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퍼레이드’는 ‘축제나 축하 또는 시위 행사 따위로 많은 사람이 시가를 화려하게 행진하는 일. 또는 그런 행렬.’을 말한다. 그런 화려함 속을 조금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은 서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 룰대로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조금의 변화도 없이. 처음에는 퍼레이드의 화려함이 눈길을 사로잡지만, 변화가 없고 무료한 행진이 계속되면 그마저의 관심도 떨어지게 마련이다. 한편, 바깥에서 바라보는 그들은 퍼레이드가 끝나면 기억 속에 잊혀지고, 그들이 바라보는 바깥의 우리 역시 퍼레이드의 시간이 끝나면 어떤 의미도 갖지 못한다. 서로가 의식되는 순간은 퍼레이드가 진행되는 찰나일 뿐인 것이다.







  자신과 타인이라는 그 관계 속에서 갖게 되는 인간의 심리가 <퍼레이드> 속에 섬세하게 또 경쾌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이 책 <퍼레이드>의 저자 요시다 슈이치는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듯 하면서도, 실은 서로에게 무관심한 현대 젊은이들의 일상을 이 책에 그려내면서 서로에게 더욱 깊은 소통이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변함없는 무료한 일상이 진행되는 현실을 보여주면서 이런 비극적인 모습을 그러나 비극적이지 않게 표현하고 있었다.




  이 책에는 다섯 남녀가 등장한다. 스키모토 요스케는 스물한 살로, 대학 경제학부에서 공부하고 있으며 멕시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고 있다. 오코우치 고토미는 스물세 살로, 직업이 없다. 하는 일이라곤 집에서 남자친구 전화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이다. 소우마 미라이는 스물네 살이고 일러스트레이터와 잡화점 점장을 겸하고 있다. 고쿠보 사토루는 열여덟 살이고 스스로 ‘밤일’이라 칭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하라 나오키는 스물여덟 살, 독립영화사에서 일하고 있다.

  그들은 한 아파트에 우연히 동거하게 되면서 인연을 맺게 된다. 이를 일본식 조어로는 ‘룸셰어’라고 하는데, 텔레비전 드라마의 영향으로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게 된 하나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이 ‘룸셰어’를 계기로 이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생활공간을 공유하게 된다. 각각 다른 직업, 다른 가치관 등을 갖고 있는 이들은 아주 친밀한 관계도 아니면서 동시에 어색한 사이도 아니다. 적당한 친밀함과 적당한 거리를 서로 갖고 유지하면서 생활을 유지한다. 그들은 고민이 있으면 털어놓는 척 하지만, 그 고민이라는 것은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털어놓아야 할 이야기’일 뿐이다. 속으로는 ‘당장 내일 헤어져도 섭섭하지 않을’ 사람들이라고 관계를 규정짓는다.




  이 책 <퍼레이드>는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등장인물 다섯 명이 각각의 주인공이 되어 각각의 챕터에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 각각의 화자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스스로가 화자가 되어 있는 이야기 속에서는 그 스스로가 바로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나머지 인물들은 그저 엑스트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모습이 계속 순환되면서 모두는 주인공이 되기도 하고 엑스트라가 되기도 한다. 그런 설정 때문인지 각 인물에 대한 내 평가나 생각도 화자가 바뀔 때마다 바뀌었다. 자신이 내면에 담고 있는 모습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이렇게 다르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일, 누구나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이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분명 ‘나’이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나는 단지 ‘조연’일 뿐이다. 그 사람의 인생에서는 나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리고 그런 관계 속에서 우리는 보이는 모습을 의식하기 때문에 ‘그대로의 나’와 ‘보이는 나’ 사이를 적절히 조율해가면서 연출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같다.













      토끼와 거북이의 경주에서처럼

      거북이가 한 걸음 한 걸음 열심히

      앞으로 나갔기 때문에 이긴 게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은 기어가는 모습을

      토끼에게 들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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