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 1반 34번 - 종잡을 수 없는 사춘기 아이들의 마음을 잡아주는 이야기
언줘 지음, 김하나 옮김 / 명진출판사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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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아이, 34번의 이야기이다. <1학년 1반 34번>의 저자 언줘는 자신의 사춘기 시절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아이의 마음을 그려나갔다. 따뜻한 느낌을 주는 그림과 함께 한 편의 동화로 말이다. 아이들이 가족과 집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처음으로 접하는 곳이 유치원 혹은 학교일 것이다. 처음 맞서게 된 그곳에서 아이들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하고 정체성에 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아이들은 순수하고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기에, 그래서 흔들리기도 쉽고 깨지기도 쉽다. 이 책은 아침잠이 많은 한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 34번이 되는 순간부터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에는 그리 많은 글자들이 인쇄되어 있지 않다. 그 대신 삽입되어 있는 그림이 글보다 더 효과적으로 34번의 답답한 마음을 표현해주고 있었다.




  34번은 학교에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자신을 향한 기대치가 점점 높아질수록 34번 아이는 부담을 느낄 뿐이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모범생이 되기를 원한다. 모범 답안을 제시해 놓고 그대로만 따르기를 원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라는 것만 제시할 뿐, 왜 옳고 왜 그른지는 설명해주지 않는다. 그럴수록 34번은 점점 회의를 느낀다. 빨리 어른이 되어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한편으로는 어른이 싫다. 그리고 그런 생각들은 34번이 점점 자신을 싫어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그러나 정작 어른들은 그런 34번의 마음을 몰라준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주지 않는, 그리고 알려고 하지 않는 어른들이 34번은 원망스러울 뿐이다. 그런 상황의 반복은 34번을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가두어두기 시작했다.

 

  34번 아이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어른이 되면 자유로워질까?’, ‘어른이 되면 행복해질까?’, ‘왜 그냥 행복해질 수는 없을까?’, ‘사랑을 하면 왜 모두 기대를 하는 걸까?’, ‘그냥 사랑만 하면 안 되는 걸까?’

  그러나 34번은 잘 알고 있다. 어른들은 모두 자신을 너무나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우리도 그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문제는 그들의 사랑은 너무나도 일방적이라는 것이다. 적어도 그 사이에 소통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34번이 그렇게까지 외로워하고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책 밖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자는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쁨과 슬픔이, 행복과 불행이, 자유와 구속이 어느 순간에서든지 항상 함께 존재한다고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사실을 아이들이 잘 인식할 수 있도록 도와야한다고도 말한다. 한쪽의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어른들이 아이들을 이끌어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비로소 진정한 어른이라고 언줘는 말하고 있다.




  내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주 어린 시절, 나는 학교에 대해 34번만큼의 큰 반감은 없었다. 그런데 바로 그 사실에 지금 조금은 부끄러워지는 것도 같다. 그 때 그 시절의 내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른들과 분명히 조금은 달랐을 내 생각을 부정하고 어른들의 생각에 맞추고, 어른들의 기대치만큼의 길을 걸었다는 뜻이 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제 읽은 <꼴찌들이 떴다>와 함께 사춘기 시절을 그리고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 같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남들이 본받아야 할 표본이 있다.

       학교에서는 이런 사람을

       모범생이라고 부른다.

       모든 어른들은

       자신의 아이가 그 중 하나가 되길 바란다.

       설령 그 표본은 못 되더라도

       평균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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꼴찌들이 떴다!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30
양호문 지음 / 비룡소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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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꼴찌들이 떴다. 이 책을 덮으면서 <꼴찌들이 떴다>는 꼴찌 아이들이 봐야할 책이 아니라, 꼴찌 어른들이 봐야 할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보통의 선입견대로라면 성적이 뒤떨어지는 아이들 대부분이 진학하는 학교가 실업계 고등학교이다. 이 책은 그런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어쩌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설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네 주인공 재웅이, 기준이, 호철이, 그리고 성민이. 이들은 공고 기계과에 다니고 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학교를 다니다가 중간에 취업을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취업마저도 공고에서 공부 좀 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였나 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친구들이 거의 취업에 나갈 때까지도 취업 추천이 들어오지 않았었다. 그야말로 꼴찌 중의 꼴찌. 그러던 중 담임 선생님의 추천을 받아 취업을 나가 하게 된 일이 바로, 천마산업의 송전탑 건설 기초공사였다. 아무도 이런 일을 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생처음 겪어보는 막노동의 고통은 이루 참을 수가 없었다. 매일 파스로 온몸을 도배해야 하고 아침이면 천근만근으로 느껴지는 몸을 도저히 어찌할 수 없어, 이들은 탈출 계획을 세운다. ‘프리즌 브레이크’만큼 치밀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모두 가슴 속 깊은 데서부터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기 때문에 무작정 달려 나갔다. 물론 결과는 불 보듯 뻔했지만 말이다. 타의로 인해 억지로 추동리로 다시 돌아온 이들이 이제부터 겪게 되는 새로운 일들과 함께 <꼴찌들이 떴다>는 본격적으로 꼴찌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공부에 있어서만큼은 별 볼일이 없다고 스스로도 느끼는 그들이지만, 직접 맞닥뜨리게 되는 앞으로의 일들에 있어서 그들은 용기가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리고 진정한 마음이 무엇인지도 느끼게 해주었다.




  이제 열여덟. 세상의 때가 묻지 않았고, 앞으로가 창창한 아이들이다. 아직 사회생활의 경험이 없는 아이들이 처음 만나게 된 작은 사회가 있는 곳이 바로 이 마을이었다. 이 마을에서 진정한 마음을 보여주는 어른들도 만나지만,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어른들도 함께 접하게 되었다. 그들을 보면서 아이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한편 이 책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저마다 이 공고생 아이들을 무시하듯 바라본다. 그 어른이 설사 부모님이라고 해도 부모들은 아이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물론 그동안 아이들이 부모의 신뢰를 잃을만한 행동들을 하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부모인데, 제일 먼저 나오는 반응이란 항상 “거짓말 하지 마!”였다. 경찰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경찰은 아이들에게 사건의 경위를 물어봐 놓고서도 사실대로 이야기하면 거짓말하지 말라고 한다. 아이들의 말을 믿지 않는다. 실제로도 경찰들이 그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 책에서는 좀 지나치다 싶을 만큼 경찰들은 아이들을 절대 신뢰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지 꼬투리를 잡아 경찰서에 붙들어두려는 그들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만 들 뿐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꼴찌였지만, 알고 보면 모두 일등짜리들이었다. 그들이 스스로 꼴찌라고 인식하게 만든 것은 바로 어른들이었다. 부모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를 원한다. 옆집 아이들보다 잘하기를 바란다.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을 예뻐하고 더 챙겨준다. 이 외에도 수많은 어른들이 단지 성적만 가지고 아이들의 성격과 모든 것을 평가해버린다. 그런 기준 속에서 성적이 뒤떨어지는 아이들은 문제아로 낙인찍히고, 결국 그들은 박탈감을 느끼며 점점 도태되어간다. 그러나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말처럼, 일등도 성적순이 아니다. 그런데 부모들이 처음부터 무조건 공부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어쩌면 어렸을 때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부모가 되면 그렇게 변하는 것일까? 아직 그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는 없지만, 미래에 나는 그러지는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그 후,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고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참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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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다이어리 - 연애보다 재미있는 압구정 이야기
정수현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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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압구정 다이어리>에는 그야말로 압구정의 구석구석이 속속들이 드러나 있다. ‘탐앤탐스’나 ‘스타벅스’, ‘홈스테드’ 등의 테이크아웃 전문점 이름이라든지,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과 클럽 이름들이 수없이 많이 등장한다. 그것을 뒷받침이나 하듯이 책을 펴자마자 압구정 지도라고 할 수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만약 압구정이나 청담동에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독자가 이 책을 읽는다면, 정말 이 책대로 압구정과 청담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야말로 별천지처럼 소개되고 묘사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그곳에 사는 사람이나 혹은 가본 사람이라면 이 책이 픽션이라는 것을 알겠지. 이 책 속에서 압구정, 청담은 온통 명품 천지이며 외제차 천지이며, 이곳 사람들은 매일같이 클럽에 다니고, 성형을 밥 먹듯이 하고 남자를 핸드폰 바꾸듯이, 아니 손톱 색깔을 바꾸듯이 바꾸어나간다. 그런 생활이 일상이라고 받아들이고 살아간다. 물론 ‘로데오 사파리’라고 불리는 것 같은 일이라든지 홈스테드에 얼마나 예쁜 여자들이 많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한 어느 정도 이야기들은 사실이다. 저자 정수현은 물론, ‘칙릿 소설’이라는 한 장르의 글을 쓰고자 했기에, 그런 세계를 그려보고자 했기에 이런 글이 만들어진 것일 테지만, 평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충분히 있을 것도 같다. 머리말에서 저자 정수현은 이를 밝히고 있다. 문학성을 기대하고 이 책을 펼쳤다면 실망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한국의 특이한 지역의 재미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었다면서 말이다.

 

  그렇다. 책을 읽는 재미와 화려함 등을 생각하면 이 책만큼 기대를 충족시켜주는 책도 없지 않을까 싶다. 단 한 마디에도 수식어가 덧붙여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마놀로 블라닉을 신은 ○○, 샤넬 백을 든 ○○, 부가티 베이론을 새로 뽑은 ○○ 등. 책의 반은 명품과 외제차의 이름 나열로 구성되어 있었다. 한 마디로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건 좀 오바다.’ 싶을 만큼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저마다 ‘부모님을 잘 만나’ 고생하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밥 먹듯이 한다. 갖고 싶은 것이 생기면 카드를 들고 나가기만 하면 된다. 여자들은 모두 S라인에 아름다운 외모를 갖추고 있으며 남자들 역시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갖추고 있다. 직업에서도 역시 아주 상류층을 독점하고 있었다. 혹여 맘에 안 드는 신체부위가 있으면 고민할 필요 없이 성형외과로 달려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아니 맘에 드는 이성을 만나면 명품 시계부터 외제차까지 아낌없이 선물 공세를 한다. 그리고 그 인연은 얼마 못가서 끝나고 만다. 그러나 지나간 사랑에 마음 아파하지 않는다. 만날 때 그랬던 것처럼 헤어질 때도 그야말로 ‘쿨함’ 그 자체이다. 젊은이들의 인스턴트 사랑과 물질 만능주의의 정말 극단적인 모습을 바로 이 책 <압구정 다이어리>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칙릿 소설답게 이 책을 읽으면서 다른 생각은 저절로 밀려나고, 책 속의 세상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책의 내용과는 아이러니하게도 겉모습뿐만 아니라, 내면을 가꾸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저절로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내 마음 속에 밑줄을 그을 만한 게 없어서 아쉬웠지만, 경쾌하고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는 점으로 만족하려고 한다. 이 책의 모두가 주인공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세 친구를 둘러싼 사치스러운 압구정 이야기를 즐길 준비가 되었다면 서점으로 가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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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티지 걸 in Hollywood
조던 로터 지음, 윤미나 옮김 / 예담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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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에 대해서 짤막하게 말해보라면, ‘아주 화려한 성장소설’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빈티지 걸>의 배경은 in HOLLYWOOD에서 알 수 있듯이 할리우드이다. <빈티지 걸>은 자신의 진정한 꿈을 좇는 생활 속에서 소녀가 점점 자라나는 모습을 아주 발랄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빈티지 걸>의 주인공 사만다 로즈는 열여덟이 될 때까지 미국 동부에서 자라왔다. 한 마디로 할리우드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생활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고, <제인 에어>를 좋아하는 완벽한 열여덟 살 문학소녀이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사만다는 자의가 아니더라도 빈티지 패션을 즐겨 입고, 유행에서 조금 뒤떨어진, 한마디로 고지식한 패션 감각을 갖고 있다.

  그런 시골 소녀 사만다는 고등학교에서의 마지막 방학을 맞아 할리우드 영화제작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게 된다. 상류층 삼촌의 소개 덕분이었다. 사만다가 할리우드로 오면서부터 태어나는 그녀의 새로운 인생은 그야말로 지금까지와는 정반대였다. 할리우드에는 그녀의 열여덟 인생에서는 맛보지 못했던 무언가가 있었다. 한마디로 사만다는 문화충격을 겪게 된 것이다.

  집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터라 삼촌 집에서 묵게 되는데, 바로 사촌 언니와의 처음 아닌 첫 만남에서부터 이들의 차이는 확연히 눈에 띈다. 태어나면서부터 비버리힐스에 살았던 사촌 언니 케이트는 사만다를 무시하고 골탕 먹이려 든다. 그러나 둘이 점점 친해지면서 사만다에게 자신의 일상생활, 그러니까 비버리힐스의 일상을 그녀에게 적응시키려 한다. 아주 호화로운 생활을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보내고 있는 케이트와 케이트의 친구들을 보면서 사만다는 놀라움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갑자기 불어 닥친 모든 혼란 속에서 사만다는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변화시킨다.




  사만다는 케이트와 함께 지내면서 그녀의 삶으로부터 영향을 받고, 반대로 케이트 역시 사만다를 지켜보면서 사만다로부터 영향을 받게 된다. 흥청망청 사치만 해왔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시간만을 보내면서 지내왔던 케이트는 점점 지금까지의 자신의 이런 무의미한 생활에 대해서 뭔가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낀다.

  그리고 이렇게 그들은 각자의 꿈을 좇아 앞으로 나아가며 성장해간다. 성장하는 이야기와 함께, 그녀들의 가슴 뭉클한 사랑이야기, 우정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바로 거기에서 발랄하고 생동감이 넘치는 젊음이라는 것, 순수함이라는 것을 함께 느낄 수 있다.




  어린 시절, 아무 이유 없이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이 책의 사만다 역시 열여덟 짧은 인생 중에서 드디어 처음으로 부모님 보호 아래서 벗어나게 되었다. 감시라면 감시라고 할 수 있을 보호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사만다를 포함하여 우리는 해방감과 자유라는 감정을 맛볼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 자유는 곧 불안함과 책임감으로 변한다는 사실 역시 알게 된다. 이제는 내가 선택해야 하고, 내가 결정을 해야 한다. 어른들이 접하는 냉혹한 현실을 만나게도 된다. 그리고 이제 그 속에서 우리도 어른이 되기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 정착하고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그런 과정을 이 책 <빈티지 걸>은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도 발랄함과 경쾌함도 놓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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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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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레이드’는 ‘축제나 축하 또는 시위 행사 따위로 많은 사람이 시가를 화려하게 행진하는 일. 또는 그런 행렬.’을 말한다. 그런 화려함 속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룰대로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조금의 변화도 없이. 처음에는 퍼레이드의 화려함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변화가 없고 무료한 행진이 계속되면 그마저의 관심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한편, 바깥에서 바라보는 그들은 퍼레이드가 끝나면 기억 속에 잊혀지고, 그들이 바라보는 바깥의 우리 역시 퍼레이드의 시간이 끝나면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서로가 의식되는 순간은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찰나일 뿐인 것이다.







  자신과 타인이라는 그 관계 속에서 갖게 되는 인간의 심리가 <퍼레이드> 속에 섬세하게 또 경쾌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책 <퍼레이드>의 저자 요시다 슈이치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듯 하면서도, 실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현대 젊은이들의 일상을 이 책에 그려내면서 서로에게 더욱 깊은 소통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변함없는 무료한 일상이 진행되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이런 비극적인 모습을 그러나 비극적이지 않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 책에는 다섯 남녀가 등장한다. 스키모토 요스케는 스물한 살로, 대학 경제학부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멕시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다. 오코우치 고토미는 스물세 살로, 직업이 없다. 하는 일이라곤 집에서 남자친구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이다. 소우마 미라이는 스물네 살이고 일러스트레이터와 잡화점 점장을 겸하고 있다. 고쿠보 사토루는 열여덟 살이고 스스로 ‘밤일’이라 칭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하라 나오키는 스물여덟 살, 독립영화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한 아파트에 우연히 동거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이를 일본식 조어로는 ‘룸셰어’라고 하는데,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으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된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룸셰어’를 계기로 이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활공간을 공유하게 된다. 각각 다른 직업, 다른 가치관 등을 갖고 있는 이들은 아주 친밀한 관계도 아니면서 동시에 어색한 사이도 아니다. 적당한 친밀함과 적당한 거리를 서로 갖고 유지하면서 생활을 유지한다. 그들은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는 척 하지만, 그 고민이라는 것은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털어놓아야 할 이야기’일 뿐이다. 속으로는 ‘당장 내일 헤어져도 섭섭하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관계를 규정짓는다.




  이 책 <퍼레이드>는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등장인물 다섯 명이 각각의 주인공이 되어 각각의 챕터에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각각의 화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스로가 화자가 되어 있는 이야기 속에서는 그 스스로가 바로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계속 순환되면서 모두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엑스트라가 되기도 한다. 그런 설정 때문인지 각 인물에 대한 내 평가나 생각도 화자가 바뀔 때마다 바뀌었다. 자신이 내면에 담고 있는 모습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일,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분명 ‘나’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나는 단지 ‘조연’일 뿐이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는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보이는 모습을 의식하기 때문에 ‘그대로의 나’와 ‘보이는 나’ 사이를 적절히 조율해가면서 연출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처럼

      거북이가 한 걸음 한 걸음 열심히

      앞으로 나갔기 때문에 이긴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은 기어가는 모습을

      토끼에게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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