에는 거의 글자를 읽어 내려가는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맹소해의 정체성 역시 내게는 벅차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여성스러운 이름을 가진 남자인가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이 책은 맹소해를 둘러싸고 돌아가는 돈과 사랑의 이야기였다. 돈은 차치하더라도, 그녀의 사랑 이야기에 있어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상사와의 불륜, 여자와의 동거, 새로운 남자, 또 새로운 여자, 남자들과 여자들. 과감하면서도 노골적인 성적 표현에 솔직히 읽으면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아직까지 이런 소재의 책을 접해본 적도 없는데다가, 보수적인 성격 탓인지 처음에는 거부감부터 일었다.




 만약 이 책이 계속해서 성적으로 문란한 사랑관만을 소재로 해서 쓴 것이었다면, 중간에 덮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책은 맹소해의 그런 양성애적, 혹은 다양한 성향만을 부각시킨 것은 아니었다. 맹소해는 말 그래도 ‘골드미스’다. 그녀는 직업적으로 성공을 꿈꾸고 있었다. 그것도 꾀부리지 않고 꽤 정당한 방법으로 말이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의 아버지의 기억과 함께 불안정한 그녀의 심리는 마치 제목처럼 아슬아슬한 하늘 다리를 건너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런 그녀의 인생에 정말로 하늘다리를 건너 온 남자가 자리 잡는다. 그러나 그녀는 역시 어디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제대로 정착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외롭고 고독하지만, 어디에서도 사랑을 충족시키지 못한다.

 사실 그녀의 일상은 평범하다고 보기 아주 어렵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만큼은 지극히 평범한 모습인 것처럼 인식되고 그려진다. 이런 식으로라도 보상받고 치료받고자 하는 과거의 상처가 살짝 표출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가끔씩 기억 속에서 샘솟는 아빠에 대한 상념에 젖어드는 모습에 왠지 그녀가 가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했다.




 확실히 아직까지도 내가 이 책에 완벽하게 젖어든다는 느낌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새로운 소재와 새로운 소설을 접했다는 데에 의의를 두고 싶다. 그리고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데에는 저자의 문체도 한몫을 한 것 같다. 독특하지 않은 것 같지만, 인상적이었다. 어려운 것 같으면서도 술술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뭔가가 있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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